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를 피하는 방법-32화 (32/130)

#32

“하현아, 너 정도면 한국예대 무조건 갈 수 있어.”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학기 초에 조용히 교무실로 불러 한 말이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진학에 깊은 생각이 없던 나에게 선생님은 몇 번이나 달콤한 칭찬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지금부터 수상 경력만 잘 쌓아도 충분히 가.”

별생각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교무실을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들이 하는 말들이 다 비슷비슷해졌다.

“하현이는 수석도 노려볼만하겠다.”

칭찬을 받는 건 좋았지만 왜 죄다 대학 얘기와 엮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확한 목표는 없던 인생에 그렇게 한국예대가 생겼다.

모두가 너무 당연하게 저 정도 대학은 나와줘야 한다고 말했고, 그 소리가 귀에 박힐 정도로  들리다 보니, 거기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까지 생겼다.

노블을 좋아하며 보냈던 시간을 제외하면 취미나 여가 활동으로 들어간 시간은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노블 영상을 보거나 공연을 볼 때나 가끔 숨통을 튼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짜 무대 위에서, 수만 명의 팬의 응원을 받으며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 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노블이 입시를 준비하면서 좋아했던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신청 할거지?”

“아, 네.”

“선생님이 알아서 넣을게. 가봐.”

1학년도 바빴지만 2학년이 돼서는 더 바빴다. 생활기록부 관리를 위해서 대회란 대회는 전부 찾아서 나갔고 성적도 신경을 써야 했다. 한국예대 내신 반영률은 크게 높지 않았지만,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퍼센트였다. 시험 기간에는 틈틈이 공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끝나고 놀래?”

“학원 있어서 안 되겠다.”

“너는 무슨 학원이 일주일 내내 풀로 있냐?”

2학년 여름방학이 지난 뒤부터 내가 생각해도 과하다 싶은 일정을 잡았다. 학원 선생님도, 학교 선생님도 전부 잘하고 있다고 칭찬만 했다. 그래도 방심할 수 없었다. 모두가 입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 튀기며 노력하는데 그 사이에서 튈 정도로 열심히 해야 했다. 타고난 재능에 의존해서는 더 발전할 수 없었다. 다들 이 정도 하는데.

“와, 너 진짜 미쳤냐? 어제 지적당한 걸 다 고쳐왔어?”

“연습해왔지.”

“넌 그냥 탈인간이다. 계단 깔아드릴 테니 천상계로 가시길.”

친구들은 자주 놀리는 듯한 말을 했다. 다들 입시 준비 중이라 열심히 했으면 했지, 연습을 게을리하지는 않는 애들인데도 혀를 내둘렀다.

본격적으로 입시에 목을 매달기 시작하면서 끝없이 늘어나는 기대감은 서서히 숨을 졸라왔다. 모두가 할 수 있을 거라 말했고 그 당연한 기대감에 무슨 일이 있어도 부응해야 했다.

“이번 대회도 최우수네. 원하는 대학은 무난하게 가겠다.”

선생님들은 유독 앞길에 발판이 되어주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수상 내역이 한 줄 더 생긴다며 온갖 대회란 대회를 가장 먼저 추천했고, 작아도 공식적인 무대에 설 기회가 생기면 나부터 찾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았다. 학교는 매년 한국예대 합격자를 꾸준히 배출하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예고의 명성을 계속 이어가야 했고, 대외적으로 내보일 현수막이 필요했다. 거기에 선정된 나는 학교의 지원을 아낌없이 받았고 다른 학생들이 불만을 내비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또 타셨대? 또?”

“좋겠다. 가만히 있어도 담임이 건수 잘 물어다 줘서.”

“근데 쟤가 뭐 그 정도로 잘 춰? 인철이도 비슷하게 하잖아.”

익숙하게 들려오는 비꼬는 소리에 밥을 먹던 숟가락을 슬쩍 내려놨다. 선생님들의 편애가 학생으로서는 기분 나쁜 것이 당연했기에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더 화를 냈다.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몇몇 애들이 뭐라고 하든, 잘해서 실력을 증명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학과 활동도, 동아리 활동도 무난하게 했다. 선후배 관계든 친구 관계든 어려움은 없었다.

“수상 가능성 있는 학생한테 추천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내 말이.”

“그 정도로 잘 춰? 자기들도 다 알면서 괜히 없는 소리 하긴.”

들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 시기 어린 목소리들은 흘려보내는 게 답이었다. 30초 쉬었다가 바로 다시 숟가락을 집어 들어 밥을 크게 퍼서 기계적으로 삼켰다.

* * *

막 출력한 수험표를 손에 쥐고 느리게 호흡을 했다. 실기 고사가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성적을 적당히 관리하면서 생기부도 빡빡하게 채웠고, 면접 준비를 9월 내리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실기가 전부였다.

집에 들를 시간도 아까워서 바로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하게 몸부터 풀었다. 남들보다 힘이 좀 떨어져서 체육과 담을 쌓고 사는 것과 별개로 근력 운동은 필수였다. 학원에서 시킨 대로 꾸준히 운동한 몸은 굉장히 단단해진 상태였다. 잔근육과 복근이 생겼지만, 온몸이 근육통 때문에 아팠다.

2분도 안 되는 짧은 전공 작품 하나만 천 번 넘게 연습한 것 같았다. 이제는 노래만 흘러나와도 몸이 자동 반사될 정도로 익숙해서 토할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틈틈이 하던 노블 무대 영상 확인도 안 한 지 거의 석 달이 됐다. 연습할 시간까지 줄여가며 좋아할 때는 그때고 지금은 도무지 남을 좋아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이게 아닌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허술한 점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학원 선생님은 이미 충분하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아니었다. 조금 더 완벽하게 준비해야 했다. 누가 봐도 얘는 합격할만했구나, 하고 모두가 인정해줄 정도로.

스스로에게 들이댄 잣대는 점점 날카로워졌다. 잠자는 시간을 아예 없애다시피 하며 연습했다. 입시 준비 기간이라 새벽 늦게까지 열려있는 학원에서 항상 마지막으로 나왔다. 단 한 번도 이렇게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당황스러움과 초조함은 실력과 몸을 동시에 망쳐놨다.

예민한 속은 음식도 잘 받아내지 못했다. 연습하기 바빠서 대충 사 먹은 음식들은 얼마 가지 못해 토해냈다.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을 인지할 새도 없이 주변에서는 기대와 관심이 함께 쏟아졌다.

“시험이 15일이지?”

“네.”

“목소리에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무조건, 꼭! 붙어야 한다.”

“아, 쌤. 뭘 걱정해요. 얘는 떨어지기도 힘들어요.”

천연덕스럽게 받아치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미 초조해질 대로 초조해진 머리는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 끝나자마자 뛰어간 학원에서 숨이 차서 호흡이 힘겨울 정도로 연습하고 집에 도착하니 몸이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파스를 붙이고 자려고 했는데 손이 닿질 않아서, 어깨에 붙인 파스가 자꾸만 구겨졌다. 텅 빈 집에 혼자였으므로 붙여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날 조금 울었다.

누군가 뒤에서 자꾸 쫓아오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허상의 존재를 만들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기 고사 전날의 실신이었다.

“…….”

눈을 뜨자마자 병원의 흰 천장을 봤을 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서 학교를 빠지고 병원을 갔고,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워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을 꾸역꾸역 참으며 병원 건물로 들어갔었다. 오늘은 연습하지 말고 무조건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기억이 끝이었다.

링거가 꽂혀있는데도 빠르게 일어나서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다가 막 병실로 들어오던 형과 부딪혔다.

“너 어디 가. 얼른 안 누워?”

그렇게까지 소리를 지르는 형은 처음 봤기 때문에 주춤주춤 걸음을 물러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불안한 생각은 지워지질 않았다.

“몇 시야? 며칠이야 형? 아직 14일이지?”

형은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아, 시험시간을 넘겼구나. 원래대로라면 15일 오후 4시까지 나는 시험장에 도착해야 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너 시험 보는 게 아니라 죽으려고 했어?”

“아니…….”

다 끝났다는 걸 깨닫자마자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잠을 푹 자고 영양소까지 보충받은 상태라서 그런지 갑자기 제대로 된 생각들이 밀려들었다. 불안함에 못 이겨서 몸이 따라오지도 못하는 연습을 강행했던 게 스쳐 지나갔다.

“하, 진짜 내가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으며 얼굴을 쓸어내리는 형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억지로 링거가 빠진 자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결론은 다 끝났구나. 3년을 노력해온 결과물이 허무하게 부스러졌다.

일주일의 입원이 끝나고 퇴원한 후, 등교했다. 실기 고사에 불참했으니 불합격 통보가 내려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교복을 입고 다시 등교했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건 담임 선생님이었다.

“하현아, 대체 컨디션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쓰러져. 그동안 했던 건 어쩌고.”

담임 선생님은 일주일을 입원하고 온 내 상태를 물어보는 대신 본인의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 뒤로 쏟아지는 말들은 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사실 흘려보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겼다.

그런 소리는 마일리지처럼 계속 적립됐다.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계속 때려 박는 말들이 귀를 찢어놓는 것 같았다. 친구들도 쉽게 말을 걸지 못하고 눈치만 봤고, 대체 소문은 얼마나 퍼졌는지 복도를 지나가기만 하면 ”쓰러졌대.” 소리가 자꾸 들렸다. 처음에는 피해망상인가 싶었는데 그렇다기에는 너무 확실했다.

“컨디션 관리도 실력 아니냐?”

“얼마나 연습에 혈안이 돼 있었으면 저렇게 되는 것도 몰라.”

키득키득 웃는 목소리들이 반박할 수 없는 내용이라 멍하게 이마만 책상에 박았다. 친구들은 더는 그 빈정대는 목소리들에 반발하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어쩌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일단 수능이라도 보자. 최저라도 맞춰야지.”

형이 수험표를 꼭 받아와야 된다기에 별생각 없이 신청해놓은 수능을, 담임은 지금부터 준비하라고 권했다. 수능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도 없었다. 그 기간에 죽을 둥 살 둥 공부를 해봤자 예대는커녕 지방 대학도 못 갈 걸 알았다.

시간이 흘러 한국예대 합격자 발표가 났다. 우리 반에서는 정인철이 합격을 했다. 애들 사이에서는 착한 놈으로 유명했지만 나를 싫어했다.

“하현아, 나 붙었어. 그…… 내가 네 몫까지 열심히 할게.”

그리고 그 새끼는 본인의 합격을 보란 듯이 나한테 자랑했다. 꼭 반에 있는 모두에게 자랑하고 말겠다는 기세였다. 내가 내 몫까지 열심히 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자기 혼자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컨디션 관리를 못 한 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으므로 애꿎은 남에게 화풀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꾹 참았다.

“인철이 드디어 이겼네.”

“이인자 탈출 축하한다.”

“야, 하지 마. 하현이 있는데.”

아이들은 내 시험 불참을 정인철의 역전극이라고 표현했다. 한참 자랑질을 하고 정인철이 떠나자 친구들이 뒤늦게 괜찮냐고 물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한두 명도 아니고, 한두 번도 아니고, 전교에서 며칠 동안 계속 내 얘기를 했다.

그날부터 3일을 내리 학교를 빠졌다. 집안에 혼자 처박혀서 가족들 전화도 씹고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처럼 굴며 식음을 전폐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학교를 나가기 시작했을 때도 이미 정신은 멀리 떠난 지 오래였다. 몸만 형식적으로 등하교를 하는 사이에 수능 날이 찾아왔다.

“…….”

시험지가 시야에 흐리게 담겼다. 문제를 읽어보려고 눈을 크게 떴는데도 글씨가 희미했다. 하얀 게 종이고, 검은 게 글씨구나. 딱 그 정도밖에 알아볼 수 없었다. 울고 있을 줄 알고 눈을 몇 번 비볐다. 촉촉한 물기는 조금도 묻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험지가 똑바로 안 보였다.

결국, 시험이 전부 끝날 때까지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시험지만 쳐다보고 있었다. 펜은 들지도 않았다. 마지막 과목 시험이 끝나고 아무 생각 없이 터덜터덜 시험장을 나와 집으로 갔다. 하다못해 풀려고 노력할 수는 있을 줄 알았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블 앨범을 내다 버리고 쭉 결석했던 학원에 그만두겠다고 전화를 넣었다.

그 어느 대학에서도 합격 발표를 받지 못한 채로 졸업을 했다. 담임 선생님은 재수를 권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1년을 더 달릴 엄두가 나지 않았고 또다시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알았어. 그럼 혹시…… 내년에.

“죄송해요. 저 재수는 못하겠어요.”

더는 기대감을 짊어지는 짓은 못할 것 같았다. 아들의 약한 소리를 부모님은 아무 말씀 없이 받아주셨다. 전화를 끊자마자 부모님은 바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오셨다.

오랜만에 안기는 어머니의 품에서 춤은 그냥 과거의 추억과 취미로 남겨두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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