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236)

* * *

“드디어 단목장룡이 하남성에···!”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공자님, 어제 있었던 일을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걸요.”

흑색 무복을 입은 무인이 머리에 영웅건을 둘러쓴 귀공자에게 속삭였다.

“그게 무슨···?”

뜻밖의 인물

“꺄아아악-!”

비명이 들린다. 단목장룡은 바닥에 쓰러진 거연창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설비연도 당황했다. 점창파의 장로와 싸우는 것은 어찌어찌 잘 풀어낼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를 죽인다면? 아무리 단목장룡이라 할지라도 그 문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정파의 구파일방은 평소 서로를 견제한다고는 하지만 위기가 생길 때마다 뭉쳐 왔다. 그리고 지금 무림맹은 구파일방 중심으로 새롭게 편성되고 있었다. 적룡단의 단주였던 복마진인(伏魔眞人)이 새로운 맹주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 오대세가도 아닌 세가 사람이 점창의 장로를 죽인다?

무림맹의 주축 세력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였다.

“주……!”

단목장룡이 염병춘이나 주서호가 다시 찾아오면 직접 해결한다고 말했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았던 설비연이다. 하지만 거연창을 죽이는 것은 말려야 했다.

그것이 단목장룡을 위한 길이었기에.

“……!”

설비연이 단목장룡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의 눈동자가 설비연을 향한다. 그녀는 순간 단목장룡의 눈빛에 움찔하고 말았다.

“왜? 설마 죽이기라도 했을까 봐?”

“…….”

설비연의 시선이 아래를 향한다.

거연창은 눈을 감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내상이 심한 것 같아서 혈을 자극해 주었다. 뭐 무림의에게 가야 확실히 치료할 수 있겠지만 말이야.”

단목장룡은 검을 휘두르는 순간까지 고민했다.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목까지 차올랐다. 감히 자신의 사람을 건드린 것에 확실한 벌을 주어야겠다는 생각.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마음을 돌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의 마음이 격해진 것엔 천향옥로단의 영향이 있는 듯했다. 거기에 휘둘릴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단목장룡은 생각을 바꾼 것이다.

“거기 세 사람.”

흠칫!

반야문의 문주를 비롯하여 염병춘과 주서호가 몸을 떨었다. 단목장룡의 눈빛이 닿자 당장이라도 도망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거연창이 죽진 않았다는 사실과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는 무인의 자존심이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만약 단목장룡이 거연창을 죽였다면,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으리라.

“이리로.”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지 않으면 내가 간다.”

무시무시한 단목장룡의 말에.

그들은 억지로 발을 움직여 단목장룡에게 다가왔다.

“무인은 검으로 말한다지? 너희도 같은 생각인가?”

“…….”

“그게…….”

염운경이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그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거연창처럼 비무로 일을 해결하려는지 묻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랜 세월 서평현에서 반야문을 키워 온 염운경. 그의 판단력은 빨랐다.

“염병춘! 주서호! 얼른 사과드리거라!”

“죄송합니다…….”

“저희가 귀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염병춘과 주서호가 사과한다.

단목장룡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젓는다.

“너도 사과해야지?”

“…….”

염운경이 주변을 둘러본다.

흔히 볼 수 없는 구경거리에 군중이 몰려 있었다. 반야문의 명성은 오늘로 크게 추락하리라. 하지만…….

이미 거연창 장로는 단목장룡에게 당해 피를 물고 쓰러져 있다.

그걸 보자 사과를 하는 편이 저리 곤죽이 되도록 당하는 것보단 낫다고 판단한다.

“죄송합니다, 단목 대협! 저희가 두 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례를 범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여 확실하게 사과한 염운경.

만약 단목장룡이 거연창에게 패배했다면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었으리라. 단목장룡은 무뚝뚝함을 유지한 채로 말했다.

“입으로만 하는 사과는 아니길 바라지. 갑시다, 설 조장.”

“…예? 아……! 알겠습… 알았… 갑시다!”

설비연은 순간 단목장룡에게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와의 주종 관계는 무림맹에 도착하는 순간 끝이었다. 다른 이들도 있으니 단목장룡이 설 조장이라고 말한 것이겠지만… 뭔가 아리송한 느낌이다.

단목장룡과 설비연이 그렇게 떠나가고.

염운경은 이 일을 대체 어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성의를 보이라는 것인가……? 어떻게…….’

그러던 중, 멍청하게 서 있는 염병춘의 얼굴이 보인다.

아들이었지만, 이 일의 모든 원흉은 염병춘이었다. 당연히 짜증이 난다.

“갈 장로를 부축하거라! 의방에 가야 할 것이 아니냐!”

“아… 옙!”

죄인이 된 주서호와 염병춘이 허겁지겁 거연창을 부축했다.

* * *

다음 날.

단목장룡과 설비연이 묵은 객잔에 염운경이 찾아왔다.

그는 잠도 이루지 못하고, 단목장룡에게 어떤 성의를 보여야 할까 고민했다. 그래서 도달한 결론. 자미 객잔 앞에는 말 세 마리가 끄는 삼두마차가 떡하니 서 있었다. 단목장룡과 설비연은 큰 봇짐을 메고 있었다. 삼두마차라면 그들의 상황을 고려한 똑똑한 사과의 선물이라 결론지었다.

물론, 단목장룡의 앞에 서니 조마조마한 마음에 잔뜩 긴장했지만 말이다.

“으음, 마차인가?”

“혹,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제가 다른 것을…….”

“아니다. 그래도 말만 나불거리는 사과는 아니군.”

당연하다는 듯한 하대.

왜인지 염운경은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강호에선 힘이 전부라 했던가?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뭐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돌이켜보면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계속 잘 활용해 보지.”

단목장룡의 말에 염운경이 당황했다.

사실 삼두마차는 그가 구매한 것이 아니라 빌린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순간 단목장룡에게 그것을 반납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 하하하……! 제 마음의 선물입니다. 평생 잘 써 주십시오.”

“그러지.”

이미 설비연이 마차 안으로 짐을 옮기고 있었다.

“참, 거연창 장로는 깨어났나?”

“예… 의원 말로는 단목 대협께서 잘 조치해 주신 덕분이라고…….”

“그들의 사과는 무림맹에서 따로 받지.”

“예!”

염운경이 은근히 즐거워했다. 먼저 공격한 것은 점창파의 거연창 장로였다. 혼자 덤터기를 쓰는 듯하여 억울하던 참인데, 점창파에서도 단목장룡에게 내주는 것이 있으면 그나마 쓰린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거연창은 점창의 장로였지만, 이제 무림맹의 장로가 되기 위해 정주로 향하던 길이었다.

아마 두 사람은 무림맹에서 다시 마주하리라.

“다 끝났습니다.”

“고맙소, 설 조장.”

아직 설 조장이라는 말이 어색한 듯 설비연이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단목장룡이 마차를 가져온 세 사람을 마주 본다.

“만약 이번 일로 앙심을 품은 것은 아니기 바라오.”

단목장룡의 말투가 바뀌었다.

“어젠 ‘처음’이라 많이 봐준 것이오.”

“……!”

싱긋.

이것은 경고였다.

만약 이번 일로 뒷공작을 펼치면 다음엔 봐주는 것이 없다는 경고. 반야문의 문주인 염운경은 당연히 고개를 숙여 그럴 일은 없다며 소리쳤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점창파의 제자인 주서호도 마찬가지였다.

무림은 넓다고 했던가?

점창은 그 넓은 무림에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명문 거파였다.

그렇다면 저 앞의 단목장룡은?

단목세가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자체가 태산같이 높았다.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존재. 나이는 단목장룡이 어리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의 앞에서는 나이는 중요치 않았다.

“명심하겠습니다.”

주서호는 자신의 스승인 거연창을 압도적으로 밀어붙이는 단목장룡을 보며 깨달았다.

다시는 저 사내에게 까불면 안 되겠다고.

단목장룡은 그들의 반응을 살피지도 않고, 마차에 올랐다.

세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는 느릿한 속도로 서평현을 떠나기 시작한다.

그걸 지켜보는 세 사람은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단목장룡…….’

그 이름이 세 사람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아마 평생 어제 단목장룡이 보여 줬던 신위를 잊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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