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은소 객잔.
객잔인데도 불구하고 그곳은 기루와 같았다. 입구인 1층은 평범한 객잔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엔 항시 고용할 수 있는 기녀들이 있었고, 돈만 있으면 여인들을 방에 들일 수 있었다. 더 황당한 점은, 기녀뿐 아니라 여인을 만족시키는 남자 기생도 존재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해남도는 인간이 가진 본연의 쾌락을 만족시키는 장소가 맞았다.
방은 이제껏 머물렀던 객잔보다 훨씬 넓었다. 방 중앙에 거대한 탕도 있었는데, 돈을 주면 그곳에 물을 채워 방 안에서도 목욕을 할 수 있게끔 해준단다. 아마 몸을 씻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리라.
‘말로만 들었지 과거의 내가 여기에 왔으면 참 재밌게도 놀았겠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중원 어디에 이런 장소가 있을까? 객잔의 지하에는 도박장까지 만들어져 있다고 하니···.
오랜 항해로 심적으로 피로했는데, 침상에 누워 쉬니 그 피로가 조금 풀리는 듯했다.
그렇게 한 시진 정도 휴식하니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설비연이었다.
“하오문에서 받은 정보는 모두 읽었습니다.”
“그래? 빨리 읽었군.”
설비연은 자신이 읽은 정보를 요약해서 내게 들려준다. 암천제의 참가자는 상당히 많았다. 용봉지회와 달리 후기지수만 참가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정파인들에게도 알려진 마두들의 이름도 있었고, 당연히 나찰마궁의 소궁주인 뢰극찰의 이름도 있었다.
“암천제 참가 신청 기간은 보름 후까지입니다.”
“신청은 마지막 날에 하도록 하지.”
“예. 그런데 이미 주공이 왔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대체 누굴까요?”
“짚이는 사람이 있긴 한데··· 알아봐야지.”
이곳에서의 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한다.
우리는 암천제에 참가하여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될 수 있다면···.
‘수라마검을 상품으로 받는다.’
암천제의 상품은 다른 것들도 많았다. 암천회에서 만든 영약이라던지. 흔히 볼 수 없는 영물이라던지. 상품으로만 따지면 용봉지회보다 훨씬 크다. 그 때문에 과거엔 정파인들도 암천제에 참가하려고 했다고 하지만···.
‘문제는 암천제가 평범한 비무 대회와는 궤를 달리한다는 점이지.’
암천제는 비무장을 만들어놓고, 정정당당하게 비무하는 용봉지회와는 다르다.
암천제의 참가자들은 언제든 독살과 암습 당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용봉지회에선 비무장이 아닌 바깥에서 상대와 싸우는 것을 금하지만, 암천제는 그것을 막지 않는다. 그렇기에 온갖 방법이 동원된다.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어떤 비열한 짓도 허용되는 것이 암천제였다.
그렇기에 단순히 무공이 강하다고 우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내 방에 진법을 설치할 거다.”
“진법이요···?”
설비연이 당황한다.
진법은 생각처럼 대장간에서 검을 만드는 것처럼 뚝뚝 만들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진법을 만들기 위해선 자연의 기를 한데 모을 기물이 있어야 하며, 더 중요한 것은 진법서는 무림맹에서도 쉬이 구할 수 없었다.
특별한 가문과 문파만이 자기네들의 비동에 진법을 만들어놓는다.
예를 들면···.
‘만월이 화음현 지하에 설치해놓은 진법. 그리고 뇌왕이 뇌공검법을 당문의 피를 가진 사람에게만 전달하기 만든 비동.’
그런 것이 진법의 활용이다.
뇌왕은 육왕 중 하나였고, 그 육왕 중에서도 천하제일에 가장 가까웠다고 하니 진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작해야 흑룡단의 조장이 진법을 알고 있다고 하니 설비연이 당황하는 것도···.
“예, 알겠습니다. 제가 도울 것이 있습니까?”
설비연은 조금 당황했을 뿐, 내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내 말을 믿는 건가?”
“예. 단목세가라면 이곳에 진법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요.”
내가 만들려는 것이 단목세가의 진법이라 생각하는 건가.
뭐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내게 더 수월하긴 했다.
“그런데 진법을 설치하려면 주변의 기를 모을 기물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보통 집채만한 기물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그건 있지.”
내 손에 걸린 옥 팔찌를 벗는다.
“예? 그걸···?”
제갈교아와 만나고, 이곳에 혼이 담겼던 적이 있다고 했었다.
그때 당시에는 내 빙의가 영령이 관계됐던 것이 아닌지만 고려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최근 진원진기를 흡수하는 나찰마궁의 무공서를 보니 깨달음이 있었다. 내가 가진 옥 팔찌는··· 신병이기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제갈교아는 신병이기란 혼(魂)이 담긴 기물이라 칭했다.
그리고 소림사의 개파조사인 달마 정도는 되어야 신병이기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었다.
그것은 나도 동감한다.
아직 내 수준으로는 평범한 물건을 신병이기로 만들 힘이 없다.
하지만.
내 혼이 담겼던 옥 팔찌라면···.
‘진법의 중점이 될 수 있다.’
신병이기로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다.
* * *
“그분과는···.”
흑색 무복을 입은 사내가 묻는다.
하지만 면사를 눌러 써 얼굴의 형체만 보이는 여인이 고개를 살살 젓는다.
“지금은 아니야.”
“예, 그럼···.”
“신교로 돌아가자.”
두 사람의 형체가 흐릿해지며 공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암천제의 시작
진법을 구성하는 단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자연의 흐름을 잡는 것.
둘째로는 그 기운을 한곳에 모으는 것.
마지막으로 그 기운을 유지하는 것.
보통의 무림인이 진법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첫 번째부터 막혀서 그런다. 운기토납으로 기를 모으는 것과 진법의 토대를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기를 자신의 몸에 쌓는 것도 아니라 더 문제였다.
자연의 기운을 자신의 단전에 쌓는 것도 어려운데, 그걸 외부에서 조절한다?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다. 화경의 경지에 올랐으면 또 모를까 일반적인 방법으론 진법을 만들 수 없었다.
‘그건 진법의 구결을 모를 때 이야기지.’
하지만 분명히 중원 무림 곳곳엔 진법을 설치한 곳이 존재한다.
그것을 관리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육왕 수준의 고수가 그런 일을 도맡아 하는가? 그건 아니었다.
대대로 역사가 깊은 가문이나 문파에서는 저마다의 진법을 만들었고, 그것만 파고드는 진법가들이 존재했다. 무공 수련을 하기 보다는 진법에 모든 것을 쏟는 이들이다.
그리고 난 당연히 여러 가지 진법서를 읽어본 적이 있었다.
사실 나에겐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자연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저 북해에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친다. 그것은 자연의 현상이다. 빙(氷)의 기운이 뭔지 이해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순수한 기(氣)가 그것으로 변환되는지 알면, 진법으로도 북해의 폭풍을 재현할 수 있다.
물론, 그 성질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보통 무림인들은 특정한 속성을 다루는 게 어렵다. 빙공이나 염공 계열의 무공을 사용하는 이들이 매우 적은 것도 그런 이치다. 또한, 특정한 속성을 다루는 것에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진법을 배우기보다는, 그에 맞는 무공을 배우는 것을 택한다.
진법은 분명히 엄청난 가치가 있지만, 육신에 직접 익히는 무공과 달리 눈에 변화가 확연히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무튼, 진법을 익히는데 그러한 어려움이 많기에 특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자연의 기본적인 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걸 적용할 방법도 알고 있었다. 또한, 진법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혼이 담겼던 물건도 가지고 있다.
난 종일 방에 박혀있으면서 은소 객잔 주위에 흐르는 맥을 탐색했다. 기가 가장 원활히 흐르는 곳에 옥 팔찌를 둔 후에, 그곳에 자연의 기운이 쌓이도록 한다. 이 옥 팔찌가 건재하다면 ··· 어떤 무인이라도 나와 설비연의 방에 들어오면 그 영향권에 들어오도록.
‘정신을 혼란시키는 환진은 단기간에 만들기 힘들어. 차라리··· 태백화음진(太白和音陣). 그래, 이게 좋겠군.’
정확히는 태백화음진이 아니다.
내 역량껏 가볍게 만들 수 있게 변환시킨 것이다.
가볍게 제조한다지만 그 위력을 결코 약하지 않으리라.
설비연은 내가 진법을 만드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진법의 기틀을 구성하는 데에는 보통 수십 일이 소요되곤 했지만, 난 달랐다.
꼬박 하루 동안 진법의 기초를 닦았다. 이미 옥 팔찌를 중심으로 기가 순환하고 있었으며, 옥 팔찌 내부엔 기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제갈교아가 신병이기를 만들려고 했다면 소림사의 개파조사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했던가?
‘그래도 혼이 담겼던 옥 팔찌가 없었으면 이렇게 시도하지 못했겠지.’
옥 팔찌는 내 해우심법과 반응하여 더 세차게 기를 빨아들였다.
‘만약 이것에 동적인 구결을 새겨넣는다면, 이걸 들고 다니면서도···.’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진법 자체를 옥 팔찌에 새겨놓고, 이동하면서도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된다. 굳이 내가 사용하지 않더라도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방패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두 여인이 떠오른다.
처음으론 이 팔찌를 선물한 여인.
그리고···.
‘암천제가 끝날 때까지 확실히 완성해야겠군. 언젠간 그녀가 내 곁으로 올 테니까.’
발랄한 여인의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자 옥 팔찌를 중심으로 한 진법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설비연은 멍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위력도 아직 대단치 않고. 하지만 혹시 있을 위협에 대비할 정도는 되겠지. 옥 팔찌의 기운이 미치는 곳에서 너와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내력을 끌어올리면, 옥 팔찌에 담긴 힘이 냉기를 담은 음(音)을 내뿜을 거다. 당연히 대비하지 않은 자들은 멈칫할 수밖에 없겠지. 그 정도만 시간을 벌어도 암습엔 대비할 수 있다.”
뭐 진법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고수라면··· 그게 의미 없긴 하겠지만.
이제 이틀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설비연의 반응은 달랐다.
“고작··· 고작 이틀 만에···? 대체 단목세가는··· 아니, 주공께선 대체?”
그녀는 매 순간 경악할 뿐이었다.
무림인의 입장에선 진법은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학문이다. 전문 진법가가 아닌 내가 진법을 구축하는 게 놀라울 만했다.
“너도 진법을 배워보는 게 좋겠군. 북해빙궁의 진법서도 있지 않나?”
“그때 겨우 가지고 온 게 있긴 합니다.”
“그래, 언젠간 북해빙궁을 일으키려면 넌 그곳의 모든 것을 익혀야 할 때가 올 테니까.”
“···?”
설비연이 멈칫한다.
“제가 북해빙궁을 일으키는 순간이 오리라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그러지 않겠어?”
설비연은 내 말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침상에 누웠다. 설비연은 이 해남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몇 달 동안 그녀를 지켜보며 날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피곤해서 자야겠군. 옥 팔찌에 문제가 생기면 날 불러라.”
“···예, 주공.”
설비연의 낮은 목소리와 동시에 잠에 빠져들었다.
* * *
해남도 해구현.
중심부에는 암천회의 분타가 존재했다.
암천회의 본타는 본래 해남파가 존재했던 여모봉(轝母峰)에 터를 잡고 있다. 하지만 암천제의 참가신청을 위해서 여모봉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해구현의 중심부로 가서 장천이라는 가명으로 참가를 신청했다.
분명한 것은 암천제에 참가하는 숫자로 따지면 용봉지회보단 훨씬 적었다는 점이다.
용봉지회는 예선만 여러 번 치르고도, 본선에 64명이 진출할 정도로 참가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암천회는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너무 큰 단점이 있었기에 웬만한 이들은 참가조차 신청하지 못한다.
이번에 암천제에 참가하는 것은 나뿐이다.
설비연은 수하로서 날 보조할 것이다. 둘 다 참가하는 것은 힘을 나누는 꼴이었다. 용봉지회처럼 남녀 구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참가신청을 하자.
그 자리에서 내게 강철로 만들어진 작은 패를 내어준다. 그 위에는 정교한 솜씨로 300이라는 숫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암천회 소속으로 보이는 무인.
그녀는 역시 암천회 답다고 생각될 정도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었다.
“젊은 분들의 신청이군요. 암천제의 규칙은 잘 알고 있나요?”
“예, 알고 있습니다. 다만, 참고해야 할 것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혹시 모르는 일.
나는 암천제의 참가신청을 담당하는 여인에게 주의할 점을 들었다.
암천제의 예선 진행 방식은 아주 간단한 하나의 틀 안에서 진행된다.
참가를 신청하는 암천회가 직접 만든 강철로 만들어진 패를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10개를 모으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암천제에 참가한 모든 이들의 표적이 되었단 말씀이죠. 죽립을 눌러썼음에도 어려 보이는 건 문제라고요? 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분타 내에선 절대 습격이 없을 거예요. 나가자마자 무서운 아저씨들이 잔뜩 몰려올 수도 있답니다? 호호호호!”
그녀는 즐거운 듯 내게 암천제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몰랐던 것도 종종 있었기에 새겨듣는다.
- 주공, 혹시나 하여 바깥을 살펴보고 왔습니다. 역시나 암습 기회를 노리는 이들이 보이더군요.
- 좋군.
- 예,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설비연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들었다.
결국은 강철패 10개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직접 하나하나 수색해가며 찾는 것보다, 그들이 찾아오는 편이 훨씬 좋았다.
“이번엔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이 참가하니까요. 주의하세요. 정말 힘들면 이 누님의 처소에 찾아와도 된답니다? 호호호.”
처음 암천회의 소회주인 갈유화를 만났을 때,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나 싶었다.
다짜고짜 내 손목을 잡으려 들더니,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라니 뭐니 헛소리를 했었다. 사실 중원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해남도에 머물고 있으니 그녀가 ‘정상’ 범주에 들어간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이게 정상이겠지.’
난 참가신청을 받는 여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곤 몸을 돌렸다.
이제 바깥으로 나가면···.
“크하하하! 애송이 놈! 작은 문파 출신이 이 해남도에서 하북살귀(河北殺鬼)님을 만난 것을 후회해라! 네놈의 강철패는 내가 가져가겠다!”
눈썹부터 턱까지 기다란 흉터가 새겨진 사내.
살벌한 눈빛을 자랑하며 내게 달려든다. 하북살귀라는 별호로 보면, 아마 처음은 정파 출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몸이 참으로 날렵하다. 순식간에 그가 내 앞까지 다가온다.
하지만.
“크하하하···? 아아악!”
스걱.
설비연이 순식간에 하북살귀의 팔을 베어버린다. 이미 그녀가 움직일 것이라곤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속엔 자비란 없었다.
“미, 미친···! 네놈은 뭐야!”
“하하! 천하의 하북살귀도 다 죽었군! 네놈이 실패했으니··· 이젠 나 흑상귀 어르신이 나설 차롄가!”
나는 참가 접수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신청했다.
보통 암천제에선 실력에 자신 없는 이들이 마지막에 신청하여 어부지리를 노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그 전략도 흔한 수준으로 전락하여, 암천제 참가자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나?
하지만 그 상황은 그 반대였다.
연속으로 사파의 마두 다섯이 내게 덤벼왔다.
마지막엔 설비연이 다른 이를 상대하고 있어, 놈이 내 근처까지 진입해왔지만···.
난 천유보를 밟아 그의 뒤를 점하고, 마혈을 짚어버렸다.
무공의 고수가 전투에서 점혈을 당하는 것은 상당한 수준 차이를 의미한다. 설비연이 휘두른 검에 피가 낭자할 때는, 모두들 피에 취한 듯이 달려들었지만···.
‘이놈을 제압하니 오지 않는군.’
그래도 퍽 이름이 알려진 인물인가 보다.
그의 손에는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뭐 마혈을 점했기에 움직이진 못하고 있었지만.
“네놈의 이름은?”
“혈살마조(血煞魔爪)···.”
“내가 오늘 기분이 좋은 걸 다행으로 여겨라.”
난 그놈의 품속에 모셔둔 강철패를 빼앗았다.
내가 처음으로 받은 것을 제외하곤 벌써 다섯 개를 얻었다.
이제 네 개만 더 모으면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본래 암천제의 참가자들은 꼭꼭 숨어서 기회를 엿보는데, 운이 좋게도 내게 마구 덤벼들어 쉽게 강철패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빠른 것은 아니었다. 이미 유력한 후보들은 본선에 진출한 상태였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너 같은 놈은 들어본 적도 없다.”
난 놈의 점혈을 풀어주었다.
그는 강철패를 뺏겼음에도 실력 차이를 알았기에 이젠 덤벼오지 않았다.
“이제 막 무림에 나왔거든.”
“이제 막 나왔다고?”
“그래.”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림에 나왔다.
단목세가 지부에서 부지부장직을 맡거나, 용봉지회에 참가한 것 그리고 무림맹의 흑룡단에 들어간 것은 준비 과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난 진정한 의미로 무림에 나섰다.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네 이름이 뭐지?”
“장천.”
나는 설비연과 함께 강철패를 들고 은소 객잔으로 돌아갔다.
묘한 적막감이 암천회 분타에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