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를 피하는 방법-74화 (74/130)

30화

“하현아, 셀카 뜻이 뭘까?”

“셀프 카메라요.”

“그렇지. 근데 왜 네 카메라에는 네 얼굴이 없고 지구 사진만 가득할까?”

공연이 끝나고 공항으로 가기 직전에 매니저 형은 카메라를 전부 걷어갔다. 찍은 사진들을 차분히 보면서 잘 나온 사진들을 고르더니 내 카메라를 보고는 셀카의 정의를 묻길래 머쓱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루 종일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지구와 같이 계속 찍어댔으니 아마 못해도 백 장은 넘을 것 같았다.

“이게 무슨 기록 일지냐? 오, 와중에 잘 찍어놓긴 했네.”

사진을 넘기면서 칭찬하는 매니저 형에 괜히 뿌듯해졌다. 아까 짐 챙길 때 한 번 쭉 돌려봤는데 찍은 사람 입장에서 봐도 잘 나왔다. 비싼 거라고 막 다루지 말라던 말은 다 잊은 건지 매니저 형이 카메라를 들고 탈탈 털었다.

“그래서 네 사진은?”

“제 사진도 있어요. 좀 뒤에.”

“그러네. 있……긴한데…….”

매니저 형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여러 각도로 카메라를 돌려서 보던 매니저 형이 어이없다는 듯이 팔을 살짝 내렸다.

“넌 얼굴을 이렇게밖에 못 쓰냐?”

“무난하지 않아요?”

“이건 무슨 각도야. 준이한테 45도 지적할 처지가 아니었네. 넌 그냥 지금 눈앞에 렌즈 들이밀어서 찍는 게 더 잘 나오겠다.”

매니저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망설임 없이 삭제 버튼을 눌렀다.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꽤 오랜 시간 노력을 기울인 사진들이 속속히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연예인이 셀고면 좀 그렇지 않니? 예준이 꺼 보고 배워봐.”

아까 고퀄리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던 예준의 셀카를 앞세워 매니저 형이 타박했다. 손으로 넘어온 예준의 카메라를 보며 확실히 노련함을 느끼고 있는데 지구 카메라를 집어 든 매니저 형이 첫 사진부터 헛웃음을 터뜨렸다.

“넌 하현이로 전시회 열거니? 이게 대체 몇 장이야.”

매니저 형이 투덜거리며 빠른 속도로 사진을 슥슥 넘겼다.

“너네 카메라 바뀐 거 아니냐? 서로 찍어주고 아주 신났다?”

한 번 넘길 때마다 꼭 한마디씩 하던 입이 어느 순간 멈췄다. 말없이 조용히 움직이던 손가락이 어느 순간 뚝 멈추더니 매니저 형이 박수를 한 번 크게 쳤다.

“하현이는 셀카 말고 이 사진으로 가자. 지구 너 사진 진짜 잘 찍는다. 이건 진짜 잘 나왔네.”

매니저 형이 카메라를 쭉 내밀자 극찬한 사진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멤버들이 전부 몰려들었다. 덕분에 뒤로 밀려서 정작 나는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와.”

“그냥 화보 같은데요? 지구 형 은퇴하면 사진작가로 전향해요.”

나와 카메라를 번갈아 가며 보던 준이 끊임없이 감탄을 뱉었다. 뒤늦게 확인해보니 테라스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뒤쪽 배경도 예쁘고 분위기 있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지구에게서 노래 뺨치는 재능을 느꼈다. 거의 사기 수준으로 원래 얼굴보다 잘 나온 사진을 몇 번 보다가 쑥스러워서 바로 다시 매니저 형에게 넘겼는데, 중간에서 휘영이 카메라를 가로챘다.

“어떻게 이렇게 찍었지?”

사진에 관심이 많은 휘영이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감탄했다. 눈도 간간이 찌푸려가면서 한참 관찰하던 휘영이 카메라를 매니저 형에게 다시 넘기며 지구를 불렀다.

“지구야. 나도 사진 잘 찍는 법 좀 알려주라.”

“형은 풍경만 찍으시잖아요.”

“이 정도면 풍경도 잘 찍을 것 같아. 하현이보다 풍경이 찍기 더 편해.”

“아닌데요.”

도란도란 대화를 주고받는 휘영과 지구 사이로 매니저 형이 질문을 끼워 넣었다.

“너 셀카는 어디 있어?”

“맨 뒤에 있을 거예요.”

“그래?”

수많은 사진을 쭉 넘기던 매니저 형이 셀카를 찾았는지 손을 멈췄다. 그리고는 고개를 양쪽으로 저으며 단호하게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게 너무 순식간이라 안타깝게도 보지는 못했다.

“지구 사진도 그냥 아까 하현이가 찍은 것 중에 고르자.”

이렇게 앨범 포토카드는 두 명이 서로 찍어준 사진과, 세 명의 셀카로 이루어지게 됐다.

* * *

드디어 컴백을 했다. 음원은 발매되는 순간부터 폭발적인 화력을 보여주더니 7시 차트에서 타이틀곡 1위를 찍었다.

노래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는 않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제일 중요한 팬분들이 만족해주시는 것 같아서 금방 안심했다. 끊임없이 별점 테러가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상당히 안정적인 출발이었다.

앨범 판매량도 저번보다 더 높았다. 주문만 몇십만 장을 했다고 하더니 예약 판매량과 오프라인 구매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매니저 형도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우스갯소리로 사장님이 발로 박수 치시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왠지 농담이 아닌 것 같아서 웃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회사 직원들 말이 어제 사장실에서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저번 활동보다 스케줄이 더 빡셌는데도 몸과 마음은 훨씬 편했다. 전자는 매니저가 바뀌어서였고 후자는 그사이에 조금 익숙해져서였다. 한 번 해본 것들이라 그런지 첫 컴백 무대 촬영도, 음원 발표 다음 날 진행한 브이앱도, 예능도 라디오도 훨씬 할 만했다. 여전히 재미없는 사람인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적어도 곤란한 질문에 어버버하다가 차례가 넘어가지는 않을 정도의 스킬이 생겼다.

“형.”

숍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잠깐 자려고 안대를 썼는데 옆에서 지구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얘가 휘영이나 예준을 부를 일은 없을 테니 아마 나를 불렀을 것이다.

“이거 보세요.”

“뭔데?”

안대를 슬쩍 위로 올리며 묻는데 눈앞에 뭔가 불쑥 들이밀어 졌다. 색감이 잘 뽑혔다며 극찬하던 이번 앨범 포토카드였다. 그중에서도 내 거.

“어디서 났어?”

“숙소에 있는 거 다 뜯어도 형 포카가 안 나오길래 매니저 형한테 세 개 달라고 했어요.”

“왜 세 개야.”

“하나는 감상용이고 두 개는 보관하려고요.”

웬만한 팬들 뺨치는 소비 방법을 설명하며 지구가 포토카드를 OPP에 소중히 담았다. 저건 또 어디서 들고 온 거지, 하고 신기하게 보는데 지구가 자려던 사람을 부른 진짜 용건을 꺼내 들었다.

“제 것도 같이 받아왔거든요.”

내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들어진 포토카드가 세 개였다. 수많은 사진 중에서도 멤버들과 한참을 논의한 끝에 선택받은 사진이었다. 세 장을 깔끔하게 모아서 건넨 지구가 뿌듯하게 웃는데 그게 귀여워서 홀린 듯이 소중히 포토카드를 챙겨 들었다.

“아까워서 싹 다 보관용으로 써야겠다.”

“그럼 감상용 하나 더 받아올게요.”

어떻게 저런 말만 골라서 하는지 모를 노릇이라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다시 안대를 썼다. 사실 잠은 안 와서 숍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반듯하게 앉아서 갔다.

메이크업을 끝내고 바로 음악 방송 촬영에 들어갔다. 팬분들과 함께 진행된 사전녹화는 총 3번 이뤄졌다.

무대에서 내려올 때는 항상 숨이 찼다. 춤을 추는 것 자체는 크게 무리가 없지만, 노래를 함께 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아무리 MR을 깔고 간다고 해도 벅찬 건 어쩔 수 없었다.

“하현아, 너 기사 났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있는데 매니저 형이 다가와서 휴대폰을 내밀었다. 내가 혼자 기사 날 일이 있나? 만약 있다면 며칠 전에 방송했던 퍼포먼스 피플이 끝이었다. 다시 생각하니까 또 머리에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컴백 직전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생방송으로 3화를 챙겨보다가 팀원들이 A팀 연습실로 쪼르르 놀러 가는 거에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C팀 전체 탈락…… 아이돌 멘토의 한계였나’ 이런 기사들이 줄줄이 나는 바람에 얼마나 마음이 복잡했는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지구가 옆에 붙어서 빨아들이지 못하는 게 스펀지 탓이지 물 탓이냐 하며 열심히 위로해줬는데 바로 다음 날에 피디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몰카 내용 때문에 홈페이지 게시판이 터질 지경이라고, 우리 생각이 짧았다며 사과한 피디님은 곧바로 해명문을 올렸다.

천천히 답장을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내 입장까지 마음대로 적어서 홈페이지 게시판에 홀라당 올리는 바람에 결국 반강제로 훈훈한 화해를 한 꼴이 됐었다.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해결된 사건이니 그게 이제 와서 다시 기사가 날 일은 없었다. 그 정도로 화제성 있는 프로그램도 아니었고.

“어…….”

받아든 휴대폰 화면 속에는 내 사진이 있었다. 중요한 건 지금 사진이 아닌 최소 2년 전 사진이라는 점이었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옛날 사진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더 문제였다. 과거 사진인 것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그 사진이 찍힌 장소인 게 앨범 판매점인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내 손에 앨범이 잔뜩 들려있는 것도.

이거 왜 안 터지나 했다. 어쩐지 팬 사인회에 온 팬분들이 자꾸 물으시더니, 노코멘트의 한계가 보인 모양이다. 이렇게 확실한 증거 사진까지 떠버리고.

[RE뉴스] 그룹 ‘레브’ 박하현, 과거 특별한 덕질 경력?

마스크를 그냥 얼굴에 붙이고 다녔어야 했는데.

* * *

[RE뉴스] 그룹 ‘레브’ 박하현, 과거 특별한 덕질 경력?

박하현 레스썰 추측만 하던 얘들아 내가 빼박증거찾음ㅋㅋㅋㅋㅋㅋ 앨범 사고 인증사진 찍었던건데 어제 사진 정리하다가 발견함ㅋㅋㅋㅋㅋㅋ 하현이 얼굴 그대로 나왔어 마스크도 내리고 있고 화질도 이정도면ㅋㅋㅋㅋㅋㅋ 얘 맞지? (JPG)

댓글

└ 신나??? 어 신나?? 우리 애 전국민 강제 덕밍아웃 시켜놓고 신나???

└ 이런거 올리면 어떡해 몇몇팬들 알면서 증거없으니까 모르는척 해주고 있는데ㅡㅡ

└ 솔직히 심증으론 완벽했어 물증이 없었지..

└ 응 하현이네..... 닮은 얼굴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 기각하구...

└ 박하현 우리 동지였니?

└ 졸라 반갑다 진짜 전우애 느껴짐;;

└ 레브에 관심 1도 없었는데 갑자기 호감생김ㅋㅋㅋㅋㅋ

└ 야 리뉴스가 저 사진으로 기사썼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어떡해ㅋㅋㅋㅋㅋㅋ

└ 리뉴스 개객기야 몇몇 팬들이 지켜주겠다고 알면서도 침묵 중이엇는데ㅜㅜ

└ 확실하게 증거가 생기니까 신나서 너도나도 기사쓰고 있음

└ 누가 사진 가져가서 제보했대 못된년ㅠㅠㅠㅠㅠㅠ

└ 야 팬싸온거 찍은 홈마들도 모르는 척 해주고 잇엇는데ㅜ

└ 미치겠다 하긴 거기 홈마가 몇인뎈ㅋㅋㅋㅋ

└ 160323 노블 팬싸.... 영상 몇 개 보다보면 한국예고 교복보임ㅋㅋㅋㅋㅋㅋㅋ 야 얼굴을 가리면 뭐햌ㅋㅋㅋㅋㅋㅋ 누가봐도 너잖아ㅠㅠ

└ 팬싸 왔으면 마스크 쓴거랑 별개로 당연히 뒤통수 찍혔겠짘ㅋㅋㅋㅋㅋ 그래도 얼굴 나온 사진은 없어서 다 기억 속에 묻어주려고 했는데....

└ 오늘 커뮤니티들 저 사진으로 핫하네 ㅎ....

└ 사진 너무 잘나왔잖아 ㅎㅎ 존~잘

└ 이게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게 노블 팬싸컷이 얼만데ㅋㅋㅋㅋ

└ 노블 귀에도 들어가겠네 ㅎㅎ..

└ 팬싸까지 갔으면 이미 알고잇지 않을까?

└ 노블이랑 같이 예능 출연소취

└ 노블 완전체 + 박하현 나오면 최고게따

└ 이 얘기 꺼내면서 놀렷으면 좋겟다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러고보니까 써디 중간에 지구 형 태양인거 밝혀지고 둘이 급 친해진듯?

└ .....?

└ 좆궁예 하지마 ㅅㅂ

└ 얘네가 얼마나 친한데ㅋㅋ 최애형 동생이라 친해졌다는 소리 하고 싶은거임?

└ 미친년아 박하현 써디 분량을 생각해봐 니가 그전에도 친햇는지 어케알아

└ 이거다ㅅㅂㅋㅋㅋㅋㅋㅋ

└ ㄹㅇ 카메라에 나온적이 없는데 누구랑 친했는지 어케알아.. 그때 하현이가 촬영장에 있었는지 아니면 집에서 자고 있었는지 밥 먹으러 갔는지도 모르는데.....

└ 추억 돋아서 갑자기 눈물날려그래

└ 그럼 박하현 존나 성덕이네 그룹에 동생있잖아

└ 아 그러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구 태양이 동생인거 밝혀지고 운거아님?

└ 그르넹 ㅋㅋㅋㅋㅋ 지구가 다리 놔줬을라나??

└ 온지구 완전 오작교네

└ 지금은 안 좋아하는거 같던데?? 이미 같은 예능 출연도 했잖어..

└ 내말이ㅋㄱㅋㄱㅋㄱㅋ 방송 보니까 별로 감흥 없어보이던데

└ 딱봐도 식은지 꽤 됐는데 팬들이 너무 신나서 몰아가는것 같음ㅋㅋ

└ 한동안 놀림 당하겟네ㅜ

└ 이제 어디가도 기자들 계속 말한다 하현씨 노블 팬이었다고 하시던데^^

└ ㅠㅠ 하현아 이겨내자 강하게 커야해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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