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휴가
계절이 속절없이 흘렀다. 두 사람은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서 남해로 향했다. 여름에 재회한 이후, 한겨울이 되어서야 처음 맞는 둘만의 휴가였다.
“와아….”
이동 시간 내내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던 하진은 내리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홀로 탄성을 내뱉었다. 휴가지는 조용한 펜션이었다. 차선오가 혼자 예약을 마쳐서 어떤 곳일지 기대했는데, 도착해 보니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공간이었다. 근처엔 가게며 가정집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고즈넉한 겨울 바다와 평지만 길게 뻗어 있었다. 펜션 건물은 그 사이에 비밀스러운 성지처럼 놓여 있었다.
“여기 사람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하진은 검은 롱코트 차림의 차선오에게 다가갔다. 그는 출입문 잠금을 해제하는 중이었다. 관리인과 마주칠 필요 없이 예약자의 핸드폰 번호로 비밀번호를 설정해두는 시스템인 듯했다.
“없어야지.”
짧게 대답한 그가 커다란 원목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하진에게로 손을 뻗어 목에 감긴 폭신한 목도리를 좀 더 단단히 여며주었다. 입술을 가리는 게 답답해서 조금 내렸더니, 그가 웃으며 아예 코까지 끌어 올렸다.
“누가 너 보면 어떡해. 그거 싫어서 통째로 빌렸어.”
하진은 목도리에 갇힌 입술을 웅얼거렸다.
“통째로? 여길…?”
“응, 들어가자.”
차선오는 캐리어 두 개를 양손에 끌며 하진을 먼저 안으로 들여보내고, 주변을 슥 훑다가 발을 옮겼다.
“어, 다른 투숙객도 있나 봐.”
하진은 여러 개의 독채를 발견하고 말했다.
“내일까지 아무도 안 올 거야. 통째로 빌렸다니까.”
“진짜? 나 구경할래.”
내부는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사실 무슨 펜션이란 게 위치도 외진 데다가 한적한 시골길에 혼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긴가민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꼭 둘만의 별장에 온 기분이었다. 화려하기보단 정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살펴볼수록 뭐하나 부족함 없이 쾌적했다. 평온하고 프라이빗한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사생활이 완전히 차단된 구조였다.
“근데 숙소를 너무 과하게 잡은 거 같아. 여기만 있을 것도 아닌데 아깝게….”
차선오가 캐리어를 정리하고 난방 온도를 확인하는 사이 안을 대강 둘러본 하진이 말했다. 잠이 덜 깨 몽롱했던 머릿속이 살짝 복잡해졌다.
그는 처음 오는 휴가에 들떠 많은 계획을 세웠다. 겨울 바다를 구경하는 건 물론이고, 주변에 갈 관광지도 여러 군데를 봐둔 터였다. 식당과 빵집, 카페도 눈여겨본 데가 한둘이 아니었다. 사실 그 모든 계획을 혼자 짜긴 했지만, 차선오에게도 생각날 때마다 설명해 두었으니 합의된 사항이라 여겼다.
기왕 멀리까지 왔으니 갈 수 있는 데는 다 가보고 싶었다. 하진이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낮이라고 해도 일정이 빠듯했다. 다 돌아보고 오면 한밤중이 되어 있겠지. 고작 잠만 자고 나가기에는 펜션이 지나치게 좋고, 마음에 쏙 들었다. 내일이면 떠나야 한다는 게 벌써 아쉬워질 만큼.
“이쪽에 노천탕도 있어.”
쓰지도 않을 주방기기까지 살피면서 혼자서만 심각하게 고민하던 하진은 노천탕이란 말에 얼른 차선오를 따라나섰다.
“우와, 여기도 우리만 쓰는 거야?”
야외에 설치된 개인 노천탕은 따뜻한 물이 가득 채워져 김이 폴폴 솟아올랐다. 게다가 꼭 유리 온실처럼 주변 벽과 천장이 투명한 돔 형식으로 되어 있었고, 그 바깥엔 돌벽이 드리워져 혹시 모를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고 있었다.
“예전에 같이 수영장 가기로 했던 거 기억나? 나 말없이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으응.”
하진은 당시를 떠올리곤 얼굴을 슬쩍 붉혔다. 그의 냄새가 나는 옷에 코를 박고 자위를 하다 걸렸었지….
“수영은 여름에 하고, 지금은 추우니까. 이따 저녁 먹고 같이 들어가자.”
“선오야, 나 이런 데 처음 와 봐. 진짜 좋다. 안에도 보면 안 돼?”
“잠깐만.”
양말만 달랑 신고 데크로 나가려는 그를 보고, 차선오는 실내화를 가져오겠다며 잠시 사라졌다. 혼자 남은 하진은 고개를 들고 투명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다 보이네….”
정말 야외에서 몸을 녹이는 기분일 것 같았다. 밤이면 별도 보이려나. 구경할수록 신기하고 새로웠다.
호텔과 펜션 중에 어디로 가고 싶냐는 말에 후자로 고르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호텔은 한창 몸을 혹사시키던 이십 대 초반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몇 번 가본 적이 있었지만, 이런 고급 펜션은 난생처음이었다.
여길 통째로 빌리려면 대체 얼마일까? 차선오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근사한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을 텐데. 괜스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쏙 드는 노천탕까지 확인하고 나니 하진은 더더욱 이곳에서 잠만 자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워졌다. 어느샌가 돌아온 차선오가 하진의 양발에 꼼꼼하게 실내화를 신겨주었다. 그러고는 상기된 뺨을 톡톡 건드리면서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속삭였다.
“하진아.”
“응.”
“나가지 말고 여기 있을까? 너 아쉬우면.”
의미심장한 그의 말에 하진은 망설이는 척했다. 인터넷으로 본 관광지 풍경이나,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 사진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그럴까?”
그보다 차선오와 둘만 있는 시간이 더 좋은 건 사실이니까. 하진은 활짝 웃다가 너무 좋아한 것 같아 얼른 표정 관리를 했다. 열심히 짠 계획이 전부 물거품이 됐는데도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근데 밥은 어떡해? 나가서 사 올 건….”
괜히 부끄러워서 쓸데없는 말을 하는 하진에게로 곧장 입맞춤이 쏟아졌다.
“흣….”
“그런 건 걱정하지 마.”
차선오는 코앞에 놓인 보들보들한 양 뺨에 먼저 키스하고, 이미 살짝 열려 있는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응, 음… 하으.”
작은 애정 표현은 금세 농밀해졌다. 오직 둘 뿐인 조용한 펜션, 야외에 설치된 노천탕 안에 야릇한 침 소리가 번졌다. 혀가 끈적하게 얽힐수록 뜨거운 수증기 때문에 몸이 녹아 더욱 기분이 몽롱해졌다. 키스에 취한 하진이 무게를 실어 차선오에게 더 매달리는데, 돌연 몸이 떨어져 나갔다.
“씻고 탕에 들어가 보자.”
“…응.”
하진은 짧은 사이에 침 범벅이 된 입술을 얼른 닦았다. 이대로 더 해도 괜찮은데…. 남은 일정도 사라졌기에 아쉬웠다. 그때 차선오가 옆에 걸린 노천탕 이용 수칙을 유심히 살피다 말했다.
“섹스 금지라는 말은 없는데….”
“어… 응?”
“물속에선 어디까지 허용될지 모르겠네. 하진아, 꼭 하고 싶은 거 있어? 미리 전화해서 확인해 볼까?”
묻는 얼굴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태연했다.
“나, 나 먼저 들어간다!”
하진은 대답을 피하며 얼른 샤워실을 찾아 나섰다. 불씨가 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서두르고 싶었다.
*
“읏… 차, 창피해.”
“괜찮으니까 등 조금만 더 기대 봐. 힘 풀고.”
얇은 로브의 밑단이 수면 위로 둥둥 떠올라 두 사람의 주변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하진은 그가 시키는 대로 대리석에 등을 더 기대면서 가슴이 젖지 않게 각별히 신경 썼다. 하체만 물속에 담겨 있는데도 뽀얀 수증기를 머금은 유두는 촉촉하게 젖어서 평소보다 더 통통해 보였다.
“손만 닿으면 줄줄 새겠다, 그치?”
“그거야 네가 계속 만졌으니까… 아, 흐….”
약 올리듯 유륜과 그 주변의 살갗만 간지럽히는 차선오의 손 역시 뜨겁고 축축했다. 하진은 자신이 이토록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아무리 상대가 익숙하다 해도 주어진 상황이란 건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 꼭 바깥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 같은, 이 낯선 공간 역시도.
“그, 그만해.”
탕을 에두르는 대리석에 완전히 등을 붙인 하진은 한껏 민감해진 가슴을 방어하듯 가렸다. 젖은 앞머리를 뒤로 모아 넘긴 차선오가 작게 웃었다. 잘생긴 이마와 흠 하나 없는 이목구비를 전부 드러낸 그가 유난히 근사해 보였다.
“싫어? 여긴 계속 만져달라고 보채는데.”
“…더 하다가 나오면 어떡해. 물 더러워질 거 아냐….”
턱을 내려 살짝 확인하니 정말로 조금만 더 세게 눌렀다간 젖이 흐르기 직전으로 보였다. 하진은 억울하기도 난처하기도 한 얼굴로 차선오를 살짝 밀어냈다.
재빨리 샤워를 마친 후 비치된 로브 차림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하진은 뜻밖의 얘길 들었다.
‘하진아, 수유부는 출입 금지래.’
그 짤막한 소식에 하진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수유부라니…. 입에 담기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그 단어에 하진은 즉시 제 몸을 확인했다. 정확히는 주기적으로 젖물이 나오는 자신의 가슴을.
입욕제와 샤워 용품 사용이 금지된 것까진 그렇다 쳐도, 젖이 나온다는 이유로도 노천탕을 이용할 수 없는 건 생각도 못 한 상황이었다. 차선오는 정말 몰랐단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사실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어쨌거나 하진은 크게 실망했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맞으며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일 생각에 들떴던 마음이 한순간 가라앉고 말았다. 수중 섹스에 대한 은근한 기대감까지도.
속상해하는 하진에게, 씻고 돌아온 차선오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젖꼭지만 닿지 않으면 괜찮지 않겠냐면서, 어딘가 의뭉스러운 얼굴로 그를 물속으로 이끌었다.
하진은 그를 따라 하체부터 서서히 몸을 담갔다. 한쪽 바닥에 설치된 계단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가슴이 잠기지 않도록 자리를 잡은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몇 번의 입맞춤 끝에 자연스레 로브의 허리끈을 풀고, 가슴팍이 다 드러나도록 벗겨 놓고선 쉼 없이 만지작대는 차선오의 음습한 손길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나가긴 싫잖아. 나도 혼자 여기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널찍한 노천탕 구석에 몸을 웅크린 하진에게, 차선오는 다시 다가갔다. 물결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넘실거렸다.
“진짜 나가고 싶어? 나만 여기 두고?”
그의 손이 하진의 허벅지를 짚었다. 목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까지 훤히 보이는 거리였다. 저런 얼굴로 저런 질문을 하는 건 반칙이었다.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진은 아주 작게 대꾸했다.
“…아니.”
그러자 차선오의 기다란 팔이 어깨를 휘감았다. 그 와중에도 하진은 간질거리는 젖꼭지를 의식하며 덧붙였다.
“야… 손 닿을 것 같아….”
“만지는 게 안되면 빨아볼까?”
“…뭐?”
“안 나올 때까지 내가 다 빨아서 마시면 되잖아. 그럼 어때?”
“…….”
저토록 태연하게 내뱉는 말치고는, 지나치게 선정적이었다. 그만큼… 유혹적이기도 하고.
하진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어 입술을 핥았다. 시원하게 느껴지는 찬 공기와 다리를 적시는 뜨겁고 부드러운 물살. 눈앞에서 기꺼이 저를 위해 성심성의껏 애무해 주겠다고 나서는 차선오를 거부하기엔, 도저히 핑곗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될까?”
곧바로 해달라고 하는 게 부끄러워서 하진은 망설이는 척 살짝 물었다.
“금방 끝나진 않을 텐데….”
“안 그래도 빨아주고 싶었어.”
차선오는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던 것처럼 미소 지었다. 그의 탐욕스러운 입술이 상체 가까이 맞붙었다. 하진이 노천탕 계단에 앉아 있어서 그보다 눈높이가 더 높았다. 물속에 완전히 들어간 차선오가 가슴을 빨기엔 마침 딱 맞는 자세였다.
“겨울이라 옷이 두꺼워서 그렇지. 여름이었으면 진작 두 번, 아니 세 번은 더 짜야 했을걸. 실루엣이 튀어나와서.”
“흐, 흘리면 안 돼. 응? 하아….”
“응, 입술 안 뗄게.”
숨결이 닿는 것만으로 등줄기가 기분 좋게 짜릿했다. 하진은 거슬리는 로브를 아예 벗겨버리는 차선오의 손길을 모른 척 내버려 두었다. 알몸이 되자 기분이 한층 오묘해졌다. 비록 유리 벽과 돌담이 가로막고 있다고는 해도,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빼도 박도 못하는 야외여서 생소하고 또 그만큼 몸이 달아올랐다.
차선오는 솜씨 좋게 하진의 어깨를 뒤로 내리누르면서, 목과 쇄골을 혀끝으로 문질렀다. 원래도 보기 좋은 흰 살결이 수증기와 채광으로 인해 더 반짝여 보였다. 군데군데 색이 짙어져 분홍빛이 도는 것 또한 사랑스럽고, 동시에 색스러웠다.
죄다 빨아주고 싶을 만큼.
“흐으, 아, 응….”
오른쪽 유두를 베어 물기 무섭게 하진이 허리를 떨었다. 그의 말대로 흐르지 않도록 윗입술과 아랫입술로 도톰한 돌기를 흡입하듯 감싸고, 혀끝으로 살살 굴리자 익히 아는 달고 비릿한 맛이 입 안을 적셨다.
“나, 나와, 벌써… 하아, 아….”
“아파?”
“흣, 그렇게 말하지… 아냐, 좋, 좋아. 아흣.”
이미 여러 번 겪었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었다. 일반적인 수유와는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성감이 한껏 증폭된 하진의 젖꼭지는 살짝만 건드려도 야릇하게 솟아올라 안에 고인 흰 젖물을 질질 흘렸다. 그게 새어 나올 때마다 쾌감을 느끼는 것도, 전부 차선오가 개발해둔 덕이었다. 아래로 물을 쌀 때와 비슷했다. 강도는 약하지만 계속해서 절정에 이르는, 중독적인 느낌.
하진은 가슴을 내어준 채로 아래를 살짝 내려다보았다. 이마를 드러낸 채 서슴없이 젖을 빨고 있는 차선오의 모습을 보자, 금세 눈앞이 아찔해졌다. 새삼스럽게 민망하고 부끄러운 동시에 그의 혀 놀림이 평소보다 더 끈적하고 집요해서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흐으… 선오야…. 이로 살짝 깨물어도, 읏, 괜찮은데….”
어느새 가슴을 더 내밀고 있는 하진이 조르듯 흐느꼈다. 입술과 혀로만 부드럽게 빨아주는 느낌도 좋지만, 계속 지금 같은 상황이면 젖이 다 나오기까지 한참이나 걸릴지도 몰랐다.
“응…? 더 세게, 그래야 더 많이 나올 것 같아….”
사실 더 강한 자극을 원해서 그런 것이지만. 하진은 모른 척 그의 입가에 가슴을 더 바짝 붙였다. 그러자 차선오가 입술을 오므린 그대로 눈을 휘었다.
“괜찮겠어?”
“흐, 웃! 뭐, 뭐가….”
“여기가 이렇게 섰잖아.”
물속에서 한쪽 무릎을 세운 그가 하진의 다리 사이를 부드럽게 짓눌렀다. 순간 다리가 헤프게 벌어졌다.
“흐, 으응. 좋아….”
“젖만 빨아줬는데도 박힐 준비하는 거야? 아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데.”
“흐… 뭐, 뭐?”
“아기 말이야, 하진아.”
그가 혀를 내어 유륜을 둥글게 핥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임신 중 섹스가 좋다고 해도… 한 번 넣어주면 못 빼게 하니까. 나도 멈출 자신이 없는데.”
“아…! 아흑.”
“아니면 보지도 이렇게 빨아줘? 그걸로 되겠어?”
차선오는 정말 하진이 임신이라도 한 것처럼 손을 내려 아랫배를 살살 문질렀다. 당연히 실제로 거기에 아기가 든 건 아니었지만, 희고 묽은 젖이 힘없이 흘러내리는 유두와 마치 마사지라도 하듯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그의 손을 동시에 보니 하진의 기분도 점점 이상해졌다.
“…그럼 조금만….”
“응?”
하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납작한 아랫배를 문지르는 손이 교묘하게 자지 기둥을 건드리고, 민감한 허벅지 안쪽까지 내려오려 해서 도저히 가만히 버티기 어려웠다.
“조금만 넣으면 되잖아… 아, 아기가 다치지 않게.”
그래서 하진은 뻔뻔하게 웃고 있는 차선오의 연기에 동참하고 말았다. 부끄러워서 발가락까지 힘이 바짝 들어갔다. 보지가 생겼을 뿐 임신이 가능한 몸은 아니지만, 어떤 예고도 없이 그가 아기 걱정을 하니 정말 그런 상황에 놓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줄 알았어.”
“…흡.”
“우리 하진이는, 젖만 빨아줘도 보지를 못 벌려서 안달이니까.”
그렇지? 덧붙이는 말과 함께 차선오가 그의 몸을 끌어 올려 대리석 위에 길게 눕혔다. 상스러운 말과 달리 닿는 손길은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젖은 다리가 벌어지고, 이제 발끝만 겨우 물에 닿았다. 멀찍이 보이는 새파란 하늘이 어지러워서, 하진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흐… 마, 맞아….”
“기껏 멀리까지 휴가 왔는데 떡칠 생각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그만 놀리고 얼른, 하, 하기나 해.”
“쉬이. 예쁘게 말해야지. 우리 아기가 들어.”
물 밖으로 나와 하진에게 올라탄 차선오가 다시금 마른 배를 쓰다듬었다. 아래의 은밀한 부위가 벌써부터 움찔거렸다. 그의 몸에서 뚝뚝 흘러내린 물방울들이 하진의 몸 위로 투명한 자국을 만들었다.
빨리다 만 젖꼭지 위에도 한 방울이 툭 무겁게 떨어졌을 때는, 더 참기 어려운 무언가 솟구쳤다. 하진은 결국 손을 뻗어 차선오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넣어줘. 응? 빨면서 박아줘, 선오야….”
“응, 착하네.”
타이트한 수영복 앞섶을 내려 좆을 꺼낸 그가 즉시 하진의 무릎을 세우고는 보지 구멍을 살짝 벌렸다.
“어차피 계속 안에 있지도 못했겠다. 가슴이나 여기나 위아래로 물이 줄줄 흘러서.”
“하, 하아….”
“아기가 듣기엔 너무 사적인 얘긴가?”
“몰라, 얼른, 흡….”
뜨겁게 젖은 귀두가 기다렸단 듯이 구멍을 파고들었다.
“아, 으응!”
“하아… 성교육이라고 하지, 뭐.”
그 순간 차선오는 마치 사냥하는 맹수 같았다. 손아귀에 들어온 먹잇감을 느긋하게 물고 빨며 맛보다가, 가장 약한 부분을 단번에 찔러 무너뜨렸다.
“아… 흐… 좋아, 뜨거워….”
물속에서 충분히 데워진 아래가 넓게 벌어지며 동시에 가슴이 깨물렸다. 하진이 젖을 흘리며 몸을 비틀자 차선오는 푹 젖은 로브를 끌어다 하진의 머리 아래에 받쳐주었다. 그러고는 젖이 몰려 퉁퉁 부어오른 왼쪽 유두를 마저 빨면서 허리 짓을 이어갔다.
“하윽, 더 깊게… 거기 더, 선오야, 아, 아응.”
“조금만 넣어달라더니, 끝까지 해줘?”
차선오가 가슴에 입술을 댄 채로 말할 때마다 하진의 허리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그럼 아기 다쳐, 하진아.”
계속 그런 소릴 해댈 정도로 그는 여유로웠다. 하진은 울먹이며 차선오를 올려다보았다. 바로 누운 자세 때문에 가슴팍에서 하얀 젖이 옆으로 흘러 바닥을 적셨다. 하진은 그걸 훑어 내리다가 아랫배에 슬그머니 손을 올렸다.
“으응, 괜찮대…. 더 깊이 들어와도.”
“하….”
부풀지도 않은 배를 스스로 쓰다듬으면서 삽입을 조르는 하진의 모습이 환한 햇살 아래 여실히 드러났다. 게다가 부끄러워하면서도 흠뻑 젖은 다리로 차선오의 허리를 감싸 제 쪽으로 은근히 당기는 모습이 교태스럽기까지 했다.
“아기가 그래? 더 들어와도 된다고?”
“으응. 그리고 자기 먹을 젖도… 더 빨아도 된대. 어차피 계속 나올 테니까, 흣, 다 먹어버려도 괜찮다고… 흐응, 아…!”
있지도 않은 아기의 부탁인 척, 제가 원하는 걸 졸라대는 하진의 모습에 차선오는 참지 못하고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글쎄, 나는 잘 안 들리네.”
“뭐, 뭐가?”
“하진이 네가 들리는 대로 좀 말해봐. 아빠한테 뭐라고 하는지.”
“아빠, 한테…?”
여유를 잃은 시선이 위험하게 내리꽂혔다. 아아…. 보지 안에 박힌 기둥이 꺼떡거렸다. 그가 무슨 말을 원하는 건지 하진은 단박에 알아챘다. 좆을 찔러 넣은 채로 빙긋 웃고 있는 얼굴만 봐도 도저히 모를 수 없었다.
하진은 망설였다. 그러나 동시에 흥분이 됐다. 아래가 물보다 끈적한 분비물로 젖어 드는 게 느껴졌다.
“나, 나는… 아기가 하는 말만 대신해주는 거야. 알지…?”
“당연하지.”
“읏….”
차선오는 전부 이해한다는 듯 다정히 대꾸하면서, 동시에 좆을 살짝 더 밀어 넣어 재촉했다. 속에서 배덕감이 들끓었다. 하진은 차라리 다시 최면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주저하던 그가 눈을 꽉 감고서 입을 열었다.
“아, 아빠….”
그렇게 부르자마자 수치심에 온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내벽이 무서울 만큼 수축했다. 안에 박힌 기둥을 타고 물기가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흣, 모, 못 참겠어요. 자지… 더 넣어주세요….”
하진은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차선오의 허리를 감싼 다리의 힘은 풀지 않았다. 괜히 했나, 그런 후회가 들 즈음이었다.
“으응, 우리 아기가 욕심이 많네.”
“흐앗…!”
갑자기 몸이 확 들렸다.
“엄마 닮아서 그런가, 깊이 박아주는 걸 좋아하고. 하아… 쑤시다가 보지 안에 듬뿍 싸주는 것도 좋아하지?”
“네, 네에. 아, 흐윽, 선오야, 아…!”
아래가 연결된 채로 전신이 공중에 떴다. 하진은 급하게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몸이 떨어질 것 같아서 코알라처럼 양쪽 종아리로 차선오의 허리를 힘주어 감았더니, 반쯤 삽입된 게 더욱 깊이 들어오면서 내벽을 벌렸다.
“선오야, 나 잠깐, 내려줘. 떨어져…! 흐!”
“애도 뱄는데 설마 내가 떨어지게 둘까.”
차선오는 하진을 가뿐히 들어 올리고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유유히 그를 침대까지 옮겼다. 입실한 뒤로 손대지 않아 주름 하나 없이 말끔한 흰 이불 위에 흠뻑 젖은 하진의 등이 먼저 닿았다. 그 순간, 보지의 이물감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다시 퍽 소리가 나도록 강하게 쑤셔 박혔다.
“하아, 여기서 젖 다 빨고, 그다음에 물속에서 더하자. 괜찮지?”
“아, 아응, 읏, 아아…!”
푹신한 침대로 오니 딱딱한 대리석 바닥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그 역시 기다리던 바였다. 고개를 끄덕인 하진은 수치스러워하던 것도 잊고 스스로 편한 자세를 찾아 허리를 흔들었다.
“쉬이, 여기 만져.”
“으응, 아, 좋아, 아… 아흐으…!”
커다란 좆에 대고 엉덩이를 비비면서 하진은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세워 기분 좋은 부위를 문질렀다. 기구의 흡착과 진동에 익숙해진 클리토리스는 그새 더 민감하게 개발된 지 오래였다. 삽입의 여파에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거기가 부풀어서 쉴 새 없이 근질거렸다. 사실 이제는 자지를 흔들고 쳐올리는 것보다 거길 긁고 비트는 게 더 기분 좋을 정도였다.
“진짜 배가 좀 부푼 것 같은데?”
보지를 만지느라 정신이 없는 하진을 내려다보던 차선오가 돌연 골반을 당겨 맞붙이면서 아랫배에 다시 손을 올렸다.
“봐, 여기가 튀어나오잖아. 아기가 발길질을 하나? 응?”
“흣…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아흐!”
“말도 안 되긴.”
그는 은근히 상황극에서 빠져나가려는 하진을 일깨우듯, 허리를 힘주어 세게 쳐올렸다.
“이렇게 하면.”
“흐, 응!”
“자지가 너무 깊다고, 하아, 발길질을 해. 보여? 방금 튀어나온 거 봤지?”
하진은 흠뻑 젖은 눈을 떴다. 자신의 배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분명 확인했지만, 곧바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차선오가 아기의 발이라고 주장하는 건 사실 그의 좆이었다. 살집 없는 뱃가죽 아래로 흉기에 가까운 자지가 드나들 때마다 그 모양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이런 게 처음도 아닌데, 왜 갑자기….
“진짜 좋은가 봐. 점점 더 나오네.”
그걸 뻔히 알면서도 그는 능청스럽게 계속 같은 소릴 해댔다. 쳐올리는 힘도 약해질 줄을 몰랐다. 하진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속셈이 훤히 보였다.
“읏, 깊어, 아, 응! 좋아… 흐… 아응.”
만약 진짜 아기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거친 섹스는 위험했을 텐데. 망상일지라도 그런 가정에 몰입하니 하진은 보지를 만지던 손으로 다시 아랫배를 보호하듯 감쌀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배가 살짝 짓눌리며 드나드는 자지의 느낌이 더 선명해졌다.
환희가 몸을 덮었다. 저를 감싼 체온이, 아래를 들쑤시는 커다란 기둥의 감각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하으…!”
하진은 허리를 크게 튕기며 사정했다. 배를 감싼 손등 위로 끈적한 정액이 튀었다. 그 위에, 묽은 젖을 흘리는 젖꼭지도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도 하진은 탕 안이 아니라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하, 아.”
이어 차선오도 하진의 안에 길게 정액을 뿌렸다. 흐, 흐으…. 평소에도 콘돔 없이 안에 싸는 게 암묵적인 습관이었지만, 오늘따라 배 속이 뜨겁게 젖어 드는 느낌이 새삼스레 황홀했다.
“바로 빼지 마….”
사정의 여운에 떨던 하진이 속삭였다.
“좆물 아까워서 그래?”
“…응.”
“안 빼고 빨아줄게. 젖 너무 흐른다.”
“하으, 여기, 이쪽도….”
다시 가슴에 닿아온 혀가 그 위에 튄 정액과 젖물까지 단숨에 핥아 삼켰다. 입술을 오므려 쪽쪽대다가 잘근잘근 깨물면서 자극하는 차선오의 장난에, 하진은 다시 밑이 간지러워졌다.
“내가 올라갈래.”
“그럴래?”
그는 차선오를 아래 눕히고 위에 올라타 허벅지를 넓게 벌렸다. 잠깐 떨어진 입술이 아쉬워서 성급하게 상체를 낮추니 아래 깔린 차선오가 웃으며 하진의 등을 끌어당겼다. 흰 물기로 뒤덮인 돌기가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절로 엉덩이가 들썩이며 튀어 올랐다.
“하아, 아… 아으응, 응!”
깊이 고여 있던 정액이 기둥을 타고 약간 흘러내렸다. 아래가 축축해지자 마음이 급해져 하진은 더 흐르지 않도록 보지에 힘을 바짝 주었다. 그러면서 허리를 위아래로 난잡하게 흔들었다.
피부 위의 남은 물기가 작은 방울이 되어 마구 굴러 떨어지고, 찔꺽거리는 소리가 정적인 펜션 침실 안에 멈추지 않고 울렸다. 차선오는 하진이 몸을 무너뜨릴 때마다 허리를 잡아 쳐올렸고, 색이 짙어져 부어오른 젖꼭지를 쉴 새 없이 괴롭혔다.
기세 좋게 위로 올라탔던 하진은 어느새 평소처럼 차선오가 이끄는 대로 울고 신음하기 바빴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굵은 자지가 드나드는 아랫배를 은근히 짓누르며 성감을 끌어올리는 것 정도였다. 임신이니 아기니, 부끄러운 척하며 대답을 피했지만 사실 그런 상상이 더 짜릿한 쾌감을 주는 건 사실이었다.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배덕감. 혹은 정말 차선오의 씨를 몸속에 품으면 어떨까 하는 위험한 호기심.
그런 은밀한 감정들이 하진의 안에 촘촘히 새겨졌다. 집요하게 유두를 물고 빨아대는 차선오는 그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으나, 안정적으로 배를 받친 하진의 손 모양을 보며 한층 게걸스럽게 혀를 놀렸다. 줄줄 흐르는 젖이 한 방울도 빠지지 않고 그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
깨끗하던 이불이 온갖 체액으로 엉망이 되었다. 대체 몇 번을 쌌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대부분이 하진의 구멍 안으로 들어갔으나 그나마도 넘쳐흐른 게 반 이상이었다.
차선오는 장난치듯 손가락을 세워 제가 싸지른 정액을 다시 질척한 구멍 틈 사이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하진은 이미 가득 찼다고 난처하게 중얼거리면서도, 싫지 않은 얼굴로 순순히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젖은 내벽에 다시 정액이 덕지덕지 발리는 느낌이 싫지 않았다. 상황이 그 지경이 되니 성기가 빠져나갔는데도 정말 배가 조금 부푼 느낌이었다. 하진은 몰래 뺨을 붉혔다.
섹스를 얼마나 해댔는지 어느새 창밖이 조금 어둑해졌다. 해가 금방 지는 계절이었다. 먼저 침대를 빠져나간 차선오는 전화 몇 통으로 새 이불과 시트, 가운, 저녁거리를 주문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하진이 꼭 가보고 싶다고 했던 식당에 전화를 걸었더니 마감 때가 다 되었다는 얘기를 해서, 몇 배나 되는 웃돈을 주고 부탁해야 했다.
또 하진이 링크를 보냈던 베이커리에도 전화해 오픈 시간을 확인해 두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까지 차질 없이 준비하고 난 뒤, 차선오는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하진은 그때까지도 녹초 상태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얼굴로 그가 차선오를 향해 자연스레 양팔을 뻗었다. 차선오는 웃으며 침대 옆에 걸터앉아 하진의 상체를 일으켜 주었다.
“배고프지? 기껏 멀리까지 왔는데 먹은 게 없어서.”
쓰러지듯 차선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하진이 조금 망설이다가 속삭였다.
“충분히 많이 먹었는데 뭘….”
윗입 말고 아랫입으로. 그렇게 덧붙이자 허리께가 부르르 떨렸다. 하진은 정액이 왈칵 흘러 축축한 구멍에 힘을 주었다. 하. 바로 옆의 차선오가 짧은 숨을 터뜨리며 그의 관자놀이에 입을 맞췄다.
“진짜 타고났나 봐. 내 좆집하려고.”
“…….”
위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입술이 움찔 떨렸다. 이어 젖은 눈꼬리를 느릿하게 핥아대는 혀 놀림이 다시 야릇해졌다.
하진은 조금 난감해졌다. 정말이지 더 이상은 무리였다. 사실상 펜션에 입실하고부터 발정 난 것처럼 쭉 몸만 섞었으니 체력을 다 소진한 것도 당연했다. 온몸이 무겁게 가라앉았고 생각의 속도도 둔해졌다.
하지만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게 사랑한다는 소리임을. 그래서 기꺼이, 그가 듣기 좋아할 소리를 한 번 더 들려주기로 했다.
“맞아…. 너랑 이거 하려고 태어났어.”
어쩌면 차선오를 만난 뒤로 다시 태어난 셈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진은 얼굴 위로 마구 쏟아지는 키스를 빠짐없이 받으면서 차선오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노천탕에선 꼭 해보고 싶은데. 물속에 들어가기엔 몸이 엉망이니 씻겨달라고 할까 싶었다. 그렇게 끈적거리는 가슴과 배를 슬쩍 문지르며 고민하던 중,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
“근데, 선오야.”
응, 왜? 대답하는 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다. 그렇게 싸질렀으면서 말짱한 게 새삼 신기했다. 그보다 궁금한 게 있었다.
“혹시 진짜 임신하는 것도… 가능해?”
차선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진은 재빨리 덧붙였다.
“그렇잖아. 이렇게 가슴에서 젖도 나오고 보지도 만들었으면…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진짜 아기 생기는 것도.”
“…….”
근거는 전혀 없어도 가능성 있는 추측이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생각하다 보니 의문이 꽤 진지한 방향으로 흘렀다. 전부터 임신해야 한다는 암시에 걸린 여파일 지도 몰랐다. 하진은 그런 비현실적인 상황을 마냥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조금 전의 음담패설이 새삼스레 궁금증을 자극했을 뿐.
“응? 선오야. 그런 약은 없냐니까.”
“음.”
조용하던 차선오가 갑작스레 하진의 상체를 안아 올렸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그의 표정이 생각 이상으로 의미심장해서, 하진은 덩달아 긴장한 채 이어질 대답을 기다렸다.
“일어나자.”
“…어?”
“저녁 먹을 준비하게. 금방 배달 올 거야.”
그러나 그는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딴소리를 할 뿐이었다. 쪽, 부어서 얼얼한 입술 위에 키스하면서.
“잘 먹어야 밖에서 또 떡 치지. 탕 안에서 해보고 싶은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하진은 어리둥절해서 말끝을 흐렸다.
잠깐 사이 차선오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다시 물으려는 순간 몸이 휙 일으켜지더니 어느새 욕실 안이어서, 하진은 그만 찰나의 궁금증을 잊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