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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 소저는 아직 의방에서 쉬고 있다는데 넌 정말 쌩쌩하구나!”
팽염호의 말에 당옥정이 어색하게 웃는다.
직접 맞서본 모용란이 얼마나 강한지는 당옥정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단목장룡이 아니었다면, 그녀 또한 지금 의방에서 쉬고 있으리라.
“참, 그건 그렇고 용봉지회에선 한 번도 풍이를 못 봤네?”
“그건, 으으으음···!”
팽염호다 답지 않게 조금 당황한다.
위지풍은 작년 용봉지회의 우승자라 이번 화산에서 개최한 용봉지회에 참가하진 못했지만, 분명히 화산에 있었다. 하지만 당옥정과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팽염호는 대충 그 이유를 짐작했지만···.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한 팽염호가 말을 이어간다.
“모르겠군! 일이 많은 모양이지!”
위지풍은 화산파를 도와 화음현의 치안을 담당했었다. 수많은 무인이 모이는 용봉지회다 보니 크고 작은 사건이 참으로 많았다. 혈기 왕성한 이들끼리 술을 마시다 시비가 붙기도 했으며, 길을 가다가 어깨가 부딪쳤다고 살인 사건까지 벌어진 적도 있었다. 무림인의 자존심은 사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수준.
“그렇겠지. 풍과도 얼굴을 봤으면 좋을 텐데···.”
“그러게. 나도 떠나는 김에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당옥정과 단목장룡의 말에 팽염호가 크게 웃는다.
“하하하하하! 연이 된다면 언젠간 볼 수 있겠지!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군!”
위지풍과 가장 친한 팽염호가 저리 말하니 당옥정과 단목장룡도 더 할 말은 없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젠간 볼 수 있겠지.”
“그건 그렇고 자네는 흑룡단에 간다고?”
“맞아.”
“설마 당옥정 너도?”
“아니. 난 아직 무림맹에 가기엔 부족해.”
“하하! 용봉지회의 우승자가 부족하면,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나?”
“그건 그런데···.”
당옥정이 단목장룡을 흘끔 바라본다.
그걸 본 팽염호가 진지하게 말한다.
“장룡에 비해서는 누구도 부족하지. 하지만 당옥정! 너도 대단한 무인이다! 예전엔 친우로서 좋아했다면, 이젠 한 명의 무인으로 널 존경한다! 그러니 어깨를 펴라! 넌 자신감을 가져도 돼!”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팽염호.
당옥정의 기분이 좋아진다. 옆에서 단목장룡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팽염호가 마지막 인사를 한다.
“먼저들 가시게! 난 풍을 도와 용봉지회의 정리를 돕고 떠나려 하네! 정주를 지나게 된다면 한 번 들리지!”
“그래, 다음에 보자고.”
“나도 언젠간 하남으로 갈 거야. 그때 다 같이 보자!”
“그래! 다음에 보자! 그럼 이만!”
팽염호가 휙 몸을 돌려 떠나간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나와 당옥정이다.
밝게 웃던 그녀의 얼굴이 어둠이 그리워져 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니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단목장룡이 당옥정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녀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다치지 말고. 내가 알려준 구결을 잘 기억해야 해.”
“응, 절대 까먹지 않을게···.”
“그리고 무림맹과 사천당문엔 전서구가 많이 다니니 서신도 보낼 수 있다더라. 흑룡단에 가서는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도착하면 네 앞으로 서신을 보내놓을게.”
당옥정은 그의 말에 감동했다.
도착하면 서신을 보낸다? 친우 사이에선 그렇게 서신을 교환하는 경우가 없다. 마치 연인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가?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나도 보낼게! 도착하면 보내고! 수련하다가 생각나면 보낼게! 매일 밤에 쓰고 보내면··· 아, 장룡 네가 너무 귀찮으려나···?”
“괜찮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보내. 늦게 볼 순 있어도··· 다 볼 테니까.”
“응! 알겠어!”
“···.”
당옥정에게 어깨에 손을 얹은 상태.
단목장룡 또한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인 것이다. 둘 다 말을 하지 않자 기묘한 침묵이 감돈다.
당옥정의 눈동자가 안절부절못하고 휙휙 돌아간다. 이 상황이 어색한 듯하다. 손을 잡았던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눈을 계속 마주 본 적은 없었다.
인간의 본능이었을까?
아니면, 유 의원이 말했던 몸을 쓴다는 여인들이 생각나서일까?
당옥정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심장은 터져 오를 듯이 뛰고 있었다. 막연한 떨림. 그녀 자신이 뭘 바라는지도 모르는 채로 눈을 감았다. 아니, 조금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콩닥콩닥!
당옥정이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고 생각했다.
단목장룡이 이대로 자신을 밀어내면?
어떤 절망감이 닥쳐올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찰나의 시간이 영원처럼 흐르고.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기분이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
갑작스레 느껴지는 따스한 감촉. 그 감촉이 느껴지는 건 입술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당옥정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 단목장룡의 얼굴이 코앞에서 보인다. 그가 입을 맞춘 것이다.
‘이, 이게 뭐야···!’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몽롱하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단목장룡의 손이 어느샌가 그녀의 어깨가 아닌 허리를 잡고 있었다.
‘아···.’
당옥정은 저도 모르게 다시 눈을 감았다.
혀도 움직이지 않고.
단순히 입을 맞추고 있는 것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당옥정은 그렇게 바랐다.
물론,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쪼옥···.
단목장룡이 입을 뗀다.
“아···!”
당옥정이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는다.
너무 아쉽다. 아니, 아쉽다고 생각하면 단목장룡이 이상하게 보려나? 그래도 너무 짧지 않은가? 사실 꽤 오랫동안 입을 맞췄지만, 당옥정은 너무도 짧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이불 속에 숨어버리고 싶은 부끄러움도 공존했다.
“저, 저기···.”
단목장룡 또한 기분이 묘했다. 여인과 입맞춤? 그것이 처음은 아니다. 오히려 더한 것도 해보았지만, 지금은 참으로 기분 이상야릇했다.
“나도 다치지 않을 테니까.”
“···.”
“너도 다치지 마.”
그의 진지한 눈빛에.
당옥정은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