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6/236)

* * *

천자산을 오르는 입구.

중턱엔 녹림의 산채가 있다. 그런데 천자산의 길목에 녹림도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주변을 탐색하며 천자산을 올랐다.

꽤 높은 산이다 보니 이런 속도로 정상까지 오르기는 쉽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난 산에 도착하자마자 내공을 활용하여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반경 오 장의 소리는 모두 내 귀로 흘러 들어온다.

천자산의 하부에선 그나마 산짐승들이 활발하게 움직였지만, 점점 고도를 높혀 갈수록 짐승들의 소리가 현격히 줄어든다. 짐승들이 없느냐? 그것은 또 아니었다.

토끼나 뱀, 온갖 곤충들이 사는 곳이 바로 산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한겨울처럼 동면하듯 숨어 있었다. 산짐승들의 아주 미약한 심장박동이 들려온다.

푸숙.

나뭇잎이 잔뜩 깔린 바닥에 손을 집어넣는다.

기절한 듯 잠들어 있는 뱀 한 마리가 잡혔다. 그놈을 몇 번 잡고 뒤흔들었음에도 전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죽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마치 뱀은…….

‘술에 취한 것처럼 잠이 들었다?’

뱀을 원래 있던 곳에 놓아주곤, 뒤를 돌아본다. 조원들은 잔뜩 긴장하여 날 따라오고 있었다.

끔뻑.

이새붕의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

“이새붕.”

“예에엣……!”

깜짝 놀라는 이새붕.

“지금 졸았느냐?”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모두 정지.”

우뚝.

우리는 거의 천자산의 중턱에 도달했다.

잠들어 있는 짐승들.

그리고…….

“지금 갑자기 잠이 밀려오는 사람이 있나?”

“죄송합니다…….”

“갑자기 저도…….”

세 사람 모두가 손을 들었다. 저들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교육했다. 모두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괴감에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수면향이라도 퍼져 있는 건가.’

난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사천당문에서 만독대법을 받아 독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 또, 최근엔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모두 취해 버렸다. 웬만한 것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조원들은 다르다. 그들은 무공을 익히긴 했지만, 이런 것에 내성이 없다.

‘주변의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위로 가면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만약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이 기운이 강해진다면? 조원들이 산에서 덜컥 잠이라도 들어 버리면? 내가 모두를 보호할 순 없었다.

‘어쩔 수 없군.’

내게 조원들은 무조건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 수하이자 동료였다. 그들을 믿고 일을 맡기고, 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오기를 부려 정상까지 함께할 수는 없다.

“너희는 하산한다. 마을로 가지 말고, 산의 입구에서 우리가 찾아 놓았던 은신처에서 은신하고 있는다.”

“……!”

“명령이다.”

분한 표정의 이새붕.

그는 입술을 깨물며 내게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나약하여…….”

지금은 그들을 어르고 달래 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일일이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다. 스스로 판단할 것이다.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말이다. 이번 일과 관련해서 나도 대책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조원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흑룡공을 활용하여 흔적을 최대한 지우고 하산해라.”

“예, 조장님.”

조원들이 내려간다.

난 그들의 속도를 맞춰 주느라 속도를 최대한으로 줄인 상태였다. 내 실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한다면…….

‘천자산을 오르는 것쯤이야.’

풀쩍!

나뭇가지 위에 올라선다. 바닥을 밟으면 나뭇잎 소리가 크다. 오히려 나무를 타서 산을 오르는 편이 더 소음이 적었다.

탓! 탓탓!

그렇게 나는 나무를 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중턱을 넘어서니 산채도 발견했다.

그곳엔 녹림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중간에 발견한 산짐승들처럼 잠에 빠져 있었다.

킁킁.

중턱을 넘어 산의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묘한 향이 코를 간질였다.

물론, 내게 영향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이 ‘향’으로 모두를 잠에 빠지게 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

그렇게 정상에 가까워졌을 때.

또 다른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검을 든 무인이라면 흔히 맡을 수 있는 냄새. 바로 비릿한 혈향이었다.

끼아아아아……!

마치 까마귀가 절규하는 듯한 소리.

소음의 발생지로 빠르게 뛴다.

“…….”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참으로 기묘했다.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보이지 않는 벽에 몸을 던진다. 그곳에 닿은 까마귀들의 몸은 흐물흐물 녹아 공중에서 흐른다. 보이지 않는 벽 주위로 시뻘건 피가 잔뜩 고여 있었다. 제대로 벽에 닿지 못한 까마귀들. 몸의 반절이 날아간 상태에서 바닥에서 비명을 질러 대고 있다.

괴이한 광경에 잠시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설마…….’

눈을 감는다.

그 광경이 잔인하여 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은 한계가 있었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후각을 봉하면,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해진다. 바로 기감이었다. 주변에 기가 어떻게 흐르는지 느끼려 했다.

‘그렇구나.’

나무에서 뛰어올라 보이지 않는 벽 바로 앞까지 도달한다.

그곳에 손을 얹는다. 손끝에 뇌전이 인다. 마치 내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듯이 발광하고 있었다. 조금 따끔하긴 했지만, 까마귀처럼 내 손이 녹진 않았다.

‘이 진법은… 까마귀의 생명을 먹어 치우고 있다. 까마귀의 사체에서 수면향이 만들어지고 있어.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던 거야.’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런 의문은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강호 무림에는 온갖 무공이 존재한다. 타인의 진원진기를 먹어 치우는 나찰마궁의 무공도 있었고, 흔히 흡성대법이라 불리는 사공(邪功)도 존재한다. 심지어는 인간의 혼을 이동시키는 무공도 있었다.

까마귀의 생명으로 그 존재를 유지하는 진법(陣法)이 있다고 해도.

그리 놀라울 것이 아니다.

아니, 놀라고만 있어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

‘누가 이걸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왼팔에 끼워진 옥팔찌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천자산의 봉우리

옥팔찌는 ‘혼’이 머물렀던 물건으로, 신병이기에 가까운 물건이다. 정확히 따지자면, 지금은 신병이기가 아니었다. 해남도에선 이 물건에 내력을 주입하여 방 내부에서 진법이 발동될 수 있게끔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했다. 뭐, 암천회의 회주에겐 전혀 통하지 않긴 했었지만 말이다. 진법을 구축하기 위해선 보통 오랜 시간과 내력을 소모해야 하지만, 옥팔찌엔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객잔 방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옥팔찌를 중심으로 기를 움직이는 역할을 하게 했었다. 그런 작은 공간에도 꽤 많은 내력을 주입해야 한다. 당연히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진법은 아니었다. 주변의 기를 적절히 순환시키며 진법을 유지했는데, 옥팔찌의 위치를 옮기니 바로 그 진법이 깨져 버렸다.

지금 옥팔찌엔 조금의 내력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 양이 적었다.

‘옥팔찌의 용량은 크다. 이것에 내 혼이 들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 그만큼의 내력이 팔찌에 담길 수 있다는 말이겠지.’

그렇다면 내 눈앞에 있는 진법이 품고 있는 거대한 자연의 기운을, 옥팔찌에 옮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 한번…….’

옥팔찌를 진법에 가까이 가져간다.

그 순간.

위이이이잉-

까마귀의 생명력을 흡수하던 거대한 벽이 굉음을 내며 흔들렸다. 동시에 옥팔찌에 닿은 진법의 벽면이 조금씩 찢어지기 시작한다.

‘옥팔찌가 벽의 기운을 흡수한다.’

예상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다.

내가 따로 진법을 구축하지 않아도 천자산에 설치된 거대한 기운이 더 큰 그릇을 찾아 이동하는 것이다. 본래 기(氣)라는 것은 흐르기 마련이었다.

‘일단 진법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군.’

벽면은 진법의 ‘겉면’일 뿐이다.

여기서 종일 기를 빨아들인다 해도 옥팔찌에 담지 못하리라. 지금 봐도 찢어진 부분을 제외하곤 점점 안정을 되찾고 있다. 찢어진 부분을 메우려 벽면의 기운이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크게 무리가 가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진법의 중추가 되는 기물이 있을 것이다.’

그것에 옥팔찌를 가져간다.

내 예상이지만, 이 옥팔찌는 기물에 담긴 기운을 빨아들일 것이다. 해남도에서 이미 옥팔찌의 기의 응집력은 갖춰 놓았다.

뚜벅.

진법 내부로 들어간다.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천자산의 봉우리 근처엔 까마귀가 죽으면서 내뿜은 사기(邪氣)가 가득했다. 그런데 내부엔 풍요로운 기운만 가득 차 있었다. 중원의 오악이 품고 있는 정순함이 바로 이러할까? 무인들이 정기가 가득한 명산에서 수련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천마신교만 하더라도 십만대산이 뿜어내는 거대한 기운 속에서 내공심법을 운용한다.

‘식물의 모양도 다르구나. 대체 얼마나 오래된 진법이지?’

자연의 기가 풍요로우니 그 안에 터를 잡은 식물들은 주렁주렁 열매를 맺었다. 봉우리에 과일을 맺은 나무들이 빼곡히 자란 모습은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거기에다…….

‘허……?’

많진 않았지만, 짐승도 몇 마리 보인다.

그런데 몸집이 심상치 않았다. 토끼는 평소에 보아 오던 산토끼와 다르게 덩치가 두 배는 컸다. 나무를 타고 오르는 뱀은 굵기가 세 배는 되어 보였다.

타닷!

혹시나 하는 마음.

바로 뱀을 낚아챈다. 그리고 놈의 기다란 몸뚱이를 손으로 훑는다.

‘…없군.’

조금은 실망했다.

어쩌면 이곳에서 자란 짐승들이 ‘내단’을 품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내단이라는 것은 짐승이 영물로 진화하며 인간들의 단전과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며 생기는 것이다.

‘아니, 선후를 따지자면 짐승들의 내단이 먼저일까?’

무공의 기원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다.

천마신교엔 고대의 이야기가 수록된 책이 여럿 있었다. 물론, 신교가 공인한 역사서엔 천마가 세상을 굽이 살폈다고 나왔지만… 신교가 중원을 약탈하며 수집했던 고서(古書) 중에선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은 짐승이 환골탈태를 거쳐 탄생하게 된 짐승의 일종이며,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는 내용을 다룬 고서였다. 그 책에선 원숭이와 인간이 비슷한 생김새를 지닌 점, 인간의 무공이 짐승의 움직임을 본따 만든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들었다. 거기에 내공심법이라는 건, 짐승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한다.

결국, 인간은 짐승의 최종 형태라 할 수 있지만 허약한 육신을 극복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다시 짐승의 길을 걷는 것이 ‘무공’이라 정의했다. 당시엔 재밌는 이론이라 치부했을 뿐이지만… 지금 자연에 펼쳐진 광경을 보니 그럴듯하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던 중.

소름이 돋아난다.

‘이런 규모의 진법을 구축하고, 식물이 이 정도나 자랄 정도로 진법을 오래 유지했다면…….’

대체 이 진법을 구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난 무림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아마 몇몇 이들은 왕(王)의 호에 가장 가까운 무인이라 생각할 것이다. 나조차도 조만간 그 경지에 접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비상식적인 자연 광경을 보니 나 자신이 작아지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무공의 천재?

한 번 보면 구결을 모두 이해한다?

대자연의 앞에서는 초라한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을 구축한 사람은…….

‘정녕 신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인간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히 그 정도의 실력자라면 내 감각을 충분히 속일 수 있으리라.

‘그런 사람이 날 몰아내려 했다면, 진법을 찢어 놓았을 때 반응했으리라. 자리를 비웠거나… 어쩌면 이 진법을 구축한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도 있지.’

천자산에 만들어 놓은 진법은 까마귀를 부르는 듯하다.

짐승들은 인간과 받아들이는 감각이 완전히 다르다.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들으며, 맡지 못하는 것을 맡는다. 까마귀를 홀리게 하는 무엇이 천자산의 정상에서 발동되어 파멸로 이끈다.

‘그렇다면 이곳에 제갈교아가 있을 리가 없나.’

그런 실력자가 굳이 제갈교아를 여기에 납치할 이유.

난 그것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제갈교아가 천지신명을 운운한 적이 있었기에, 천자산 하부의 마을 사람들의 말에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광경을 보니 그런 생각이 누그러든다.

‘일단 가 보자.’

난 뱀을 놓아주고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코에 들어오는 상쾌한 바람. 외부에서 맡았던 까마귀의 혈향과는 대조되는 깨끗한 내음이 코를 간질인다. 이곳에 머물며 무공을 단련하면,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짐승들은 내가 움직이자 화들짝 놀라 반대편으로 도망가기 시작한다.

내단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굳이 죽일 생각은 없었다. 뭐, 이런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놈들이니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무영심결.’

혹시 모르기에 최대한 기척을 줄인다.

제갈강량에게 얻은 무영심결을 발동했다.

발소리도 최대한 줄이고 언덕을 오른다.

중심부로 향할수록 과일의 빛깔은 더욱 윤택해졌으며, 그 크기가 커지고 있었다.

그렇게 중심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평평하군.’

이제까지 경사가 있었던 것에 반해, 중심부부턴 평평하다. 마치 의도적으로 깎아 놓은 듯한 모습. 뒤를 둘러보았지만, 겹겹이 높이 자라난 나무들 때문에 산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울창한 숲에 발을 들이민 듯한 느낌이다.

‘저건…….’

나무로 만들어진 집이 보인다.

벽면에 온갖 식물들이 자라나 집을 감싸고 있었기에, 처음엔 식물로 만들어진 집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더 가까이 가 보니 벽면이 나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파지지짓!

나무집에는 또 하나의 진법이 설치돼 있었다. 천자산 봉우리 전체를 감싸는 진법보다 훨씬 강하다. 규모가 훨씬 작았으니 당연히 강도가 올라가는 것이겠지. 천천히 옥팔찌를 내민다.

우우우우웅-!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진법이 찢어진다. 솔직히 놀랐다. 아마 정상적인 방법으로 진법을 해체하려 했으면, 꽤 노력이 필요했으리라. 하지만 옥팔찌는 내부의 기운을 흡수하며 진법을 찢어 놓는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냥 가져다 대기만 하면 되니 이 얼마나 편리한가?

진법의 기운을 그리 많이 흡수한 것은 아니지만, 옥팔찌엔 해남도에서 나왔을 때보다 많은 내력이 담겨 있었다. 이대로 진법의 기운을 모두 흡수한다면…….

‘정말 신병이기가 될 수도 있겠군.’

난 옥팔찌의 도움을 받아 나무집의 문을 열었다.

“읏…….”

고약한 악취.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냄새가 강하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지? 뇌리에 떠오르는 건 전혀 없었다.

문을 열고 뒤를 돌아본다.

나무집 내부에서 나온 냄새에 닿았기 때문일까? 입구에서 자라나던 식물이 생명의 빛을 잃고 있었다. 나무집에 진법을 설치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군. 어쩌면 이 장소가 진법의 중심부라 할 수 있으리라.

나무집에선 생명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부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흐릿하게 보이는 형체들. 다행히 입구의 옆엔 등불이 놓여 있었다. 불을 붙인 후에 그것을 들어 올린다. 어두웠던 내부에 빛이 들어오며…….

“……?”

무언가가 있다.

내 안력으로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지만, 흐릿한 형체로 보면…….

‘사람?’

검을 뽑았다.

시체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무림에는 귀식대법처럼 심장을 극한의 상태로까지 멈추는 무공도 존재한다.

암천회주를 만났을 때의 긴장감.

아니, 그보다 더 심하다.

작은 미동이라도 있다면, 뇌왕검은 찬란한 빛을 뿜어낼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인간의 형체에 다가간다…….

내가 지척에 도달할 때까지.

그것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악취가…….’

그리고 내가 맡는 냄새의 진원지가 어딘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악취라기보단 무언가 약재의 냄새와도 비슷하다 여겼지만, 그리 좋은 향은 아니었다. 천천히 등불을 내렸다.

“……!”

난 그 자리에서 굳고 말았다.

알몸으로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제갈교아.’

뭐지? 이 여인이 왜 여기에 있을까? 천자산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법을 뚫고 들어온 후에는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다. 천자산에 설치된 진법은 아주 오랜 기간 유지됐을 게 분명하기에.

“대체… 흡!”

처음으로 집 안에 들어와서 소리를 낸 순간이었다.

살기로 점철된 시선이 한 방향에서 쏘아졌다.

차라라라락!

쿠우웅!

그 시선이 있던 방향에서 쇠사슬이 직선으로 내리꽂혔다. 몸에 맞았다면, 살점이 뜯겨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뼈까지 부서졌으리라. 신기하게도 내력의 움직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뭐야.’

이질적이다.

인간과 마주하는 것 같지 않았다.

경계하듯 날 바라보는 시선과 마주한다. 어두운 공간에 떠오르는 한 쌍의 눈동자. 놀랍게도 그 눈동자는 ‘푸른’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마치 밤길에 만난 호랑이의 그것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환하게.

‘푸른 눈동자?’

설마?

뇌왕의 죽음이 푸른 눈동자와 관련됐다고 들었다. 그 정보가 십 할 정확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하필 이런 장소에서 푸른색의 눈동자와 마주한다.

‘…저건 살아 있는 게 아니야.’

난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저것은 전혀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구석에서 가만히 푸른 안광을 뿜어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한 번의 공격 이후에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구나.’

어떠한 가정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가 방 안에 들어와서도 전혀 기척을 드러내지 않고 어두운 구석에 박혀 있었던 놈이 움직인 이유. 내가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굳이 위험을 부담할 필요는 없지.’

저놈과 싸우는 것이 두렵다?

아니, 그렇지는 않았다. 분명히 놈이 내던진 쇠사슬은 매서웠다. 하지만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패배한다고 생각할 수준은 아니다.

단지.

아래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제갈교아를 바라본다.

이 좁은 장소에서 싸운다면, 그녀의 육신이 찢어질 것이다.

사실 지금 상황을 봐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시체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입을 열지 않게 주의하고, 푸른 안광의 괴인에게 다가간다. 무서운 시선으로 날 노려보기만 할 뿐,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사각-!

삭! 삭! 삭! 삭!

다섯 번의 베기.

내가 베어 낸 것은 목과 사지였다.

‘제대로 검강을 사용했음에도 제대로 베이지 않는군.’

난 이것의 정체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강시.”

내가 말을 내뱉자마자 몸통이 미친 듯이 경련하며 움직이려 한다. 하지만 사지가 절단된 강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보통 강시는 머리에 핵이 있다고 하지만… 아니로군. 그런데 이런 수준의 강시가 있을 줄이야.’

신교에서도 강시를 만들려는 가문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강시는 이렇게 움직일 수 없었다. 뛰는 것만 해도 기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이 강시의 육신은 목과 사지가 잘렸음에도 미친 듯이 발광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강시의 핵은 몸통인가.’

명치 부근에서 미약한 기의 흐름이 느껴진다.

그것을 부숴야 한다.

그렇게 명치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이었다.

사아아아아……!

강시의 잘린 몸뚱이에서 검은 재가 터져 나온다. 깜짝 놀라 뒤로 회피했지만, 날 공격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검은 재는 옥팔찌에 모여들 뿐이었다.

지이이잉.

옥팔찌는 그 검은 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동시에 강시의 푸른 눈동자가 빛을 잃어 갔다.

강호는 넓다

‘옥팔찌.’

그것을 의식하니 옥팔찌가 지지잉, 울린다. 마치 내 생각에 반응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옥팔찌를 의식하고 해우심법의 내력이 맞닿았기 때문에 그에 반응하는 것이다. 스스로 내력을 담은 기물. 해남도에서 내가 직접 주입한 기운은 자연스레 흩어졌지만, 지금은 옥팔찌를 움직여도 어떠한 내력의 손실이 없었다.

‘심지어 해남도에 있는 기간 동안 주입한 내력보다 훨씬 많잖아?’

이제는 완전히 움직임을 감춘 강시.

저 안에 얼마나 많은 내력이 들어 있었다는 걸까? 그리고 그 내력은 강시를 움직이게 한 근본이었다.

‘입으로 소리를 내지 않으면 불필요한 움직임을 아예 감춘다.’

강시는 내가 말하자마자 반응하여 쇠사슬을 던졌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나조차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강시술의 정점에 오른다면 저런 강시도 만들 수 있으리라. 아니면 강시에 들어가는 특별한 내력이나…….

‘강시에 알맞은 신체였을 수도.’

죽은 강시는 여인이었다.

사실 뱃가죽이 뼈에 맞닿을 정도로 앙상했기에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여인으로 만들어진 강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신교에선 보통 강한 강시를 만들 때 사내의 몸을 실험체로 사용했었다.

“…….”

강시의 기운을 옥팔찌로 모두 흡수하고, 제갈교아의 옆에 섰다.

숨소리는 전혀 내지 않는다.

상태를 보면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할 상황이다.

찬 바닥에 누워 있는 제갈교아의 손목을 들어 맥을 짚는다. 숨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아주 간헐적으로 심장의 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당연히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정상적인 생명이라면 말이지.’

하나의 가설.

지금 제갈교아는 ‘강시’가 되고 있었다. 보통은 죽은 인간의 육신으로 강시를 만든다고 알고 있지만, 푸른 눈동자를 가졌던 강시를 보니 방식이 다른 듯하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강시를 만든다. 지금 제갈교아는 강시가 되고 있었다.

우우웅.

본능적으로 옥팔찌에 기운을 불어넣는다. 그러자 제갈교아의 손목에서부터 검은 재가 옅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새하얗게 질려 있던 피부가 약간이지만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온몸에 스며든 저 검은 재가 바로…….

‘강시로 만드는 약물이라 생각하면 되겠군.’

처음 제갈교아를 보았을 때.

영령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모가 비슷한 게 아니라 분위기가 그러했다. 죽은 듯이, 강시가 되어 가며 누워 있는 제갈교아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니까.

“구해 주마.”

내 말에 반응한 것인지 몰라도.

제갈교아의 몸이 작게 떨려 왔다.

그녀의 손목을 잡는다. 전문적으로 의술을 익힌 무림의보단 부족할지 모르겠으나 인체의 구조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인간처럼 숨을 쉬기 위해선 코에 있는 재부터 털어 내는 게 우선이었다. 동시에 해우심법의 기운으로 조심스레 그녀의 진기를 어루만져 준다.

푸른 눈의 강시처럼 단번에 재를 흡수하게 되면, 그녀 또한 그 강시처럼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섬세한 집중력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작은 등불에 의지한 채로,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재를 빨아들인다.

사아아아…….

그렇게 일각, 이각, 한 시진, 두 시진… 세 시진.

옥팔찌의 힘을 섬세하게 사용하고 있다곤 하나, 푸른 눈동자의 강시보다 훨씬 많은 재를 내부에 품고 있었다. 난 조급해하지 않고, 검은 재를 회수했다. 이런다고 그녀가 살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살린다는 일념 하나로 집중했다.

이제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아리송해질 무렵.

세 시진인지, 네 시진인지.

아니면 하루인지.

제갈교아의 손목을 잡은 손이 뻐근해짐을 느낀다.

오랜 기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발끝에 있는 검은 재까지 모두 흡수했을 때.

변화가 시작됐다.

“쿨… 럭……!”

상체의 검은 재를 완전히 빨아들인 무렵부터 그녀의 호흡이 미약하게나마 시작됨을 느꼈다. 검은 재를 모두 옥팔찌에 흡수하자 제갈교아가 드디어 완전히 숨통을 튼 것이다. 그녀의 코와 입에선 검은 피가 터져 나왔다. 행낭에 있던 깨끗한 천으로 그 피를 닦아 준다.

동시에 그녀의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 온몸을 열심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힘을 주면 한동안 오래 움직이지 않았던 근육이 상할 수도 있기에 최대한 힘을 뺀 상태로 부드럽게 말이다.

주물주물.

안쓰럽게도 오랫동안 무언가를 섭취하지 못했는지 살이 거의 없었다.

해우심법.

내가 만들어 낸 내공심법은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것이다. 단순히 패도적인 위력만을 원했다면, 천마신공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난 도가나 불가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심득을 조화했다. 그 때문인지 해우심법의 내력은 인간에게 생명력을 선사할 수 있다.

용봉지회에서 모용란에게 승리했던 당옥정이 바로 쌩쌩하게 움직였던 것도 해우심법의 기운으로 진기를 불어넣어 주고 근육을 풀어 줬기 때문이다.

제갈교아의 파리한 안색이 활력을 되찾기 시작한다.

검은 재를 모두 취했다고 바로 깨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의 어깨 부근을 주무르고 있을 무렵.

“…도망.”

“……?”

“도… 망…….”

도망?

순간 다른 의미가 있나 생각해 보았지만, 말 그대로의 뜻 같았다. 도망치라는 말인가?

“도망치라고?”

등불의 방향을 제갈교아의 얼굴 쪽으로 돌린다. 그녀는 그 미약한 빛에도 눈이 부신지 눈을 질끈 감는다. 안정됐다고 생각한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으며, 육신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공포를 느끼듯이 말이다.

‘시간을 너무 지체하긴 했다.’

이곳에 있으며 느꼈다.

천자산 봉우리의 주인은 이곳에 없다. 아마 다른 곳에 있으리라. 그래도 제갈교아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먼저였고, 이 방 안에서 빠져나간다면 그녀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기에 이곳에서 시술을 시도했다.

푸른 눈동자의 강시의 경우가 있었기에 이리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막상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어서 집중을 유지한 것이다.

‘천자산 봉우리 주인과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객관화하여 내게 질문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제갈교아를 등에 업는다.

몸이 닿자 그녀의 떨림이 조금은 줄어드는 듯했다.

‘…옥팔찌의 기운을 모두 채우고 싶지만.’

그러다가 주인이 오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물러날 때를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개죽음을 당한다면, 기껏 얻은 두 번째 기회가 모두 날아간다.

‘챙겨 갈 거라도 없나…….’

넓은 방 안을 급히 훑는다.

혹시 이곳이라면 영약 따위가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아마 있다고 하더라도 숨겨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됐다. 옥팔찌에 기를 채운 것만으로 만족하자.’

사실 본래 계획은 천자산의 진법을 유지하는 기물의 기운을 옥팔찌에 모두 담으려고 했었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제갈교아가 깨어난 것으로 만족하자.

제갈교아를 등에 업은 상태로 나무집을 나선다.

“후우우……!”

청량하고 맑은 바람. 집 내부의 악취에 적응되어 불쾌감이 희석되었지만, 대자연의 맑은 공기를 마시니 속이 뻥 뚫리는 듯하다. 등줄기에서 올라오는 쾌감. 실로 오랜만에 취기가 오른 듯한 느낌이다.

타닷!

최대한 빨리 아래로 내려간다. 제갈교아가 업혀 있었지만, 산을 타는 것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짐승들은 처음 이곳에 들어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내게서 멀어졌다.

그렇게 천자산 봉우리에 설치된 진법을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쿠우우우웅-!

봉우리 전체에서 천둥소리가 크게 울린다. 오싹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혹시?

하지만 무언가가 쫓아오는 느낌은 없었다.

굉음의 원인은 바로…….

‘진법이 붕괴됐다고?’

나무집이 딱 진법의 중앙에 위치했다. 그 안에 진법의 중심이 되는 기물이 있으리라 예측했다. 그런데 제갈교아를 업고 빠져나오자마자 진법이 붕괴된다.

‘강시가 진법의 주체였다? 아니…….’

우으으응……!

옥팔찌가 크게 진동한다. 마치 중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가진 것처럼. 한쪽 방향으로 크게 울리고 있었다.

실로 거대한 기운.

제갈교아를 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기에, 옥팔찌에 얼마나 거대한 기운이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확실히 알 수 있다.

‘검은 재가 진법의 중심이었다. 강시를… 아니, 인간을 진법의 핵으로 삼았다니…….’

그 기운이 옥팔찌에 담겼을 뿐.

아마 내부에 있었더라도 진법은 조만간 붕괴했으리라.

해우심법으로 옥팔찌의 진동을 억누른다.

다행히 내 의도에 반하여 폭주하거나 하진 않았다.

‘어마어마한 수확이군.’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을 나도 모르게 취했다.

이만큼 좋은 상황이 어디 있으랴?

타다다닷!

이젠 일말의 미련도 남기지 않고 천자산의 하부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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