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236)

* * *

단목경과 단목산산의 비무날이 되었다.

직계 형제자매인 네 사람이 연무장에 모였다. 단목경은 확실히 수련을 열심히 한 것인지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물론, 그것은 단목산산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다는 듯이 시선을 교차했다.

그리고 단목장룡과 단목청야 또한 묘한 기 싸움을 벌였다.

‘감히 네가 산산이를 가르쳐? 그게 얼마나 주제넘은 짓인지 오늘 확실히 보여주마.’

단목장룡은 그의 눈빛에 당황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한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님.”

“그래, 산산과 수련을 잘했느냐?”

“예, 그럭저럭 잘 된 것 같군요.”

장룡과 청야의 말에 단목경이 입을 연다.

“난 천룡각의 수련을 배웠어. 그곳에서의 수련은 확실히 달라. 무림맹의 초고수들이 모여 만든 수련법을 내가 배운 거라고.”

“어휴, 정말 부러워.”

“비무가 끝나면 더 부러워질 거다.”

“됐다. 감정싸움은 그만하거라. 이 비무는 단지 서로의 실력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형제자매끼리 대립해서야 쓰겠느냐?”

단목청야의 말에 단목산산과 단목경이 시선을 피한다.

그가 이 비무를 성사시킨 이유는 장남으로서 위치를 더 확고히 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이미 가문의 후계자로 거의 확실해진 장남이었지만··· 조금의 빈틈도 있어서는 아니 되었다. 

그의 입발린 소리에 장룡이 진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바로 비무를 시작하도록 하죠.”

그렇게 장룡이 말하는 순간.

단목청야가 연무장의 입구 쪽으로 몸을 돌린다. 단목장룡의 기감에도 묘한 것이 감지되었다. 뭔가가 자신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 그것이 단전에 닿기 전에 흘려보내서 다행이었다.

‘고수.’

단목세가에선 처음 보는 고수였다.

단목세가의 최고수는 가주가 아니다. 그림자라는 묵위도 아니다. 그렇다면 누굴까? 주름 가득한 얼굴이지만, 눈빛은 살아있는 노인. 백발과 하얀 수염이 조화되어 마치 신선을 마주한 느낌이 든다.

‘이 사람이 태상가주 단목운뢰.’

당연히 태상가주는 단목장룡의 해우심법이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허허, 웃으며 연무장의 중앙으로 걸어왔다.

“할아버지!”

단목산산이 펄쩍 뛰며 태상가주에게 달려간다.

최근까지 단목세가 사천 분타에 가 있었는데 어제 돌아왔다. 소가주의 위치를 더 확고하게, 그리고 태상가주에게 천룡각에 놀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단목청야가 비무의 심판을 청했다.

당연히 사랑스러운 손주들이 비무를 한다는데 빠질 태상가주가 아니었다.

“어이쿠! 우리 산산이! 이렇게 컸구나! 더 예뻐졌는걸?”

“아이, 할아버지도 참.”

“할아버지!”

이제는 덩치가 커서 청년이 되어버린 단목경이었지만, 녀석도 어린아이가 되어 태상가주에게 달려갔다. 그는 손주는 모두 사랑스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보듬어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을 잔뜩 쓰다듬어준 태상가주.

그의 시선이 단목장룡을 향했다.

“허허허! 이게 정말 우리 장룡이가 맞느냐!”

단목장룡은 조금 당황했다.

그는 단목세가의 망나니였다. 아버지인 단목무광도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태상가주는 마치 산산과 경을 바라볼 때처럼 따스한 눈빛을 보내준다. 그리고 팔을 벌리는 것이···.

‘설마? 안기라고?’

원래 이랬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단목장룡은 차마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태상가주의 몸이 마치 공중에 뜬 것처럼 순식간에 접근했다.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팔을 벌린 그대로.

‘이런···!’

단목장룡이 본능적으로 보법을 펼쳐 그의 포옹을 피해내려 했다.

‘허허허? 이놈 보게?’

하마터면 태상가주가 공중에 헛손질할 뻔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무공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던 놈이 할아버지의 포옹을 피하려고 저런 수준의 보법을 펼쳐?

“으윽···.”

단목장룡의 몸에 닭살이 돋아난다.

나이 지긋한 노인과 포옹하는 것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우리 토실토실하던 장룡이가 이렇게 바뀌다니! 어이구!”

그는 장룡을 얼싸안고 빙빙 돌았다.

아무리 장룡이 무공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평생을 무공을 익혀온 단목운뢰의 손길에서 빠져나갈 순 없었다.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장룡의 차례가 끝나자 당연히 마지막은 장남이었으며, 단목청야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에게 안겼다.

‘아직도 우리를 열 살 아이들인 줄 아시는구나.’

이제는 세상을 알고, 어른이 되어버린 단목청야.

그는 오늘 자신이 소가주의 인정을 받을 날이라고 생각했다. 단목경을 완전히 새 사람으로 만들었으니까.

장남과 태상가주의 포옹이 끝나고.

단목청야가 입을 연다.

“태상가주님.”

“어허! 할아부지!”

“···예?”

“할아··· 버지.”

차마 할아부지라고 말할 수는 없었던 단목청야.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는 듯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태상가주였다.

“크흐으음··· 경이와 산산이가 한 달 동안 열심히 수련하여 결실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그것에 대한 평가를 냉정히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무한한 손주사랑을 보내는 태상가주였지만, 무공에 대해서는 냉철한 편이다.

단목청야는 그걸 노렸다.

“후후후! 그래! 우리 손주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이 할아부지가 직접 판단해주마.”

태상가주는 연무장에 마련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으며, 태상가주의 등장에 희희낙락하던 단목경과 단목산산도 이제는 긴장했다.

그리고 단목장룡은···.

‘와··· 이 사람도 나처럼 혼만 바뀐 건가? 저런 노인은 난생처음 보네.’

태상가주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완벽한 패배

태상가주는 단목산산과 단목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 조그맣던 아이들이 저리 커서 비무를 펼친단다. 당연히 단목세가는 무가(武家)였으니 무공을 잘하면 좋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생각은 없었다.

그건 현 가주의 몫이며 재량이었고.

태상가주는 손주들을 예뻐해 주면 그만이었다. 뭐 가문의 중대사는 눈여겨보고 있긴 하지만,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 단목장룡이 혼사를 깨버렸다는 서신을 받았을 때도 그리 화를 내지 않았다.

‘허허, 장룡이도 이제 사람 구실을 하겠구나.’

옆을 바라보니 언제 이렇게 살을 뺐는지 이제는 귀여울(?) 정도로 토실토실한 단목장룡이 보인다. 그리고 이제 저 덩치에 살만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조금 전의 움직임, 확실히 무공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아 보였다.

이렇게 바뀐 것을 보니 사내로서 목표가 생긴 게 확실했다.

언가의 여식도 처가로서 전혀 부족하지 않았지만, 장룡은 더 큰 꿈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하다. 허물을 벗고 나왔으니 무엇으로 변화할지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늠름한 자세로 전방을 주시하는 단목청야.

그는 누가 봐도 장남이었다. 여유로운 표정에 의젓한 몸짓. 천룡각에서 잘하고 있다는 소릴 들었는데, 직접 마주하니 실감이 난다. 정말 아이들이 다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슬슬 시작하려나보군.’

단목산산은 단목장룡과 같이 수련했으며, 단목경은 단목청야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태상가주는 단목경의 우세를 점쳤다.

누굴 편애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분석이었다.

‘그러한 예상이 깨지는 것도 재미있겠지. 어디 한 번 지켜볼까.’

일 년 전에 보았을 땐 당연히 단목경이 우세했다. 가주의 셋째 부인은 의창에서 제일가는 상인의 장녀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 단목경이 먹은 영약만 해도 산산보다 많았다.

단목경과 단목산산이 포권지례로 예를 표한 후, 비무를 시작했다.

먼저 발을 움직인 것은 단목경이었다. 산산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단목경의 다리를 살폈다.

‘호오, 산산이가 비무에 저리 익숙했던가?’

발을 보면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비무의 경험이 적은 자들은 상대의 상체를 보고 대응하려 했다. 사실 발을 보고 대응한다는 것은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고서야 불가능했다. 그런데 단목산산은 단목경의 검을 피해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휘잇-!

단목경의 자세 또한 나쁜 게 아니다.

단목세가의 직계라면 필수로 배우는 팔십일식유성환상검을 펼쳐내고 있었다.

쾌를 중점으로 두어 환을 펼쳐내는 단목세가의 절기. 단목경 또한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매서운 기세로 단목산산을 압박해나간다. 그녀가 자신의 검을 몇 번 피해냈지만, 끝까지 가면 자신이 이긴다는 태도였다.

휘이익-! 따악!

휘잇-! 타타탓!

두 손주의 비무를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던 태상가주.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허허···.’

그 옆에서 비무를 지켜보던 단목장룡과 단목청야의 표정도 변화한다.

무표정이던 장룡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고, 단목청야의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한 달 동안 분명히 단목경은 커다란 성장을 일구어냈다. 단목경은 재능도 있었으며,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예전에도 단목산산보다 강했으니 이제는 더 큰 격차를 보여주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은···.

“허억···!”

따악!

“흡!”

투우욱!

초반엔 꽁지가 빠져라 단목경의 검을 피해내던 단목산산이 쉴새 없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움직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부드러워진다. 마치 이제야 몸이 풀렸다는 듯이. 이런 격차가 말이나 되는가?

단목경은 헉헉대며 대응다운 대응도 하지 못하고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도 자존심이 있는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지만, 산산의 작은 움직임에도 그의 검이 흐트러진다.

‘산산, 드디어 긴장이 다 풀렸구나.’

단목장룡이 흐뭇하게 웃는다.

산산은 처음에 긴장했었다. 패배하면 장룡에게 폐를 끼친다는 걱정과 태상가주의 관전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소극적으로 단목경의 검을 방어만 했다는 게 그 증거였다. 하지만 단목산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굳이 긴장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장룡 오라버니와 했던 것에 비하면···.’

어찌 이렇게 수준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녀는 스스로 강해졌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단목경보다 수준이 낮았던 그녀가 한 달 만에 이렇게 강해지는 게 가능이나 한가?

사실 그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무공을 거의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단목장룡. 그는 산산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어떤 무공이 맞는지 검토했다. 인간의 근력은 한 달 만에 획기적으로 늘어날 순 없다. 힘으로는 당연히 단목경에게 밀린다.

그렇기에 그녀의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쪽으로 발전시켰다.

항시 긴장할 수 있게.

밥을 먹는 순간에도 검을 놓치 않게 하였고,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단목산산은 단목경을 압도했다,

“커헉-!”

‘제기랄···!’

단목청야가 속으로 욕지기를 삼킨다.

태상가주가 옆에 있는데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여 욕을 내뱉을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태상가주는 청야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알아차렸지만 뭐라고 하진 않았다. 할아부지의 배려랄까?

‘장룡 이놈, 대체 어떤 수련을 시켰길래···?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내가 장룡을 잘못 생각한 건가? 대체 이게 무슨···.’

이제야 단목청야의 마음속에 장룡의 존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사실은 단목산산의 재능이 단목경보다 높았을 뿐이라며,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이상하다. 같은 일이 두 번이나 반복되면 그것은 운이 아니었다.

단목청야는 그리 멍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말이나 되는 건가? 장룡의 수련법이 독특하다고 해도··· 천룡각의 수련보다 뛰어날 일은 없지 않은가?’

그래도 상식은 벗어나지 못한다.

천룡각은 무림맹 산하의 무학 기관이다. 그곳에선 정파 무림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무림맹주도 가끔 각도들을 교육해준다. 그런 곳에서 배운 수련법이 장룡보다 못할 리는 없지 않은가?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단목청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튀어나온다.

당연히 승리를 차지한 것은 단목산산이었다.

그녀의 목검이 단목경의 목젖을 향하고 있었고, 단목경의 목검은 저 멀리 날아가 땅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마지막 일격으로 목검을 쥔 손을 치고, 목을 노린 것이다. 목검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승리 방식 중 하나다.

“내, 내가 졌다···.”

단목경이 고개를 떨구었고, 단목산산은 검을 내렸다.

짝짝짝짝-!

태상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쳤다.

그리고 인자하고 마음씨 좋은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두 사람은 많은 양의 땀을 흘린 상태였지만 태상가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은 안아주었다.

“두 사람 다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노력한 게 보인다. 잘했다.”

태상가주는 한 사람만을 편애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단목경은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패배했음에도, 따스하게 품어주는 태상가주의 따뜻한 품에서.

단목산산 또한 마찬가지였다.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정말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했다. 그 결실을 이루었고, 태상가주가 안아주니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단목청야와 단목장룡.

“대체 어떤 수련을 했던 것이냐?”

“글쎄요.”

“···알려주기 싫나 보군.”

단목장룡이 고개를 젓는다.

굳이 알려주지 못할 것은 아니다.

“장점을 살리면 됩니다.”

“장점을 살린다···?”

“예.”

단목청야는 그 말을 곱씹기 시작한다.

망나니라며 무시해왔던 동생이다. 가문에 전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달라지고 있다. 아직은 뭐가 뭔지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내가 졌다···. 완벽하게.’

단목청야가 오늘의 패배를 가슴에 새겼다.

언제나 그렇듯 극복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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