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를 피하는 방법-70화 (70/130)

27화

날이 지날수록 점점 팀원들이 피드백 받으러 오는 횟수가 조금이지만 늘었다. 확실히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춤을 추던 사람들이라 습득이 빨라서 처음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대충 딱딱 맞는 안무를 볼 때마다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다.

“동욱 씨 치고 나갈 때 타이밍 조금 빠른 거 알아요?”

“아, 네. 주의하겠습니다.”

이제 사소한 부분들만 조금씩 고치면 무대에 설 정도의 퀄리티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중요한 건 노래였다. 아무리 퍼포먼스형 아이돌이라 춤이 주라고 해도 어느 정도 노래가 받쳐주기는 해야 할 텐데, C팀은 정말 암담한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메인보컬이라고 뽑힌 팀원이 고음을 못 올릴 정도로.

“어, 한 번만 더 해볼까요?”

“아, 아!”

아, 안 되겠다. 노래 실력은 전혀 안 되니까 섣부르게 가르친다고 나설 수도 없고, 프로그램 측에서는 노래 쪽 멘토는 붙여주지도 않고. 아예 춤으로만 밀고 나가려는 것 같은데, 정말 못해도 들을 만한 수준은 나와야 할 것 같았다.

“잠깐만요.”

그러다 문득 서바이벌 ID 때 지구가 도와줬던 게 생각났다. 소리 내는 법, 숨 쉬는 법 하나하나 배우고 나서 발성이 훨씬 편해졌던 걸 떠올리니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 물어볼 만한 사람을 찾던 중에 복도 끝에 서 있던 스태프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누구 불러도 되나요?”

“누구요?”

“같은 멤버요. 노래 연습 좀 도와주면 좋을 것 같아서…….”

“자유롭게 부르셔도 돼요. A팀 멘토 분도 어제 지인분 부르셨어요.”

허락을 받자마자 복도 구석으로 걸어가서 조용히 지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뭔가 유명한 가수랑 아는 사이였다면 좋겠지만 연예계에 인맥이 전혀 없었다. 일단 알고 있는 노래 제일 잘하는 사람은 지구였으니까 잠깐 고민하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신호음이 간지 얼마 안 돼서 바로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휴대폰을 하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빠른 반응이었는데, 거친 목소리를 들어보니 한참 연습 중인 것 같았다.

“지구야.”

-네, 형.

휴대폰 건너편에서 대꾸하는 목소리가 불안정하지만 다정했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조용한 건너편에서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렸다.

“혹시 시간 괜찮으면 이쪽으로 잠깐 올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아무 일도 없는데 우리 팀 노래가 너무 부족해서. 도와줄 수 있나 하고.”

-형이 부르시는 데 있고 없고가 어디 있어요.

“아냐. 너 바쁘면 안 와도 돼.”

-아니요, 갈게요. 저 지금 땀 흘렸으니까 씻고 바로 갈게요.

전화가 끊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에 서 있던 매니저 형이 지구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매니저가 한 명밖에 없으니까 얘 챙기랴 쟤 챙기랴 바쁘구나. 그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조용히 연습실로 들어갔다.

[형 저 지금 1층인데 어디로 갈까요?]

계속해서 팀원들의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구에게 도착했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바로 앞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팀원을 한 번 보고 휴대폰을 들었다.

“나갔다 올 테니까 연습하고 있어요.”

“네.”

“그럼 잠깐 테이프 갈고 갈게요.”

마침 잘 됐다는 듯 구석에 있던 스태프들이 촬영을 잠시 중단하고 테이프를 갈기 시작했다. 굵직하게 대답해주는 팀원들을 뒤로하고 문을 닫고 나오자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럽게 퍼지던 노랫소리가 뚝 끊겼다. 방음 한 번 진짜 잘된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빨리해 계단을 내려갔다.

“형.”

2층에서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보자 지구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날이 추운데도 얇고 깔끔하게 입은 지구가 순식간에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더니 손을 저었다.

“위험하게 거기 기대지 마세요.”

“무슨 여기서 떨어져. 얼른 올라와.”

빠르게 2층까지 뛰어 올라온 지구를 데리고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면서 이것저것 설명했다.

“어려운 곡은 아닌데 다들 고음이 안 돼. 아예 박자 못 잡는 애도 있고.”

“일단 소리 내는 방식만 바꿔도 좋아지긴 할 거예요.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그렇지. 3일 안에는 못 고쳐요.”

“그래도 일단 조금이라도.”

C팀이라고 적혀있는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지구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앞으로 손을 불쑥 뻗어 넥타이를 손으로 잡더니 삐뚤어졌다며 다시 제대로 모양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왜 우리 팀만 멘토를 아이돌로 붙여줬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솔직히 저도요.”

가만히 손길을 받는 사이 열린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볼멘소리에 절로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분명히 닫고 나왔던 문이 열려있었다.

“아이돌인 것도 그런데 제일 어이없는 게 1개월 차라는 거예요. 좀 경력 있는 분이면 모르겠는데, 우리 멘토님은…… 엄연히 말하면 선배가 가깝죠. 저희 바로 앞 프로그램 출연자잖아요.”

“다른 멘토님들 10년, 20년 차인 거 감안하면 완전 병아리잖아요.”

“알려주시는 건 쏙쏙 들어오고 친절하시긴 한데, 저는 솔직히 내가 가르침 받는 입장인 게 맞나 싶어요. 설명은 뭐, 누구나 쉽게 하잖아요.”

“저는 그냥 좀 이해가 안 돼요. 내가 배워야 하는 게 맞나? 이런 생각도 들고.”

심각해 보이는 목소리들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들렸다.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었다. 나름 열심히 가르쳐주려고 노력했는데 돌아온 건 이유를 모르겠다는 소리라니. 게다가 저평가 당하는 것 같은 기분도 확 들었다. 적어도 내가 여기서 가르침을 받을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는데.

“형.”

다 정리했는지 넥타이에서 손을 놓은 지구가 나를 살짝 쳐다봤다.

아, 이게 되게 자존심 상하네. 이미 살짝 열려있는 문을 손으로 살짝 밀어 열자마자 연습을 하는 대신 둥글게 모여앉아 떠들던 팀원들이 이쪽을 바라봤다.

“이해가 안 돼요?”

별생각 없이 물었더니 단체로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테이프 교체가 안 끝난 모양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대놓고 멘토 경력 차가 심하면 불만이 쌓일 만도 하니까. 그런데 뒤에서가 자기들끼리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연습실에서 대놓고 얘기하고 있는 게, 지금 옆에 지구가 있는 상황인 게 중요했다.

“알았어요, 그럼.”

“네?”

“이해가 안 된다면서요.”

순간 욱했지만, 최대한 절제하기 위해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하기야 말로만 가르치는 멘토가 어디 신뢰가 갈 리가. 차라리 지구가 말했던 것처럼 프리즈부터 하고 시작할 걸 그랬다. 뭐든 보여줄 시간을 줘야 믿음이 가지.

“이해시켜줄 테니까 나와봐요.”

중앙에 모여 앉아있던 팀원들이 슬금슬금 뒤쪽으로 빠졌다. 그러면서 서로를 쳐다보면서 눈치를 보는데 한 명도 고개를 들고 있는 사람이 없길래 정장 마이를 벗고 휴대폰으로 과제 곡 파일을 찾으며 말했다.

“말로 하는 설명은 누구나 쉽게 한다니까 춤으로 해줄게요.”

“…….”

“그러니까 봐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올린 팀원들은 여전히 시선을 주고받으며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들을 보다가, 과제 곡 mp3 파일을 발견해서 처음부터 재생을 눌렀다. 직접 춰본 건 고등학생 때가 끝이지만, 안무 영상과 연습하는 팀원들은 눈이 아플 정도로 봤으니 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처음 들어갈 때 왼발 살짝 들고 오른발 앞뒤로 두 번씩.”

팀원들이 많이 버벅거리던 부분들은 굳이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됐다. 그냥 동작이 조금 복잡하고 빠른 부분들은 거의 전부였다.

“이 부분, 재민 씨가 스텝 잘 못 밟던 곳. 셋, 셋, 넷, 셋.”

셋, 넷, 셋, 넷으로 밟더라고요.

“그리고 여기 진석 씨가 팔다리 따로 놀았던 부분.”

왼발 치고 나가자마자 두 팔 돌아와야 하는데 멀티플레이가 안되고요.

“여기는 형운 씨가 타이밍 못 맞추던데 허리 숙이고 바로 뻗어야 해요.”

한 박자가 느리니까 당연히 남들하고 발이 안 맞죠.

노래가 끝나서 끊겼다. 결과적으로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췄으니 아마 3분이 조금 넘었을 것이다. 하나도 빼먹지 않고 팀원들이 허술하던 부분들을 정확히 짚어줬다. 워낙 격한 안무 때문에 순식간에 엉망이 된 넥타이를 일단 풀어내며 침착하게 숨을 골랐다.

“…….”

거울에 비친 얼굴 중에 입을 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침묵만 고수하는 얼굴들을 그냥 넘기고 바로 옆에 있는 지구를 봤다. 맡겨둔 정장 마이를 손에 쥐고 정확히 이쪽을 바라보는 얼굴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천천히 웃는 게 보였다.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다 같은 참가자들인데 멘토에서 차이가 심하게 난다는 게 황당하고 억울할 만도 하니까 충분히 이해는 했다. 근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그냥 하나였다. 자기보다 잘 아는 사람에게 안되는 걸 배우고, 그게 도움이 됐으면 잘 된 거 아닌가?

테이프를 갈고 있으니 촬영 중인 상황은 아니었다. 뭐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정중한 대처였다고 생각하면서 뒤를 돌아 물었다.

“이제 이해가 좀 돼요?”

직접 질문이 날아오자 그제야 참가자들이 다시 서로 눈빛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대답 없이 저러고 있는 걸 보니 답답해서 한마디 더 하려는 순간 리더인 형운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 그…….”

멍하니 입을 벌린 형운이 침을 한 번 삼켰다. 그 뻣뻣하게 굳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은 전혀 예상 밖의 소리였다.

“이거, 몰래카메라였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폭죽이었다. 눈앞에서 살랑살랑 떨어지는 종잇조각을 보면서 상황 판단이 안 돼서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리고 바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게? 이 상황이 몰카라고?

“우와아……!”

박수를 치며 영혼 없이 웃는 얼굴들을 보고 있으니 순간 욕이 나올 뻔했다. 무슨 몰카를 이런 식으로 하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머리가 다 아파 와서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그제야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됐다. 갑자기 테이프를 교체한다고 하질 않나, 분명 닫고 나갔던 문이 열려있고. 그러고 보니 언제 내가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잠깐 사이에 대놓고 얘기를 하고 있던 팀원들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 반응 보는 실험 카메라예요.”

형욱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도 일단 촬영 중임을 고려해서, 팀원들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쓸데없는 추임새를 넣었다. 아무리 그렇게 해봤자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싸늘한 분위기는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잔뜩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을 정곡으로 찌르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잔뜩 후벼판 상황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스태프들은 반응이 나오질 않으니 애타는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그래서 경직된 입을 겨우 움직였다.

“아, 아하……. 네, 몰래카메라…….”

어색하게 웃으며 결국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팀원들 연기가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냐고, 정말 깜짝 놀랐다고. 내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촬영이 끊겼다. 잠깐 중단되자마자 표정이 싸하게 굳어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참가자도 아닌데 왜 나한테 이런 몰카를 하지?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도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2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