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236)

* * *

제갈강량과 만난 후 내 방에 앉았다.

무영심결.

과연 어떤 무공일까? 난 중원의 절세 무공이라 불리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 그렇다고 하여 자만하진 않아야 한다. 한 예를 들자면, 배교의 이혼대법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심득이 담겨 있는 무공이었다. 긴 역사를 가진 중원. 난 아직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많았다.

‘어디…….’

마치 일기처럼 쓰인 구결.

수려하진 않지만 간결한 필체.

책장을 넘길수록.

무영심결에 깊게 빠져들었다.

* * *

“우리 조의 첫 임무다.”

“……!”

세 사람의 얼굴이 경직된다. 이제까지 그들은 수련만 했을 뿐이다. 임무는 곧 실전. 그들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 또한 이렇게 빨리 그들이 임무를 받을 것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뭐 세상일이라는 게 예상대로 흘러가진 않으니까.

“어떤 임무입니까?”

“…잠시.”

끼이익.

문을 열자 남궁일몽이 문에 귀를 대고 있었다.

“크, 크흠……!”

그는 조장이었기에 우리가 단독 임무를 맡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임무인지는 조장급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 그걸 알아내려 이렇게 염탐하는 것이다. 그가 왜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최근 회동을 가지며 마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기에 이런 행동이 밉상은 아니다.

다만, 조금 귀찮을 뿐

“정말 해가 쨍쨍하군요. 이럴 땐, 물가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백주를 마시면…….”

“남궁 조장님.”

“…죄송합니다. 너무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한 번은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은 없습니다.”

“예…….”

축 처진 남궁일몽.

전혀 불쌍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뒤편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남궁일몽처럼 전각 앞까지 오지 못한 설비연의 모습도 보인다. 이번 일은 설비연도 끼워 줄 수 없었다. 그녀가 있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 설비연, 이번 임무는 함께할 수 없다. 명령이다.

-…예!

명령이라는 말에 뭔가 신난 기색이 느껴졌지만, 뭐 착각이겠지.

그렇게 두 사람을 보낸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조원들의 표정은 아직도 굳어 있었다.

“그리 긴장할 것은 없다. 내가 최근 맡았던 임무처럼 위험하진 않을 것이다.”

“어떤 임무입니까?”

이새붕이 용기를 내서 묻는다.

작긴 하지만 이럴 때 부조장이 저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무림오화 중 한 명인 제갈교아 소저가 실종됐다. 우리는 호북성에 가서 그녀를 찾는 임무를 맡는다.”

“……!”

“미리 말해 두자면, 우리가 제갈 소저를 찾는다는 건 누구에게도 알려선 안 된다. 그렇기에 더 어려운 임무가 되겠지. 그런 만큼 확실히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임무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겠느냐?”

“으으음……!”

모두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한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조연연이다.

“임무에 임하는 자세를 배울 것 같아요!”

“그래, 맞다. 임무에 임하는 자세는 중요하지.”

“헤헤.”

내가 의도한 답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의견을 개진했다는 게 중요하다. 난 내 조원들을 멍청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름의 주관 또한 가지길 바랐다.

“강호의 경험이 부족한 저희가 조장님의 안목을 배울 것입니다.”

단목위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한다.

내게 많은 것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것도 맞다. 잘 말해 주었다.”

모두의 시선이 이새붕에게 향한다. 그는 부담감에 사색이 된 표정으로 아래턱을 덜덜 떨었다. 부조장으로서 부담감이 있으리라. 난 그를 압박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었다.

잠시 뒤.

이새붕이 겨우 입을 연다.

“그… 탐색을 하면서… 실종된 제갈 소저를 찾으면서… 그러니까… 자취를 감춘 사람을 찾으면서 흔적을 발견하고… 아! 혹시…….”

“괜찮다. 틀려도 좋으니 말해 보아라.”

내 말에 이새붕이 말을 이어 나간다.

“오히려 숨는 방법을 배울 수도……?”

오래 고민한 탓일까? 부조장이라는 직책의 부담감이었을까? 정말 원한 대답이 나왔다. 임무에 임하는 자세나 내 안목을 배우는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실종된 제갈교아를 찾으며 그들이 배웠으면 하는 것은.

“정확하다.”

내 대답에 이새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단목위와 조연연이 역시 부조장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 소저는 납치를 당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스스로 몸을 숨겼을 수도 있다. 결국, 흔적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탐색하고 추적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희가 도망치는 법과 숨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중원 무림엔 강자들이 많다. 너희는 분명히 강해졌지만, 언젠가 위험한 순간도 올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임무에서 누군가를 추적하는 것보단 추적하며 어떤 것을 토대로 추적자들이 쫓아오는지 배웠으면 한다. 난 너희가 백발노인이 될 때까지 살았으면 하거든.”

“조장님……!”

모두 감동한 표정을 지었지만…….

“적의 추적을 잘 따돌리기 위해선, 추적술을 익혀야 한다. 이틀 동안 무림맹의 서고에서 추적술과 탐색법과 관련된 서적을 읽는다. 그리고 호북성으로 가며 그것을 실전에 적용해 볼 것이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니만큼 게으름을 피우면 호되게 혼날 것이다.”

세 사람의 표정이 긴장으로 굳는다.

난 미소를 띠며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천무서고(千武書庫)로 출발한다.”

무림맹의 천무서고는 천 가지의 무학이 있다는 서고였다. 무공뿐 아니라 온갖 서적이 갖춰져 있다. 단주급 이상만 출입할 수 있는 비동(祕洞)이 있다고 하지만, 어차피 지금 조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예, 조장님!”

세 사람이 동시에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솔직히 나도 누군가를 추적해 본 경험은 없었다. 다만, 추적과 관련한 무공을 많이 알고 있기에 그들에게 충분히 가르침을 내려 줄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번 기회에 나도 더 공부할 생각이었다. 좋은 상관이 되기 위해선 자존심보다는 겸손이 더 중요하다.

흑룡단의 오 조는 흙냄새 나는 연무장이 아닌, 종이 냄새가 가득한 서고로 향했다.

몇 시진 뒤.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

조연연이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보급대에서 보급품의 운송을 맡았다. 그녀가 무림맹 외성에까지 와서 몸을 쓰는 이유를 맡은 이유는 하나였다.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하는 그녀의 체질 때문이었다. 당연히 지금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다. 무공을 익히는 건 재밌는데, 글을 읽는 것은 정말로 고문이다.

“…….”

슬쩍 책에서 시선을 뗀 조연연.

바로 옆엔 단목위가 목석같이 서서 책을 보고 있다. 사실 그와는 친해지기가 참 힘들었다. 조금 융통성이 없다고 할까?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었지만, 자유분방한 조연연과는 잘 맞지 않는 성격이었다.

‘정말 대단하네.’

그리고 단목위의 옆에는…….

“왜? 힘들어?”

당연히 서고 안이니 소리는 내지 않았다. 천천히 입 모양으로 말하는 이새붕.

“조금 쉬다가 와도 돼. 아니면 내가 알려 줄까?”

친절한 성격의 이새붕.

과거 그는 외모가 출중한 여인이라면 무조건 거리를 두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이 떠나고 부조장이 되었다는 부담감 때문일까? 단목장룡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는 매일 최면에 가까운 자기 세뇌를 하며 여인 울렁증을 극복했다.

처음 이새붕을 보았을 때, 조연연은 솔직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왜 자신을 피했던 것인지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부조장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게 되었을 때, 솔직히 감명받았다.

과거엔 이새붕이 조연연을 피했다면 지금은…….

도리도리!

조연연이 고개를 크게 저으며 책에 얼굴을 박는다.

그 모습에 이새붕이 한 차례 고개를 갸웃하곤, 다시금 서책을 읽는 데 집중한다.

‘후우…….’

가끔 자신도 모르게 그를 피하게 되는 조연연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