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현실 속의 환상
서도운은 정선우와 함께 백도경이 추천해준 레스토랑을 나서며 피식 웃었다.
초고층 건물 상층부에 위치한 레스토랑은 연인을 위한 데이트 장소였다. 예쁘게 세팅된 코스요리와 어느 자리에 앉아도 SNS에 올릴 멋진 사진이 나올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그런 곳에 남자 둘이 앉아있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선우는 입을 닫았다. 그런 정선우를 안심시키고 말을 하게 하려면 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았다. 일식집에서 나눈 이야기를 꺼내자 정선우는 어물거리다 입을 열었다.
정선우가 백경이 취득하거나 구입한 라이선스와 고가의 기자재 목록을 만들어 프로필에 추가시키자 기획팀은 백경을 굴릴 생각으로, 제작팀은 백경의 창고를 턴다는 생각으로 들떴다.
기획팀은 야근까지 해가며 라이선스를 사용해 백경을 쥐어짤 다양한 계획을 세웠고, 제작팀은 창고에 처박혀 있던 기기들의 상태를 세밀하게 점검했다.
백경이 사 모은 것은 카메라 같은 영상 장비만이 아니었다. 영상에 관련된 프로그램 등 편집 장비까지 망라되어있었고, 기획팀과 제작팀은 필요한 기기 외의 모든 것을 렌탈 목록에 집어넣었다.
자신이 공들여 모아둔 장난감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백경은 한달음에 서도희에게 달려갔다. 백경의 징징거림에 서도희는 새 장난감을 사도 된다는 허락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정선우로 인해 백경 프로덕션의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다.
이러한 상황을 진지하게 보고하는 정선우의 말을 들으며 서도운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몇 번이나 참아야 했다.
백도경이 상상한 데이트는 아니겠지만 그는 이 레스토랑에서 정선우와 보낸 시간이 꽤 즐거웠다. 그러나 그의 연인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서도운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옆에 선 정선우를 살폈다. 굳은 입매와 안경에 비친 녹색의 불빛 때문에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처럼 보였다.
“맘에 안 드는 게 있어?”
그의 물음에 정선우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연이어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벨을 울렸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지 않자 정선우도 가만히 서 있었다.
서도운은 다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또다시 몇 대의 엘리베이터를 그냥 보내고 전망대 역할을 하는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을 때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는 도시의 야경을 보여주며 느린 속도로 아래로 내려갔다.
“음식이 입에 안 맞았어? 그렇게 나쁘지는 않던데.”
밖을 내다보던 정선우가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음식이 아니라…, 거기, 분위기가…….”
“시끄러웠어?”
고개를 끄덕이는 정선우에게 눈을 맞추고 빙긋 웃어주자 굳었던 얼굴이 천천히 풀어졌다. 계속 단둘만 있을 수 있는 곳을 다니다 그렇지 않은 곳을 가게 되니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다음엔 조용한 곳으로 가자.”
“응.”
정선우는 입가에 살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 밖을 바라봤다.
느린 엘리베이터는 타는 사람 없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신처럼 굽어보던 도시는 점점 가까워져 이제 마천루가 발에 닿을 듯했다. 도시의 야경에서 눈을 뗀 정선우가 그를 보며 생긋 웃었다. 무표정한 얼굴을 지우고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건 그나 백도경 앞에서뿐이었다.
“왜?”
그의 물음에 정선우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지만, 얼굴에 가득한 웃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말해봐, 뭔데 그래?”
“그냥……, 여기서 형이랑…… 키스하는 거 생각했어.”
생각지도 못한 답에 웃음이 터졌다. 그는 한참을 웃고 나서 정선우의 곁에 바싹 붙어 섰다.
“해줄까?”
“아니, 생각만 한 거야.”
정선우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왜 갑자기 키스하고 싶었어?”
“영화에서……. 관람차나 이런 곳에서 키스하잖아.”
“영화처럼 하고 싶어?”
그의 물음에 눈을 내리뜬 정선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구경거리는 싫어.”
정선우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지고 표정 없는 가면이 떠올랐다.
“형이 생각한 영화는 좀 다른데…….”
서도운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속삭이자 정선우는 시선을 맞추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사고가 나서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그 속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꼭 섹스하다 들키거든…….”
정선우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경악을 담아 그를 쳐다봤다.
“미쳤어?”
“나도 생각만 했어.”
자신의 말을 흉내 내며 빙글거리는 그를 보며 정선우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한걸음 정도 물러나 지하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가까이 오지 않았다. 서도운은 그런 정선우를 보며 내릴 때까지 웃었다.
빈자리가 군데군데 드러난 주차장은 차를 주차할 때와 달라 보였다. 정선우는 주차 구역 표지를 확인하려는 듯 두리번거렸다.
서도운이 망설임 없이 걸어가자 정선우는 무어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곧 그들이 타고 온 SUV가 눈앞에 나타나자 정선우는 그를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형, 여기 차가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
“내가 여기 주차했으니까.”
SUV의 리모컨 키를 꺼내 누르며 정선우를 쳐다봤다.
“어디로 갈까?”
정선우가 그의 물음에 발을 멈췄다.
“네 오피스텔? 내 집?”
천장에 달린 환기구에서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빈 공간에 울렸다. SUV에서 울리는 엔진 소리가 그 속에 섞였다.
두 사람 사이에 키스를 하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었다. 키스는 가벼운 입맞춤으로 끝나지 않고 정선우는 그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이어질 손길을 기다렸다. 종종 차 안이나 정선우의 집에서 짙은 키스와 페팅이 이어졌고, 정선우는 그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이상 나아가는 것을 정선우는 망설이고 있었다.
정선우는 서도운을 애타게 원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을 서도운의 집을 피하는 것으로 나타냈다.
아래층에서 올라온 차가 그들의 곁을 지나가자 두 사람은 차를 피해 걸음을 옮겼다.
서도운은 운전석 앞에 서서 정선우를 향해 말했다.
“기다려 줄 테니까 어디로 가야 할지 확실히 정하고 타.”
서도운은 운전석에 올라 앞 유리창 너머로 정선우를 바라봤다.
정선우는 입술을 입안에 말아 넣고 손가락으로 SUV의 보닛을 꾹꾹 눌렀다.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전에 사귀었던 이들과 다르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정선우의 망설임은 언제나 그를 즐겁게 했다.
달궈진 정선우의 몸을 내려칠 때마다 가치관과 믿음이 부스러졌다. 그가 주는 애정에 매달려 그것을 견뎌내는 정선우가 예뻤다.
섹스는 번식의 과정일 뿐이지만 그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이었다.
정선우는 섹스를 두려워했기에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섹스도, 섹스가 주는 쾌감도 두려워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선우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가 되어야 했다. 섹스도, 섹스의 쾌감도 그만이 줄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했다.
육체가 주는 쾌락에 취해 그에게 매달리길 원했다.
정선우가 바라는 모든 것을 그만이 가지고 있기를 원했다.
보조석 문을 열고 차에 오른 정선우는 아무 말 없이 안전벨트를 맸다. 무거운 한숨과 심호흡이 이어졌다.
“형……, 집으로 가.”
정선우가 시선을 피해 깊이 고개를 숙이자 이마 위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서도운은 손을 뻗어 부드럽고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가만히 손길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이거, 형이 유혹한 거야. 절대 잊지 못하게 해줄게.”
* * *
서도운은 동물병원 뒤뜰이 보이는 빌라 건물의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어딘지 알겠어?”
“응, 잔디공원에서 보이는 건물이잖아. ……지난번에 온 곳도 여기야?”
그는 정선우의 물음에 대답 없이 빙긋 웃었다. 그 웃음에 정선우는 차에서 내려 그를 기다리지 않고 빌라 입구로 걸어갔다.
그의 집에 가기로 했을 때 망설임을 지웠는지 정선우의 걸음에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입구에 있는 센서 등이 정선우를 비췄다. 노란 불빛에 검은 머리카락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쌀쌀해지는 날씨에 슈트 차림으로 서 있는 남자를 보며 어울리는 코트를 입혀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복 같은 옷이 아닌 부드러운 소재로 된 밝은 갈색의 코트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누나인 서도희가 가끔 백경을 아이돌처럼 꾸미는 걸 보고 괴상한 취미라고 놀렸는데 그게 아닌 듯했다. 곁에 있는 이를 예쁘게 단장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다고 느낀 건 정선우가 처음이었다.
그 욕구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궁금했다. 정선우가 미남이긴 했지만 그는 타인의 껍데기에는 관심이 없었었다.
정선우의 특별함은 월등한 미모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만이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외모를 자랑하거나 이용할 줄 모르는 남자는 그의 곁에서만 온전한 아름다움을 발했다.
서도운은 빌라 입구에 설치된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며 정선우를 쳐다봤다.
“외웠어?”
“……응.”
머뭇거리다 나온 대답에 그는 생긋 웃었다.
“카드키랑 집 열쇠도 줄 테니까 잃어버리지 마.”
“응, 절대 안 잃어버릴게!”
안경 아래 드러난 입술이 우물거리다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고 웃기 시작하더니 빌라 내부로 들어와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숫자 버튼을 누르는 것까지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기에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그렇게 좋아?”
“응.”
“선우야, 내가…… 이 집에서 날 기다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답을 기다리며 정선우를 가만히 쳐다봤다.
작은 엘리베이터가 벨을 울리며 집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문이 열려도 서도운이 움직이지 않자 정선우는 당황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만 해도 기쁨을 드러내던 정선우의 얼굴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흐려졌다. 잔뜩 기가 죽은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형이… 기다리라고 할 때만…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서도운은 대답을 않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난… 매일, 여기서… 형을 기다릴 수 있는 줄… 알았어.”
정선우의 시선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밖에서… 보는 것도 좋은데…. 난… 형이랑 있고 싶어서…….”
소리가 울리는 엘리베이터 안이 아니었다면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당연히 정선우가 기다릴 수 있다고 답할 줄 알았다.
그의 예상과 다르게 정선우는 그의 곁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조차 그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정선우에게 집 열쇠의 의미는 기다림의 대가가 아니라 기다림의 허가였다. 열쇠의 의미를 집을 준다거나 동거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겨우 그를 기다릴 수 있는 장소를 얻었다고 여겼다.
서도운은 정선우를 벽으로 밀었다. 엘리베이터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손을 뻗어 안경을 벗기자 놀란 얼굴이 똑똑하게 보였다. 하얀 볼을 쓰다듬으며 안경을 자신의 주머니 속으로 치웠다.
“예쁜 입은 예쁜 말만 하네.”
녹을 것 같은 미소를 흘리며 정선우에게 입을 맞췄다. 입술을 빨며 벌어진 입안으로 혀를 넣어 말랑한 혀를 건드리자 굳어있던 몸이 점점 풀어졌다. 정선우가 내는 작은 신음과 입술과 입술 사이에서 울리는 소리가 엘리베이터를 채웠다. 입맞춤이 점점 격렬해지자 서도운은 손을 내려 정선우의 바지 위로 성기를 만졌다.
“형, 안 돼, 형…….”
정선우는 고개를 저으며 성기를 만지는 그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 그 과정에서 성기는 완전히 발기해 바지 위로 선명하게 그 형태를 드러냈다.
“형, 싫어…. 누가, 오면, 아, 안 돼…….”
“안 와. 너랑 나뿐이야.”
서도운의 속삭임에 어깨를 잡은 손이 멈췄다.
“이 건물에 나밖에 안 살거든.”
손에 힘을 실어 거칠게 성기를 주무르자 입술 사이로 애달픈 신음이 새어 나왔다.
“형……, 형…….”
정선우는 눈가를 발갛게 물들이며 헐떡였다. 그의 등을 쓸어내리는 정선우의 손길은 다정함을 구하는 것 같기도 했고, 좀 더 재촉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바지를 벗기자 이미 새어 나오기 시작한 쿠퍼액에 속옷이 젖어 있었다. 축축한 속옷을 끌어 내리자 고개를 바짝 들고 있는 성기가 보였다. 손 안에 넣어 비비자 성기 끝에서 쿠퍼액이 쏟아졌다.
“형이 젤을 여러 개 샀거든. 너 만져줄 때 쓰려고…….”
손아귀에 힘을 줘서 뿌리부터 쓸어 올리자 정선우는 가슴을 부풀리며 숨을 들이켰다.
“하나도 안 쓴 거 알아?”
성기와 손 사이에 질척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네가 이렇게 줄줄 싸니까…….”
“아, 흐응…….”
그의 등에서 흘러내린 정선우의 손이 셔츠를 쥐었다가 목을 감아 끌어당겼다.
“형, 나, 키스……. 못 참겠어!”
“괜찮아, 싸도 돼.”
“아니, 그거 말고, 소리……. 소리 나면…….”
방음이 그리 좋지 않은 오피스텔에서 창피를 당할까 봐 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더니 신음 대신 키스를 조르는 버릇이 든 모양이었다. 그는 키스 대신 정선우의 귓가를 핥으며 속삭였다.
“졸라봐, 싸게 해달라고…….”
귀두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기둥을 감싸 세차게 문지르자 정선우는 몸을 들썩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선우야, 응?”
“흐으으, 형…….”
그의 뜻대로 정선우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애타는 부름도 울음 섞인 신음도 모두 흘러나왔다. 정액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서도운은 멍한 얼굴로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 헐떡이는 정선우의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
“잘했어.”
젖은 손으로 아직도 정액이 새어 나오고 있는 성기를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정선우는 나지막한 신음을 내뱉었다.
“내가……, 내 집에 데리고 온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형…….”
“넌, 내 집에서 날 기다리는 거야.”
“키스해줘…….”
신음이 섞인 정선우의 속삭임은 달콤했다. 서도운은 부드럽게 웃으며 정선우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가볍게 입을 맞추자 정선우는 천천히 허리를 흔들며 그의 손에 자신의 성기를 비볐다.
“더…….”
정선우의 몸짓이 사랑스러웠다.
쾌감에 취해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에서 도덕적인 완벽주의자 같은 면은 찾을 수 없었다.
일할 때의 정선우는 ‘어른’이었다.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요구하는 이상으로 성과를 내고, 결과에 책임을 지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 했다.
그러나 그 외의 삶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정선우는 사회의 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틀 속에 넣을 수 없는 것, 틀 속에 들어가지 않는 것들을 모두 버렸다. 자신의 일부를 버린 순간 성장을 멈췄다.
감정의 제어, 인간관계, 성욕……. 29살의 정선우는 아이 같은 면을 가진 어른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모든 것이 어설프고, 서투르고, 미숙했다.
정선우는 그런 자신을 내보이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 아이 또한 그의 일부였다.
“아, 흐응, 형…….”
신음을 섞어 그를 부르는 남자의 목덜미를 핥았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남자의 체향은 가볍고 산뜻했다.
부드럽고 느리게 성기를 훑어 내리자 정선우는 길고 낮은 신음을 흘렸다. 처음과 달리 완만하게 성감을 이끌자 느린 걸음으로 그를 따라왔다. 머리를 기울여 자신의 목을 내어주고 손길에 맞춰 허리를 흔들었다. 헐떡임이 아닌 나지막한 신음을 내뱉으며 조심스럽게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이게 더 좋아?”
목에서 입을 떼고 속삭이자 정선우는 부끄러운 듯 눈을 내리깔고 살며시 웃었다.
“응, 천천히……. 안 아프게……. 무서운 거 싫어.”
애처로운 말투였다.
어른이 되기 위해 버린 것들은 정선우를 똑바로 설 수 없게 만들었다. 똑바로 설 수 없는 남자가 그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형이 안 아프게…, 안 무섭게 할게.”
“응, 키스…….”
입술이 닿기 전 비벼진 코끝에 정선우는 조그맣게 웃었다.
“왜?”
“형, 사랑해…….”
닿은 입술 위로 가느다란 떨림이 느껴졌다.
서도운은 그 떨림을 핥아서 먹었다. 입술을 가르고 사랑을 속삭이는 혀를 맛봤다. 타액 속에 뒤섞인 감정을 넘기며 부추겼다.
좀 더 욕심내.
자신의 결점을 내보이지 않으려 내리쬐는 볕 아래에서도 곧은 자세로 서 있던 남자는 그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 비틀거리는 걸음이 사랑스러웠다.
그가 있는 곳까지 온다면 기꺼이 손을 내밀 생각이었다. 그의 곁에서만 똑바로 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