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왕자님의 무도회
서도운은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약속한 술집으로 걸어갔다. 익숙했던 거리가 어색해 주위를 둘러봤다. 고작 2년 사이에 새로 생기거나 업종을 바꾼 가게들로 인해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노랫소리가 조그맣게 흘러나오는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자 문밖과는 다르게 시끄러운 댄스곡이 바닥을 울렸다. 어두운 실내는 술병이 늘어선 바 테이블과 벽면 사이로 흘러나오는 여린 조명뿐이라 아는 사람이라도 얼굴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도운 형!”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잘 있었어?”
“사지 멀쩡하면 잘 지낸 거 맞지?”
남자는 밝게 웃으며 스피커에서 멀리 떨어진 테이블로 그를 이끌었다.
“원구 형이 완전히 들어온 거라던데 이제 공부는 다 한 거야?”
“공부에 끝이 어디 있어? 자격증이나 하나 따고 들어 온 거야.”
웃음을 거두지 않은 남자가 스탠딩 테이블을 장식한 작은 불빛 아래로 메뉴판을 내밀었다.
“와, 역시 S대는 다르구나. 형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지.”
“코로나 라임. 넌?”
그는 가볍게 웃으며 메뉴판을 접어 테이블 옆 포켓에 집어넣었다.
“하이네켄. 간이 두 개인 사람이 코로나라니, 날 샐 때까지 마실 생각이야?”
“오랜만에 인천에서 해 뜨는 거 볼래?”
서도운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남자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잠깐만, 내일 스케줄 좀……. 형이랑 술 마시는 게 얼마나 그립던지…….”
남자가 휴대폰을 보는 동안 그는 바로 가서 바텐더와 인사를 나누고 술병과 라임을 담은 접시를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고마워, 내일 가봉이 있는데 그건 세나가 하면 되거든. 출근 안 한다고 메시지 보냈어.”
“역시, 문경운!”
그가 술병을 내밀자 남자도 녹색 병을 내밀어 부딪혔다.
“워우, 운 브라더스!”
오랜만에 보는 듣는 구호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는 그를 향해 울상을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도운 형, 그렇게 웃지 마. 설렌단 말이야.”
그 말에 서도운은 더 크게 웃었다.
남자들밖에 없는 이 술집에서 그가 절대 섹스하지 않을 사람을 꼽으라면 눈앞의 남자와 바텐더였다. 그나마 바텐더가 여자라 제외한다면 함께 술을 마시는 남자는 양원구만큼이나 안심할 수 있는 존재였다.
양원구의 가게에서 알게 된 문경운은 다섯 살 아래의 동생으로 놀랄 정도로 붙임성이 좋았다. 술이 적당히 취했을 때 문경운은 그를 보며 “형은 진짜 왕자님 같아서 절대 형이랑 잘 일은 없겠다”라며 행복해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좋은 술친구가 되었고, 종종 날이 샐 때까지 술을 퍼마셨다.
문경운은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했다. 화려한 레이스, 섬세한 문양, 반짝이는 비즈……. 그런 아름다운 것으로 사람을 꾸미는 것이 좋아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의 이상형은 자신이 사랑하는 웨딩드레스가 어울리는 남자였고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큰 체격을 가진, 턱시도가 잘 어울리는 미남자들에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쾌활한 성격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해 서도운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왔다. 오늘도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폭죽을 터뜨리며 춤을 추는 오리 이모티콘과 함께 “몇 시? 어디서?”라고 답을 보내와 그 한결같음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역시 미남이랑 있으니 조명이 필요 없네. 형이 미국 가고 나서 한국 게이 얼굴 수준이 팍 떨어졌어.”
“에이, 그건 아니지.”
“진짜야. 미남 게이가 전부 증발했어.”
남자건 여자건 예쁘고 잘생기면 다 좋다는 심각한 얼굴 밝힘증을 가진 문경운은 진중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요즘은 다들 얼굴에 손을 대거든. 성형하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닌데, 좀 생겼다기에 보러 가면 너무…….”
“그게 보여?”
“내 눈이 성형외과 의사보다 정확해. 슥 보면 견적이 바로 나와.”
서도운은 여전히 진지하게 말하는 문경운을 보다 웃음이 터져 술병을 내려놨다.
“형이 가고 자연산으로 잘생긴 게이는 딱 두 명 봤어.”
“누구?”
비밀을 털어놓듯 소곤거리는 문경운의 어투에 그도 자연스럽게 나직하게 물었다.
“정원이 형 애인이랑 씹선비.”
짐작도 못 한 사람의 등장에 그의 표정도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원이 애인을 봤어? 원구 형도 자세히는 모른다던데.”
“아~주, 우~연하게, 마포 돼지갈비집에서 봤어.”
예상치 못한 문경운의 말에 그는 테이블을 두드리며 웃어댔다.
“정말……, 우연하게 봤구나. 정원이가 찍었으면 무조건 키 큰 미남이겠네.”
“키 180cm 이상, 얼굴은 주먹만 하고, 팔다리 긴 모델 체형에 모델 얼굴이야.”
“모델 체형은 알겠는데 모델 얼굴은 뭐야?”
“패션쇼에 나오는 모델들을 보면 색기랑 카리스마는 줄줄 흐르는데 표정이 없잖아. 딱 그렇게 생겼어.”
그는 석고상처럼 굳은 표정으로 런웨이를 오가는 모델들을 떠올렸다.
“아,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
“잘생겼어. 그쪽이 모델이면 씹선비는 배우야.”
“배우?”
“형의 영혼이 ‘스포트라이트’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씹선비는 ‘반사판’을 지참하고 태어났지. 자체발광, 얼굴에서 빛이 나와.”
필사적으로 웃음을 삼켰지만 ‘끅끅’하는 소리가 입술 사이로 빠져나왔다. 서도운은 결국 참지 못하고 미친 듯 웃었다.
“연예인인 줄 알았는데 회계사라던가? 얼굴이랑 직업이 전혀 안 어울려.”
그는 문경운의 말에 매형의 회사에서 만났던 남자를 떠올렸다.
“나도 그런 사람 알아. 엄청나게 잘생겼는데 재무회계 쪽이라더라.”
“그래? 재능을 낭비하는 사람이 널렀구나. 그런 얼굴이면 연예인을 해야지, 왜 회계사 같은 걸 해.”
투덜거리던 문경운은 하이네켄 병을 들어 몇 모금 마시고 내려놓더니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바 옆에 있는 출입구를 노려봤다.
“누가 왔어? 나 말고 연락한 사람이 더 있어?”
서도운은 마시던 코로나 병에서 입을 떼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잠시 시선을 뒀다.
“형, 오늘 눈이 호강하는 날인가 봐.”
“왜?”
“씹선비야.”
“씹선비?”
그는 병을 내려놓고 몸을 돌려 출입구를 쳐다봤다.
바 테이블을 따라 걸어가는 남자의 얼굴이 진열장 너머 비치는 푸르스름한 빛에 드러났다. 술집을 내부를 둘러보는 얼굴이 기억에 있었다.
탄성이 절로 나오던 그 남자였다.
“내가 오늘 한국 5대 미남 게이 가운데 둘을 보는구나. 이런 날은 일기를 써놔야…….”
문경운이 휴대폰을 꺼내 부지런히 자판을 눌러댔다. 스탠딩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휴대폰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와 그와 문경운의 얼굴을 비췄다.
어둠 속을 흐르듯 지나치던 남자의 시선이 그에게 멈췄다.
‘스포트라이트’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얼굴이 휴대폰 화면에서 새어 나온 빛에도 존재감을 발했다.
서도운은 남자를 향해 눈꼬리를 휘며 녹을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푸른 조명 속에서 아름다운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걸 보며 남자가 자신을 알아봤다고 확신했다.
남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출입구를 향했다.
“잠깐, 거기!”
서도운은 출입구를 빠져나가는 남자의 뒤를 쫓았다.
“잠깐만요! 정선우 씨!”
문밖으로 나간 남자는 그의 외침에도 두세 개씩 계단을 올라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그도 난간을 잡고 서너 개씩 뛰어올라 달려가는 남자의 뒤를 쫓았다.
“정선우 씨! 잠깐만! 야, 씹선비!”
서도운은 남자의 뒤를 정신없이 쫓았다.
남자의 등을 보며 달리는 동안 주위 풍경은 점점 바뀌었다. 커다랗게 들리던 홍보도우미가 새로 개업한 가게를 소개하는 목소리와 댄스곡이 점점 멀게 들렸다. 남자와 그의 간격은 멀지도 않았지만 쉽게 좁혀지지도 않았다. 남자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야! 정선우! 멈춰!”
계속 이름을 부르고 외쳤지만 남자는 끝없이 달렸다.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었음에도 저렇게 잘 달리는 걸 보면 육상 선수라도 한 듯했다.
오랜만에 한 전력 질주에 숨이 막히고 머리가 멍해졌다. 더 이상은 달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야이, 씹선비야!”
서도운은 멈춰서 구두를 벗어 달아나는 남자를 향해 던졌다. 분노를 담아 힘껏 던진 구두는 정확히 뒤통수를 가격했다.
“으악!”
정선우가 짧은 비명과 함께 머리를 감싸 쥐고 쓰러졌다.
그는 황당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쳐다봤다. 머릿속에는 ‘구두가 흉기가 될 수 있구나’라든가, ‘설마 이걸로 죽지는 않겠지’ 같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길바닥에 한동안 웅크리고 있던 남자가 뒤통수를 누르며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직 그럴 때가 아니었는지 정선우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서도운은 일단 자신이 벗어 던진 구두를 향해 절룩이며 걸어가 구두부터 제대로 신었다.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돌아볼 만도 한데 가만히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스름한 가로등 아래, 길바닥에 주저앉은 남자는 왼쪽 눈가를 누른 채 조용히 울고 있었다.
“저기……. 정선우 씨, 지금 우는 거예요?”
얼빠진 질문에 정선우는 대답 없이 눈물만 흘려댔다. 그는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대체 얼마나 아프기에 저런가 싶었다.
“제가 머리를 좀 봐도 될까요?”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를 켜고 들이밀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남자가 날카롭게 외쳤다.
“건드리지 마세요!”
신경질적인 반응에 머쓱해져, 서도운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희미한 가로등 불빛으로나마 정선우를 살폈다. 그치지 않는 눈물이 퍽 애처롭게 보였다.
“계속 우니까 걱정돼서 그래요. 피 나는지만 확인할게요.”
그의 말에 조금은 누그러들었는지 정선우가 무어라 대답을 하긴 했지만, 입속에서 웅얼거리는 탓에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가 어떻다고요?”
“……렌즈요.”
“네?”
“……렌즈가 돌아갔어요.”
몇 번이나 다시 물어서 겨우 들은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도운은 한참 만에 머리 한구석에서 친구인 이명진을 떠올리며 ‘렌즈가 돌아갔다’는 말이 이명진의 일상어임을 깨달았다.
초고도 근시지만 시신경이 약해 안과 수술을 할 수 없는 이명진에게는 안경과 렌즈가 신체의 일부였다. 대학 시절 내내 이명진은 하루 한 번 이상 렌즈가 돌아갔다며 자신의 눈을 뒤집어 안구 어딘가에 붙어있는 렌즈를 꺼내 다시 장착했다. 한 번도 렌즈나 안경을 쓴 적이 없는 서도운은 진기한 쇼를 보듯 그 모습을 구경했다.
“한쪽만?”
서도운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정선우은 다시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양쪽 다요.”
깊고 깊은 한숨이 나왔다.
차라리 각막이나 결막 손상이라면 응급조치를 해줄 수 있지만, 길바닥에서 낯선 남자의 눈을 까뒤집어 렌즈를 찾아줄 수는 없었다. 주위를 돌아봤지만 어딘지도 모를 곳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켜 위치를 확인했다. 처음 만난 술집에서 지금 있는 곳까지 이동 경로를 보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정선우 씨, 육상 했어요? 진짜 잘 뛰네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남자를 보며 서도운은 설핏 웃었다.
대충 위치를 파악하고 정선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자신이 마구잡이로 던진 구두에 맞고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남자를 설득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랑 정선우 씨랑 나랑 만났던 바는 상당히 멀어요. 아마 한참 걸어가야 할 거예요. 원구 형네 가게 알죠? 헬스 트레이너 같은 남자가 주인으로 있는 병맥주집이요.”
“네.”
정선우의 대답에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원구 형네 가게가 나와요. 일단 그 근처로 데려가 줄 테니 거기서 원구 형네 가게든, 커피점이든 원하는 곳이 있으면 말해줘요. 그럼 그곳으로 안내해줄게요.”
“……양원구 씨 술집이요, 거기로 데려가 주세요.”
그는 자신을 볼 수 없는 남자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네.”
대답과 달리 정선우는 일어나지 못했다. 눈을 깜박이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얼굴을 가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손을 내리자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괜찮아요?”
서도운은 흘러내린 눈물을 닦는 정선우의 손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작은 접촉에 놀란 손이 날카롭게 그의 손을 쳐냈다.
“손잡아 줄게요.”
나지막한 속삭임에 하얀 손은 움직임을 멈췄다. 한참을 망설이듯 떠돌던 손이 허공을 더듬어 그에게 다가왔다.
서도운는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손을 살며시 잡았다.
“천천히 일어나요.”
눈물로 축축한 손을 힘주어 당기자 정선우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두 눈을 감은 남자는 그가 이끄는 대로 저항 없이 따라왔다.
“어지럽진 않아요?”
“네.”
“눈이 많이 나빠요?”
“네.”
계속되는 질문에 단답형의 대답이 이어지자 처음 계단 위에서 들렸던 대화가 떠올랐다.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단호하게 성욕을 느낀 적 없다고 대답하던 그 남자가 바로 정선우였다. 그는 숨죽여 웃고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