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잠에서 깬 하진은 모로 누운 채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다.
따뜻한 피부. 등과 허리를 느슨하게 감싼 묵직한 팔. 얼굴 바로 앞에 놓인 탄탄한 가슴팍. 옅은 체향까지….
“음….”
익숙하고 편안한 품이었다. 체격 차이 때문에 마치 쏙 안긴 것 같은 형태가 되어 안정적이었다. 드물게 보호받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진이 졸린 눈을 깜빡이며 몸을 살짝 움직이자, 허리 쪽을 끌어안은 팔이 움찔거렸다. 아슬아슬하게 닿은 손가락이 등줄기를 느리게 훑어 내려갔다. 으응… 기분 좋아…. 몽롱한 정신이 부드럽게 침잠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끝이 꼬리뼈 근처를 스쳤다. 어쩐지 몸이 달았다. 허리를 살짝 뒤틀자, 그 손끝은 자연스레 엉덩이 쪽에 닿게 됐다. 아… 조금만 더 아래로, 깊숙이…. 하진이 속으로 갈구하며 잘게 몸을 움찔거렸다.
마침내 손끝이 구멍 입구를 스친 순간이었다. 붉게 부어오른 주름 위로 더듬어지는 손길에, 내내 유순한 얼굴로 가만히 안겨 있던 하진이 번뜩 눈을 떴다.
“차선오…?”
하진이 떨리는 입술로 중얼거렸다. 눈앞에 보이는 남자는 분명 차선오가 맞았다. 한 이불을 덮고서, 당연하게 저를 끌어안고 편안히 잠들어 있는 이는, 어디로 봐도 그였다.
“…흣.”
순식간에 잠이 달아난 하진이 놀라 벗어나려 하자, 엉덩이 사이를 교묘하게 스친 손가락이 민감한 부위에 더 깊이 닿아왔다. 반사적으로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잠든 차선오의 손이 부끄러운 부위를 아무렇지 않게 더듬고 있는 것보다도, 그 손에 마치 흥분이라도 한 듯 야릇한 숨을 흘린 스스로가 더 충격이었다.
…말도 안 돼.
귀에서 이명이 울렸다. 눈앞이 무섭도록 캄캄했다. 그는 혼란 속에서 잠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그토록 편안하다고 생각했던 상대의 품이 지금은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했다. 다행히 차선오는 깨지 않았다. 몸을 감싼 팔이며, 깎아 놓은 듯 잘생긴 얼굴도 변화 없이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하진의 심장이 소용돌이쳤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이 장소에서 벌어진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 까닭이었다.
“…….”
난잡한 광경이었다. 성인영화로도 그런 장면은 본 적이 없었다.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스타킹이 자신의 성기 끝을 묶고 있었고 그걸 차선오가 풀었다. 한껏 벌어진 뒤에 커다란 살덩이가 난폭하게 들락거렸고 밀려드는 요의를 도무지 참기 어려웠다.
눈앞이 새하얘지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했다.
들쑤셔진 요도 끝에서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오줌 같은 게 팍 터져 나왔고, 그래서 이불이 죄다 젖어버렸다. 무릎을 움직일 때마다 웅덩이처럼 물이 튀고 가슴에서도 무언가가 쉬지 않고 계속 흐르고….
모든 기억이 무서울 만큼 또렷했다.
혹시, 꿈인가?
꿈이어야 했다. 하진은 그 순간의 느낌을 전부 기억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엄청… 좋았는데. 방금 손이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신음을 흘렸을 정도니까. 마치 몸 안에 감각이 다시 새겨진 느낌이었다. 무섭도록 황홀했다. 그래서 더더욱 꿈이어야 했다. 반드시.
“…….”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 다시 그런 꼴이 되더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단순히 난잡한 행위를 저지른 게 아니라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의문이지만… 그게 벅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난번 가슴을 비비면서도 차선오의 얼굴이 떠올랐던 게 문득 마음에 걸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다가, 금세 포기해 버렸다.
그냥 다시 자고 일어나면… 없었던 일이 될지도 몰라.
하진은 억지로 그렇게 생각하며 도로 눈을 감았다. 암전된 시야 위로 파노라마처럼 차선오의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 저를 향해 있었다. 어떤 때는 농밀하게 키스를 하고 있었고, 유두를 빨기도, 구멍 사이에 손가락을 박아 넣고 있기도 했다.
아… 꿈일 리가 없었다. 꿈이 이렇게까지 구체적이고, 선명하고, 다양할 수가 있을까? 단순히 하룻밤에 이뤄진 일이 아니라면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짓을….
하진이 다시 눈을 떴을 때도 차선오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호흡이 규칙적인 걸 똑똑히 확인한 하진은 조심스레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맨몸 신세라는 건 이불 밖으로 나와 바닥에 발을 디디고서야 인지했다.
이러니까 정말 섹스하고 난 다음 날 같잖아…. 하진은 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몰래 얼굴을 붉혔다.
그러고 보니 시트가 거짓말처럼 보송했다. 지난밤엔 그렇게나 부끄러운 걸 싸질렀는데. 그래, 역시 말도 안 되지. 어떻게 내 몸에서 그런 게… 이불을 푹 적시고도 모자랄 만큼 그렇게 많이 싸버릴 수가. 머리가 어떻게 되거나 한 게 틀림없었다.
하진은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침실에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자꾸 배뇨하던 순간을 떠올렸더니 오줌이 마려운 느낌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가 마치 늘 그래왔던 것처럼 편하단 것도 특별히 자각하지도 못한 채, 화장실 문을 닫고 변기 앞에 섰다.
서늘한 공기가 피부를 감쌌다. 따듯한 품이 금세 그리워졌다. 조금 몸을 떨던 하진은 딱딱해진 성기를 가볍게 잡아내려 조준했다. 순간 아랫배가 뻐근하게 조여들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흣… 으응.”
민감한 부위를 만져서인지 다시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무의식중에 귀두 아랫부분을 쥐고 손에 살짝 더 힘을 주었다.
정확히, 여길 묶었었는데….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그 미끌미끌하고 간지러운 스타킹의 촉감이 참을 수 없이 좋았다. 아주 얇게 엮인 실오라기는 죄다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민감한 곳에 스칠 때마다 자극적이었다. 게다가 그걸로 귀두를 완전히 덮은 채 선오가 직접 만져주기까지 했으니까…. 도무지 싸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웠다.
“하아, 앗.”
가느다란 신음이 화장실 벽을 타고 울렸다. 어느새 흥분해 버린 하진은 비비듯 귀두 아래를 만지며 허리를 움찔움찔 떨어댔다. 그렇게 조금 더 시도해 봤지만, 아무리 해도 오줌이 나오지 않았다. 의아한 건 아까보다 더 마렵다 못해 점점 급해지고 있단 사실이었다.
싸고 싶은데 왜 나오지 않는 거지…. 하진은 울상이 되어 이제 완전히 딱딱해진 성기를 아래에서 위로 쭉 쓸어 올렸다. 자위와 다름없는 행위였지만, 하진은 자각하지 못했다.
“흐읏, 왜….”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도리어 안에 고인 액체가 끝에 더 바짝 몰려 상황만 더 악화될 뿐이었다. 점점 참기 어려워졌다. 하진은 어쩔 줄 모르고 빠르게 성기를 흔들기 시작했다.
“흡, 아, 아흑….”
분명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왔는데 어느새 머릿속엔 아까 겨우 떨쳐내려 했던 장면들이 가득했다. 하진은 아주 당연하게 차선오와 몸을 섞던 순간을 생각하며 연신 성기를 쳐올렸다. 흣, 흐으…. 차선오의 손이 닿았던 부위가 점점 달아올랐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하진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 빠짐없이 개발된 몸은 맨정신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자극을 잊지 못했다. 꿈일 거라고 부정하려던 의지마저 그 쾌락 아래에선 힘을 잃었다. 탁, 탁, 탁. 아프도록 기둥을 잡고 흔드는 하진의 얼굴이 점점 무방비하게 풀려갔다.
눈꼬리에 물기가 맺히고 꽉 맞붙은 입술이 헤프게 벌어졌다. 하아, 싸고 싶어, 선오야…. 만져줘, 제발…. 그런 이상한 말들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 나갈 것처럼, 연신 그의 의지를 끌어 내리고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난 차선오와 그런 사이가 아닌데. 분명 그는 친구일 뿐인데 어째서.
어째서 그의 자지로 난잡하게 쑤셔 박히고 싶은 거지.
“으흣, 응…!”
하진의 단정한 손끝이 기어코 요도를 찔렀다. 따끔거리는 통증과 짜릿한 해방감이 코앞에서 그를 동시에 유혹했다. 무섭도록 자극적이었다.
검지를 구부려 강하게 찌르며, 하진이 눈을 꽉 감고 후벼 파듯 요도 구멍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피가 몰린 귀두가 점점 붉게 부풀었다. 머리로는 이불 위에서 투명한 오줌을 싸던 순간을 반복해 떠올렸다.
“흐앗, 아, 아흐… 으응…!”
마침내 요도 구멍이 살짝 벌어지고 거기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쪼르륵. 부끄러운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흡… 흑.”
분명 미칠 듯이 급했는데 정작 변기로 떨어진 건 아주 소량의 소변이 전부였다. 생각처럼 시원하단 느낌도 없었다.
가슴이 들썩일 만큼 숨이 가빠진 하진은 찝찝한 심정으로 물을 내리고 더러워진 손을 씻었다. 그러고 나서도 성기가 가라앉긴커녕 아플 정도로 당겨왔다. 괴롭고, 모자랐다. 모든 것들이.
정말 어떻게 된 거지…. 하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거울 속 자신을 확인했다. 야릇하게 달아오른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초점 없이 풀린 눈동자며 물어뜯긴 듯 군데군데 색이 짙어진 입술은 다른 사람의 것처럼 보였다.
시선은 점점 아래로 향했다. 퉁퉁 부어오른 양쪽 유두가 보였다. 한참이나 젖물을 흘렸던 돌기의 형태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빨갛게 익은 열매처럼 탐스러운 모습에 하진은 당장 그걸 꼬집고 비틀고 싶단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뒤이어 떠오른 욕망이 그마저 사라지게 했다.
아까부터 계속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만지고 싶은 부위는 따로 있었다. 요도를 찌를 때처럼, 아니 그보다 더 거칠고 난잡하게 엉덩이 사이의 간지러운 부위를 헤집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피어올랐다.
생각과 동시에 하진은 세면대를 짚고 섰다. 그리고 마치 성기를 받듯 상체를 낮추고 엉덩이를 뒤로 쭉 뺐다. 그런 자세가 되니 어서 뒷보지를 쑤시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 으음….”
하진은 손가락 두 개를 입 안에 넣고 핥았다. 마치 자지를 빨 때처럼 마음이 급했다. 츄읍, 츕. 일부러 잇새로 군침을 흘려가며 음탕한 소리를 내어 빠는 건 그도 모르는 습관이었다.
손바닥에서 손목까지 금세 침 범벅이 됐다. 그것만으로 풀지도 않은 구멍이 벌름거리며 삽입을 기다렸다. 그런 무의식적인 행동들에 이따금 미약한 의문이 피어올랐지만 정작 몸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움직였다.
“흐… 읍….”
하진은 벌어진 엉덩이 사이로 젖은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어디에다가 뭘 넣으려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짓을 왜….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구멍 끝에서 미약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손이 저절로 입구를 벌린 것이다. 무서울 정도로 익숙한 이물감에 기대감이 번졌다.
“하, 아앗, 흐윽.”
그다음은 아주 쉬웠다. 쫀득하게 벌어진 내벽이 마치 스스로 빨아먹듯 손가락을 안으로 당겨 이끌었다. 저항심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한 번에 콱 밀어 넣자 발끝까지 짜릿했다. 하진은 곧장 철퍽철퍽 소리가 나도록 구멍을 쑤시기 시작했다. 그 모든 과정이 아주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흐앗, 아, 좋아, 좋, 흐으, 응… 아읏!”
상황이 그 지경에 이르자 더는 도저히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진은 나오는 대로 난잡한 신음을 내지르면서도 그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너무 좋아서 무서웠다.
망가진 정신이 드문드문 머리를 때리는 느낌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자위를 해본 적이 없는데, 머릿속에 뒷보지니 자지니 하는 추잡한 단어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괴리감이 이상했고, 두려웠다.
“아, 흐읏… 거기 더… 흑, 으응, 아…!”
하지만 그의 입과 손은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박아 넣은 채 손가락을 구부려 좁고 뜨거운 내벽을 마구 문질렀다. 둥글게 휘젓다가 안을 넓히듯 좌우로 입구를 쫙 벌릴 때는, 뒤이어 들어올 성기의 모양과 길이까지 연상됐다.
오로지 차선오만 선사할 수 있는 그 빠듯하고 버거운 삽입이.
“하으, 응! 흡, 흐으으….”
하진은 허리를 더 낮추고 엉덩이를 부끄러울 만큼 잔뜩 치켜세웠다. 들뜬 마음에 연신 숨이 가빠져 왔다. 나긋한 말투와 달리 그의 좆이 얼마나 흉포한 크기로 발기하는지, 흥분했을 때 얼마나 난폭하게 움직이며 몰아붙이는지 생생하기에.
이제 꿈이 아니란 게 확실해졌다. 죄다 뇌리에 박혀 있는 것만 같았다. 차선오와 섹스하던 순간 모두가.
“흑, 어, 어떡해.”
뭐가 뭔지 혼란스러우면서도 분명한 건 있었다. 이 이상한 행동이 참을 수 없이 좋다는 것. 그리고 아까처럼 단순히 성기를 잡고 흔드는 정상적인 자위 방식으로는 절대 사정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는 것도.
하진은 계속 뒤를 쑤셔대며 아예 세면대에 팔을 대고 그 위로 얼굴을 묻었다. 너무 뜨거웠다. 뺨이며 내쉬는 숨도 뜨겁고 손가락에 달라붙는 구멍 안의 점막들도 뜨거웠다. 흐읍, 녹을 것 같아…. 보송보송했던 몸에도 끈적할 만큼 열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오히려 점점 알지 못했던 탐욕이 온몸으로 뻗어 나가며 맨정신을 좀먹어가는 듯했다.
그가 팔 위에 얼굴을 묻은 그대로 고개만 살짝 올렸다. 거울에 비친 두 눈은 애처로울 정도로 흠뻑 젖어 있었다. 길게 뻗은 속눈썹 사이사이로 물기가 어룽거렸다. 하진은 숨을 할딱이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뜻밖의 물건을 발견했다. 세면대 가까이에 놓인, 전동칫솔.
“…….”
매번 양치를 하면서도 그걸 다른 용도로 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게 정상이었고 당연했다. 그런데… 한번 의식하고 나니 걷잡을 수 없었다. 마치 물건 자체가 스스로 유혹하듯 그의 무의식을 잡아끄는 느낌이었다.
하진은 어느새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모양새를 샅샅이 뜯어보고 있었다. 손으로 쥐는 아랫부분은 적당히 굵고 매끄러운 원기둥 형태였고, 조금 얇은 듯한 연결 부위 끝에 달린 동그란 솔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약하게 진동하는 구조였다.
저 정도면… 충분히 넣을 만하지 않을까. 마침 길이도 적당했고 자그마한 칫솔모가 안을 기분 좋게 긁어줄 것 같았다. 대고만 있어도 힘 빠질 일 없이 계속 자극이 될 테고… 앞뒤로 쑤시면 깊숙한 부위까지 닿아 짜릿할 텐데.
아… 어떡하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흐으윽….”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하진은 자괴감에 울먹였다. 눈꼬리에 맺혀 있던 눈물이 기어이 떨어져 짓눌린 뺨과 팔 사이에 스몄다. 그러나 한번 마음을 빼앗긴 이상 외면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진은 매사에 그런 식으로 쉽게 무너지곤 했다.
구멍을 헤집던 손이 옅게 떨리며 앞으로 뻗어 나갔다. 정신을 차렸을 땐 거치대에 있던 전동칫솔이 손아귀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하진은 일부러 거울 속 자신을 보지 않았다. 아주 비정상적인 행동을 저지르기 직전이라는 걸 최소한으로 남은 의식이 인지한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당장 넣고 싶으니까. 현실을 잠시 덮어두기로 마음먹은 하진이 전동칫솔을 대각선 형태로 세워 들었다. 이어 서서히 솔 부분부터 구멍 입구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 하앗, 읏.”
칫솔모는 생각처럼 끝이 부드럽지 않았다. 방금까지 하던 손장난 때문에 한껏 민감해진 구멍을 문지르기엔 꽤 자극적이었다. 살짝 겁을 먹은 하진은 숨을 훅 참고서 버티다, 이내 힘주어 끝을 밀어 넣었다.
“아…! 아흐….”
동그란 솔이 한 번에 안으로 쑥 파고들었다. 딱딱하고 거칠긴 해도 크기 자체는 손가락보다 더 작아서 버겁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작고 여러 갈래로 갈라진 솔이 내벽을 직접적으로 긁어대자,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쾌감이 밀려왔다.
참지 못한 하진이 손끝에 더 힘을 실었다. 안쪽으로 완전히 삼켜진 솔이 점차 깊이 찔려 박히며 부드러운 점막을 샅샅이 훑고 지나갔다.
“흐읏, 흣…! 으으응, 하….”
얇은 윗부분을 수월하게 밀어 넣고 나니 그다음은 칫솔의 손잡이였다. 점점 굵어지는 부분이 입구에 딱 걸리자 분홍빛 구멍이 차근히 벌어졌다. 하진은 문득 조금 더 굵지 않아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중간에 살짝 걸리는 부분이 있었으나 삽입은 어렵지 않았다. 마침내 칫솔을 아래만 조금 남기고 다 밀어 넣자 손가락으로는 닿지 않았던 안쪽이 건드려졌다.
하진은 그 상태로 잠시 버티다 이내 두어 번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흐앗, 아…. 내벽에 닿는 모양으로 지금 그가 삽입한 게 무엇인지 완벽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앞뒤로 몇 번 삽입해 보던 그는, 마치 빨대로 음료를 휘젓듯 끝을 둥글리기 시작했다.
“하으, 앗, 흑.”
짙은 쾌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대로 무릎이 꺾일 뻔한 걸 겨우 참아야 했다. 자그마한 솔의 갈라진 단면들이 안을 촘촘히 헤집으며 하진을 무너뜨렸다. 조금도 휘거나 꺾을 수 없다는 제약 때문에 아주 깊숙이 삼켜져 더 자극적이었다. 그 상태로 내벽을 움찔거릴 때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하진은 칫솔 손잡이를 잡고 살짝 밖으로 빼냈다. 버튼이… 어디 있을 텐데. 마음이 급해서 어디쯤인지 엄지 끝으로 더듬거리며 찾아야 했다. 꿀꺽. 그가 군침을 삼켰다. 그때 갑자기 배 속이 울리기 시작했다.
“흣, 응!”
우우웅. 낮고 미약한 진동음은 분명 아래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갑자기 물체가 떨리기 시작하자, 하진은 어떤 준비도 없이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실수로 버튼을 잘못 누른 모양이었다. 다시 끌 수도 없었다. 흐으, 윽! 아흑, 흐…! 간지럽다는 말로는 모자랐다. 좋은 곳을 마구 찔러대는 감각. 우웅, 우우웅, 안에서 쉼 없이 진동하는 기다란 막대기가 민감한 부위를 멋대로 들쑤셨다. 허리가 제멋대로 들썩이며 튕겼다.
굵은 성기가 드나드는 느낌과는 달랐다. 미세하고도 정직한 자극은 다른 의미에서 참을 수 없는 쾌락을 안겨주었다. 너, 너무 좋아…. 하진이 벌벌 떨리는 손바닥을 오므려 진동하는 칫솔 끝을 꾸욱 밀어 넣었다. 그러자 쉴 새 없이 소리 내며 떨리는 칫솔모가 기어이 전립선 근처를 긁어대기 시작했다.
“흐앗, 앗, 흣…! 응…!”
쾌락에 지배된 몸이 마구 뒤틀렸다. 벌어진 허벅지가 덜덜 떨리고 화장실 바닥에 맞붙은 발가락이 둥글게 곱아들었다. 하진은 거의 울면서도 뒤에 박힌 걸 빼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까지 헤집어졌으면 좋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할딱이는 숨소리가 점점 커졌다. 순간 두렵게도 아까처럼 소변이 마려워졌다. 하지만 이대로 변기 앞으로 다시 움직일 자신이 없었다. 한 걸음이라도 움직였다간 그대로 뭐가 흐를 것처럼 위험했다.
“하앗, 아아, 흐, 아.”
하진은 마치 벌을 서는 것처럼 뻣뻣하게 굳은 채로 오로지 뒤에서 쏟아지는 쾌락에만 온 정신을 내어 주었다. 찔러 박힌 물건의 진동이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엔 요의가 아니라 사정감일지도 몰랐다. 유두마저 딱딱하게 서 있었다. 몸이 움찔거릴 때마다 양쪽이 덩달아 간지러운 걸 보면, 이대로 절정에 닿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진은 진동하는 칫솔을 겁 없이 마구 휘저었다. 흐윽… 으응, 아…! 정제되지 못한 신음이 두서없이 터져 나왔다. 어쩌면 문밖까지 새어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머릿속을 스쳤다.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거짓말처럼.
“하진아.”
“흐읍, 헉….”
모를 수 없는 목소리. 하진이 급하게 입술을 물었다. 그러자 조용해진 화장실 안을 희미한 진동음이 대신 채웠다. 우우웅. 그 작은 소리가 잔인할 만큼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하진아, 뭐 해? 나 들어가.”
안 된다고 말할 새도 없이 문고리가 돌아갔다. 피할 곳도, 대처할 시간도 없었다. 하진은 다급하게 상체를 세워 몸을 돌렸다. 투둑. 바닥으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열린 문틈으로 차선오가 나타났다.
“…….”
그가 원래도 이렇게 위협적으로 보였던가.
“너, 너….”
큰 키와 넓게 벌어진 어깨 때문에 문이 거의 꽉 채워질 정도였다. 하진은 겁에 질려 의미 없이 뒷걸음질 쳤다. 뒤로 모은 두 손이 차가운 세면대를 짚었다. 잘게 떨리며 공회전하는 전동칫솔이 발치에 걸렸다.
“지금 뒷걸음질 치는 거야?”
“왜 마, 말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불쑥 들어오는 게 어딨….”
“…아.”
차선오가 맨몸에 대충 주워입은 파자마 바지 주머니 안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자다 깬 탓에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마저 썩 잘 어울렸다.
“아직 풀려 있구나.”
어제 누가 풀어달라고 하는 바람에…. 그가 입속으로 혀를 굴렸다.
“그래서 날 보는 표정이….”
하진은 조심스럽게 발뒤꿈치로 칫솔을 안쪽으로 밀었다. 하지만 그걸로 숨길 수 있을 거란 확신은 들지 않았다.
“조금 속상하긴 하네. 너무 그렇게 노려볼 것까진 없잖아.”
“…….”
“그 눈빛 적응 안 된다, 하진아.”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하진은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해대는 차선오를 경계하며 서툴게 더듬거렸다.
방금까지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위했는데 막상 당사자가 나타나니 무서웠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절 보고도 놀라긴커녕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여유로운 태도도, 나가라는 데도 당연하게 안으로 들어와 거리를 좁히는 발걸음도, 전부 하진을 떨게 했다.
대체 내가 아는 차선오가 맞긴 한 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거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나, 나가줘. 나 씻던 중이었으니까.”
하진의 자신 없는 변명에 차선오가 그를 빤히 보았다. 그러다 바닥 한쪽에서 웅웅거리며 진동하는 칫솔을 흘끗 내려다보았다.
“씻었다고?”
저 표정을, 웃고 있다고 해도 될까. 하진은 너무 쉽게 들켜버린 증거물에 난처함을 숨기지 못하고 대꾸했다.
“그, 그래.”
차선오가 세면대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런데 왜 물을 튼 흔적이 없지.”
“…….”
“내가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진아.”
가라앉은 차선오의 목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전부… 솔직해야 해. 머릿속에 그 생각이 가득 떠올랐다.
“아….”
물론이었다. 그걸 알지만, 하지만, 어떻게 이런 것까지 솔직하게 얘길 할 수 있을까. 하진은 분명 계속해서 부정할 생각이었다.
“…미안해.”
그러나 정작 입 밖으로 나간 건 고분고분한 인정이었다.
“사실은 방금 그걸로….”
아니, 이렇게 말하려던 게 아닌데. 왜, 왜 입이 멋대로…. 충격에 젖은 하진이 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사이, 차선오는 아무렇지 않게 허리를 굽혀 전동칫솔을 집어 들었다.
“구멍이라도 쑤셨어?”
구멍을… 쑤셨냐니. 언제부터 그런 말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걸까.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하진은 아니라고 즉시 부정하려 했다.
“으응.”
분명 그랬는데, 이번에도 입은 제멋대로 지껄이고 말았다.
“일어나니까 구멍이 허전해서…. 원랜 오줌이 마려웠는데….”
그렇게 쉽게 인정할 말이 아닌데도 대화가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게다가 목소리엔 아주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기색만이 가득했다.
“보니까 또 넣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
“어제 그렇게 박아줬는데도 또 아침부터 발정이 났나 보네.”
차선오는 이해한다는 듯 선선히 웃었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넣으면 어떡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
“구멍 상하면 자지 못 받아먹어. 그래도 좋아?”
“그건….”
뺨을 붉힌 채 고개를 떨구는 하진의 모습을, 차선오가 가라앉은 눈으로 훑었다. 어디로 봐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가 세면대에 감추듯 딱 붙인 하진의 하체 쪽을 살폈다. 날씬한 몸에서 유일하게 살집이 붙은 동그란 엉덩이가 살짝 눌려 있었다.
“이리 와 봐. 다쳤는지 보자.”
그가 부드럽게 눈을 휘어 웃었다.
“본, 다고?”
그때, 여태 순종적이던 하진이 갑자기 거부감을 드러내며 날을 세웠다. 보겠다는 말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살아난 모양이었다.
“부끄러워서 그래?”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네가 왜….”
현실의 자아와 최면에 걸린 자아가 뒤섞여 충동하는 과정이었다. 차선오는 전혀 놀라지 않고 다독이듯 그의 암시를 깨웠다.
“당연하잖아. 내 건데.”
“…….”
“나 생각하면서 쑤시지 않았어? 보여주려고 한 거 아냐?”
“…그, 그런….”
“괜찮으니까 이리 와.”
나긋한 명령과 동시에 몸이 움찔거렸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보여주려고. 보여주고 싶어서 참지 못하고 여길….
“얼른, 하진아. 나 기다리잖아.”
쐐기를 박는 말에 사지에 힘이 쭉 풀렸다. 군데군데 알맞게 달아오른 몸이 곧바로 차선오의 품으로 향했다.
“…….”
결합은 자연스러웠다. 나란히 놓인 퍼즐처럼 서로의 몸이 맞물렸다. 따뜻해. 기분 좋아…. 아까 느꼈던 안정이 돌아오자, 날 선 하진의 눈이 유순하게 가라앉았다. 차선오는 제게 다가온 하진의 한쪽 허벅지를 잡아 바짝 치켜 올렸다.
“흣… 이, 이건.”
“쉬이. 팔로 내 목 감고 있어.”
하진은 졸지에 한 다리로만 서게 된 아슬아슬한 자세로 급하게 양팔을 뻗어 차선오의 목을 감고 무게를 실었다.
“넘어질 것 같아….”
“괜찮아. 그렇게 안 둬.”
쪼개진 엉덩이 사이로 차선오의 손이 뱀처럼 미끄러졌다. 하진은 바짝 들린 허벅지를 차선오의 허리에 붙이고, 종아리로 그의 허리를 감았다. 서로의 몸이 좀 더 가까이 당겨졌다. 그가 화답하듯 주저 없이 하진의 구멍을 훑기 시작했다.
“여기가 좋았어?”
“흐으, 읏….”
“구멍이 뜨겁네. 얼마나 쑤셨으면.”
차선오가 위험하게 중얼거리자 하진은 그에게 기댄 몸을 배배 꼬며 얼굴을 어깨에 부볐다. 마치 애교라도 부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아무거나 넣는 건 안 돼.”
하지만 차선오는 짐짓 엄격한 목소리로 엄지와 검지를 붙여 구멍을 벌렸다. 다정한 구석이라곤 없는 거친 손길에 하진이 힉, 하고 급히 숨을 들이켰다. 집게 모양으로 만든 손가락을 쑤셔 넣고 그대로 헤집을 기세였다.
“입구는 괜찮은 것 같은데.”
“아, 아흐….”
“넣어봐야 알겠네. 보나 마나 안쪽까지 쑤셨을 테니.”
안 돼. 하, 하지 마. 구멍을 쫙 벌리며 다소 버겁게 들어오는 손가락의 느낌에 하진은 그렇게 말하려 했지만, 몸은 계속해서 얌전히 그에게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흐으, 웃, 좋아… 앗….”
“큰일이야. 이런 걸로도 느껴서.”
사실 구멍이 잘못될까 봐 두려웠지만 또다시 입은 제멋대로 앙탈 부리듯 듣기 좋은 소리만 내뱉었다. 빡빡하게 밀려 들어온 엄지와 검지가 내벽을 하나하나 훑듯이 휘젓자 아랫배에 힘이 확 들어갔다.
“하진아, 물지 말고 벌려야지.”
“아, 아흐… 흐으, 그치만….”
느낌이 너무 이상했다. 잘못하면 넘어질 듯한 자세도, 안긴 채로 부끄러운 구멍을 내어주고 있는 것도. 하지만 하진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차선오에게 온몸을 딱 붙인 채로 끙끙거리는 것뿐이었다. 무력함과 쾌감이 동시에 하진에게로 몰아쳤다.
“검사하는 데도 이렇게 좋아하면 어떡해. 응?”
“너무, 응, 굵어서… 아흣, 앗.”
“굵긴, 자지도 잘 받아먹으면서.”
그는 마치 하진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듯 말했다. 하진의 무게를 온전히 받치고 선 채 손을 난잡하게 놀리면서도, 목소리는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올곧기만 했다.
“자지….”
하진은 멍하니 그의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그래, 어제 여기다 가득 박아줬잖아.”
차선오가 구멍에 쑤셔 넣은 손가락을 휘저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다행히 안에 상처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진작부터 달아오른 내벽은 손가락을 빼지 말라는 것처럼 꽉 물고 있었다.
그 쫀득한 느낌에 차선오 역시 서서히 몸이 달아올랐다. 그는 본격적으로 구멍을 헤집기 위해 엄지 대신 중지를 밀어 넣었다.
“아, 아흐으… 흐.”
붙잡고 있는 하진의 허벅지가 바르르 떨렸다. 확실히 손가락이 더 안쪽 깊이까지 들어가니 내뱉는 호흡부터가 달라졌다. 여기서 조금만 움직이면, 좋아하는 부분도 쑤셔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응, 읏!”
강하게 박아 넣은 손끝이 어렵지 않게 전립선을 찾아 짓누르자, 하진은 고개를 젖히고 몸서리쳤다. 중지 끝이 몇 번인가 더 같은 부위를 톡, 톡 건드릴 때마다 하진의 몸이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움찔거렸다.
“하아… 여기가 좋아?”
“조, 좋아. 거기 너무, 아…!”
“여기, 자지로도 쑤셔줄 수 있는데.”
차선오가 확연히 낮아진 목소리로 하진의 기억을 일깨웠다.
“어제처럼 말이야, 하진아.”
“…어, 어제….”
순간 하진의 텅 빈 머릿속으로 여러 장면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으웃…. 그가 가볍게 헛구역질했다. 그러고는 다시 맨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또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어쩌다 차선오에게 이렇게 몸을 내어주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오줌을 싸러 들어왔을 뿐인데, 어느 틈에 이렇게….
“그래, 어제.”
“…….”
“기억하지?”
기억, 하느냐고…. 흐릿했던 하진의 눈동자 위로 혼란이 덧씌워졌다. 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기, 기억나.”
“그래. 처음부터 다 얘기할 수 있어?”
생각을 거치기도 전에 입이 먼저 긍정했다.
“으응. 처음엔 가슴에서….”
하진의 입술이 천천히 기억 아래 잠긴 난잡한 행위를 꺼내 놓았다. 평온한 어조였다. 입꼬리가 조금 떨리는 건 그저 부끄러움의 증거일 뿐이었다.
“젖꼭지에 밴드를 붙이고 있었는데… 선오 네가 떼서 만지고… 빨아줬어.”
“응. 그랬지.”
짧게 거드는 목소리에, 하진은 점점 확신에 차서 설명했다.
“입술로 조이고 핥아주니까,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어…. 젖이 막 흐르는 데도 도저히….”
하아…. 회상에 잠긴 하진이 눈꺼풀을 내리깔고 달콤한 한숨을 내쉬었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젖 나올 때… 기분 좋아. 흐를 때 그 축축한 느낌도 좋고, 탁 터져 나오면 너무… 너무 좋아, 정말….”
“그래서 나중엔 내 얼굴에다가 비볐잖아. 더 핥아 달라고.”
“으응.”
그 순간을 상상만 해도 또 간지럽다는 듯 하진이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하얀 젖이 흘러서 배가 다 축축해졌지?”
“응…. 그 아래까지 전부 젖었어.”
“그리고 또, 뭘 흘렸어?”
차선오는 그의 요도로 시선을 내렸다. 아주 조그마한 구멍이 촉촉하게 젖어 벌름대고 있었다. 하진도 그걸 알아차렸다. 다시 성감이 차올랐다. 오줌을 싸다 뒷구멍을 쑤시게 된 것과 같은 이유로.
“자지에서… 투명한 물이 튀어 올랐어. 꼭 오, 오줌 같은 게 잔뜩 터져서….”
“맞아. 이불이 축축할 만큼 질질 흘렸잖아. 내가 조금만 건드려줬는데도, 예쁘게.”
그는 더듬더듬 얘기하는 하진이 기특하단 듯이 웃었다. 그 시원한 미소에 하진이 덜덜 떨리는 입꼬리를 올려 따라 웃는데, 갑자기 다시 구멍이 확 벌어졌다. 흐아…! 어느새 입구에 갈고리처럼 걸린 손가락 두 개가 마치 찢듯이 가로로 구멍을 당겼다.
“그때 하진이 너 제정신이었어.”
“…제정신…?”
이해하지 못한 하진이 몽롱하게 중얼거렸다.
“나 때문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 못 참고 싼 거라고. 모르겠어? 내가 박아준 게 너무 기뻐서 아래위로 물을 흘린 거잖아.”
“아….”
마, 맞아. 기뻐서 그랬지. 선오가 내 뒷구멍에 뜨거운 좆을 잔뜩 넣어줘서. 하진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주 작은 의심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지난밤의 장면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기억 속에서 유독 그 순간의 색채가 뚜렷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슴을 내어준 것도, 키스한 것도, 뒷구멍에 자지가 들어온 것도. 전부 불투명한 벽에 가린 장면처럼 조금은 낯선 게 사실이었다. 반면 성기 끝에 묶인 스타킹이 풀리고 거기서 물이 튀어 오르던 순간만큼은, 마치 조금 전처럼 생생했다.
괜찮은 거구나. 이상한 게 아니구나. 하진은 재차 인식했다. 차선오의 앞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제 몸은 살짝만 건드려줘도 질질 흘리고 마는… 참을성 없이 음탕한 몸이라고. 그가 슬그머니 엉덩이를 흔들었다.
“왜, 또 싸고 싶어?”
그 속을 알아챈 차선오가 기다렸단 듯 물었다. 하진은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으응…. 자지 받으면서 싸고 싶어….
“키스부터 해줄게. 혀 내밀어 봐.”
응, 고마워. 한 점의 의심 없이 젖은 혀를 내밀고 눈을 내리까는 하진의 얼굴엔 오로지 순종의 빛깔만이 드리워져 있었다.
순간, 차선오는 막 최면에서 벗어났을 때의 하진을 떠올렸다.
뚝 잘린 기억 때문에 당황했음에도 여전히 쾌락에 잠식된 낯. 제게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던 몸. 그건 어찌 보면 차선오가 직접 새겨 넣은 세뇌가 아니라 하진 스스로가 섹스에 익숙해져 생긴 결과였다.
그는 차근히 계획을 세웠다. 목적은 처음부터 하나뿐이었다. 하진이 완벽히 저만을 갈망하게 되는 것. 잠시 떠나려 들다가도 끝내 돌아와 안기고 마는 것.
…서로의 사랑을 완성하는 것.
음탕하게 얽힌 혀가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틈 없이 맞물렸다. 구멍을 벌린 손가락이 주변의 여린 살을 마사지하듯 살며시 문질렀다. 하진의 엉덩이부터 허벅지가 크게 움찔거렸다.
차선오는 그의 혀를 흠씬 빨아주며 흐르는 침을 달게 삼켰다. 하진이 할딱이며 달뜬 얼굴을 내보였다. 그 얼굴엔 오로지 이어질 삽입에 대한 기대감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