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 키스할 때 필요 없는 것(2권) (16/35)

16. 키스할 때 필요 없는 것

안경을 벗은 그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선명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흐릿하고 불분명했다. 그런 흐린 세상을 서도운의 손에 이끌려 발을 옮겼다.

어릴 때부터 좋지 않았던 눈은 중학생이 되자 안경 없이는 자신의 얼굴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 거울 속에 보이는 자신의 얼굴은 언제나 안경을 쓰고 있어서 안경이 없는 얼굴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은 항상 이상하게 비틀려 있었다. 양쪽 눈의 시력 차이가 심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만, 그의 눈에는 일그러진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붙어 있는 걸로 보였다. 그러나 그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안경을 벗는 게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충고에 안경을 벗고 렌즈를 썼다.

여러 가지로 렌즈는 이상했다. 낯선 감각은 렌즈에 익숙해지며 조금씩 사라졌지만,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마주한 자신의 얼굴은 그가 알던 얼굴이 아니었다. 거울 속에는 낯선 타인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얼굴을 보고 ‘잘생겼다’고 말했다. 전에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말이라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안경을 쓴 그와 안경을 벗은 그를 다른 사람처럼 대했다. 자기 자신이 느끼는 이질감에 타인의 태도가 더해져 가끔 안경을 쓴 자신이 안경을 벗은 자신과 별개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멍청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그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슈퍼맨은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을 뿐 근본은 히어로였지만, 그는 안경을 벗어도 여전히 사는 게 서툰 멍청이였다. 안경 쓸 때는 그냥 ‘멍청이’였고, 안경을 벗으면 ‘잘생긴 멍청이’가 되는 것뿐이었다.

‘잘생긴 멍청이’라고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안경을 쓰든, 안 쓰든 사는 건 똑같이 힘들었다.

사는 건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앞은 보이지 않고, 언제나 불안하고 답답했다. 자신의 발밑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앞으로 나갈 수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어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언젠가부터 서 있는 것도 힘들어져 주저앉았고, 때때로 그마저도 할 수 없어 바닥에 웅크려 간절하게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렸다.

서도운은 안경을 벗어도 보이는 사람이었다.

너무나 환해서 어디 있는지 보였다.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몸을 일으켜 손을 뻗고, 손이 닿지 않아 걸음을 옮기고, 소리 내 불렀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서도운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한 번도 그를 난처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한 적이 없었다. 그가 꼭 필요할 때 잠시 주어졌다 사라졌다.

그 손이 이제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제 원하기만 하면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힘주어 꼭 쥐자 서도운도 그의 손을 꼭 잡아 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닿았다가 떨어지는 어깨와 옷이 스치는 소리, 호흡까지 모든 것에서 서도운이 곁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나서 두근거렸다.

“형, 어디 가는 거야?”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궁금했다.

“내 집.”

“도경이랑 사는 데?”

서도운은 그의 말에 조그맣게 소리를 내 웃었다.

“거긴 어머니 집이야. 섹스하려면 도경이가 방해할 수 없는 곳으로 가야지.”

걸음을 멈췄다.

“섹스?”

머릿속에 서도운이 이전에 사귀었던 수많은 남자들이 떠올랐다. 얼굴 없는 그 남자들 사이에 그도 함께 있었다.

“아냐…, 난…….”

한순간 가슴을 메운 감정이 목구멍까지 채워졌다.

“하고……, 나도, 그렇게…….”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해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난……, 아냐!”

흐릿하던 시야가 하얗게 변하고 숨을 쉴 수 없었다. 서도운의 손을 으스러뜨릴 정도로 세게 쥐고 거칠어지는 호흡을 어떻게든 가라앉히려 애썼다.

“선우야.”

속삭이듯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서도운의 다른 손이 그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입 벌려.”

머리 위에서 차가운 물이 쏟아진 것 같았다.

마른침을 삼키며 혀로 입안을 더듬었다. 다행스럽게 피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도운이 그걸 거론한 것만으로 두려웠다.

불안정한 호흡이 조그맣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벌어진 틈새를 비집고 손가락이 들어왔다. 입안으로 들어온 손가락을 물지 않기 위해 턱을 벌리고 힘을 뺄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이 혀 위를 더듬는 기분은 기묘했다.

“빨아.”

정선우는 서도운의 말에 숨을 들이켰다.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길가에 서서 타인의 손가락을 빠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망설임이 길어지자 가쁘게 내쉬던 숨이 점점 가라앉았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선우야.”

자신도 모르게 턱에 힘이 들어갔는지 서도운의 손가락을 꼭 물고 있었다.

“빨아.”

재촉하는 서도운의 말에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눈을 감고 입술로 손가락을 빨아들이며 서도운의 손가락에 혀를 감았다.

입안에 넣어진 손가락을 빠는 것만 집중하자 부끄러움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생각도 감정도 사라지고 머리가 텅 비었다.

“흐으응…….”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신음에 변태가 된 것 같아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서도운이 손가락을 입에서 빼내자 고였던 침이 손가락을 타고 흘러나왔다.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숙이자 흐릿한 시야에 서도운의 발이 보였다.

“거긴, 형이… 섹스하는, 그런… 곳이야?”

“섹스는 호텔에서 하는 게 편해. 넌… 내 거니까 내 집에 데려가는 거야.”

서도운의 속삭임이 귀에 박혔다.

이제 그는 서도운의 것이었다.

입술이 달싹이며 무언가 말을 뱉어내려고 했지만 가슴이 두근거려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형… 집이, 따로, 있는 줄… 몰랐어.”

“나중에 카드키랑 도어락 번호 알려줄 테니까 형이 집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가 있어.”

“응.”

다시 서도운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네’라고 대답한 것만으로 새로 주어진 것들을 생각했다.

서도운의 집, 서도운을 기다리는 시간……. 서도운의 것이 된 자신까지 모두 특별했다.

더 빨리 대답했어야 했다. 그럼 더 빨리 이런 것을 누릴 수 있었을 거라는 후회가 들었다. 그러나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 서도운은 화를 내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를 평생 기다려줬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서도운이 원하는 건, 요구하는 건 바로 들어줄 생각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요구라면 왜 그런지 물어보면 될 터였다. 물어보면 서도운은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줬다. 서도운은 그가 무슨 말을 해도, 늦게 말해도, 느리게 말해도,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이제 서도운은 정선우에게 무얼 해도 괜찮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 * *

정선우는 그가 겪은 인간들 중 가장 연약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겪은 연약한 인간과는 달랐다. 정선우는 연약하지만 ‘쓰레기’가 아니었다. 착하고, 선량하고, 올곧은 인간이었다.

그는 정선우가 필사적으로 지켜온 도덕적인 가치관이 마음에 들었다.

사회의 윤리나 도덕을 무시하고도 살아갈 수 있는 인간들은 타인을 태연하게 희생시키고 밟았다. 희생당한 인간들은 체념을 배우고 그들의 안에서 윤리나 도덕은 퇴색하고 변질되었다.

그의 눈에 비친 정선우는 쉽게 포기하고, 체념에 익숙했다. 밟히는 것에 익숙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선함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서도운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고결하게도 느껴지는 그 선량함은 살아가는 데 쓸모없는 것이지만, 약해빠진 주제에 선함을 고집하는 고결함이 정선우라는 인간을 아주 예쁘게 보이게 했다.

무표정하던 얼굴은 그에게만은 어떤 감정도 숨기지 못했다. 약간의 친절, 약간의 배려, 약간의 애정에도 벌벌 떠는 정선우는 아주 귀여웠다.

잔뜩 굶주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면서도 배를 채우게 해달라고, 배가 고파 죽을 것 같다고 말하지 못하는 정선우가 사랑스러웠다.

맛있는 것을 내밀어도 두려움에 떨며 먹지를 못하는 정선우가 가여웠다.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힘든 건 그가 아니라 정선우였다.

서도운은 내내 즐거웠다. 애달픈 낑낑거림과 바닥에 떨어지는 침을 보며 정선우가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내민 것을 먹어치우기를 기다렸다.

배부름이 어떤 건지 알게 되면 배고픔을 참지 못하게 된다. 내내 굶주린 자에게 배고픔은 고통의 하나일 뿐이지만, 굶어보지 못한 자에게 배고픔이란 죽음이었다.

배부르게 먹이고 따뜻한 곳에서 재우고 애정을 베풀어, 정선우가 그것에 취해, 그것에 익숙해져 그의 곁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길들일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보다 정선우는 훨씬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정선우는 그에게 먹어도 되냐고, 허락을 구했다.

예쁜 껍데기를 가진 존재가 예쁜 말만 하고 예쁜 짓만 하고 있었다.

서도운은 앞이 보이지 않는 정선우를 자신의 집, 자신의 침대로 이끌었다. 침대 가에 앉은 정선우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잘 어울려서 처음부터 그곳에 두는 게 맞는 듯했다.

“벗어.”

정선우는 그의 말에 겁먹은 듯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벗어야 뭐든 하지.”

“형, 그냥, 아무것도……. 그냥…….”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애원하는 정선우를 보며 웃었다. 그가 웃는 걸 본다면 금세 안정될지도 모르지만 렌즈를 빼서 보이는 게 없을 테니 그게 아쉬웠다. 다음에는 안경을 쓰고 섹스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말했잖아, 네가 나를 사랑하는 동안은 난 네가 어떤 인간이든 실망하지도 않을 거고 버리지도 않을 거야.”

“……실망하는 건…, 그래도, 싫어. ……그건 싫어.”

결코 벗지 않을 거라는 듯 자신의 셔츠를 꼭 붙잡고 있는 정선우를 보며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고집 세고, 어리광 심한 개라니. 귀여웠다.

서도운은 웃음 끝에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입고 있는 옷이 거추장스러웠다.

셔츠 단추를 풀고, 바지 지퍼를 내리고, 속옷까지 벗어 던졌다. 그런 그의 모습을 정선우는 잘 보이도 않으면서 멍하니 바라봤다.

“형은 다 벗었어. 네 차례야.”

하얗게 질린 볼을 쓰다듬자 정선우는 그것만으로 조그맣게 신음하며 헐떡였다. 점점 가빠지는 숨소리는 그를 자극했다.

“벗겨줄까?”

정선우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셔츠와 바지를 벗겨내는 동안 정선우는 인형처럼 가만히 있었다. 남은 마지막 옷도 벗겨내자 정선우는 다리를 꼭 모으고 손을 내려 성기를 가렸다. 내리뜬 눈과 붉어진 눈가는 퍽 애처로워 보였다.

“선우야, 손 치워.”

“형…….”

작게 속삭이는 부름이 마지막 애원처럼 느껴졌다.

불쌍하고 애처로운 목소리에 아랫배에 고인 열기가 성기를 달궜다. 서도운은 반쯤 고개를 쳐든 자신의 성기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어떤 포지션이든 상관없었다. 정선우의 성기가 제대로 서지 않는다면 쑤셔 박아 쾌감을 느끼게 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잔뜩 기가 죽어 낑낑거리는 자신의 개가 한껏 고개를 쳐들고 뽐내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서도운의 개라면 그래야 했다. 그를 믿고 설쳐대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좆을 세우고 넣게 해달라고 조르는 정선우가 보고 싶었다.

꼭 모으고 있는 한쪽 발목을 잡아당겼다. 벌어진 다리를 가리려 몸을 움츠렸지만 그의 손에 잡힌 다리를 빼지는 않았다. 가늘게 느껴지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단단한 발목에 입을 가져갔다.

하얀 발목을 처음 봤을 때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혀를 길게 내밀어 핥았다.

“흐으…….”

정선우가 울음 같은 신음을 뱉으며 몸을 떨었다.

그는 힘없이 늘어진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에 들어갔다. 가리고 있는 두 손을 살짝 쓰다듬고 정선우의 몸 위에 엎드렸다. 붉어진 눈가와 빠르게 깜박이는 눈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키스해줄까?”

그의 말에 정선우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살짝 핥았다. 그 사이에 또 입안을 물어뜯기라도 한 건지 피 맛이 났다.

단번에 입술을 가르고 혀를 넣었다.

정선우와의 키스는 입안에 고인 피로 아찔할 정도로 달았다. 서도운은 정선우의 입안을 휘저으며 마음껏 피를 맛봤다.

계속 이어지는 키스에 정선우는 본능처럼 그의 혀를 빨았다. 키스라고 하기엔 이상했지만 그마저도 귀여웠다.

입술을 떼자 정선우는 아쉬운 얼굴로 헐떡였다.

“더 해줄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정선우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졸라봐. 더 해달라고 해봐.”

“형, 키스해줘. 키스하고 싶어.”

기대에 차 말하는 얼굴을 보며 서도운은 정선우의 두 팔을 끌어와 자신의 목에 감았다. 그 뜻을 이해한 건지 정선우는 한숨 섞인 신음을 길게 내쉬며 그의 목을 끌어당겼다.

다시 입술이 닿았다.

맛만 본 처음과 달리 격렬하게 정선우의 입안을 헤집었다. 입술 사이로 젖은 소리와 신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키스에 취해 헐떡이는 정선우의 성기로 손을 내려 부드러운 음모의 감촉을 즐겼다. 고환부터 부드럽고 끈질기게 만지고 쓰다듬었다. 정선우가 입술을 떼며 다른 신음을 흘렸다.

“아, 형…….”

그는 손 안에서 단단하게 형태를 갖춘 정선우의 성기를 내려봤다.

그리고 조금, 당황했다.

정선우의 성기는 그 예쁜 껍데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어째서 저런 게 정선우에게 달려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정선우는 몸을 일으킨 서도운의 어깨를 잡아 다시 끌어당겼다.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형, 더 해줘…….”

목덜미를 쓸어내리고 입술을 겹쳤다.

입을 맞추는 동안엔 감긴 눈 너머로 모든 게 보이는 것 같았다. 흐릿하게 보이는 얼굴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았다.

입술 위로 서도운의 웃음이 느껴졌다. 부드러운 입술과 뒤엉킨 혀의 감촉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서도운의 혀가 입안을 더듬을 때마다 숨이 막혀왔다. 모자란 호흡 사이에 신음이 뒤섞였다.

“키스 해주는 게 좋아?”

닿을 듯 말 듯 떨어진 입술 위로 속삭임이 느껴졌다.

“응.”

웃음소리가 입술에 느껴졌다.

서도운의 나긋한 숨결이 가슴에 닿자 수천 개의 꽃잎에 휩싸인 심장이 단번에 피어났다.

“하아……, 형…….”

길게 내뱉은 숨결 속에 신음이 배어들었다.

정선우는 끌어안은 목덜미를 더듬어 쓸어내렸다. 목에서 등으로, 허리로……. 천천히 손을 내려 서도운의 몸을 더듬었다.

닿기만을 바랐다.

마음도, 육체도 서도운에게 닿고 싶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매끄러운 피부와 따뜻함이 전해지는 체온이 기뻤다.

“그렇게 좋아? ……예쁘게 웃네.”

입술을 쓰다듬고 볼을 만지는 손길에 그는 자신이 웃고 있는 것을 알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쁜데,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행복한데,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고개를 돌리지도 숙이지도 않았다. 볼을 만지는 손에 얼굴을 비볐다.

“……형한테 어리광부리는 거야?”

“응.”

그의 행동을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었다. 서도운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면 충분했다.

다시 성기를 만지는 서도운의 손길에 그 손을 밀어내기보다 얼굴을 만지고 있는 손을 겹쳐 잡았다.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키스를 해달라고 조르고 싶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키스를 조르는 말이 아닌 다른 것이 새어 나왔다.

“하아, 형…….”

숨을 삼키고, 다시 입을 벌렸다.

“형……, 아, 흐읏…….”

헐떡이는 숨을 참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자위를 한 적이 있으니 겪어본 적이 있는 감각이었다. 그러나 스무 살 때 이후로는 몸도 마음도 ‘섹스’라는 걸 거부했다. 혐오에 가까운 감정은 지친 일상과 맞물려 발기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분명 지금도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서도운을 향한 압도적인 감정이 그 모든 것을 지웠다. 그저 서도운을 받아들이고 서도운이 주는 것에 취해 녹아들고 싶었다.

“아, 형……, 형…….”

“예쁘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눈가를 핥았다. 토해지는 숨이 뜨거워 참을 수 없었다.

“흐응, 응, 음……, 흐읏, 윽…….”

쾌감과 흥분 사이를 오갈 때 갑자기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다.

토하고 싶었다.

볼을 만지던 손이 입술을 비집고 들어와 앙다문 이 사이를 벌리려 했다.

“입 벌려.”

고개를 젓자 깜박이는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입 벌려.”

입을 벌리려던 서도운의 손이 양쪽 턱뼈를 눌렀다. 팔과 손을 잡고 밀어내려 했지만 손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통증으로 억눌린 비명이 새어 나왔다.

벌어진 입에 서도운의 혀가 들어왔다.

폭력적인 키스였다.

헐떡이는 숨과 가느다란 신음이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휘감긴 혀는 두 사람의 타액에 젖어 질척이는 소리를 냈다.

정선우는 울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것을 서도운의 입안에 토해내며 팔을 들어 서도운의 목을 감고 등을 감쌌다. 몸을 떼지 못하도록, 벗어나지 못하도록 끌어안았다. 입안에 가득 찬 서도운의 혀를 미친 듯 빨고 떨어지는 입술을 붙잡아 계속 입을 맞췄다.

겨우 떨어진 입술 사이로 거친 호흡이 흘러나왔다.

“……잘했어.”

무엇에 대한 칭찬인지는 몰랐지만 입술 위에 떨어진 서도운의 속삭임에 다시 눈물이 새어 나왔다.

그의 흐느낌에 서도운의 웃음이 섞였다.

“넌…… 정말 귀엽네.”

눈가를 입술로 비비며 속삭이는 말에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 전과 달리 부드럽고 상냥한 키스가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

가볍게 울리는 입맞춤 소리는 벌거벗은 채 몸을 맞대고 있는 상황 따위는 모두 잊게 만들었다.

가느다랗게 느껴지던 정선우의 몸은 벗겨놓고 보니 가냘픈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균형이 잘 잡힌 남자의 몸이었다.

궁금했던 목선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갸름한 턱에서 목으로 이어져 어깨로 흘러내리는 선을 천천히 눈으로 훑어 내리며, 자신도 모르게 처음 정선우의 얼굴을 봤을 때처럼 감탄사를 내뱉었다.

단단하고 곧게 뻗은 골격과 그것을 덮고 있는 하얀 피부에서는 우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정신의 고결함과 육체의 우아함이라니, 농담처럼 느껴져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정선우란 남자는 그러했다.

그런 남자의 성기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오점’처럼 느껴졌다.

제구실을 못 한다던 성기는 발기하기 전에도 묵직하더니 발기하고 나서는 상당한 부피를 자랑했다. 그의 손에 꽉 차고도 남는 두께와 넉넉한 길이를 가진 시뻘건 성기는 살을 벗겨낸 근육처럼 보였다.

서도운은 생긴 것도 크기도 전혀 우아하지 않은 성기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크기는 그렇다 치고 아무리 애써도 단단하게 세울 수 없다면 품어주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마취를 해서 발기를 유지시킬 수도 있지만 감각이 없는 성기와 이루어지는 섹스는 정신적인 만족감 외에 육체적인 쾌감은 없었다.

잔뜩 부풀어 오른 성기를 문지르자 젤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쿠퍼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정선우의 성기는 정상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문제는 정신이었다.

그는 정선우의 상태를 파악해서 상냥하고 친절하게 성적 자존감을 회복시켜줄 생각이었다.

좆을 세울 수 있게 되면 그의 품을 떠나 예쁜 껍데기를 자랑하며 배신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은 아이처럼 그에게 애정을 구하고 키스를 애원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처음이니 부드럽게 대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선우의 어리광은 그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도망갈 수 없게 몰아세우면 언제쯤 거부하고, 언제쯤 화를 내고, 언제쯤 안 된다고 말할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좀 더 몰아붙이기로 했다.

거부하는 몸짓을 무시했다.

그 순간 정선우는 그를 밀어내고 도망가는 대신, 화를 내고 폭력을 휘두르는 대신 자해를 했다.

어떻게든 그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모습이 아주 예뻤다. 예뻐서 상처가 나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입을 억지로 벌려 혀를 밀어 넣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정선우가 자신의 혀를 깨물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입을 맞추며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그를 더듬고 끌어당기는 몸짓은 서투른 키스만큼이나 유혹적이었다.

정선우는 사정하는 내내 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사정의 고통인지 쾌감인지 모를 것을 받아들였다. 신음이 섞인 울음을 들으며 그 소리도 예쁘다고 생각했다. 매번 이런 소리를 들려준다면 한동안 휴가를 내고 섹스만 하게 될지도 몰랐다.

정선우는 사정의 여운에 취해 그의 품을 찾아들었다. 그 모습이 무릎에 얼굴을 비비며 측은한 표정으로 어리광을 부리는 개 같아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는 젖은 볼을 쓰다듬으며 언제까지나 예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정선우가 다른 쓰레기처럼 그를 배신한다면 얼굴을 으깨버릴 것 같았다. 이 예쁜 껍데기를 망가뜨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슬퍼졌다.

그는 정선우의 눈물을 입술로 닦으며 늘 그렇듯, 배신을 알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소중하게 대해주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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