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마법이 풀리는 시간
“그러게 얼마나 독하게 굴렸으면 사람이 이 지경이야?”
“무슨 말씀이세요?”
은테 안경을 쓴 중년 남자는 멀뚱한 얼굴로 되묻는 서도운을 향해 눈을 흘겼다.
“어허, 그걸 몰라서 물어? 소문이 아주 자자해.”
“무슨 소문이요?”
“어찌나 독하게 공부를 시키는지 다들 죽겠다고 난리야.”
남자의 말에 서도운은 멋쩍은 얼굴로 슬며시 웃었다.
동물병원 인근의 건물을 사들인 후 다시 세입자를 들일 때, 동물들의 소음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동의를 받고 집세를 시세보다 싸게 받았다.
비싼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을 지경이던 한 가정의학 전문의는 시세보다 보증금이 낮다는 말에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계약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병원 자리가 마음에 쏙 들었다.
게다가 동물병원 옆에 있으니 독특한 단골 환자들이 생겼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과 동물들의 보호자들이었다. 동물병원 쪽의 요청으로 ‘펫로스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을 대상으로 우울증 상담을 하자, 월세 내기에도 빠듯하던 매출이 안정되어 삶이 윤택해졌다.
1년에 두 번, 동물병원의 교육 시즌이 되면 과로로 쓰러지기 직전의 사람들이 병원을 찾아왔다. 그들은 동물병원 운영진의 사악함에 대해 설명하며, 머리 좋고 돈 많은 인간이 휘두르는 횡포가 어떤 것인지 구구절절 늘어놨다.
서도운이 쓰러진 사람이 있다며 왕진을 요청했을 때, 그는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인지 안 봐도 뻔했다.
교육받으러 온 이들이 숙소로 쓰는 빌라에서 쓰러진 남자를 살피며 그는 할 말을 잃었다. 얼마나 독하게 공부를 시켰으면 이럴 수 있나 싶었다. 자신이 의대에 다닐 때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다.
벽에 걸어둔 수액 팩과 연결한 라인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운 남자의 바이탈 사인을 다시 살폈다. 그는 남자의 상태가 안정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이리저리 늘어놓은 물건을 가방에 넣었다.
“공부는 그만 시키고 스트레스도 주지 마. 무조건 잘 먹이고 잘 재워야 해.”
“네.”
그는 방긋 웃는 서도운을 보며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고 맘을 다잡았다. 선량한 미소를 띤 저 잘생긴 남자는 좋은 집주인일지는 모르지만, 교육을 받으러 온 이들에게는 악마 같은 놈이었다.
“서 선생, 과로가 산재에 들어가는 거 알지?”
“그럼요.”
다시 한번 경고하는 의사를 향해 서도운은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 그는 잔소리를 더 늘어놓으려다 입을 다물고 불퉁한 얼굴로 현관문을 나섰다.
배웅을 마친 서도운은 현관문을 조용히 닫았다. 작은 전자음과 함께 잠금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그와 정선우뿐이었다.
“선우야, 형 왔어…….”
연인의 이름은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달콤해서 입 끝에 맺힌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손을 들어 하얗게 껍질이 일어난 입술을 쓰다듬었다. 정선우는 며칠 사이에 여위고 창백하게 변해있었다. 사랑스럽고 안쓰러웠다.
자신의 ‘개’였다.
그렇게 가지고 싶어 한 진짜 자신의 ‘개’였다.
* * *
꿈이라도 좋았다.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에 정선우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새어 나온 울음에 헐떡이자 너무나 그리워한 목소리가 들렸다.
“물 마실래?”
익숙한 손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는 손을 들어 고여 있는 눈물을 걷어내는 손을 잡았다.
“……형.”
“그래, 형이야.”
“형…, 형…….”
“괜찮아, 많이 기다렸어?”
서도운의 말에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구멍 사이로 녹슨 바람 소리만 흘러나왔다. 벙긋거리던 입술이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미안해.”
돌아와 준 것으로 되었다고, 떠나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은 나오지 않고 눈물만 넘쳤다.
“형이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그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도운을 끌어당겼다. 묵직한 체중이 몸을 누르고 천천히 숨을 쉬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진짜였다. 그가 품에 안은 남자는 진짜 서도운이었다. 서도운의 옷깃을 움켜쥐고 단단히 끌어안았다. 이제 다시는 놓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품에 서도운은 없었다.
끔찍한 악몽을 꾼 것 같았다.
“……형.”
정선우는 일어나려다 왼팔이 불편해 시선을 내렸다.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도 수액 바늘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이런 게 자신의 몸에 꽂혀있을까 생각했다.
“벌써 일어났어?”
서도운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형?”
반사적으로 나온 부름에 서도운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눈가를 매만지는 손길에 놀라 가만히 있었다.
“……연고 발라둬야겠어. 안경 줄까?”
고개를 끄덕이자 손에 안경이 쥐어졌다. 안경을 쓰자 그렇게 보고 싶었던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빼줄까?”
서도운의 시선이 벽을 향하자 정선우도 몸을 돌려 벽을 보았다. 내용물이 얼마 남지 않은 수액 파우치가 매달려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서도운은 그의 왼팔을 잡아끌어 수액 라인을 정리하고, 팔에서 바늘을 빼냈다.
“……언제 왔어?”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작고 메말라 낯설게 들렸다. 알코올 솜으로 바늘을 뺀 자리를 누르고 있던 서도운이 언제나처럼 시선을 맞추고 그를 향해 웃었다.
“네 시간쯤 됐어.”
어찌 된 일인지, 무슨 일이지 묻고 싶었지만 서도운의 온화한 웃음 앞에 모든 물음이 사라졌다.
“죽 시켰는데 따뜻할 때 먹고 씻을래?”
“씻고…….”
서도운은 알코올 스왑을 두툼하게 뭉쳐 대고 의료용 테이프를 붙였다.
“씻고 와.”
모든 것이 전과 같았다. 서도운의 웃음도, 서도운의 목소리도 다른 게 없었다. 지난 며칠간의 일이 그저 악몽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악몽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정선우는 일어날 수 없었다.
“……씻고…… 형이… 또… 없으면…….”
시야가 흐려져 눈을 깜박이자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럼 같이 씻을까?”
서도운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젓자 턱 끝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그냥, 무서워서…….”
잡아끄는 손길을 따라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욕실 입구에 서서 돌아보자 서도운은 그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형이 여기 있으면 괜찮지? 씻으면서도 볼 수 있잖아.”
그는 유리로 된 욕실 벽과 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씻고 나와.”
물 온도를 조절하면서도, 샤워볼로 몸을 문지르다가도, 양치질을 하면서도 정선우는 계속 유리 너머에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젖은 머리를 대충 닦아내고 나가려다 머리를 말리라고 하던 서도운의 말이 떠올랐다. 드라이기를 들어 스위치를 켰다가 커다랗게 울리는 모터 소리에 놀라 저도 모르게 껐다.
고개를 돌리자 그를 보고 있는 서도운과 눈이 마주쳤다. 생긋 웃어주는 서도운을 보며 다시 드라이기를 켰다.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 게 이상할 정도로 지독한 소음이었다.
욕실을 나가자 서도운이 트레이닝복을 건네며 물었다.
“왜 그렇게 잔뜩 인상을 쓰고 있어?”
“드라이기 소리가…….”
“거슬렸어?”
“응.”
서도운의 가벼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소음 없는 걸로 바꿔놓을게.”
“아니, 괜찮아…….”
고개를 젓자 서도운의 손이 그에게 다가와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머리에 남은 습기가 손에 달라붙자 서도운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감기 걸리겠다.”
정선우는 재빨리 옷을 입고 서도운을 욕실로 잡아끌었다.
“참을게.”
드라이기를 내밀며 말하자 서도운이 그의 손에서 드라이기를 받아 내려뒀다.
“괜찮아, 실내온도 올리면 돼.”
서도운의 손에 이끌려 욕실을 나와 식탁에 앉았다. 그가 시무룩하게 있자 서도운은 식탁 위에 있던 비닐 봉투에서 포장 용기를 잔뜩 꺼내 늘어놨다.
“여러 가지 시켰으니까 먹고 싶은 거 먹어.”
“……형은?”
“같이 먹을까?”
“응.”
작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서도운은 자리에 앉으며 앞에 놓인 비닐 봉투를 치웠다.
봉투 아래에 깔려있던 검은 카드가 다시 존재를 드러냈다. 서도운은 자신의 앞에 놓인 카드를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 들었다.
잠시 잊었던 악몽이 현실로 다가왔다.
* * *
서도운은 손에 든 카드를 내려다보며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검은 카드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카드를 내밀면 대부분 기뻐하며 가져가거나 약간의 망설임 끝에 받아들었다. 누구도 이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살면서 이렇게 철저하게 거절당하는 일은 처음이었지만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카드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기 위해 식탁에서 일어났다.
나이트 테이블 아래에 놔둔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다 발걸음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정선우가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의 남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선우야!”
서도운은 재빨리 정선우를 붙잡아 침대에 앉혔다. 맥박을 확인하려 잡은 손은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있었다.
조금 전만 해도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수액을 맞고 깨어난 후라 피곤해 보이긴 해도 안색은 괜찮았다. 그러나 지금은 바닥에 쓰러진 몸을 일으켜 바로 눕혔을 때보다 핏기가 없었다.
“왜? 무슨 일이야?”
몇 번이고 물었지만 정선우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곱아든 정선우의 손을 주무르며 굳게 다문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얼어붙은 손이 그의 손에서 전해진 온기로 녹아들자 정선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가 잘못했어.”
갑자기 잘못을 비는 말에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새하얀 남자의 얼굴만 쳐다봤다.
정선우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안경 너머로 천천히 눈물이 고이는 게 보였다. 눈물 속에 정선우의 눈이 부서진 유리 파편처럼 반짝였다.
서도운은 숨을 멈추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잘못했어…….”
고였던 눈물이 넘쳐 볼을 타고 흘러내리자 서도운은 겨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며 정선우의 손을 꼭 쥐었다.
“뭘 잘못했다는 거야?”
“그거, 싫어.”
“카드 말이야?”
그의 물음에 정선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턱에 맺혔던 눈물이 떨어졌다.
“난 안 받을 거야…….”
“네가 싫으면 안 받아도 돼.”
“형은, 내가 그걸… 받았으면 하잖아.”
흘러내린 눈물이 턱에 맺혔다 떨어지는 걸 반복했다.
“내가 그걸…… 안 받으니까, 형이… 화가 나서…….”
“그건 화낼 일도 아니고, 난 화난 적도 없어.”
굳은 어조로 말하는 서도운을 보며 정선우는 서글픈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형은 화냈어…. 화나서 그렇게 한 거잖아……. 데리러 오지도 않고…, 전화도 안 하고…, 메시지도……. 내 전화, 안 받았잖아.”
정선우의 울음이 섞인 말은 작고 느려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연락을 끊고 사라진 것에 대해 정선우가 따지고 있다는 걸 이해했다.
“바빴어. 부산지점을 하나 더 개원하거든. 계속 부산에 있었어.”
서도운은 이전에 사귀었던 이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대답을 했다.
전 애인들이 정말 바쁜 게 맞느냐고 따지면 그는 증명할 스케줄을 보여주며 일에 관련된 서류를 곁들여 설명해줬다. 그는 실제로 바쁜 사람이었고 그가 사귀는 이들은 그런 그를 기다려야 했다. 그가 제공하는 집과 돈은 그것의 대가였다.
“형이 바쁜 거 알아. 근데…, 바빠서 그렇게 한 거 아니잖아. 형은 똑똑해서… 시간 내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그렇게 시간… 만들어서… 나 만났잖아.”
무어라 반박하려다 다시 차오르는 정선우의 눈물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형……, 난 바보도 아니고 애도 아니야…. 나한테 연락할 수 있는데 안 한 거잖아…….”
잔뜩 쉰 정선우의 목소리는 귀가 아닌 심장을 자극했다.
일렁이는 가슴에서 알 수 없는 욕망이 새어 나왔다. 지금은 그것이 무엇인지, 왜 그런지 파악하기보다는 정선우를 보고 싶었다.
손을 뻗어 정선우의 얼굴에서 안경을 벗겼다. 벗겨낸 안경 아래 드러난 얼굴은 아이 같기도 하고 어른 같기도 했다.
“그래, 할 수 있는데 안 했어.”
붉어진 눈가가 마치 화장을 한 듯 보여 닦아내자 손끝에 묻어나온 건 눈물뿐이었다. 가슴이 아려와 차가운 볼을 쓰다듬었다.
“화났어?”
“……아니.”
정선우의 눈물이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냥, 너무… 너무… 아팠어…….”
손을 적시는 정선우의 눈물이 피처럼 느껴졌다. 아프다는 말이 비유가 아닌 직접적인 고통으로 다가왔다.
정선우의 가슴이 벌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서도운은 정선우의 가슴을 찢어 여린 심장을 움켜쥐고 비튼 이가 자신임을 깨달았다. 바스러질 듯 연약하게 뛰고 있던 심장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물과 함께 그의 발밑에 고였다.
“형이… 보고 싶어서…, 힘들었어…….”
고였던 눈물이 흘러내리자 정선우의 눈이 젖은 속눈썹 아래 말갛게 빛났다.
가슴 속에서 작게 일렁이던 감정이 붉게 물들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를 덮치고 물러났다.
갑자기 모든 감정이 붉게 물들어 넘쳐흘렀다.
“미안해, 형이……. 음…….”
사과의 말에 어울리는 표정을 만들어야 했지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기뻐할 때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서도운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표정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푹 숙였다.
갸름하고 우아한 정선우의 손을 매만지며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려 애썼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만지작거리다 손톱 끝이 고르지 못하게 깎여있는 걸 발견했다.
정선우는 손재주가 없었고 아마 손톱을 깎는 것도 서툴 게 분명했다. 앞으로는 그가 깎아줘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정선우에 관한 모든 것은 그의 책임이니 당연했다.
정선우의 손톱을 동그랗고 예쁘게 깎아 매끄럽게 끝을 다듬어줄 생각을 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아주 ‘잘’해야 했다.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마시고 욕망과 감정을 밀어 넣었다.
웃음을 삼켰다.
“선우야, 형이 잘못했어.”
서도운은 눈꼬리를 늘어뜨리고 잔뜩 미안해하는 표정과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젖은 눈가를 닦아내고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조심 쓸어 넘기자 정선우는 머리를 숙여 그의 손에 자신을 맡겼다. 그 모습이 마치 더 쓰다듬어 달라는 개처럼 느껴져 입꼬리가 저절로 말려 올라갔다.
한참을 쓰다듬자 정선우는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형이 화를 내도 그건 안 할 거야.”
“그거? 카드?”
“난 형이 예전에 사귄 그 사람들처럼 되기 싫어. 그거 받으면 나도 그 사람들처럼 버릴 거잖아.”
정선우의 말에 갑자기 심장이 저려왔다. 서도운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이상한 통증의 원인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넌 그것들이랑 달라. 넌 안 버려.”
“받으면…, 같아져. 그럼, 형은… 나도 버릴 거야…….”
눈물을 잠시 멈췄던 정선우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흘러내린 눈물이 그와 정선우의 손에 뚝뚝 떨어졌다.
심장이 조여와 숨이 멈출 것 같았다.
“형은, 다 가지고 있어서…, 내가 줄 수 있는 게 없어…. 내가 못난 건… 아는데, 그래도… 그렇게 쓸모없는 인간은 아냐…….”
정선우가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다 꺼낸 말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라 서도운은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정선우가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말 대신 손을 내밀어 볼을 쓸어내리고 턱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냈다. 젖은 손으로 목덜미를 끌어당겼다. 축축한 입술은 눈물 맛이 났다.
“너 일 잘해. 오 이사님이나 김 소장님이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
가벼운 키스가 조금 위로가 되었는지 정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카드 같은 거 안 줄게. 돈 준다는 말도 안 할게.”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정선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노크 같은 가벼운 키스는 곧 짙어졌다. 정선우의 열린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그의 혀가 오랜만에 접하는 연인의 입안을 마음껏 탐했다.
입안 이곳저곳을 맛보다 입술을 떼고 정선우의 턱을 잡아챘다. 아랫입술을 잡아당겨 상처를 확인했다.
“또 물어뜯었네.”
“……안 하려고 했는데, 형이…, 없어서…….”
그의 시선을 피해 웅얼거리는 정선우의 말에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원망이 담겨있었다.
“내가 없으면 또 물어뜯을 거야?”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선우의 모습에 가슴 끝이 간지러워졌다.
“형이 네 옆에 꼭 있어야 되겠네. 그렇지?”
정선우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응, 형이… 있어야 해.”
“그래, 이제 계속 옆에 있을게. 내가 또 뭘 해줬으면 좋겠어?”
서도운은 손을 뻗어 정선우의 목덜미를 가볍게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말해봐, 형이 다 해줄게.”
“앞으로…, 그러지 마.”
턱을 따라 가볍게 키스하고 혀를 내밀어 하얀 목덜미를 핥았다. 모니터 너머로 그를 유혹하던 곳이었다.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핥고 마음껏 키스했다.
“선우야, 형이 뭘 안 하면 돼?”
귓가에 속삭이자 새하얀 목덜미가 붉게 변하며 그가 만든 자국이 꽃처럼 피어났다.
“말해봐, 형이 어떻게 해줄까?”
“전화…, 전화해.”
“응, 그럴게.”
“내가 전화하면…, 꼭… 받아.”
“알았어.”
“형, 계속 옆에 있으라고 안 할게…. 나한테 말하고 가. 꼭…, 연락해.”
정선우는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천천히 만졌다. 떨리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성적인 흥분과는 달라 서도운은 가만히 기다렸다. 앞을 볼 수 없는 이가 손으로 더듬어 존재를 느끼듯 정선우는 그가 곁에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았다.
“……기다렸어.”
정선우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오르자 그의 가슴도 다시 일렁였다.
“근데, 형이… 안 와서…, 무서워서…….”
붉게 넘실거리는 파도는 언제든 다시 몸집을 키워 그를 덮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밀어닥친 파도는 어느새 무릎까지 차올라있었다. 허우적대며 깊은 물속으로 걸어가지 않아도, 붉은 파도는 결국 그를 익사시킬 것 같았다.
숨이 막혀왔다.
언젠가는 삶의 틈에서 새어 나온 공허에 끌려 들어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에 떨며 누나에게 고백했을 때 그의 누나는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인간이기에 인간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타인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내보이며 위로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자신이 만들어 낸 틈에 갇혀 죽든지, 망가진 자존심을 견디지 못해 죽든지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는 스스로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선우의 눈물이 틈으로 흘러내리자, 핏빛 파도가 깊은 곳을 채우고 하얀 포말을 일으켰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틈에 빠져도 괴로울 것 같지 않았다.
웃음이 나왔다.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다시는 그렇게 안 할게.”
서도운의 대답에 정선우는 눈물이 고인 눈을 살며시 내리뜨고 여리게 웃었다. 젖은 속눈썹조차 가지런한 남자는 이제 그의 것이었다.
“또 말해봐……. 형한테 원하는 거, 또 말해봐.”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개는 말 없이 사라진 주인에게 성질을 부리는 게 아니라 구석에 숨어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낑낑거렸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해 반갑다고 꼬리도 흔들지 못하는 겁 많은 개였다.
“날, 그 사람들이랑 똑같이 대하지 마.”
“그 사람들?”
“형이 전에 사귄 사람들.”
정선우가 손을 뻗어 그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너무나 조심스러운 손길이라 오히려 애가 탔다.
“형……, 난 달라. 나한테 그러면 안 돼.”
서도운은 키스할 듯 다가온 정선우의 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넌 달라. 넌……, 내 거야.”
“응, 그러니까 버리면 안 돼.”
“절대 안 버려.”
정선우는 그의 말에 답하듯 입술로 입술을 더듬었다. 키스라고도 할 수 없는, 그저 입술과 입술이 닿은 것뿐인데도 심장이 떨려왔다.
“난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입술 위를 흐르는 고백은 지독하게 달콤했다.
“그래, 형 옆에 있어. 여기가 네 집이야.”
그의 속삭임에 정선우는 환하게 웃었다.
* * *
조심스럽게 다가온 서도운의 입술이 작은 속삭임을 남길 때마다 정선우는 울고 싶기도 했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죽을 수 없어서 살아가는 날들이었다. 한 시간, 또 한 시간, 또 한 시간…, 그렇게 24시간을 견디면 하루가 지나갔다. 매일 그런 날들의 반복일 뿐이었다.
멍청한 짓과 실수로 이루어진 삶이었다. 후회하고 반성해도 소용없었다. 어차피 자신은 그렇게 살다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서도운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서도운으로 인해 정선우가 살아온 모든 시간에 의미가 생겼다.
그래서 이렇게 그리워한 건지도 몰랐다.
“형…, 사랑해…….”
그의 속삭임에 간간이 이어지던 가벼운 입맞춤이 거칠어졌다.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 서도운의 혀가 입안 구석구석을 핥고, 난폭하게 헤집었다. 서툴게 움직이는 자신의 혀를 서도운의 혀가 감아 진득하게 문지르자 입안에서 서로의 성기를 비비는 것처럼 느껴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선우는 서도운의 입술과 혀를 빨며 입안에 고인 타액을 삼켰다. 입안에서 섞인 타액 속에는 두 사람의 감정이 녹아내려 있었다. 그가 혀끝으로 느낀 서도운의 감정은 강렬했다. 숨이 막히듯 심장을 조여 오는 그런 맛이었다.
호흡이 모자라 헐떡이자 겨우 입술이 떨어졌다. 다급하게 숨을 들이켜는 동안에도 서도운은 그의 턱을 핥고 귓불을 씹고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그 아픔까지 쾌감으로 느껴져 몸이 떨려왔다.
“아…….”
탄성 같은 신음에 서도운이 다시 그의 입술을 찾았다. 입술을 맞대고 혀를 얽는 것으로는 모자라 서도운은 입안을 범하듯 혀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서도운이 입천장을 긁고 혀뿌리를 쑤셔대자 정선우는 버거운 느낌에 서도운의 옷깃을 꼭 잡아 끌어당겼다.
부풀어 오른 서로의 성기가 느껴졌다. 서도운은 나긋하게 허리를 움직여 그의 성기에 자신의 것을 비볐다. 그대로 사정할 것 같아 정선우는 다급하게 서도운을 찾았다.
“형! 흐응, 응…….”
서도운은 웃음을 터뜨리며 트레이닝복 위를 더듬어 그의 성기를 만졌다. 성기의 형태를 확인하듯 옷 위를 덧그리는 손길이 너무나 음란해 허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좋으면서 왜 도망가려고 그래?”
“흐으, 아, 형!”
그가 고개를 젓자 서도운이 바지와 속옷을 끌어 내려 성기를 움켜쥐었다. 그의 성기는 서도운의 손을 환영하듯 쿠퍼액을 줄줄 쏟아냈다. 젖은 성기를 쥐고 느릿하게 비비는 손길에 서도운의 옷깃을 잡아 끌어당겼다.
“형, 나, 갈 것…, 윽, 형…….”
쾌감에 머리가 아파 왔다. 지금 당장이라도 싸고 싶었다. 그러나 서도운은 허락 대신 귀두 끝을 문질러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지독한 쾌감에 벗어나려 몸을 비틀었으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비명이 나올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싶었지만, 그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입을 열고 비명과 신음을 모두 토해냈다. 아프다고, 가고 싶다고, 싸게 해달라고 빌었다.
“형…, 형, 제발…….”
서도운을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며 울었다. 그제야 서도운은 그의 귓가에 원하던 말을 속삭여줬다.
“그래, 가도 돼.”
정선우의 팔이 그의 목덜미와 등을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 서도운은 몸을 굳히며 사정하는 남자에게 입을 맞추며 작고 달콤한 신음을 삼켰다. 함께 깊은 물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정선우의 물기를 머금은 눈에 지독한 갈증이 일어났다. 부어오른 입술을 앙다물었다가 다시 입을 열고 신음을 토해내는 모습이, 물 밖으로 끌려 나와 호흡이 힘든 인어처럼 보였다. 눈도, 입술도, 호흡도 모든 게 흠뻑 젖은 채 그를 유혹했다. 모든 것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남자가 그의 품에 있었다.
서도운은 자신의 아래에서 천천히 호흡을 가라앉히는 정선우를 내려다보며 셔츠 단추를 풀었다. 정선우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병원으로 가 누나와 어머니에게 부산지점 개원에 대해 보고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챙겨 입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트레이닝복이나 실내복을 입고 있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옷을 벗는 시간이 아까웠다.
쓰러진 정선우를 돌보는 내내 몸이 달았다. 그러나 섹스를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샤워하는 동안 자위를 했다.
처음이었다. 자위하며 뒤쪽에 손을 댄 건.
위든 아래든 어느 한쪽을 고수하지는 않지만, 뒤로는 그다지 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성적인 쾌감을 위해 누군가를 사귀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를 기다리다 쓰러진 남자가 그의 집, 그의 침대 위에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눈물로 붉게 부어오른 눈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군침이 돌았다. 서도운은 샤워기 아래 서서 성기를 움켜쥐고 흔드는 걸로 모자라 처음으로 뒤를 쑤시며 사정했다.
정선우와 함께 하는 건 키스든 섹스든 모두 쾌감이었다. 정선우를 떠올리며 하는 자위조차 만족스러웠다.
“벗어.”
그의 말에 담긴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정선우가 멀뚱하니 티셔츠와 바지를 벗고 다시 침대에 올라왔다. 웃으며 그런 정선우를 끌어당겨 침대에 눕히고 나이트 테이블에서 젤을 꺼냈다. 정선우의 몸에 올라타 커다랗게 발기한 성기에 젤을 짜 부드럽게 비비자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런 거 필요 없다고 했잖아.”
“내가 필요해.”
서도운은 자신의 손에 꽉 들어차는 커다란 성기를 문지르며 침을 삼켰다.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골격을 가진 남자는 옷을 벗었을 때 훨씬 더 아름다웠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정선우는 그만 보라거나 싫다는 소리도 못 하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하얀 피부 곳곳을 붉게 물들였다.
정선우의 성기는 그의 아름다움이나 수줍은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완전히 발기하면 부담스러울 정도의 크기와 위험스럽게 느껴지는 시뻘건 색, 툭 튀어나온 혈관까지 마치 다른 사람의 몸에서 떼어다가 정선우에게 붙여둔 것 같은 위화감이 들었다. 그러나 민감하고 잘 우는 것만큼은 꼭 같아서 어느 부분을 만져도 짙은 쾌감에 휩싸여 눈물처럼 쿠퍼액을 질질 쌌다.
처음 정선우의 발기한 성기를 봤을 때는 삽입하는 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저 큰 걸 넣을 자신이 없었다. 쾌감은커녕 아픔만 가득한 섹스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의 아래에서 헐떡이며 싸게 해달라고, 가고 싶다고 애원하는 정선우의 눈물에 삽입의 아픔조차 쾌감이 될 것 같았다.
서도운은 정선우의 두 손을 끌어와 자신의 엉덩이에 올렸다.
“꽉 쥐고 벌리고 있어. 네 건 너무 커서…, 그냥은 안 들어가거든.”
이제야 그가 무얼 하려는지 이해한 정선우는 커다랗게 눈을 뜨고 자신의 위에 올라탄 남자를 바라봤다.
“형…….”
손바닥 가득 젤을 짠 서도운이 보란 듯이 엉덩이로 손을 가져갔다. 나긋하게 움직이는 허리에 정선우의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가 새빨갛게 변했다.
“으음…….”
처음 듣는 서도운의 신음에 놀라 엉덩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무 세게 움켜잡은 게 아닐까 싶어 손에서 힘을 빼려다 다시 들린 신음에 정선우는 서도운을 올려봤다.
“하아, 선우야…….”
서도운이 그의 성기에 자신의 성기를 천천히 비볐다. 젤로 미끄러운 성기에 서도운의 성기가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좀 더 세차게 비비거나 문질러줬으면 했다. 부끄러운 욕망에 엉덩이를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형, 더…….”
“참아, 넣고 싸야지.”
부드럽게 달래는 목소리에 눈앞이 흐려졌다.
배어 나온 땀에 손이 미끄러져 쥐고 있던 엉덩이를 놓칠 것 같아 시트에 손을 닦고 다시 엉덩이를 쥐었다.
“재촉하지 마, ……형도 급해.”
작은 웃음이 섞인 서도운의 나지막한 속삭임은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음란했다. 질척한 소리가 날 때까지 귓구멍에 혀를 쑤셔 넣으며 속삭일 때와 비슷해, 가쁜 숨을 내쉬었다.
“아, 젠장…….”
서도운이 신음과 함께 짧은 욕설을 내뱉으며 헐떡였다. 손에 쥔 엉덩이부터 그와 닿아있는 모든 곳에서 서도운이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느릿하게 흔들리는 서도운의 몸에서 흘러내린 땀이 그의 몸으로 떨어졌다.
정선우는 새삼 자신의 위에 올라탄 남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체감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체온,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몸, 땀이 배어 짙은 체향……. 모든 것이 정선우를 원하고 있었다.
서도운의 부풀어 오른 욕망이 그를 짓눌렀다.
무서웠다.
너무나 무서워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의 이상을 눈치챈 서도운이 움직임을 멈췄다.
“……선우야.”
“아니, 아무것도…….”
대답과 달리 눈을 깜박이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고 싶지 않았다. 왜 하필 이 순간 눈물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울고 싶지 않을 때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안쪽 입술을 깨물었다. 아픔은 한순간 모든 감정을 사라지게 했다.
이제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 울음을 참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쁜 호흡 사이로 어떻게든 울음을 삼키려 했지만 스스로 울고 있다는 걸 자각한 순간,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너무나 바보 같이 느껴졌다.
서도운의 손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볼을 쓸어내렸다. 정선우는 커다란 남자의 손에 얼굴을 숨기고 싶어 볼을 비볐다.
“키스해줄까?”
다정한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키스는 가볍고 부드러웠다. 혀를 넣지도 않았고 오가는 타액도 없었다. 그저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손을 올려 서도운의 등을 쓸어내리고 뒷머리를 매만졌다. 땀에 젖어 축축한 서도운의 머리카락에 다시 눈물이 나왔다. 그는 훌쩍이는 소리를 숨기려 입술을 내밀어 서도운의 입술을 찾았다.
입술 위로 서도운의 웃음이 느껴졌다.
“이렇게 예쁘게 조르면 형이 어떻게 참아?”
“조르는 거, 아냐…….”
정선우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며 서도운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자신이 없었다.
서도운은 가벼운 입맞춤부터 섹스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음란한 키스까지 할 수 있었고, 나른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유혹할 수 있는 남자였다. 몸이 달아 섹스를 하고 싶게 만들 수 있는 남자였고, 어떤 음란한 욕망을 내비쳐도 웃으며 받아줄 것 같은 남자였다.
그런 남자를 자신 같은 얼뜨기가 만족시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삽입 섹스를 하자고 졸랐는지 자신이 너무나 멍청하게 느껴졌다.
어리석은 말을 하고 멍청이처럼 굴어도 서도운은 그저 귀엽다며 웃었지만, 섹스는 다를 것 같았다.
실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형, 그냥… 여기서 멈추면…….”
“무서워?”
고개를 끄덕이자 서도운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선우야, 섹스는 성기를 자극해서 정액을 뽑아내는 것뿐이야.”
서도운이 손을 내려 그의 성기를 잡고 부드럽게 문지르자 단단한 성기가 익숙한 손길에 반응해 움찔거렸다.
“그러지 마…….”
그의 애원에 서도운은 살며시 웃었다.
“네가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돼.”
“형은……, 형은 하고 싶잖아.”
서도운은 그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정선우는 대답을 재촉하듯 연인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배어 나온 땀이 식으며 손바닥에 피부가 달라붙었다. 축축한 피부를 핥고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입을 맞추고 싶었다.
서도운이란 남자를 원했다.
너무나 간절히 원해서, 조금이라도 잃는 게 무서웠다.
“선우야……, 너랑 섹스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
정선우는 눈을 감고 헐떡였다.
귓가에 속삭이는 남자의 목소리에 자신을 향한 욕망이 담겨있었다. 서도운의 성욕은 그에게 성기를 움켜쥐고 문지르는 것보다 더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난 좆을 쑤시고 박아서 정액을 싸는 걸 원하는 게 아냐.”
서도운의 말이, 목소리가 두려워하는 그의 목을 비틀어 끌어냈다.
“네가 날 원하는 게 보고 싶은 거야.”
그는 서도운을 감은 팔에 힘을 실어 끌어안았다. 밀착된 피부로 체온과 맥박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런 게 섹스라면, 그런 섹스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형, 형, 사랑해, 사랑하니까… 실망하면 안 돼, 잘 못 해도 실망 마.”
정선우의 속삭임에 서도운은 웃음을 터뜨렸다.
성적으로 문제가 있어 위축된 건 잘 알고 있었다. 겁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좆을 세우고 쿠퍼액을 질질 흘리며 할 말은 아니었다.
“내가 실망하는 게 무서워?”
“응…….”
서도운은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는 정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삽입하기도 전에 섹스 후를 걱정하는 겁 많은 개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키자 절대 놓치지 않을 것처럼 끌어안은 팔이 순순히 풀어졌다.
“네가 앞으로 기억해야 할 섹스의 의미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게 아냐. 몇 번을 하고 사정 시간이 얼마나 길고……, 이런 건 잊어. 난 그런 것 때문에 너랑 섹스하는 게 아니니까.”
손을 내려 겁에 질려 울면서도 단단히 세우고 있던 정선우의 성기를 쥐었다. 부드럽게 아래위로 쓰다듬자 커다란 성기가 쿠퍼액을 줄줄 흘리며 울어댔다.
그 꼴이 제 주인처럼 귀여워서, 뒤가 찢어지건 말건 일단 넣고 자신의 안에서 사정하는 걸 보고 싶었다. 사정하면서도 그의 눈치를 보며 매달릴지 궁금했다.
“언제 어디든, 옷을 벗든, 안 벗든 내가 널 원하는 순간, 넌 날 위해 존재하면 돼.”
서도운은 탐욕스러운 눈으로 정선우를 내려다봤다.
그가 ‘원하는 순간’이란 건 언뜻 일상의 한순간으로 알아들을 수 있지만, 언제 그가 정선우를 원할지 알 수 없었다.
매 순간 원한다면, 언제나 그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독립된 인격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헌신적이라 해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서도운은 그런 사람을 원했다.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
정선우는 그의 바람대로 해줄 것 같았다.
서도운은 무릎을 세워 아직 덜 풀린 자신의 애널에 귀두를 가져갔다. 뒤를 쓴 적이 있다고 해도 정선우의 성기처럼 커다란 건 넣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 뒤를 쓰는 것처럼 애널이 긴장해 있었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귀두로 주름을 문질렀다. 정선우가 숨을 삼키며 움찔거리는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주름 위를 오가는 정선우의 성기 끝, 자그만 구멍에서 계속 액이 새어 나왔다. 젤이 필요 없을 정도로 흠뻑 젖은 성기를 꾹 쥐고 느릿하게 주름 사이로 밀어 넣었다.
귀두가 안을 파고들자 찢어질 듯 벌어진 구멍이 정선우의 커다란 성기를 조금씩 삼켰다.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게 펴진 입구로 조금씩 밀려 들어오는 성기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윽…, 너, 진짜……, 너무…….”
서도운은 피스트 퍽을 하는 인간도 있으니 정선우의 성기도 자신의 애널에 충분히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지독하게 안이한 생각이었다.
통증으로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허벅지 근육이 떨려 몸을 세우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절반쯤 들어간 성기에서 손을 떼고 몸을 숙여 정선우의 가슴을 짚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가에 고였다가 흘러내렸다. 섹스 경험이 적은 것도 아닌데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헐떡이며 고개를 내리자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정선우와 눈이 마주쳤다. 정선우는 넋이 나간 듯 텅 빈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형, 그만해……. 난 이런 거 안 해도 돼.”
“뭐?”
그는 숨을 고르며 정선우가 한 말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설마 지금 하고 있는 이 짓을 그만하자는 건 아닐 테니…….
“다시는 하자고 안 할게. ……형이 아픈 건 싫어.”
설마가 맞았다.
서도운은 이렇게까지 머저리 등신 같은 소리는 처음이라 황당했다.
삽입을 하는 도중에 섹스를 그만한다니, 정말 좆같은 소리였다. 대체 어떻게 하면 좆을 있는 대로 키워놓고는 그따위 소리를 할 수 있는지 머리를 열어보고 싶었다.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삼키다 정선우가 정말로 눈이 나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제대로 보이는 게 없는 정선우는 지금 이 상황을 대단히 착각한 것 같았다. 물론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그건 거기가 아파서였고, 정선우의 좆이 워낙 커서 그랬다.
그렇다고 해도 이 섹스를 지금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지금 그만두면 정선우는 두 번 다시 삽입 섹스는 하지 않을 게 뻔했다.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생명체에게 연약한 취급을 당한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워졌다.
정말 좆같은 배려였다.
그는 정선우의 가슴에 올리고 있던 손을 어깨로 옮겨 힘껏 내리눌렀다.
“하아, 시발……. 선우야, 라식수술 꼭 하자.”
이를 악물고 위협하듯 그르렁대는 목소리에 정선우가 당황해 그를 올려봤다.
서도운은 그대로 허리를 내렸다.
천천히 밀려 들어오던 성기가 단번에 안으로 처박히자 몸을 꿰뚫는 통증에 애널 내부가 미친 듯 날뛰었다. 어떻게든 긴장을 풀려고 했지만 숨 쉬기도 버거웠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내부에 들어찬 성기가 더 커진 것 같았다.
“흐으…….”
아파서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했지만, 내벽이 성기에 들러붙은 듯 단단하게 맞물려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욕과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서도운은 원망을 담아 자신의 아래에 누운 남자를 쳐다봤다. 정선우는 창백한 얼굴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니 좆같은 상황에 대한 원망이나 짜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괜찮아?”
그의 물음에 정선우가 대답 대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라도 끄덕여주길 바랐지만, 정선우는 눈을 내리뜨고 그의 시선을 피했다.
“선우야, 괜찮아?”
재차 묻자 한참을 우물거리던 정선우가 살며시 눈을 뜨고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형, 나…… 쌌는데.”
“뭐? 근데 왜 안…….”
서도운은 정선우의 말에 반사적으로 되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쌌는데 왜 안 줄어? 쌌는데 왜 안 작아져?
분통이 터졌다.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 커다란 것에게 화를 내듯 그의 내벽이 성기를 쥐어짰다. 눈치를 보던 정선우가 숨을 들이켜며 몸을 굳혔다.
“어우, 형, 그러지 마!”
“뭘 그러지 마?”
“쌀 것 같아!”
다급한 말에 그는 입술을 비스듬히 끌어올리며 답했다.
“싸. ……마음껏 싸.”
서도운은 다시 이를 악물고 몸을 바로 세웠다. 커다란 성기가 더욱 깊숙이 들어와 박히며 엉덩이에 부드러운 음모가 닿았다.
정선우의 성기와 그의 내부가 얼마나 빈틈없이 맞물렸는지 성기를 감은 혈관이 툭툭 튀는 게 내벽을 통해 느껴졌다. 허리를 들어 성기를 밖으로 빼내면 성기에 달라붙은 내벽도 뜯겨나갈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영원히 있을 수도 없었다. 차라리 어느 정도 통증을 각오하고 거칠게 움직여 줬으면 했지만, 그가 아파하는 순간 정선우는 사정 직전이더라도 움직임을 멈출 게 뻔했다.
그는 아픔으로 풀이 죽은 자신의 성기를 쥐었다.
기둥을 움켜잡고 조금 거친 손놀림으로 위아래로 비벼대자 성기는 금세 다시 발기했다. 커다랗게 부푼 성기의 끝을 잡고 주무르자 쿠퍼액이 흘러나오며 한결 움직이기가 편해졌다. 성기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뒤로 전해져 내부가 움찔거리며 정선우의 성기를 다시 죄었다. 그때마다 연약한 신음이 헐떡임에 섞여 흘러나왔다.
“흐음……, 형, 하아아…….”
정선우는 자신이 잘 참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경우가 달랐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서도운이 그의 성기를 억지로 밀어 넣었을 땐 압박감이 너무 커 성기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성기를 만져주거나 빨아줄 때도 쾌감으로 온몸을 떨었지만 이건 한순간 극점에 이르렀다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통증과 쾌감이 교차하며 자신도 모르게 사정했다.
서도운의 내부에 파묻힌 성기는 내벽이 조여올 때마다 터질 것 같았다.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가 소름 끼칠 만큼 차갑게 몸이 식는 극단적인 쾌감이 계속해서 그를 덮쳤다. 좁고 뜨거운 곳에 갇힌 그의 성기처럼 그도 서도운의 품에 갇혀 헐떡였다.
위에 올라탄 남자의 몸이 느릿하게 앞뒤로 움직이자 서도운의 내벽도 그의 성기에 들러붙어 우물거렸다. 쾌감으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서도운의 엉덩이가 음모와 골반 위를 음란하게 비벼대며 안을 조이자 그는 시트를 움켜쥐고 덜덜 떨었다.
아파도 좋으니까 서도운이 더 격렬하게 움직여 줬으면 했다.
지금보다 더 깊이 서도운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훨씬 더 강렬하게 서도운을 느끼길 원했다.
좀 더, 좀 더, 좀 더, 좀 더…….
미쳐도 좋았다.
“아, 형, 더……, 흐으응, 더…….”
그의 애원에 답하기라도 하듯 땀에 젖은 서도운의 몸이 매끄럽게 그의 배 위에서 움직였다. 내내 여유롭던 서도운도 이제 여유를 잃고 헐떡이고 있었다.
“하아, 흐으…….”
낮게 울리는 서도운의 신음 소리가 성기를 조이는 내벽처럼 그의 심장을 조였다. 하얗게 변한 눈앞이 무서워 서도운을 향해 손을 내밀자 기묘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너도 이걸 원하지?”
서도운이 그의 손을 끌어 자신의 성기를 쥐여주었다. 신체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단단한 서도운의 성기는 정선우에게 익숙했다. 뜨겁고 미끄러운 성기를 양손으로 꼭 쥐자 기억 속에 있는 성기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흔들어. 형이 쌀 때까지 마음대로 주물러봐.”
정선우는 서도운의 말을 따라 성기를 꼭 쥐고 세차게 흔들었다.
“흐읏, 아……, 읏…….”
서도운이 허리를 들썩이며 가쁜 신음을 내뱉었다. 성기가 애널 속을 들락거리자 숨도 쉴 수 없었다.
서도운이 덜덜 떨고 있는 그의 손을 겹쳐 잡고 자신의 성기를 비볐다.
“읏……, 아…….”
쾌감을 담은 신음과 함께 서도운이 그의 성기를 집어삼켜 물어뜯고 핥고 씹어대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성기가, 그가 서도운에게 먹히는 것 같았다.
다시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이젠 신음 소리도 낼 수 없었다.
“하아…….”
달콤한 한숨 소리와 함께 그의 몸 위로 서도운의 정액이 쏟아졌다.
입구부터 내벽 전체가 꿈틀거리며 그의 성기를 비틀어 조였다.
성기 외의 모든 것이 텅 비고 사라진 것 같았다. 모든 감각이 성기로 집중되고, 성기에서 흘러나온 감각이 그의 몸을 지배했다.
고통과 쾌감이 뒤엉킨, 처음 겪는 감각에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멈춘 것 같은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며 모든 감각이 돌아왔다.
하나, 둘 느껴지는 육체의 감각은 하나가 되었다 둘로 쪼개지는 것 같았다. 다시 춥고 외로워졌다.
또 울 것 같아서 자신의 위에 올라탄 서도운의 단단한 허벅지를 꼭 쥐었다. 그를 두렵게 했던 서도운의 존재감이 눈물을 붙잡고 황홀한 위로를 건넸다.
벌거벗은 몸에 느껴지는 타인의 육체는 묵직하고 따뜻했다.
“먹을래?”
서도운이 그에게 정액이 뒤엉킨 손을 내밀었다.
정선우는 입을 벌려 서도운의 손가락을 빨았다. 정액은 여전히 비리고 역했지만, 미각을 느끼는 뇌의 어딘가가 망가진 듯 먹을 만한, 괜찮은 맛으로 느껴졌다. 혀를 내밀어 서도운의 손이 침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계속 핥았다.
서도운이 깨끗해진 손으로 볼을 쓰다듬자 그는 어리광을 부리듯 축축한 손에 얼굴을 비볐다.
“이제 잘 먹네.”
웃음이 섞인 속삭임이 달콤하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