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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토가 눈을 뜬 장소는 본 적도 없는 곳이었다.
아니, 영화 속에서 본 적이 있다.
그게 무슨 영화였더라--- 따위를 생각하던 마코토는 희미한 기억을 더듬었지만
머리가 지끈거려서 곧 그만두었다.
고급스러운 베이지의 천장과 호화로운 샹데리아.
폭신폭신한 침대와 하늘하늘한 장식이 달린 빌로드 커버. 그리고 실크
의 감촉이 좋은 침대시트.
“여긴...어디지?”
마코토는 침대에 누운 채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옆방에 있던 한 명의 남자가 마코토의 시야에 들어왔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어디 편찮으신 곳은 없습니까?”
신사적인 어조로 마코토에게 그렇게 물은 것은 스트라이프수트와 멋진 넥타이를 한 수려한 남자였다.
하지만 이 목소리는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
“앗...당신은 검은 양복의 사람? 사장님한테 덮쳐질 뻔했을 때 구해준 그 때의?”
검은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남자는
감이 예리한 마코토의 말에 엷게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사쿠라바 켄이치라고 합니다. 4대의 측근의 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자주 뵐 겁니다.”
사쿠라바 켄이치라고 담담한 어조로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나이는 삼십대 초반 정도로
굉장히 체격이 좋고 약간 짧은 검은머리를 무스로 올백으로 정리한
야쿠자라기엔 너무나 서글서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수트를 입고 있는 모습은 일류기업의 샐러리맨이라고 해도 통할 것 같았다.
하지만 고리대금회사 사장이 거느리고 있던
건달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박력과 위압감이 있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사쿠라바의 눈동자 색은 갈색이 섞인 검은색이었다.
마코토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는 눈을 쌍거풀이 진 눈썹이 깊은 조형을 강조하고 있었다.
“저어..전 미하라 마코토라고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마코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쿠라바는 그렇게 말하곤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부터 당신의 시중을 들어줄 사람들입니다.”
사쿠라바는 마코토의 기분 따윈 완전히 무시하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옆방에서 두명의 남자를 불러들였다.
“키가 큰 쪽이 마사노리이고 또 한명이 무네노리입니다. 앞으론 이 두사람에게 뭐든 명령하십시오.”
마치 스포츠 선수처럼 키가 큰 쪽이 마사노리이고,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젊은이 쪽이 무네노리?
왠지 비슷한 이름이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 전에 묻지 않으면 안될일이 있었다.
“저어...그런 것보다..여긴 어디죠?”
침대에서 일어난 마코토의 물음에 사쿠라바는 조금도 표정을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곳은 아오야마에 있는 고급 맨션의 최상층, 펜트하우스입니다.
이곳에는 4대의 측근인 저와 이 두 사람밖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아오야마의 펜트하우스? 4대조장...이라면...그런가.
그때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걸 맡고는 기절해서...그대로 여기에? 그러면 천만엔의 빚...
아직 지불하지 못했지...”
마코토는 기절하기 전의 일을 겨우 생각해 내고 다급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런 마코토에게 사쿠라바는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빚은 조장님이 대신 휴우가오카 금융에 지불하셨습니다.
그 대신...당신은 이제부터 토우도우조장님의 정부로서 힘써주세요.”
“저,정부?”
생경한 말에 마코토는 서서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정부라고? 힘써달라니 어떤 식으로? 게다가 조장이 뭐야? 또 이 엄청 호화로운 별세계 같은 방은?
마치 아라비아의 왕족의 방 같잖아.
넓은 바닥 한 면에 깔려있는 비싸 보이는 페르시아 융단.
일류 호텔의 스위트룸 같은 방의 장식. 벽에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장식되어 있지만
뭐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넓은 방안의 어딘가의 잡지에서 본 듯한 특별 주문품인
이탈리아제의 가구나 보석 같은 장식품을 둘러보며 마코토는 자신의 신상에 일어난 일은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저어...저...야쿠자의 일 같은 건 전혀 모르고...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아파트로 돌아가서 자면 생각할 힘도 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아파트에 돌아가고 싶은데요...?”
실크 파자마 차림의 마코토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알짝 융단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문까지만 가면 그 다음은 눈 딱 감고 도망치자고 생각한 것이다.
차지만 그런 마코토의 얕은꾀는 곧 사쿠라바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 문은 욕실로 통하는 문입니다. 이쪽 문은 사이드 리빙룸으로,
저쪽 옆의 문은 사이드 베드룸입니다.”
“그럼 출구는 어느 쪽이죠?”
“가르쳐드려도 상관없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펜트하우스를 허가없이 한 발짝이라도 나간 순간,
천만엔의 빚은 다시 당신에게 떠넘겨져 당신은 수금원들에게 붙잡혀 빚 대신 장기를 적출 당할 겁니다.
그것도...살아있는 채로.”
“...거짓말.”
“거짓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사쿠라바의 말과 어조는 마코토가 무심코 몸을 떨 정도로 박력이 있었다.
토우도우와 똑같이 냉랭한 사쿠라바의 눈이 마코토의 마음과 몸을 부지불식간에 떨게 만들었다.
어떡하지. 하고 마코토는 생각했다.
이대로 펜트하우스를 나가는 건 간단한 것 같지만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흔히 텔레비전에서 하는, 돈을 갚지 못하면 장기를 판다는 것은 정말인 것 같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말대로 이대로 욕탕에 들어가 느긋하고 유유자적하게 목욕을 하시든지,
아니면 산채로 장기를 적출당하든지, 선택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웃...”
마코토는 말문이 막혔다. 아마도 사쿠라바가 하는 말은 사실일 거라고 마코토는 생각했다.
일본의 뒷 세계의 톱인 토우도우 조 4대 조장의 측근이 하는 말이다. 이 이상 확실한 말은 없다.
마코토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잠시 입술을 깨물고 생각하고 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착한 아이군요. 4대의 앞에서도 그렇게 유순하게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4대께서 쓸데없는 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당신을 귀여워해 주실겁니다. 알겠지요?”
마코토는 입술을 피가 나올 정도로 힘껏 깨문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사노리, 무네노리, 4대께서 도착하시기 전에 목욕을 끝내 둬,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