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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왕자님 애인의 조건 (3/35)

3. 왕자님 애인의 조건

“아직도 그렇게 싫어?”

백도경은 운전 중인 삼촌을 흘깃 쳐다보고는 대답 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차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따라 사라졌다 나타나는 자신의 얼굴은 오늘따라 더욱 못생겨 보였다.

오늘 아침, 그녀를 깨운 사람은 할머니나 삼촌이 아닌 엄마였다. 엄마는 열다섯 살짜리 딸이 있고, 내일모레면 마흔임에도 여전히 젊고 예뻤다.

백도경은 차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눈은 엄마나 삼촌과 똑같았지만 다른 곳은 하나도 닮은 데가 없었다.

서도운의 동창이자 친한 친구인 이명진은 어릴 때부터 그녀의 작은 코와 입을 보며 완두콩으로 질식시킬 수 있는 콧구멍이라느니 티스푼으로 밥을 먹으라느니 놀려댔다.

차창을 보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으로 짱구 이마를 적당히 가리고 나머지는 귀 뒤로 넘겼다. 머리카락조차 엄마나 삼촌과는 다르게 가느다랗고 힘없이 늘어지는 생머리라, 하나로 묶으면 툭 튀어나온 이마 때문인지 대머리처럼 보였다. 백도경은 이명진에게 변발이냐는 소리를 들은 후 한 번도 머리를 묶은 적이 없었다.

모든 게 다 아빠인 백경 탓이었다.

“못생긴 투덜이 스머프 같은 게…….”

백도경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서도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경아, 아빠랑 조금만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될까?”

“싫어.”

조카의 단호한 대답에 서도운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백도경은 낯가림이 심한 아이였고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극심한 혼란과 스트레스를 주었다. 스트레스는 부모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서도희와 백경을 부모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나마 서도희는 시간이 지나며 어머니로 받아들였지만, 아버지인 백경은 바퀴벌레만큼이나 싫어했다. 백경도 부성애가 없어 딸을 광고주보다 멀고 다루기 힘든 존재라 여겼다. 부녀관계는 지난 5년 동안 계속 나빠지기만 할 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도희는 부녀가 똑같이 싫은 일을 강요하면 심각하게 엇나가는 성격이라는 걸 알기에 억지로 중재하지는 않았다. 다만 남보다는 가까운 사이가 되기를 바랐다. 그녀는 용돈을 미끼로 딸에게 일주일에 세 번, 점심이든 저녁이든 아빠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제안했다.

또래와는 단위가 다른 용돈을 써대는 백도경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밥을 같이 먹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흔쾌히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두어 번 아빠와 시간을 난 보내고 난 후에야 싫은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다.

백도경에게 부모란,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애달픈 존재가 아니었다. 아빠인 백경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싫은 사람이었고, 엄마인 서도희를 떠올리면 대부분 우울해지고 때때로 불쾌했다. 서도희는 그녀와 달리 머리가 좋고,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완벽한 존재였다. 그래선지 서도희가 엄마라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다.

오늘처럼 잠에서 막 깬, 자신의 제일 못생긴 얼굴을 엄마가 본 날은 방 밖으로 나가기도 싫었다. 그런 날 자신의 못생김의 근원인 아빠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죽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천천히 가줬으면 했지만, 출근 시간이 지난 올림픽대로는 정체 구간 없이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창밖으로 올림픽대교가 보이자 잠시 후면 아빠를 본다는 생각에 너무나 우울해져 휴대폰을 꺼내 모든 SNS를 확인했다.

그녀의 취미 생활은 SNS에 올라온, 다치고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의 후원금 계좌마다 돈을 보내는 것이었고, 이 취미 생활로 인해 엄청난 금액의 용돈이 필요했다. 도움을 바라는 새로운 게시물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더욱 우울해졌다.

“삼촌, 보호소 가면 안 돼?”

백도경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서도운을 보며 말했다.

동물병원에 반려동물을 버리는 일은 흔했다. 잘 키워 달라며 병원 문 앞에 버린다든지, 병원에 데리고 왔다가 치료비를 듣고 두고 가버리거나 심각한 질환으로 입원 후 소식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본원은 물론 지점까지 합치면 한 해에 버려지는 동물들의 수는 엄청났다. 결국 경기도 외곽에 유기동물을 위한 보호소를 따로 만들어 병원에 버려지는 동물을 모아 돌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늙고 병든 동물들이었고, 잘 적응하는 동물도 있었지만 버려졌다는 충격으로 우울증에 걸리거나 사람을 피하는 동물도 있었다.

그녀는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엔 대부분 이 보호소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삼촌과 함께 있는 시간 다음으로 행복했다.

“주말에 같이 가기로 했잖아. 오늘은 안 돼.”

서도운의 대답에 백도경은 ‘망할 스머프’라고 중얼거리며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차창 밖으로 백경의 사무실과 스튜디오가 있는 빌딩이 보이자 사방으로 불쾌감을 뿜어냈다. 그녀는 밥 먹는 내내 못생긴 아빠의 얼굴은 절대 보지 않고 삼촌의 잘생긴 얼굴만 보리라 다짐했다.

서도운은 그런 조카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 싫어하면서도 닮을 수 있을까 신기했다.

백도경의 모습은 싫은 일을 할 때의 백경과 똑같았다. 그러나 절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백도경에게 ‘아빠와 닮았다’는 말은 지뢰나 다름없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그 말을 들으면 지쳐 쓰러질 정도로 울어댔다. 그러나 그것조차 백경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빌딩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다 흡연 구역에 선 백경과 눈이 마주친 백도경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망할 스머프’, ‘못생긴 스머프’, ‘스프나 되어버려라’라고 중얼거렸다.

차를 세우고 문을 열어도 백도경이 내릴 생각을 않자 결국 서도운은 등을 내밀었다. 백도경은 입을 삐죽이면서도 삼촌의 등에 찰싹 매달렸다.

잔뜩 구겨진 얼굴로 삼촌의 등에 매달려 다가오는 딸의 모습에 백경은 낄낄거리고 웃었다.

“백도경, 넌 그 나이에도 업혀 다니냐?”

“무슨 상관이야, 아빠가 업어주는 것도 아니면서!”

“아직도 애기네, 애기. 우리 처남이 고생이야.”

백경이 담배를 물고 다가오자 백도경은 큰소리로 비명을 질러댔다.

“담배, 싫어! 가까이 오지 마!”

딸의 외침에 백경은 머쓱해져 입에 문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백도경은 매서운 눈으로 자신의 아빠인 백경을 노려봤다. 그녀는 백경의 모든 것이 싫었지만 흡연자라는 사실이 제일 싫었다. 동물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비흡연자였고,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엄마가 좋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런 남자와 왜 결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담배 껐으니까 가도 돼?”

백경이 입을 삐죽거리며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다.

“냄새나! 꺼져!”

“아빠한테 너무 함부로 말하는 거 아냐?”

“담배 끊기 전에는 근처에도 오지 마!”

백도경은 아빠를 향해 털을 부풀린 고양이처럼 위협했다. 결국 백경은 입술을 툭 내민 채 두어 발자국 떨어져 딸을 쳐다봤다.

서도운은 부녀가 꼭 닮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을 보며 이들이 친해질 수 없는 건 동족 혐오가 아닐까 생각했다.

“매형, 밥 먹으러 어디로 갈 거예요?”

“처남이 가고 싶은 데로 가면 돼. 근데 회의하다 나온 거라서 회의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백경은 딸을 업고 있는 처남의 눈치를 보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괜찮아요, 사무실에서 기다릴게요.”

“고마워, 빨리 끝낼 테니까 가고 싶은 데 골라 놔.” 

서도운의 대답에 백경은 엘리베이터를 타며 환하게 웃었다.

백도경이 웃고 있는 백경을 향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멍청이 스머프’, ‘게으름뱅이 스머프’, ‘못생긴 스머프’라고 중얼거리자, 백경도 지지 않고 ‘160도 안 되는 게’, ‘공부도 못하는 게’, ‘학교도 안 가면서’라고 대꾸했다.

엘리베이터가 겨우 5층을 올라가는 동안 아버지와 딸은 서로를 온갖 말로 비아냥거렸고 서도운은 이들이 죽을 때까지 사이가 좋아지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문이 열리자 서도운은 얼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백경보다 먼저 사무실로 발을 옮겼다. 백도경이 뒤에 선 백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뭐라고 하려는 찰나 회의실에서 나온 이가 그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서 선생! 언제 왔어? 이제 완전히 들어온 거야?”

삼촌의 어깨너머로 기획팀장의 얼굴을 본 백도경은 서도운의 등에서 슬그머니 내려왔다.

“네, 잘 지내셨죠?”

“서 선생이 없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서 선생이 중간에 와서 백 감독 멱살 안 잡았으면 우린 이 세상이 사람 아니야. 서 선생이 완전히 들어 왔다니까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기획팀장은 서도운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한 번씩 백경을 노려보는 걸 잊지 않았다.

“아, 여기는 이번에 새로 온 재무회계 담당자 정선우 씨.”

그는 자신의 뒤에 선 누군가를 끌어당겨 옆에 세웠다. 서도운과 백도경은 나직하게 탄성을 질렀다. 남자는 재무 담당이라기보다는 배우나 모델로 보였다.

그런 반응이 익숙한지 기획팀장은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리며 남자에게 서도운을 소개했다.

“이쪽은 백 감독 처남. 백 감독이 제수씨만큼이나 무서워하는 사람이야. 백 감독한테 유일하게 쌍욕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안녕하세요, 서도운입니다.”

“정선우라고 합니다.”

훌쩍하니 큰 키를 가진 남자가 서도운이 내민 손을 잡았다. 쌍꺼풀 없이 살짝 내리감은 눈이 푸르스름하게 보였다. ‘잘생겼다’는 말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외모였다.

서도운은 허리를 찔러대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고 조카를 소개했다.

“이쪽은 백 감독 딸입니다.”

그녀는 웃음기 하나 없이 자신을 내려보는 남자를 향해 힘차게 손을 내밀었다.

“백도경입니다!”

고개를 살짝 내려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작은 손을 보던 남자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그 손을 잡았다.

“엄청 잘생기셨어요.”

악수가 끝나도 백도경이 손을 놓아주지 않자 남자는 미간에 옅은 주름을 잡고 노려봤다. 그제야 그녀는 슬며시 손을 놨다. 남자는 백경과 기획팀장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우리 회의 끝나서 밥 먹으러 갈 건데, 서 선생도 같이 갈래?”

“끝났어? 나 없이?”

기획팀장의 쾌활한 말에 백경은 놀라 되물었다.

“백 감독 없는 회의가 진짜지. 담배 피우러 간 동안 이야기 다 끝났으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나중에 물어봐. 서 선생, 뭐 먹고 싶어? 서 선생 돌아오는 것만 기다린 사람 많아. 이참에 다 부를까?”

기획팀장은 휴대폰을 꺼내며 한껏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경은 불퉁한 얼굴로 서도운의 끌어당겨 자신의 옆에 세웠다.

“……서 선생은 나랑 도경이랑 밥 먹으러 갈 거야.”

“백 감독은 담에 먹으러 가.”

“싫어.”

“아, 쪼잔한 새끼.”

그는 백경을 한껏 노려보고는 “시간 나면 불러”라며 서도운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주고는 다시 회의실로 들어갔다.

처남의 옷깃을 꼭 잡고 있는 아빠를 보고 백도경이 “왕따 스머프”라며 낄낄거리자 백경은 무어라 대꾸하지 못하고 입술만 삐죽거렸다.

* * *

백도경은 전에 갔던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 이름을 말했고 그녀의 선택에 백경과 서도운은 두말없이 따랐다.

룸으로 안내된 세 사람은 메뉴를 보고 적당히 주문했다. 먼저 나온 음식 중 샐러드를 뒤적이던 백도경은 백경을 힐끔 쳐다보더니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선우 씨는 언제부터 일했어?”

“한 달 좀 넘었나?”

“일 잘해?”

“잘할걸. C그룹 출신이야.”

빵을 자르던 서도운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C그룹인데 이쪽으로 이직한 거예요?”

“그러게, C그룹에 비하면 아빠네 회사는 코딱지잖아.”

딸의 말에 백경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항의했다.

“아냐, 우리 회사도 잘 나가.”

“코딱지 맞잖아! 영화 한다고 돈도 다 날리고!”

“그건…… 말 안 하기로 했잖아.”

백경은 고개를 푹 숙이고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백도경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서도운은 조카의 동그란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녀는 작은 비명과 함께 이마를 감싸고 삼촌을 쳐다봤다.

“그만해.”

백도경은 커다란 눈을 울 것처럼 껌벅이며 조그만 입술을 삐죽였다.

“씨이, 아빠 때문에 혼났어.”

“백도경, 거기서 더 하면 정말 혼낼 거야. 그래서 정선우 씨는 왜 이직을 했답니까?”

서도운이 잘라둔 빵을 내밀며 다시 묻자 백경은 빵을 집어 조그맣게 찢어 스프 그릇에 넣었다.

“5대 그룹 중에 C그룹이 연봉이 약해서 이직률이 높대.”

“연봉 때문에 옮긴 거예요? 매형은 얼마를 불렀는데요?”

“4천.”

서도운은 한 번도 월급쟁이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 그 연봉이 많은지 적은지 가늠할 수 없었다.

“더 부른 거예요?”

“아니, 4천 넘게 받았다던데.”

“연봉 때문은 옮긴 건 아닌가 보네요.”

서도운이나 백경이나 돈에 대해서는 매우 둔했다. MOON 동물병원의 매출은 한 해 백억에 가까웠고 백경의 프로덕션이 지난해 벌어들인 돈은 15억이 넘었다.

한도 없는 카드를 가진 두 남자는 대학생이 받는 아르바이트비나 회사원의 연봉이 얼만지 들어도 그것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졌는지 알지 못했다.

“뭐가 좀 있나 봐. C그룹 영상 쪽 투자 분석팀에 있어서 우리 쪽 돌아가는 걸 잘 안다고 해서 오케이 했는데 원래 거기 사람이 아니래.”

“원래는 어디 있었는데요?”

“본사 재무팀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도운을 보며 백경은 재빨리 덧붙였다.

“난 원래 면접 같은 거 안 보잖아. 정선우 씨 이력서도 안 봤어. 나중에 얼굴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주문한 스테이크가 나오자 서도운은 테이블 위에 놓인 스테이크 접시를 끌어당겨 자신의 앞에 놓고 백도경에게 물었다.

“썰어줄까?”

삼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딸을 보며 백경도 뒤늦게 다른 스테이크 접시를 가져가 “나도”라고 말했지만 돌아온 건 싸늘한 표정과 한심한 눈빛이었다.

“눈치 없는 스머프.”

백도경은 삼촌이 잘게 썰어준 스테이크를 조그만 입에 밀어 넣으며 툭 내뱉었다.

“정선우 씨는 애인 있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딸의 물음에 백경은 입을 삐죽이며 대꾸했다.

“면접 볼 때 슬쩍 물어볼 수도 있지.”

“내가 면접 안 봤다니까, 그리고 그런 거 묻는 건 실례야.”

“좀 물어보면 어때서!”

“그걸 왜 물어?”

백경은 스테이크를 꾹꾹 씹어대며 물었다.

“잘생겼잖아.”

“잘생기면 애인 있는지 물어봐야 해?”

“응.”

“왜?”

“삼촌이 잘생겼으니까.”

부녀의 대화를 들으며 말없이 샐러드를 입에 넣고 있던 서도운은 먹던 걸 멈추고 조카를 바라봤다.

“애인 없다고 그러면 게이인지 물어보고, 게이라고 그러면 서 선생 소개시켜주게?”

“응.”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백도경을 보며 두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백도경, 잘생긴 남자만 보면 서 선생이랑 엮어보려는 것 좀 그만해.”

“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백도경의 모습에 두 사람은 무언가를 입에 넣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서 내려놨다. 그들은 입을 오물거리며 토끼처럼 먹어대는 백도경을 빤히 쳐다봤다.

“어떤 남자를 사귀든 서 선생 맘이야.”

“아빠는 삼촌이 못생긴 사람이랑 사귀는 게 좋아?”

“그럴 수도 있지.”

백경의 말에 백도경은 들고 있던 포크를 던지듯 내려놓으면 고함을 질렀다.

“뭐가 그럴 수도 있어! 엄마가 아빠같이 못생긴 스머프랑 결혼했다고 해서 삼촌도 못생긴 스머프랑 결혼했으면 좋겠어?”

“엄마랑 아빠가 결혼한 게 뭐? 뭐가 맘에 안 드는데!”

서도운은 머리를 감싸 쥐고 이곳이 룸이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엄마보다 키도 작잖아!”

“딱 손가락 한 마디 작아!”

“난쟁이! 땅딸보! 호빗!”

“너네 삼촌도 180이 안 되잖아!”

“삼촌이 뭐? 삼촌은 177이거든! 아빤 170도 안 되면서!”

“170은 넘어! 지난달에 쟀을 때 171이었거든!”

“거짓말하지 마!”

참다못한 서도운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있던 그릇이 흔들렸다.

부녀는 동시에 입을 다물고 서도운을 쳐다봤다.

“그만해.”

늘 웃고 있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조건 키 큰 미남으로 사귈 테니까 그만하고 먹어.”

부녀는 얌전히 앉아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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