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를 피하는 방법-29화 (29/130)

#29

내가 집에 가지 못하고 카페에 앉아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 준에게 쓸려간 사람들이 하나둘 거절하지 못하고 카페 행 열차에 탑승했고, 그사이에 나도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밉지 않게 조르는 것도 능력인데. 예준은 준을 위해 기꺼이 지갑까지 열었다.

“우리 회의 안 해요?”

“먹고 있는 거나 다 씹고 하자.”

검지로 테이블만 툭툭 두드리던 예준이 허니 브레드로 가득 찬 준의 입술을 손으로 꾹 눌렀다. 그렇게 한참 바삭바삭 소리만 울려 퍼지던 와중에 휘영이 한참 보던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뮤비 찾아보려고 했는데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요.”

“노블 데뷔곡이요?”

“네. 노블 공식 채널 들어가 봤는데, 뮤비만 하나도 없어서요…….”

그냥 뮤비 제목을 검색하면 될 것을, 휘영은 굳이 공식 채널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래서 대신 뮤비를 찾아 휴대폰을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중간에 그 채널이 해킹당해서 소속사 채널로 영상 다 옮겼어요. 뮤비가 삭제당했거든요.”

구태여 설명까지 해주며 앞에 놓인 스무디를 마시다가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주친 것은 의아한 얼굴의 예준과,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얼굴로 입만 열심히 움직이는 준이었다.

“하현 씨는 그걸 어떻게 알아요? 노블 채널 옮긴 게 그렇게 유명한 얘기였나.”

“그러게요.”

예준이 별거 아닌 것처럼 가볍게 질문을 했고, 그 말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가온마저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생각 없이 덧붙여준 말이 무덤을 팔 줄은 몰랐다. 팬이 아닌 일반인이 알고 있기에 노블의 채널 이동은 굉장히 사소하고 쓸모없는 뉴스였다.

“제가 조금.”

“그때 한창 유튜브 채널 해킹 때문에 난리였어요.”

이미 탈덕까지 한 마당에 노블을 열심히 좋아했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고 싶지는 않아서 어물쩍 넘기려는데, 옆에서 뜻밖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아무 말 없이 카페모카만 들이켜다가 갑자기 대화에 치고 들어온 지구는 그 유명한 일을 왜 모르세요? 하는 말투로 잽싸게 말했다.

“그랬나?”

“떠들썩했었는데.”

웃는 지구의 목소리가 유독 어색했다. 한창 난리였다는 저 말은 거짓말이 분명했다. 팬들이 왜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해킹을 당했냐며, 해커가 안티라는 말까지 꺼냈을 만큼 저 일은 노블 한정으로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내가 팬이었다는 사실을 일부러 숨겨준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쟤가 어떻게 알고. 잠시 수상한 시선을 보내다가 멍청한 짓임을 깨닫고 금방 거둬들였다. 지구가 태양이 형 동생이긴 하지만 본인도 아닌데 팬이었던 걸 어떻게 알겠어.

“분위기 진짜 좋네요. 안무도 왈츠 추는 것 같고.”

이어폰을 꽂고 본격적으로 노블 뮤비 감상에 들어간 휘영이 감탄사를 연속해서 흘렸다. 힐끗 바라본 휴대폰 화면 속에는 풋풋했던 시절 노블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지금 보기에는 촌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헤어스타일이었다.

“제가 이런 거 소화할 수 있을까요. 원본이 넘사인데.”

“춤도 완전 칼군무라 따라 하기도 조금.”

노블 노래를 뽑은 준과 휘영이 영상을 보면서 찬사를 늘어놨다. 데뷔곡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빡빡하고 난이도 있는 춤이니까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선배.”

그냥 시선을 테이블에 처박고 스무디만 열심히 빨아 마시고 있으니 옆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라는 묘한 호칭을 쓰는 사람은 지구뿐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이 노래인데 들어보세요.”

내가 뽑은 FLY라는 곡이 휴대폰 뮤직 플레이어 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어폰 한쪽은 본인 귀에 꽂고, 나머지 한쪽을 내미는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 박자 늦게 받아들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서 5초 정도 지났을 때 청량한 피아노 반주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눈을 살짝 감았더니 풍경이 펼쳐졌다. 왠지 시원한 여름날에 불렀을 것 같은 잔잔하고 시원한 노래였다.

“노래 좋다.”

“저도 이 노래 좋아해요.”

노래가 끝내자마자 내뱉은 감상평에 지구가 동조를 해줬다. 확실히 좋아요도 눌려있고, 스밍 리스트에도 들어가 있는 걸 보니 좋아하는 노래인 것 같았다.

“나는 이런 노래 잘 안 들어서.”

“어떤 노래 좋아하시는데요?”

“보통 춤 연습할 때만 들어서…… 댄스곡?”

티저 아이디어 짠다고 왔는데, 어느 순간 지구랑 노래 이야기를 하는데 푹 빠져서 본래 목적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얼마나 노래를 많이 들은 건지 지구는 모르는 노래가 거의 없었다. 등하굣길에 가끔 듣던 잔잔한 팝송들은 제목만 말해줘도 누구 노래인지 딱 알아맞혔고, 가요는 잘 모른다는 말에 추천까지 해줬다.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꼭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너 노래 진짜 좋아하는구나.”

“네. 듣는 것도 좋아하고 부르는 것도 좋아해요.”

말을 하다가 슬슬 지쳤는지 천천히 턱을 괴며 눈을 감는다. 열정과 실력이 공존하기는 진짜 힘든데, 그런 부분에서 지구는 타고난 것 같았다. 꿈도 뚜렷하고, 노력파고. 볼 때마다 그 묵묵함이 감탄스러웠다.

“대학 생각은 없어?”

“딱히 없어요. 그래서 사실 이 길이 틀리면 뭘 해야 할지 감도 못 잡겠어요.”

힘없이 웃는 얼굴은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의 것이었다. 나도 한 번 겪어본 좌절이라 쉽게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생전 하나의 땅만 쭉 개척해오다가 낭떠러지를 만났을 때의 기분은 이루 표현하기 힘들었다. 다시 찾은 새로운 토지가 비옥할 확률은 아주 낮았고, 척박한 새 토지를 개척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 길에서 성공하면 되지. 데뷔할 거야.”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별거 아닌 위로를 듣고도 기분 좋게 웃은 지구가 몸을 일으켜 다시 휴대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커피 한 잔의 오후를 검색창에 쳐넣는 걸 보며 나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원본 뮤비 영상을 한 번 보고, 네이버에서 뮤비 해석도 찾아봤다. 유명한 노래가 아니라 나오는 게시글이 많지 않았지만, 쥐잡듯 뒤져서 밑에 깔려있던 글들도 샅샅이 뒤졌다.

“약간 하얀색? 하늘색? 옷 입으면 좋지 않을까요!”

“첫 부분은 잔잔한데 하이라이트가 고음이니까 활기차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시간 낭비일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디어 회의는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서로의 미션곡을 들어보고, 뮤비를 찾아보면서 전체적인 조언을 해주는 건 도움이 많이 됐다. 지구가 들고 다니는 A4 용지들이 하나둘씩 테이블 위에 펼쳐지기 시작했고, 백지에는 무수히 많은 검은 글씨들이 자리 잡았다.

한참 종이에 빼곡히 적어놓은 것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옮길 때, 창밖은 이미 캄캄해져 있었다.

“슬슬 해산해야겠네요.”

휘영이 힐끗 시계를 바라보며 널려있는 종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열심히 공장처럼 아이디어를 뽑아냈으면 쓸데없는 내용이 구석까지 빡빡하게 들어차 있었고, 예준 또한 같은 생각을 한 듯 종이를 집어 들며 피식 웃었다.

“내 종이에 ‘상의 탈의하고 껄렁하게 춤춘다’라고 쓴 사람?”

“딱 맞는데요.”

“화려한 조명까지 깔면 완벽하겠어요.”

“조회수는 완전 따놓은 당상인데.”

“근데 식스팩이 없어서 이건 패스.

장난으로 적어놓은 말에 장난스러운 말로 맞받아치며 예준이 종이를 반듯이 접었다. 다 마신 음료까지 반납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싸늘한 공기가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카페 안이 따뜻해서 그런지 몰라도 갑자기 확 추워진 느낌이었다.

“저희는 이쪽으로 가서 버스 타요.”

“저는 귀찮아서 택시 타려고요.”

다들 각자 본인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모두가 떠난 카페 앞에는 나와 지구만 남았다. 나도 택시를 잡아야 하나. 그냥 콜택시를 부르면 되는데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지구가 신경이 쓰였다. 괜히 시선을 옆으로 슬쩍 몰다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기침을 해버렸다.

“콜록. 집에 안 가?”

“아. 카드 찾고 있었어요.”

가만히 서 있는 줄 알았더니 지갑 속에서 카드를 찾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마침 딱 찾았는지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의 교통카드를 집어 든 지구를 보다가 충동적으로 휴대폰 케이스에서 교통카드를 뽑아 들었다.

“나도 지하철 타려고.”

“그럼 같이 가요.”

얌전히 택시나 부를 것이지, 왜 지하철을 탄다고 했지. 나란히 걸어서 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기다리며 그 이유를 알아냈다. 혼자 보내기 불안해서 그랬구나.  쩐지 저번에도 동생 같고 해서 데려다주고 싶더라니. 지구가 건장한 열아홉의 청소년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한 듯했다.

“너네 집 가깝더라.”

“선배네 집이랑요?”

“응. 아, 하긴. 학교 근처니까.”

지하철에 타서 몇십 분이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방송국과 집은 짜증 나게 멀었고, 급행이 아닌 지하철은 속도가 더뎠다.

드디어 집 앞 역에 내렸다. 역 안은 한산했다. 지하상가와 이어져 있는 역이라 언제나 사람이 많았는데,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막 내린 사람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비어있었다.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데 자꾸 발에 뭐가 걸린다 싶더니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잠시만.”

“네.”

기둥 앞에 멈춰 서서 신발 끈을 묶는 동안 지구는 옆에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재빨리 운동화 끈을 깨끗하게 묶어낸 딱 그 순간이었다.

“박하현.”

누군가 내 이름을 외쳤다. 지구가 내 이름 석 자를 다급히 부를 일은 없으니 다른 사람일 터였다.

“누구……?”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한국예대 마크가 박혀있는 과잠이었다. 가슴팍에 뚜렷하게 박혀있는 분홍색 로고가 워낙 특이하기로 유명해서 단번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맞네.”

허공에서 시선을 짧게 교환한 정인철이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보니 혼자인 것 같았다.

“너 요즘 TV 나오더라?”

“어, 안녕.”

졸업식 이후로 처음 보는 얼굴도 기분 나빴지만 가장 거슬리는 것은 일부러 펄럭이고 있는 과잠이었다. 분명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도 굳이 아는 척을 하는 저의가 궁금했다. 게다가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 인심을 써서 말을 섞어줄 시간도 없었다.

“나 지금 바쁜데.”

“아, 안녕하세요. 잠깐 이야기 좀 나눠도 될까요?”

지구를 힐끗 바라보며 일행이 있다는 걸 잔뜩 강조해줬지만 눈치를 씹어먹은 정인철은 양해까지 구했다. 그냥 시간 없다고 그래,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느끼지 못한 듯 지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너 뭐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아이돌 준비한다고 화면에 딱 나오니까 얼마나 놀랐겠냐.”

얼굴에 떠올라있는 웃음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춤 때려치우고 시작한 게 아이돌? 짜증 나게 귓가에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 연말에 동창회 하는데 애들이 너도 모셔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더라.”

슬쩍 내리까는 시선이 불쾌해서 쭈그려 앉아 있던 몸을 바로 일으켰다. 이제야 눈높이가 대충 맞았다. 지구도 있는데 괜히 어떤 헛소리를 늘어놓을지 몰라서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다.

“난 못 가니까 즐겁게 놀아.”

“아직도 애들 얼굴 보기 좀 그래?”

뒤돌아서 출구 쪽으로 걸음을 떼는 순간 뒤에서 걱정했던 대로 진짜 헛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예대 무용과에 수석 입학한 인간답게 표정 연기가 수준급이었다. 참 좋은 질문한다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멍청하게 다 들어주고 있을 만큼 힘들지 않았다.

“남 걱정할 시간에 연습 더 해야 하지 않아?”

본인 춤에 자부심이 가득한 정인철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나 수석 입학이잖아, 하현아.”

“내가 그 시험 봤으면 수석 할 수 있었겠어?”

잘 돌아가던 정인철의 입이 일순간에 꾹 닫혔다. 실기시험 2등, 2등, 2등. 만년 2등이라는 수식어를 꼬리처럼 달고 다니던 정인철이 어느 부분에 예민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굳이 더 자극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지구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동창회는 안 가. 바빠서.”

못 가에서 안 가로 바뀐 말에 정인철의 인상이 2차로 찌푸려졌지만 무시하고 그대로 뒤를 돌아 나갔다. 출구로 나가 싸늘한 바깥공기와 접촉하자마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우중충해져서 코를 한 번 훌쩍였다. 겨울은 기분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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