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시간은 흘러 첫 시상식의 날이 밝았다. 생전 처음 서보는 자리인 만큼 아침부터 참을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묘하게 어딘가 아픈 것 같기도 했고 걷는 것조차 불편할 정도였다.
서바이벌 ID 마지막 방송 때도, 음악방송에서 첫 1위를 할 때도, 그 어떤 무대 위에서도 이렇게까지 떨린 적은 없었는데 오늘따라 유독 심했다. 음악 시상식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크고 중요한 시상식이긴 했지만, 규모랑 별개로 긴장으로 죽을 것 같았다.
“이 형 어떡해요. 괜찮아요, 형?”
떨리지도 않는지 아침부터 쌩쌩하게 돌아다니며 스태프들의 활력소 역할을 하던 준이 옆자리에 앉아서 물었다. 등을 몇 번 두드려주더니 긴 팔로 어깨까지 주물러줬다. 얌전히 그 안마를 받고 있는데 대기실 문이 우당탕 열리며 휘영이 들어왔다.
“지구는?”
“지구는 관계자분이 부르셔서. 이거 마셔.”
약국에서 사 온 듯 휘영이 투명한 병을 다급하게 내밀었다.
“긴장 완화용이래, 쭉 들이켜.”
직접 코까지 막아줄 기세로 휘영은 억지로 입에 병을 물려줬다. 얼떨결에 한 병을 다 비우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쓴맛에 인상을 찌푸렸다.
“바쁜데 이건 또 어디서 구해왔어.”
“지구가 너 전해주래. 약국 갔다 온 것 같더라.”
대체 약국은 언제 갔다 왔대. 헛웃음을 치며 텅 빈 병을 두 손으로 잡았다. 다들 팔팔해 보이는데 힘내야지. 게다가 오늘은 중요한 자리니까 좋은 얼굴로 나가야 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자꾸만 풀리는 눈에 힘도 주고 숨도 크게 들이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가 돌아오고 옆에서 등을 두드려주는 동안 시상식 시작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그제야 조금 멀쩡하게 돌아온 상태로, 최대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출연자들에게 마련된 자리에 앉아 넥타이만 매만지며 침착해지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다.
평소보다 무대들이 전부 화려했다. 다들 하나같이 몸이 부서져라 추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 정도로 중요한 자리니까.
“레브, 대기할게요!”
그래서 스태프가 다음 차례라고 우리를 불렀을 때, 무대 위에 올라가서 평소보다 빛나는 조명을 봤을 때, 수많은 팬이 전부 모인 이 공간에서 우리 팬들의 함성을 들었을 때, 평소보다 배로 노력했다.
평소보다 괜찮은 무대였지만,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무대 밑으로 내려와 출연자석으로 돌아오니 시간이 물보다 더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새 무대들을 전부 끝내고 정말 시상식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베스트 퍼포먼스상은…….”
한 그룹씩 호명될 때마다, 그 그룹의 팬들이 누구보다 기쁘게 환호를 했다. 긴장을 지우기 위해서 나도 누구보다 열심히 함께 박수를 쳤다. 무대 위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가수들은 모두 누구보다 기뻐 보였다. 눈물을 흘리는 가수들도 많았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그러니까 신인상 발표 시간도 어쩔 수 없이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유명한 배우 두 명이 나란히 서서, 발표하겠다며 카드를 집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신인상은…… 축하드립니다. 레브!”
음악방송에서 여러 번 들었던 말이었지만 이번에는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소리가 울리는 장소 때문인지 조금 더 본격적인 분위기여서인지. 순간 정신줄을 놓고 휘청거릴뻔했지만, 다행히 지구가 팔을 붙잡고 무대 위로 함께 올라가 줬다.
무대 위에서 바라본 공연장은 생각보다 멋졌다. 눈앞에 수많은 연예인이 박수를 치고 있었고, 저 뒤쪽에서는 우리 팬들의 환호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준비해둔 목소리처럼 세상 어떤 소리보다 크고 자랑스럽게 들렸다. 그 감사함에 감정이 주체를 못 하고 폭발했다.
멤버들이 단체로 눈물을 터뜨리니 예준이 리더로서 그룹을 대표해 트로피를 건네받고 마이크를 잡았다.
“어…….”
당당한 목소리로 평소처럼 여유롭게 수상소감을 할 줄 알았던 예준은 한참 동안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몇 초간 뜸을 들이던 예준이 살짝 마른 목소리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서 정말로 영광입니다.”
반듯한 수상소감을 시작한 예준은 여러 사람을 언급했다. 회사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함께 작업해주신 모든 분, 그리고 멤버들, 멤버들의 가족들. 한 명씩 언급하는 사람이 늘어갈 때마다 준은 오열 수준으로 울었다.
“진짜, 정말로, 감사합니다.”
훌쩍이며 한마디 겨우 말한 준이 잽싸게 마이크를 휘영에게 넘겼지만, 이쪽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크게 엉엉 울지 못해서 겨우 띄엄띄엄 몇 마디 한 휘영이 나를 끌어당겨 마이크 앞에 세웠다.
“음…….”
서바이벌 ID 마지막 방송 때보다 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모두가 인정해주는 커다란 시상식의 신인상. 1년을 죽기 살기로 달려온 보람이 한 번에 밀려 들어오는 자리였다. 저 트로피가 우리를 위한 상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행복한 1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어…… 항상 응원해주시는 팬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결국, 횡설수설 아무 말이나 꺼냈다. 수상소감을 끝내고 나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스스로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싶었지만, 들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서 빛나는 응원봉을 들고 있는 팬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구의 소감까지 끝나고 나서 다섯 명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자마자 서바이벌 ID 마지막 방송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다 같이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었는데. 그로부터 일 년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자리에 서 있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트로피를 들고 급하게 공식 카페에 올릴 사진을 찍었다. 이후 메이크업을 지우는 동안 겨우 마음을 달래며 떨리는 호흡을 겨우 진정시켰다. 깨끗하게 씻긴 얼굴을 거울로 봤을 때는 눈가가 빨개진 상태였다.
“하아…….”
또 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 크게 한숨 쉬듯 심호흡을 하며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건네주는 모자를 눌러 썼다. 거기다 마스크까지 쓰니 완전히 출국하는 사람 같은 모양새가 됐다.
“뒤풀이 해요, 뒤풀이!”
눈물 콧물 다 쏟아서 퉁퉁 부은 얼굴로 준이 뒤풀이를 하자며 나섰다. 앞으로 남은 시상식이 몇 개 더 있었지만, 가장 처음 받은 신인상이니까 의미 있는 거라면서. 평소 같았으면 피곤하다고 한 발 빠졌겠지만, 오늘은 순순히 이끌려서 따라나섰다.
예준이 미리 잡아놓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회사 관계자분들까지 함께 단체 회식을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예준이 매니저 형을 불렀다.
“형. 오늘은 숙소 말고 여기로 갑시다.”
“어디?”
시동을 걸던 매니저 형이 고개를 뒤로 돌려 물었고 예준은 얌전히 휴대폰을 내밀었다. 매니저 형은 곧바로 건네받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었고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찍힌 장소는 주변에 있는 5성급 호텔이었다. 아까 메이크업을 지우면서 본능적으로 숙소 침대에 눕고 싶다는 말을 외치던 예준이 갑자기 저러니 굉장히 뜬금없었다.
“너 돈 많냐? 여기는 왜?”
“동생들 데리고 재밌게 놀아보려고요.”
매니저 형의 물음에 예준이 양옆에 앉은 준과 휘영의 어깨를 잡고 양손으로 브이를 해 보였다. 갑자기 무슨 심경 변화로 저러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준은 한참 신나있는 상태였다. 저런 호텔을 갑자기 갈 수 있을 리는 없고, 예약을 해놓은 것 같은데…….
“왜 갑자기요?”
“다 너를 위해서야. 준이 아침으로 호텔 조식도 먹여줄 겸.”
“형이 가고 싶은 거 아니고요?”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눕히고 편하게 잠만 잘 수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었지만, 1년 동안 활동하면서 스케줄때문인 경우를 빼놓고 호텔을 따로 가는 건 처음이었다.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예준은 아무렇지 않게 양쪽 어깨를 으쓱했다.
“저 호텔 형한테는 집 같은 곳이야. 굳이 시간 내서 가는 곳 아닌데.”
“아, 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을 것 같아서 간단한 대답으로 끝냈다. 최고급 아이템들로 무장한 게임을 켜는 모습에 그제야 예준의 씀씀이에 대해서 상기했다. 역시 삼천만 원.
도착한 호텔은 확실히 비싼 곳이라 뭔가 다르긴 달랐다. 로비부터 번쩍번쩍하더니. 예준은 예약해놓았다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키를 받아왔다. 손에 들린 키는 세 개였다.
“멤버들끼리 단합하자는 마음에서 세 개만 잡았어. 둘이 같이 써.”
지구에게 키를 건넨 예준은 나머지 둘을 데리고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우리 방이 로비인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두고 가. 결국,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겨우 방을 찾아 들어갔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호텔 야경은 완벽했다. 온갖 조명이 눈앞에서 반짝거렸고, 저 멀리 다리 위를 지나가는 차들도 한눈에 들어왔다. 이래서 사람들이 고층을 잡는구나. 한참 유리에 붙어서 밖을 쳐다보는데, 지구가 먼저 씻고 나오라며 욕실 안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렇게 한 번씩 욕실을 쓰고 나와서 야경이 보이는 식탁 앞에 마주 보고 앉았다.
“형 아까 많이 울던데요.”
“넌 많이 참더라.”
“좋은 날이잖아요.”
지구가 한 번 웃더니 식탁에 올려둔 휴대폰을 향해 팔을 뻗었다.
“형한테 꼭 들려주고 싶은 게 있어요.”
지구가 휴대폰을 한참 두드리더니 파일을 찾은 듯 탁자 위에 내려놨다. 파일명은 1번 트랙이었다. 건네주는 한쪽 이어폰을 받아서 꽂으며 물었다.
“이거 제목은 뭐야?”
묻는 순간 이어폰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첫 반주에 잠깐 집중하다가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알았다. 이거 직접 부른 노래구나.
“제목은 일부러 비워놨어요.”
나머지 한쪽 이어폰을 왼쪽 귀에 꽂은 지구가 길게 뻗은 팔을 베고 식탁에 엎드렸다. 비스듬한 각도에서 다정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있는 동안 노래는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가사는 시간 순서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곡이 뭐냐면요.”
작곡가의 입이 열렸다.
“스무 살의 나랑 스물한 살의 형이에요.”
스무 살의 지구랑 스물한 살의 나. 파란색 꽃다발을 들고 졸업식을 하던 고등학생과 그곳을 졸업한 지 정확히 일 년이 된 나. 우여곡절 끝에 보낸 1년. 관계도 정신도 많이 성장한 1년.
“노래 좋죠?”
왼쪽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뺀 지구가 웃으며 물었다. 그 웃는 얼굴이 너무 맑고 예뻐서 두 손을 뻗어 양쪽 볼을 잡아 끌어당겨 키스했다.
여전히 오른쪽 귀로는 지구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밖으로는 선명한 타액 섞이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상반되는 소리 때문에 평소와 다르게 느낌이 이상해서 얼굴에 열이 올랐다.
“형 저 준비 다 해놨어요.”
뭘? 헛웃음이 터질 새도 없이 지구가 나머지 한쪽 이어폰을 내 왼쪽 귀에 마저 끼워주고 몸을 침대로 끌어당겼다.
“여기 예약, 제가 했거든요.”
푹신하고 큰 침대 위로 몸이 밀려 넘어갔다. 그 위로 시야 가득 작은 얼굴이 들어찼다.
“지금부터 형이랑 같이 제목 정해보려고요.”
처음 나오던 곡이 끝나고 두 번째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잔잔한 기타 반주로 시작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 가사가 처음으로 흘러나왔다.
“몇 곡이나 만든 건데?”
“여섯 곡이요.”
이번 곡은 분위기가 또 달랐다. 노래하는 건지, 속삭이는 건지. 이어폰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달달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들리는 고백은 더 다정했다.
좋아해요, 형.
나도. 근데 지구야.
네?
뭘 준비했는데?
대충 분위기는 읽었는데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해서 물었다. 지구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웃으면 다 넘어가는 거 알고 또 웃네. 이마부터 쭉 미끄러져 내려오며 이곳저곳 쪽쪽 뽀뽀하던 지구가 아직 부어있을 눈가에 한 번 더 입술을 눌렀다.
우주를 가진 기분이었어요.
이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에 웃음이 터졌다. 예전에 한 번 봤던 지구가 쓴 가사.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 특유의 느낌이 한 곳 한 곳 스며들어 있었다.
“우주는 모르겠고 나는 가질 수 있겠다.”
“오늘요?”
“응.”
목덜미까지 내려간 입술이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이어폰으로 들리는 미성과, 바깥에서 들리는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너무 상반돼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사랑해요, 형.
응. 나도.
사랑한다고 말로 듣고 싶어요.
사랑해.
저도요.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 야경은 커튼에 의해서 가려졌다. 그날 밤하늘에 뜬 달은 유난히 다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