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상하게도 휴우가오카 사장은 간단한 조사만으로 곧 유리코에게 3백만을 빌려주었다.
보증인란에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은 후 마코토는 현찰을 유리코에게 건넸다.
"이자는 받을테니 꼭 갚아주세요."
배가 불룩 나온 사장은 소파에 거들먹거리며 앉아 왠지 기분 좋은 얼굴로
유리코와 마코토를 향해 말했다.
큰돈을 손에 넣은 유리코는 기쁜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코토는 그런 유리코를 보고 이걸로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이때 마코토는 유리코의 말을 마음으로부터 믿고 있었다.
할머니가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도, 친척은 할머니뿐이라는 것도,
유우라쿠쵸의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유리코가 한 말이 전부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미하라...이봐 미하라..사장이 불러."
한달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던 마코토를 동료가 불렀다.
"뭐 실수한 일 있어? 사장 기분이 안 좋던데"
"...에? 별로 아무것도 한거없는데.."
"어쨌든 빨리 가보는게 좋을거야."
동료의 재촉에 마코토는 사장실 문을 노크했다.
안에 들어가자 주울 늘어서 있는 검은 수트의 남자들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앗..아-앗...그때의 사람들!"
마코토는 무심코 순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검은 선글라스, 검은 넥타이,
검은 수트의 군단은 마치 장례식의 주관자처럼 장엄하게 서있었다.
"가만 있자..미하라 마코토군. 자네가 보증을 섰던 키지마 유리코에게 융자한 3백만말인데...
무슨말 들은 거 없어?"
평소와 달리 얌전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있던 사장은 굉장히 긴장한 목소리로 마코토에게 물었다.
마코토는 그 목소리로 소파쪽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특별한 분위기를 가진 남성이 앉아있었다.
어라? 이사람..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아--앗...도쿄역에서 부딪힌 그남자?
값비싸 보이는 수트와 넥타이, 독특한 냉혹한 분위기와 그를 휘감고 잇는 공기에는
확실히 기억이 있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눈을 가
리고 있지만 확실히 그때의 남자였다.
이름은 확실히...으음...뭐라고 했더라?
하는 따위를 마코토가 생각하고 있자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로부터 한번도 돈을 갚지 않았어. 그래서 이리저리 조사를 해 봤더니
키지마 유리코라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렇습니까..에에--? 존재하지 않는다니..그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마코토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존재하지 않는다니 어떻게 된일이지?
"말하자면...자넨 속은거야.
키지마 유리코라는 이름의 여성은 사기꾼이고 자넨 보증을 선 덕분에
3백만을 갚지 않으면 안된다는 소리지.
뭐..자네에겐 안된 일이지만 보증인으로서의 의무는 다해야겠어."
"의무라니.."
"빌린 천만엔 갚아주지 않겠나?"
"처,처,천만엔?"
마코토는 처음 듣는 액수에 입안에서 심장이 튀어나올정도로 놀라버렸다.
"처,천만이란 큰 돈은 모릅니다. 보증인에 사인한 것은 확실히 삼백만..."
하고 마코토가 말하자 사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빌린 돈에는 매일 이자라는 게 붙지. 금융회사에 근무하면서 그런 것도 몰랐나?"
"하지만 아직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고..게다가 삼백만이 천만이 된다는 건..너무나도.."
하고 마코토가 말하자 사장의 개인건달들이 일제히 마코토를 둘러쌌다.
그리고 멱살을 잡아 올려 들어올렸다.
"읏..우웃.."
숨이 막혀 무심코 마코토가 신음하자 검은색 일색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명의 남자가
갑자기 건달의 배를 주먹으로 쳤다.
"우극..."
이번엔 건달이 신음했다. 하지만 마코토와는 달리 주먹을 배에 맞은 건달은
입에서 거품을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거친짓은 하지 말라고 조장님께서 말씀하셨을 텐데."
"죄,죄송합니다..용서해 주세요..그만 평소의 버릇이..죄송합니다."
다른 건달들은 일제히 마코토에게서 손을 뗐다. 마코토는 숨을 몰아쉬면서 주위의 상황을 관찰했다.
이 검은색 일색의 남자들은 적인가, 아군인가.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이 남자는 누구인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는 마코토에게 꿀꺽 침을 삼킨 휴우가오카 사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그래서..네가 빌린 천만엔을 이분이 대신 갚아주셨다는 얘긴데 그래도 좋을까?"
"대신?"
마코토는 아직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를 두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 때 도쿄역에서 부딪친 남자였다. 이름은 확실히 토우도우..토우도우 히로야라고 했었다.
그사람이다. 틀림없다.
"하지만 어째서? 전 이사람과 만나는 건 두번째이고..천만엔이나 되는
큰돈을 대신 갚아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마코토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묵묵히 마코토를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바라보고 있던 토우도우는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단정한 얼굴과 냉혹한 검은 눈동자를 보고 마코토는 역시 그때의 남자라는 것을 확실했다.
"당신은 누구죠? 왜 제 빚을 대신 갚아주신다는 거죠?"
마코토의 물음에 토우도우는 싱긋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웃고는 두눈을 가늘게 떴다.
"대신 갚아주는 게 아냐. 정확히는...내가 천만엔으로 널 사는거다.
그러니 넌 오늘부터 토우도우조의 제4대 조장인 토우도우 히로야의 것이 되는거다. 알겠나?"
"사,산다고? 토우도우조 4대조장이라니...혹시 야쿠자?"
마코토는 일의 향방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경계하듯 물었다.
그랬다. 처음 만났을 때 마코토의 가운데 위험을 알리는 뭔가가
야쿠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는데 마코토는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그때의 만남은 우연인가, 아니면...
"너는 이제 내것이다. 알겠나?"
토우도우가 오싹할 정도로 냉혹한 목소리로 확인하듯이 다시 한번 말했다.
마코토는 아연했지만 곧 싫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그런 인신매매 같은 일...
사장님이 허락하실리 없습니다.그렇죠 사장님?"
하고 마코토가 도움을 청했지만 일본 뒷 세계의 두령인 토우도우조 4대조장을 앞에 두고
거역할 수 있는 자가 있을 리 없었다.
"자네가 토우도우 조장의 마음에 들엇다는 걸 알았다면 나도 처음부터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야."
마코토는 사장의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사장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토우도우라는 남자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나를 해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얌전히 단념하고..조장의 정부가 되는거야. 조장님은 다정하신 분이다.
듬뿍 귀여움을 받도록 해..뭐..나도 네덕에 토우도우 조장과 안면을 트게됐으니 감사하고 있어.
그리고 넌 이미 해고되었으니까."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서 방을 나가버렸다.
마코토는 튕기듯 뒤를 쫓았다. 하지만 문이 쾅하고 기세 좋게 닫혀버렸다.
문을 닫은 것은 검은 수트 차림의 남자들이었다.
"저를...어떻게 할 셈이죠? 알려주세요."
마코토는 떨리는 하반신에 힘을 주며 한껏 허세를 부리며 말했다.
하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남자들은 조금도 표정을 바꾸지 않고 마코토에게 손을 뻗었다.
"시,싫어. 누가 도와줘...제발..도와줘어---!"
마코토의 외침은 사장실을 막 빠져나가는 건달들의 귀에도 닿았다.
"저 남자 안됐다."
"이걸로 평생 새장안의 새가 되겠군."
화려한 셔츠를 입은 건달들은 어깨를 움츠리며 말을 주고받았다.
사장실안에서는 마코토가 남자들의 손에 의해 약품이 묻은 거즈로 코와 입을 막히고 있는 참이었다.
의식을 잃기 직전에 본 토우도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계에서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