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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가 끝이 났다.
단목장룡은 명실상부 유일한 암천제의 승리자였다. 보통 암천제는 상위 열 명에게 상품을 나누어주지만, 싸우기도 전에 기권한 이들에겐 상품을 주지 않는다. 운이 좋게도 강자들을 피해 살아남은 마두들은 단목장룡과 싸움이 결정되자 줄줄이 기권했다.
암천제의 상품이 탐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품을 받자고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순 없었다. 그 혈발악존의 목도 베어버린 단목장룡. 그들은 상품보다 자신의 목숨이 더욱 소중했다.
그렇기에.
단목장룡은 암천제의 상품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영약과 장인이 만든 신기한 병기, 금은보화 그리고··· 수라마검.
암천제의 상품 수여는 용봉지회처럼 사람들이 다 보는 곳에서 주진 않는다. 애초에 그런 광경은 딱히 쾌락을 선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암천제가 끝나면 그냥 또 다른 잔치가 열린다. 암천회의 숙수들이 힘을 합쳐 대규모로 음식을 만들고, 술을 무한정으로 푼다.
해남도에선 사실 이런 축제가 일 년에도 몇 번이나 열린다고 한다.
중원 어느 곳도 이렇게 막 풀어대는 곳은 없으리라. 단목장룡은 그 모습을 보고 재정은 괜찮을까?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암천회를 걱정할 순 없지.’
그러고 보니 암천회와 처음 엮이게 된 이유는 유가상단이다.
그때는 유가상단를 배후에서 조종한 것이 암천회라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다. 갈유화의 몸에 배어 있는 냄새로, 유가상단에서 맡았던 최상급 미약의 향과 비슷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암천회는 아마 많은 현에서 그런 미약을 판매할 것이다.
그것에 중독된 이들은 많은 돈을 요구하더라도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해남도는 중원 전체에서 돈을 벌어들이고, 이곳에서 펑펑 써대는 것이다.
대체 이런 곳을 만든 이유가 뭔지 궁금해졌다.
‘암천회주에게 직접 들으면 되겠지.’
지금 암천회주는 해구분타에 있다고 했다.
단목장룡은 설비연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갈유화의 말도 들었고, 칠교공자에게 정보도 얻어냈더라도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것이 정말 수라마검의 무공서가 맞는지 말이다.
그리고 암천회에서 제공하는 다른 상품도 끌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신병이기라 할 수는 없었지만, 특이한 재질로 만든 갑옷이라든지 강철과 부딪쳐도 흠집이 나지 않는 검이라든지. 초절정 이상이 되면 큰 차이가 없겠지만, 그 밑의 경지에선 병기의 차이가 확실히 난다.
이 상품들은 날 믿고 기다려준 5조 조원들에게 선물할 예정이었다.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단목장룡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설비연, 너도 상품 중에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해.”
설비연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한다.
“만약 수라마검이 진본이라면 제가 분석해봐도 되겠습니까?”
수라마검.
천마신교에서도 꽤 높은 수준의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미 빙백신검이라는 그에 못지 않은 절세 무공을 알고 있지만, 수라마검을 분석하려는 이유는 뻔했다. 적을 더 잘 알기 위해서. 파훼법을 만들어놓으려는 것이다.
단목장룡은 길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니, 설비연의 입장에선 고민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냥 네가 가져라. 아마 그 무공서를 분석하다보면 너도 얻는 게 있을 거야.”
“정말입니까···?”
이미 단목장룡은 수라마검을 잘 알고 있었다.
빙백신검과 수라마검. 굳이 비교하자면 빙백신검이 더 희귀한 무공이다. 하지만 수라마검 또한 분석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설비연이 수라마검을 보면 분명히 실력의 상승을 꿰할 수 있으리라.
처음엔 단목장룡과 설비연의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해남도에서 군말없이 그의 지시를 다 들어주었기에 그 정도는 충분히 그녀에게 내어줄 수 있었다.
당연히 설비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지 그 무공을 분석해보고 단목장룡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만약 그것이 진짜라면 그 가치는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니까.
‘대체 이 사람은···.’
처음엔 단목세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본 단목장룡은 출신 배경의 힘으로 성장할 수준이 아니었다. 혈발악존을 시작으로 나찰마궁의 뢰극찰까지 이겼다. 그녀는 지금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단목장룡을 인정하고 있었다.
“너무 놀랄 필욘 없다. 네가 마교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사실 처음에 해남도로 올 땐, 조금 걱정했었거든. 네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마구잡이로 행동할까 봐 말이야.”
“그건···.”
설비연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마 무림맹을 나온 직후 비무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며, 단목장룡의 발목을 잡았으리라. 만약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네.’
설비연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아마 평생토록 잠자리에 누우면 이부자리를 발로 차게 되는 경험이었으리라.
“가자.”
“예.”
그렇게 두 사람은 해구분타에 도착했다. 분타의 입구에서부터 기척을 숨기고 입구를 감시하는 무인들이 느껴진다. 며칠 전에 들렸을 때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입구에 있던 암천회의 무인이 단목장룡에게 다가와 인사한다.
“장 대협, 회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
“절 따라오시지요.”
분타주실에 도착하자.
무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회주님, 장 대협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들라 하라.”
드르륵.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아마 내부에 있던 다른 사람이 열어주는 것이리라.
그리고 단목장룡의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사람은.
“크으음··· 인사드립니다. 장 대협.”
“···.”
한쪽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든 갈청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갈유화를 바라본다.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시선을 내리깐다. 아마 갈유화가 그랬을 것이리라 있었다.
“청아.”
고개를 숙인 갈유화에게서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말에 갈청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장 대협.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모두 제 부족함에 일어난 일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
“···?”
갈청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단목장룡은 대충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예상하고 있었다. 만약 그 전에 암천회주와 만나지 못했다면, 갈청이 찾아왔을 때 긴장했으리라.
그리고 설비연을 놀랐다.
그가 암천회의 직계라는 걸 이미 눈치챘다. 하지만 단목장룡에게 저리 허리를 숙여 인사하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젠 이해하는 것을 넘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단목장룡이라면 받아들여야 할 판이다.
그리고 설비연은 그것에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됐소.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법이니.”
내가 사과를 받아주자 갈청이 벌떡 허리를 편다.
뒤에서 갈유화가 입술을 움직이고 있고, 갈청의 표정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니···.
‘혼내는 모양이군.’
갈청이 단목장룡에게 다시 허리를 숙인다.
그러자 높은 단상 위에 앉아 있던 암천회주가 단목장룡을 부른다.
“이리 와라.”
단목장룡과 설비연이 그의 앞에 선다.
사파의 지존 중 하나 갈천능. 그의 앞에 단목장룡과 북해빙궁의 생존자이자 흑룡단의 단주인 설비연이 서있다. 무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일이다. 암천제에서 정파인이 우승했던 일은 한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갈천능은 그마저도 즐거웠다.
만약 그가 마(魔)에 사로잡혀 있을 때라면 상황이 많이 달랐을 수도 있었다. 하지마 그는 극마에 이른 후에 많이 달라진 상태다.
“이번엔 수하도 같이 데려왔군. 네가 설우종의 딸이더냐? 아비를 많이 닮진 않았군.”
“···!”
설비연의 눈이 부릅뜨여진다.
설우종. 북해빙궁의 마지막 궁주. 암천회주는 그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 놀랄 필욘 없다. 북해빙궁이 새외에 있다고 하지만 그도 강호 무림을 경험하로 온 적이 있었지. 나보단 약했지만, 그래도 봐줄 만한 사내였는데··· 뭐 지나간 일이니까.”
그러다 문득.
암천회주의 눈빛이 깊어진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거슬려서 참을 수가 없군.”
뚜벅뚜벅.
갈천능이 다가와 설비연의 앞에서 선다. 그녀는 당황과 공포로 눈이 물들었다. 그녀의 경지는 결코 낮지 않았다. 정확히 따지자면 그녀의 경지는 초절정의 초입. 하지만 실전 경험은 보통의 초절정고수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극마에 이른 고수의 저 깊은 눈빛은 감당할 수 없었다.
단목장룡조차 긴장하도록 만들었으니까.
“회주님.”
단목장룡이 말하자 암천회주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한다.
그는 설비연의 안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빙정을 누가 이따위로 활용한단 말인가?”
“···.”
설비연의 한쪽 눈에는 빙정이 박혀 있었다. 그녀 나름대로 빙정을 숨기고 활용할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흑룡단주가 조언한 것이라 했었나?
“눈알이 없다면 다른 눈알을 박아넣으면 될 일이지. 빙정에 담긴 생명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게 무슨···.”
설비연의 목소리가 떨린다.
“내가 잃어버린 네 눈을 되찾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지.”
그렇게 말한 암천회주가 날 바라본다.
“사위가 될 사내의 수하인데, 이 정도 선물은 괜찮겠지?”
“사위···?”
설비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암천회주는 더 진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단목장룡 너에게도 선물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저 뒤에 조신한 척 앉아 있는 유화가 얼마나 날 닦달하던지 말이다.”
단목장룡이 뒤를 바라본다.
거기서 어울리지 않게 수줍은 미소를 짓는 갈유화의 모습이 보였다.
좋은 선물일까?
‘사위가 될 사내라···.’
갈천능이 단목장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나는 부분이다. 물론, 어떤 선물을 준다고 할지라도 그녀와 혼인할 생각은 없었다. 암천회로 들어가서 그들의 세력을 이용하는 것도 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과연 생각대로 될 것인지는 의문이 남아 있다.
더군다나 갈유화와는···.
단목장룡의 시선을 알아찬 갈유화가 퍼뜩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는 성급하게 다가가지 않기로 했다. 최근 단목장룡을 보며 그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가끔 보여주는 냉혹한 모습과는 달리 마음씨가 착한 사내다.
언젠간.
그를 따르다 보면 마음을 알아줄 날이 있지 않겠는가?
‘난 진심을 원해.’
오히려 여기서 확답을 받아내려 했다가는 역효과가 나게 된다.
갈유화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후후, 아버지. 장난이 너무 과하세요. 사위라니요? 단목 공자님께서 부담되겠어요.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러냐?”
“네에.”
갈유화의 말에 갈천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말대로 장난 반 진담 반이었다. 단지 단목장룡을 떠본 것에 불과했다.
“알겠다. 장난은 그만하지. 청아, 상품들을 가져오거라.”
“예.”
갈청이 후다닥 뛰어나간다. 아랫것들이 가져와야 하지만, 오늘은 갈청이 그 역할을 맡았다.
하나씩 쌓여가는 암천제의 상품들.
몇십 년 된 하수오로 담근 술, 명장이 만든 병기, 은자와 금자가 가득 찬 목궤, 중원 최대 전장이라는 만금전장에서 발행한 어음···.
쌓여가는 상품들을 보며 단목장룡이 눈을 빛낸다.
병기들은 하나같이 뛰어났다. 뇌왕검에 미치진 못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무기들보다 훨씬 좋았달까? 눈으로 봐도 그것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상등품이다.
검도 있었으며, 안에 입어서 도검을 막아준다는 보의(寶衣) 같은 것도 있었다. 그것들은 전부 흑룡단의 조원들에게 선물하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서책을 가져오는 갈청.
저것은 수라마검이 분명했다.
“수라마검은 꽤 괜찮은 무공이야. 대성하면 암천검과 맞먹을 정도로 좋은 무공이더군. 단목장룡 네가 한번 읽어본다면 확실히 배울 점이 많을 거다.”
이미 단목장룡은 수라마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갈천능에게 그것을 과시하진 않았다.
“감사합니다.”
암천회주는 단목장룡의 표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당연히 크게 기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아마 해남도로 왔을 때부터 우승을 생각했으리라. 상품을 보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오히려 갈천능은 실망했을 수도 있었다. 자고로 사내란 작은 일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 암천회주는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놀라게 해줄 수도 있지.’
단목장룡이 사위가 되지 않더라도 줄 선물이 있었다.
나찰마궁, 혈세귀막, 암천회.
모두 강대한 세력을 가진 문파였다.
각 문파의 특징이 있었지만, 암천회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영약의 제조술이 극한까지 발달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원 대부분의 지역에 작은 분타가 하나씩은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즐겁게해주는 몽환을 배포하고, 매일매일 막대한 자금이 암천회주의 손으로 들어온다.
돈은 곧 힘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하지만, 암천회쯤 되면 돈이 필요한 자들이 진귀한 물건을 들고 찾아오는 법이다.
“딱히 기뻐하지 않는구나?”
“아닙니다. 기쁩니다.”
단목장룡은 당연히 기뻤다. 암천제에서 우승은 계획의 일부였을 뿐이다. 꼭 이뤄야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위험성도 존재했기에 우선순위는 낮았다. 하지만 운이 좋았달까? 여러 상황이 겹치며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만약 혈세귀막과 나찰마궁이 처음부터 단목장룡을 크게 경계했다면···.
아마 이곳에 단목장룡은 없었으리라.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는 단목장룡이다. 자존심이 상한다고 스스로를 높여봤자 오히려 자신이 손해였다.
“아까 말한 대로 네게 줄 선물 또한 준비했다. 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당장 사위가 되라는 말은 아니니까. 유화야 가져와라.”
“네, 아버지.”
갈청이 상품을 가지러 갔던 곳과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갈유화.
그녀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꽤 먼 곳에 선물이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뒤 갈유화가 꽤 커다란 목궤를 들고 나타났다.
그것을 본 갈청이 입을 꾹 다문다. 갈유화에게 참교육(?)을 당한 그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건···.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딴지를 걸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며칠 전, 갈유화의 진심 어린 교육에 눈물까지 머금었던 그였다.
“이건···?”
“천향옥로단(天香玉露丹)이다. 유화야, 목궤를 열어라.”
“네, 아버지.”
목궤를 연다.
커다란 목궤 안에는 수 겹의 비단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음푹 패여진 중앙에는 남색의 빛을 내는 환단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외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영약이었다. 그 가치를 쉬이 매길 수 없는 그런 영약.
‘천향옥로단? 그런 이름의 영약은 들어본 적이 없군.’
단목장룡이 이제까지 취한 청성파의 영약이나 화산파의 영약 등은, 관심이 있는 자라면 이름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하지만 천향옥로단은 다르다. 처음 들어보는 영약이다. 더군다나 스스로 빛을 내고 있다니? 빛을 발함에도 외부로 기운이 흘러나가지 않는다. 얼마나 잘 만들어진 영약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본회의 보물 중 하나다.”
“보물··· 입니까?”
“그래, 본디 본회의 조사께선 암천회를 무가(武家)로 만들려고 하지 않으셨지. 암천회의 시작은 약방이었다. 천지만물의 기운을 하나의 점으로 담아내는 예술. 그것이 바로 연단(鍊丹)이지. 천향옥로단은 그 극에 달한 영약이라 생각하면 된다. 네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지.”
영약이라···.
가장 일반적이면서, 특별한 선물이다. 이미 암천제의 상품 중에는 각종 영약이 있었다. 하지만 암천회주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단순히 내력을 늘려주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단목장룡의 그 예상은 정확했다.
천향옥로단은 몽환과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약. 몽환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여 쾌락을 선사한다. 몽환에 중독된 이들은 웬만해선 그것의 쾌락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허나, 그 전에 네가 알아둬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천향옥로단은 분명히 암천회의 최고 보물이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영약이기도 하다. 이것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다면 네 내력은 되려 천향옥로단에 빼앗기고 말 것이다. 어쩌면 너의 정신마저 망가져 버릴 수도 있지.”
정신마저 망가진다?
대체 어떤 영약이기에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내력을 천향옥로단에 빼앗길 수도 있다는 말은···.
“먹어서 취하는 종류의 영약이 아니군요.”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저 신물(神物)에 담긴 내력을 흡수하는 것이지. 네가 가지고 있던 그 팔찌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암천회주가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니 한 번에 모든 것을 취하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네 역량에 맞는 만큼 저것에서 내공을 얻어가면 된다. 물론, 천향옥로단이 주는 것은 내력만이 전부가 아니지만 말이다.”
씨익.
암천회주가 미소를 짓는다. 사실 이것을 내어준 것은 여러 의도가 있었다. 단목장룡은 이제 바로 무림맹으로 떠나리라. 그렇게 되면 갈유화랑 단목장룡은 당분간 만날 수 없었다. 단목장룡을 해남도에 더 묶어두는 것은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 기운을 네 한계만큼 모두 흡수하려면 최소 일 년은 걸릴 것이다.’
암천회주 또한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모두 흡수했다.
저마다 그것을 흡수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한다. 천향옥로단은 내공뿐 아니라 다른 것도 선물해준다.
“어떠냐? 이런 기회는 흔히 오지 않는다. 단언컨대 네가 기운을 모두 받아들인다면, 소림의 대환단보다 효과가 좋다고 확신한다.”
“단점은 정확히 어떤 것입니까?”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
단목장룡의 말에 암천회주가 진한 미소를 짓는다. 여기서 거짓말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여기서 작은 거짓말로 단목장룡을 유혹하게 되면 계획이 모두 일그러진다. 천향옥로단을 내어주고도, 단목장룡과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었다.
“천향옥로단은 지독하면서도 아름다운 향(香)을 품고 있다. 내력을 흡수하며 그 향은 신체에 쌓인다. 자칫 잘못하다간 자기 몸에 매료되어 잔인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단목장룡이 슬쩍 갈유화를 바라본다.
그녀의 몸에서 묘한 내음이 난다고 생각했었다. 대체 어떤 짓을 해야 그런 몸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갈유화는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흡수한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을 알아챈 갈천능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 유화는 우리 중에서도 그 향을 가장 잘 다루는 아이지.”
갈천능이 설명을 더 이어간다.
“그리고 보통 저 기운을 흡수하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나 같은 경우에는 20대 초반에 시작하여 딱 1년이 걸렸었지. 그리고 아까 말한 대로 정신이 망가진다거나 내력을 빼앗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단목장룡 너라면 그것은 극복할 수 있겠지.”
단목장룡이 침묵한다.
이제 무림맹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단목장룡이 옆에 있는 설비연을 바라본다.
현재 범람하는 정보를 다 받아들이지 못한 듯이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 잠시 이곳에 남는 게 좋을 것 같군.’
설비연이 단목장룡의 생각을 바꾼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사실 이런 기연은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내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내공. 갈유화에게 듣기로 뢰극찰도 5갑자에 달하는 내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뭐 내력의 활용이 단목장룡의 비해서는 훨씬 못하긴 했지만 말이다.
단목장룡은 분명히 강하다.
이미 또래에서는 적수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기성 무림인이라면? 이미 오랜 세월 자신만의 무공을 갈고 닦은 고수들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하다 할 수 있었다. 단목장룡은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물건이야.’
저 기운을 흡수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도전의식이라 말할 수 있을까? 위험이 있다면 반대급부로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클 것이다. 대부분의 영약은 무조건 복용자에게 좋지만, 천향옥로단은 보통의 영약과는 확실히 달랐다.
“어떻게 하겠나?”
“회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지요.”
단목장룡의 대답에 갈천능이 더 진한 미소를 지었다.
“허나, 하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라.”
“제가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모두 흡수하게 되면 어찌 되는 겁니까? 이것은 암천회의 보물인데 제가 그것을 취한다면···.”
“하하하하! 괜한 걱정이다. 인간이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품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만약 모든 기운을 흡수한다 해도 우리는 다시 기운을 채워놓을 수 있다.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고 마음껏 취해보아라. 물론, 한 번에 많은 양을 취하려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니 적당한 양을 꾸준히 취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겠지.”
갈천능의 의도대로 흘러간다면, 그 과정에서 갈유화와 단목장룡은 정이 생겨날 것이다.
천향옥로단은 폐관실에서 취한다. 폐관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인간이라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 일을 갈유화에게 맡기리라.
갈천능이 슬쩍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