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차를 세워놨다고?”
“네. 아파트 앞 주차장에 검은 차요.”
사생이 아니라 기자라고? 아주 잠시나마 뽀뽀할까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만약 아무도 없다고 진짜 했으면……. 다음날 포털사이트에 도배됐을 사진과 우리 이름을 떠올리니 피가 싸하게 식는 것 같았다.
“봤어?”
“차 뒤에 숨어 있었어요. 카메라 봤거든요.”
덤덤하게 본 그대로 이야기하던 지구가 어느새 멈춰 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자기 집은 정말 방치하기로 한 건지 당연하게도 우리 집이 있는 층수였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앞집 빼고는 들을 사람도 없지만 지구가 목소리를 낮췄다. 삑, 삑. 도어록 숫자를 하나하나 누르는 손길마저도 이상하게 조심스러웠다.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현관문을 다시 닫으며 지구가 말했다.
“집 앞에서 저렇게 하루 종일, 이 시간까지 기다리면서 사진 찍을 곳이 뻔하죠.”
그 말에 딱 떠오르는 신문사가 있었다. 걔네 진짜 질긴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
“기자들은 다 떨어진 걸로 아는데…….”
데뷔하고 자그마치 6년. 1, 2년도 아니고 6년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기자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사생활을 파헤치려 했다. 그중에서도 모두가 가장 궁금해한 것은 우리의 연애 여부였다. 유명한 아이돌의 열애설만큼 파급력이 큰 것도 없으니까. 어떻게든 애인이 누군지 캐보겠다고 온갖 인터뷰에서도 떠보고, 쉬는 날 놀러 나가는 것도 따라오고 했지만, 사진이 찍힌 건 한 장도 없었다. 실제로 나랑 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셋 모두 연애를 한 적이 없으니까.
예준이 친한 누나랑 잠깐 만났다가 열애설이 나긴 했었는데, 한 시간 만에 놀라울 정도로 감쪽같이 모든 기사가 자취를 감췄다. 거기에 회사가 발 빠르게 루머라고 대응한 덕분에 찌라시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이 끝나서 별거 없는 이야기였다.
보통 뒤에서라도 몰래 만나기 마련인데, 멤버들은 신기할 정도로 먹고 노는 거에만 관심이 있었다. 아니, 다들 열애설이 터져서 팀에 피해를 주기 싫다고 했으니 애써 참고 있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렇게 멀쩡히 연애를 하고 있는 우리가 종종 미안해지고는 했다.
“아직도 쫓아다니나?”
“새로운 게 있나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또 한참 활동하다가 이제 쉬니까요.”
아무리 우리 집 앞에 죽치고 있어봤자 여자랑 데이트하러 나가는 모습은 평생 못 볼 텐데. 쓸데없이 에너지 소모를 한다 싶어 한숨이 나왔다. 오랜만에 휴식인데,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기자를 마주쳐야 한다니 끔찍했다.
“최소 몇 주는 더 저러고 있을 거예요. 그래도 있는 거 알았으니까 조심하면 돼요.”
앞으로 정말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지구의 손을 살짝 잡았다 놓았다. 밖에서는 작은 스킨십도 함부로 하지 말아야지. 괜히 아무도 없다고, 아니면 아까처럼 술에 취해서. 얼굴 붙잡고 키스하는 사진이라도 찍히는 날에는…….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쳐서 몸이 다 떨렸다. 고개를 이리저리 저어 쓸데없는 망상을 몰아냈다. 기자 소리에 취기가 싹 몰려간 듯 정신이 멀쩡했다. 이렇게 효과 좋은 술 깨는 약도 없을 텐데.
“지금 걱정되죠.”
일단 피곤한 건 그대로니까 빨리 씻고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움직이려는데, 지구가 또 귀신같이 표정을 읽어냈다.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뜨끈뜨끈한 이마에 따뜻한 입술이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냥 해주는 말인데도 순식간에 안정이 되는 걸 보면, 지구 말에는 정말 뭐가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을 안심시켜주는 묘한 게. 술 때문에 잔뜩 빨개져 있을 내 얼굴과 달리, 멀쩡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두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천천히 키스했다. 밖에서 조심하는 만큼 집에서 하면 되는 거니까.
* * *
다음 날, 데뷔 6주년을 정확히 3일 앞두고 우리는 재계약 관련 이야기로 회의를 가지기로 했다. 조금 더 천천히 할 수도 있었지만, 각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빨리 공유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침부터 카톡으로 약속을 잡았다.
긴 시간 실랑이를 한 끝에 회의 장소로 정해진 것은 예준의 집이었다. 단톡방에 공유한 룰렛을 돌려 예준이 당첨된 거니까 아주 정당한 결과였다. 예준은 집이 더러워서 안 된다며 끝없이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남자 혼자 자는 집에 깨끗함을 기대한 적조차 없었기에 그 누구도 말을 듣지 않았다.
“다 치우고 가라.”
“당연하죠.”
예준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준이 과자를 찾아 먹기 시작했다. 예준이 과자를 TV 밑 서랍에 넣어놓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와중에 초코가 잔뜩 묻어있는 과자는 예준의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아, 맞다. 우리 기자 붙었어요.”
“뭔 기자? 설마 파파라치?”
“네. 아파트 앞에 있던데.”
“아오.”
예준이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뽑았다. 저걸 왜 뽑아……. 잦은 염색 때문에 머리숱이 자꾸 줄어든다고 화내더니 이유가 여기도 있었다.
“불법인데 대놓고 몰카 찍네.”
“이쯤 되면 스토킹 당하는 거 같아요. 저번에 백화점 갔던 것도 기사 났잖아요.”
“아. 너 백화점에 먹을 거 사러 갔다고.”
온갖 목격담들을 바탕으로 하루에 수십 개씩 올라오는 게 기사라지만, 근 1년간은 정말 여러 신문사가 우리의 일상에 관한 기사를 써 올렸다. 한 번은 잠깐 동네 마트에 다녀왔는데, 지나가던 팬이 사진을 찍어 올리는 바람에 그냥 대충 주워 입었던 패션이 기사까지 탄 적도 있었다. 실제 기사 제목도 ‘후줄근하게 입어도 잘생겼네…….’였는데, 흡사 공개 처형당하는 기분을 느낀 그날 이후로 괜히 집 앞에 나갈 때도 옷을 신경 써서 입는 버릇까지 생겼다.
“이제 진지하게 얘기해보자.”
평소 가장 진지하지 못한 멤버인 예준이 탁자를 탁탁 치며 말했다. 슬쩍 쳐다본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벌써 6년을 함께 해온 그룹의 재계약 이야기가 가볍게 나올 내용은 아니었으므로, 다들 일순 조용해졌다.
“솔직하게 재계약하기 싫은 사람.”
예준의 말이 떨어지고,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손이 올라간 사람도 없었다.
“그럼 힘든 사람.”
다들 머뭇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솔직하게 답하는 게 의견을 나누는데 편할 게 분명했으므로 조심스럽게 먼저 손을 들었고, 그 뒤로 줄줄이 멤버들의 손이 올라왔다.
“들 거면서 왜 그렇게 다 눈치를 봐.”
“다들 힘든 거 티 안 내잖아요.”
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일이 말하고 울며불며 감정 소모하게 만드는 건 서로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그럼 지금 티 좀 내보자. 난 내 SNS 해킹해서 다른 아이돌 욕 쓴 거. 시발, 해킹이라고 해도 믿지도 않고 계속 계정 실수한 거라고 하고. 그래서 그쪽 팬들한테 이틀 내내 처맞은 거.”
“형 그날 이후로 SNS 탈퇴했잖아요.”
“전 연관 검색어 테러했었던 거요. 학폭 보고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놀라기만 했냐, 너 그때 울었잖아.”
“지구 형 표절 논란 떴을 때도 생각나네. 그때 코드 진행이 아예 다른 거로 결론 났는데 도입부 멜로디 살짝 비슷한 거 가지고 그쪽 팬덤이 억지 부렸잖아요.”
물론 티를 안 내도 멤버들이 다 귀신처럼 알아봐서 별 소용없었다. 숨기려고 하는 일도 어디서 다 알아 와서 같이 욕해주고 위로해주니까. 그래서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은 작은 것도 전부 다 알고 있었다. 하다못해 수위가 높았던 몇몇 악플 내용까지도.
6년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막 휘영이 사생에게 휴대폰을 도둑질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준이 갑자기 숨을 들이켜며 한 마디를 뱉어냈다.
“전 그래도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준이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조심스럽게 의사를 밝혔다. 춤과 노래가 안 돼서 제일 힘들어했던 준은 실력이 늘고 나서부터 활동을 가장 즐겁게 한 멤버였다. 물론 스케줄 때문에 밀려오는 피곤이나, 숙소 앞에 죽치고 있는 사생들을 즐거워했다는 건 아니고. 안 되던 동작들이 되기 시작하고 천천히 실력이 늘어나는 게 눈에 보이니까 연습을 할 때도 엄청 즐거워했다. 그래도 마음이 약한 애라 많이 힘들어해서, 재계약하겠다는 얘기는 안 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따로 살긴 하지만 솔직히 형들 없으면, 이 일 아니면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막내 아니랄까 봐.”
휘영이 웃으며 장난스럽게 젖살이 훌쩍 빠진 준의 볼을 살짝 꼬집은 다음 놓아줬다.
“아, 형! 아파요!”
준이 인상을 확 찡그리며 손을 이리저리 내저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탁자를 손가락으로 살짝 두드렸다.
“진짜예요.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뭘 꼭 해야 돼? 너 활동하면서 번 돈만으로도 충분히 평생 쓰고 남아.”
“그건 그렇지만.”
우물쭈물하는 것만 봐도 해체에 긍정적인 입장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만약 그룹이 해체되면 솔로로 나갈 것 같지도 않고. 예준도 준이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아닌, 레브라는 그룹에 미련이 있는 걸 눈치챘는지 툭 한 마디 던졌다.
“우리가 남도 아니고. 죽기 전까지 계속 만나겠지.”
예준의 말에 머릿속으로 50년쯤 후를 상상해봤다. 주위에 나무가 빡빡하게 자란 숲에서, 넓은 바위 위에 앉아서 다 같이 장기를 두는……. 아무래도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아서 고개를 저어 황급히 떠오른 장면을 지워냈다.
지구랑은 그때도 같이 있을까. 20년, 30년이 더 지나면……. 왠지 상상하기 힘든, 중년이 된 지구의 얼굴을 대충 그려보고 있는데 휘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이돌 하고 싶어서 서바이벌 ID도 나갔고, 어쩌다가 상상도 못 했던 데뷔도 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활동 내내 좋았어.”
중학생 때부터 쭉 아이돌이 되려고 연습했다는 휘영은 무대에 서는 걸 좋아했다. 화보 촬영이나 예능 같은 건 힘들어하면서도 무대 하나는 진짜 잘 소화했으니까.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음악 하는 게 꿈이었던 지구가 공감하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서 더 고민이 돼. 힘든 건 진짜 힘든데,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근데 다들 좋고 이 일이 아직 싫은 것도 아니니까.”
휘영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힘들긴 한데 아직 미련 없이 놓을 정도로 싫은 일도 아닌 거. 멤버들부터 직원들까지 좋은 사람들도 많고, 이 자리까지 정말 땀 많이 흘리면서 올라온 거니까. 모두가 생각에 빠진 얼굴이었다.
그때, 멤버들의 말을 듣기만 하던 예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내년 활동은 나 없이 할 텐데.”
갑작스러운 예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이 그룹이 계속 유지될지 아직 정해진 게 없는데, 혹시 혼자라도 탈퇴하겠다는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예준은 아이돌이 아니라 래퍼 지망이었으니까. 실제로도 데뷔한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음원도 내고, 다른 래퍼들과 만나기도 했다. 잠시 그룹을 나가서 솔로 래퍼로 활동하는 예준을 상상해봤는데 썩 어색한 그림도 아니었다. 항상 할 말 다 하고 사니까.
“래퍼 하려고요?”
“형 따로 연락 온 레이블이라도 있어요?”
“뭐래, 내가 미쳤냐? 그룹 탈퇴하고 그딴 데를 홀랑 들어가게.”
하기야 랩으로 활동을 하고 싶었던 거면 회사에 얘기해서 솔로를 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예준의 성격에 활동 중에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왔다고 탈퇴까지 고민하며 옮길 생각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그럼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일은 무슨 일.”
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고, 예준은 뭘 물어보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 내년에 군대 가잖아.”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작을 멈췄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