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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오후.
오늘은 용봉지회에서 용의 지회의 결승이 있는 날이었다.
비무장 주위로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본래 군데군데 노점을 열어 장사하는 이들을 간간이 볼 수 있었지만, 결승전을 관전하려는 인파 덕분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군중들은 본래 화음현에서 살던 백성들도 있겠지만, 이번 용봉지회를 보려고 다른 지역에서 몰려든 사람이 대부분이다.
으레 그렇듯이 대부분 비무 결과가 어찌 될지 예측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단목세가의 차남이 환왕 대협의 만화천검을 깨부수는 걸 보지 못했어?”
“환왕 대협이 펼친 게 아니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남궁 소협은 검이 아닌 주먹으로 소림사의 제자를 압도했다네.”
“그게 뭔 압도인가!”
“남궁 소협은 전혀 다친 게 없지 않았는가?”
“뭘 모르는군! 겉으로 다치지 않았다고 하여 속이 멀쩡한지는 모르는 법이거늘!”
각자가 비무를 관전하며 감명받았던 것을 토대로 토론한다.
절대적으로 남궁일몽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많았다. 4강전에서 남궁일몽이 보여줬던 모습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군중들의 소란이 극에 도달했을 때.
화산파의 장로가 내공을 가득 담아 외친다.
“곧 용의 지회 결승이 시작됩니다. 강호 동도 여러분의 열띤 환호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아아아!”
단목장룡이 비무장에 오른다.
끝을 알 수 없는 인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본 것은 처음이다. 단목장룡은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묘하게 가슴이 뛰네.’
군중들에게 인사하자 남궁일몽이 모습을 드러낸다.
단목장룡보다 훨씬 함성이 크다. 정현을 상대로 검이 아닌 권법을 사용한 것이 영향이 큰 모양이다. 단목장룡이 슬쩍 그의 허리를 바라본다. 이번에는 다행히 검을 차고 있었다.
만약 이번에도 검이 아닌 권법을 사용하려 했다면, 단목장룡도 똑같이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래도 결승이니만큼 검을 가지고 나온 모양이다.
남궁일몽은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단목장룡에게 인사했다.
“이렇게 결승에서 보는군요. 긴장은 딱히 하지 않아 보이시네요.”
“예, 긴장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하하, 단목 소협은 정말 재밌다니까.”
두 사람이 포권 지례로 예를 표한 후.
거리를 벌린다.
단목장룡은 지체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거대한 함성이 비무장을 덮쳐온다. 당장이라도 두 사람이 격렬하게 맞붙을 것 같은 긴장감.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단목장룡이 묻는다.
“검을 뽑지 않으십니까?”
그 말에 남궁일몽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대답한다.
“제 나름의 배려랄까요? 힘들어지면 검을 뽑지요.”
“···.”
이런 느낌이었나.
머리 꼭대기에서 내려본다는 느낌. 신교에 있을 때, 천마신교 1공자 사도명은 사공천을 지독히도 싫어했었다. 왠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기분이 좋지 않군.’
단목장룡은 그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한다.
만약 다른 상대였다면, 그 기회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무연하가 선공을 양보했을 때처럼 말이다.
단목장룡이 검을 집어넣는다.
그러자 남궁일몽이 피식 웃는다.
“언제든 검을 뽑아도 됩니다. 전 상관없으니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군요.”
남궁일몽.
그는 20살에 검강을 발현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검강을 발현하면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강호에서 말하는 경지는 절대적인 게 아니다. 검강을 다룬다고 해도 그것을 실전에서 활용하지 못하면 검기를 잘 활용하는 것보다 못하다. 심기체의 균형이 잘 맞아야 한다.
‘남궁일몽이라면 실전에서 검강을 다룰 수 있을 테지.’
그렇지만.
단목장룡은 패배를 떠올리지 않았다.
그는 두 주먹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두 사람의 뜻밖의 행동에 군중들 모두가 경악한다.
“뭐야? 주먹으로 싸우는 거야?”
“대체 이게 무슨···.”
높은 단상 위에서 비무를 지켜보는 화산파의 장문인 군명이 탄식을 흘려냈다.
그는 단목장룡이 이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남궁일몽이 검을 뽑지 않으니 그도 주먹을 든다. 이 얼마나 유치한 자존심 싸움이란 말인가? 용봉지회는 경쟁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이곳에서의 패배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후우, 단목장룡이 이 기회를 살렸다면 승산이 있었을 터인데···.’
군명도 남궁일몽의 우세하다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단목장룡에게 남궁세가 무공의 문제점을 전음으로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리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대립이 심해졌다 해도 그 정도까지 타락한 것은 아니었다.
군명이 씁쓸한 마음으로 비무장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단목장룡이 신형을 움직였다.
그는 정현처럼 상대의 반응을 살펴 가며 접근하지 않았다. 직선으로 뛰어든 단목장룡의 주먹이 남궁일몽의 가슴을 노린다. 얼핏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는 일격이었다. 그의 주먹에 담긴 힘은 그렇지 않았다.
꿀렁!
마치 공간이 비틀리는 듯한 착각.
남궁일몽의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게 뭐지?’
남궁일몽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쿠우웅!
“···!”
남궁일몽은 속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현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대력금강장보다는 못하지만, 그것과 준할 정도의 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점은···.
파밧!단목장룡의 주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쉬이익! 쉬익!
단목장룡의 주먹은 정확히 급소만을 노려왔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전략은 사용할 수 없었다. 최대한 피하거나 막아내야 한다.
쿠웅! 쉬이익! 쿠우웅!
주먹과 주먹이 부딪칠 때마다 서로 다른 기운이 충돌음이 울려 퍼진다. 남궁일몽은 저도 모르게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내가 밀린다고?’
이제까지 또래와의 비무에선 절대 밀려난 적이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는 상대를 압도해왔다.
그것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즈으으···!
남궁일몽의 눈빛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의 내력이 그의 몸을 달구어놓았다. 미약한 뇌기가 그의 피부에 흐르기 시작한다.
콰지지익···!
주먹을 부딪칠 때마다 뇌기를 흘려보낸다. 공방을 나누다 보면 단목장룡은 뇌기에 침범당해 세맥이 상할 것이다. 천뢰제왕신공은 뇌력을 다루는 무공. 과거 뇌왕과 남궁세가의 무공 중 뭐가 더 뛰어난지 의견이 분분했지만, 남궁일몽은 남궁세가의 무공이 더 뛰어나다 자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목장룡은 그 뇌기에 밀려나야 했다.
‘무슨···!’
하지만 단목장룡은 뇌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변함없는 표정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착실하게 남궁일몽을 압박해나간다. 상대의 어깨와 발끝을 보며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남궁일몽이었지만, 단목장룡의 움직임에 계속 말려들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절대 이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 상대의 무공을 읽지 못한다?
뭐가 문제지? 천뢰제왕신공의 뇌기가 통하지 않는 것부터 문제였을까? 아니면···.
‘내가 더 수준이 낮다?’
아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남궁일몽의 표정이 무서울 정도로 차갑게 식었다.
쿠릉!
뱃속에서 천둥소리가 요동친다. 동시에 남궁일몽의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섰다.
팟팟팟!
세 걸음.
그것으로 남궁일몽이 단목장룡의 뒤를 점했다. 이제까지 뒤로 밀려나기만 하던 남궁일몽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까지 비무를 하며 모든 것을 내보이며 싸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단목장룡과 마주하고 있으니, 마치 그의 아버지 검왕과 비무할 때처럼 신형을 움직였다.
쿠르으응!남궁일몽의 뱃속에서 또 한 번 천둥이 몰아친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려는 뇌기 가득한 주먹이 단목장룡의 등을 노린다.
폭뢰신권(爆雷神拳).
뇌기로 거대한 바위를 산산조각낸다는 남궁세가의 권법이었다.
단목장룡은 천유보로 몸을 돌려 그의 주먹을 마주한다.
그리고···.
우우웅···!
묵직한 울림이 비무장 전체로 뻗어 나간다.
“큭···!”
처음으로 남궁일몽이 신음성을 터트린다.
혀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진다. 내상을 입은 건가?
‘5성의 폭뢰신권을 막아냈다고? 아니, 내가 밀렸다···?’
남궁일몽은 처음으로 분노를 느꼈다.
대체 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상황이.
“이제 검을 뽑으시겠습니까?”
단목장룡 또한 타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상대에게 그것 보여줄 정도로 하수는 아니었다. 남궁일몽은 분노가 일어났지만, 무공에 특화된 머리는 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주먹으론 힘들다. 검을 뽑아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
“권법의 조예가 그리 깊으신지 몰랐군요.”
“뭐 조금 있긴 합니다.”
남궁일몽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뽑는 순간부터 검 끝에는 지독한 뇌기가 넘실거린다.
“좋습니다. 인정하겠습니다. 단목 소협은 이제까지 제가 싸워본 후기지수 중 가장 강합니다. 제가 진지하게 비무에 임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단목장룡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