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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42화 (142/236)

142화 잘 키운 수하

“와, 이렇게도 움직일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

당옥정의 외침.

단목장룡이 그녀에게 알려 준 것은 신교에서 살수들이 배운다는 사사유령보였다. 거기에 다른 무공을 조합하여 당옥정만을 위한 보법을 완성했다. 그녀를 위한 무공이니, 익히는 속도도 무척이나 빨랐다. 당옥정은 금방 보법을 펼치곤,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은 것 같아?”

“응! 누가 알려 준 무공인데!”

다시 폴짝폴짝 뛰며 보법을 밟아 나가는 당옥정.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단목장룡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힌다. 무공을 만들며 이런 장면을 상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잔뜩 신이 난 당옥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피로나 잡념을 날려 주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 제법인데?’

그녀와 비무를 했던 날에도 느꼈지만, 당옥정의 성장 속도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모용상이라고 했던가? 청룡단에서도 대주라면 알아주는 실력자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사내와도 멋진 비무를 보여 주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녀의 노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용봉지회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해지긴 했어.’

당옥정이 강해지면 좋다.

아무리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어도, 정작 중요한 상황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강호에선 본신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 당옥정은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갖춰 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직접 확인하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강호란 곳은 누구에게나 방심할 수 없는 곳이니까.

“하아압! 하아아앗!”

그렇게 반 시진이 넘는 시간 동안 단목장룡은, 당옥정에게 보법을 알려 주고 그녀가 수련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를 위한 무공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몇 번 시범을 보여 주니 그 뒤에는 딱히 지적할 것이 없었다. 나머지는 숙련도의 문제였다.

“하아… 괜찮았어……?”

마지막으로 암기까지 사용하며 보법을 펼친 당옥정.

그녀가 조심스럽게 단목장룡에게 묻는다. 그녀는 약간 긴장한 표정이었다. 단목장룡에게 쓴소리를 듣는다면, 아마 오늘 밤엔 잠을 이루지 못하리라. 물론, 다음 날부터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 뼈를 깎는 수련에 들어갈 테지만.

단목장룡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놀랄 정도로 괜찮았어.”

“정말?”

“그래.”

“후후후후!”

당옥정이 잔뜩 신난 표정으로 두 주먹을 앙증맞게 쥔다. 그녀를 춤추게 하는 것은 단목장룡의 칭찬이다.

“참, 그리고 이거 받아.”

당옥정이 영문도 모른 채로 그가 주는 것을 받아 든다.

“이건……?”

“임무에 갔을 때, 네 생각이 나서 샀어.”

“……!”

단목장룡이 준 것은 비녀였다.

단순히 꾸미기 위한 장식품은 아니었다. 끝이 비정상적으로 날카롭게 뻗어 있었다. 단순한 비녀는 절대 아니다. 크게 무겁지도 않았지만, 단단하면서도 탄성이 있었다. 병기를 만드는 장인이 만든 물건이라 할 수 있다.

“암기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거야.”

마치 울음이라도 터트릴 듯한 눈망울.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정말… 정말 고마워!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게. 매일매일 이 비녀를 차고 다닐 거야! 응!”

“그래. 잃어버리면 혼난다?”

“응!”

혼난다는 말에도 해맑게 웃는 당옥정.

단목장룡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미소를 머금고 있다.

당옥정은 비녀를 두 손에 꼭 쥐고 가슴에 올려놓은 채 단목장룡을 바라본다.

‘나도 장룡한테 선물을 해 줘야겠어. 장룡이 뭘 좋아할까?’

특별한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그는 뭘 좋아할까? 남자들은 어떤 선물을 원할까? 그런 생각을 이어 가던 당옥정. 별안간 그녀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동시에 당옥정의 귀가 빨갛게 물든다. 단목장룡이 어제 장난스럽게 꺼냈던 이야기.

‘고모님은 사내들이 그런 걸 좋아한다고 했었지……?’

독봉 당용아에게 일대일로 지도를 받으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만독대법을 펼칠 때, 굳이 두 사람을 같은 탕에 집어넣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 했다.

‘내, 내가 무슨 상상을……?!’

발칙한 상상에 당옥정이 혼자 펄쩍 뛰기 시작한다.

갑자기 혼자 또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인 당옥정. 그녀의 극적인 표정 변화에 단목장룡이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 * *

남궁일몽이나 설비연과 신교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육합문과 지룡문에 대해서는 이미 흑룡단주에게 보고한 상태였으며, 양씨세가는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 흑룡단주는 신교가 정확히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들에게 접근한 것인지 확인하고, 연관된 다른 꼬리들을 모두 찾아낸 후에 행동으로 옮기자고 결론지었다.

눈에 보인다고 다짜고짜 달려들면, 그들은 음지로 숨어들 것이다.

일망타진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직 갈유화의 답신은 오지 않았군.’

당연히 무림맹과 암천회에 직통으로 오가는 전서구는 없다. 하오문을 통해 서신을 보냈지만, 몇 번을 경유하여 해남도에 도착할 것이다. 또, 해남도에서의 서신도 그러한 방식으로 무림맹에 도착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림맹의 조장이 사파와 내통한다는 식으로 알려지면 곤란하긴 했으니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정보를 수집해 가며 무공 수련에 집중했다.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은 무림맹 생활이었지만, 사실 예전보다 훨씬 개인 시간이 많아졌다.

제갈교아 탐색 임무를 맡기 전에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신교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도 그렇고, 조원들의 무공도 봐주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꽤 달라졌다.

설비연과 남궁일몽은 사이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신교에 대한 것은 따로 간섭하지 않아도 척척 찾아낸 후 깔끔하게 정리하여 내게 보고한다.

이새붕을 비롯한 조원들은 내가 봐주지 않더라도 알아서 수련에 집중했다. 지금은 누군가 하나하나 가르침을 내려 줄 때가 아닌 스스로 발전할 때였다. 또, 조원들은 단순히 무공 실력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제갈교아를 찾는 임무를 맡았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은 성장했다.

내가 하나하나 일러 주지 않아도.

그들은 해야 할 일을 찾았으며, 내가 하나를 말하면 표면적인 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이면의 것도 이해하려 한다. 내가 무슨 의도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고민한다는 것이다. 밤마다 세 사람이 모여 서고에 들러 각종 분야의 서책을 보며 토론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뿌듯함이란…….

과거에 뿌려 두었던 씨앗이 발아하고, 이제는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잘 키운 수하 한 명이 마구잡이로 받은 수하 백 명보다 낫다.

‘이제 오롯이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다.’

여러 가지 패들을 얻었다.

암천회의 보물인 천향옥로단.

무영신투의 절세 무공인 무영혼.

마를 복속한다는 천마(天魔)의 육신.

현재 내가 지향하는 것이었으며,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상상해 보자.’

내 육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싸워야 할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대지가 펼쳐진다.

내가 만들어 낸 공간 속에서.

검(劍)을 쥐었다.

* * *

어깨가 축 늘어진 남궁일몽.

호기롭게 단목장룡과의 비무에 임했다. 제왕검형의 오의를 이해하고, 폭풍 속에서 자라나는 뇌전(雷電)을 발현한다. 그 뇌전이라면 분명히 단목장룡의 ‘유성’을 깰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인간은 유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난데없이 몰아치는 폭풍우, 그 사이를 파고드는 벼락이야말로 재앙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하늘의 재앙도 그에게 닿지 못했다.

아니, 단목장룡의 진짜 무기는 유성이 아니었다.

‘유성환상검이라 했던가.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어찌 자신의 감각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는가? 그와의 격차는 줄어들긴커녕 더욱 커졌다.

“후우우…….”

평생 겪을 좌절을 단기간에 계속 겪고 있는 남궁일몽.

이러한 패배가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솔직히 인정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쉬자.’

여기서 더 고민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오늘의 패배는 영원한 패배가 아니다. 이 패배를 바탕으로 승리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패배의 쓰라림부터 지우는 것이 좋으리라.

남궁일몽은 오랜만에 무림맹을 나섰다.

운치가 좋은 곳에서 술이라도 마시면 무력감을 털어 낼 수 있으리라.

만묘 객잔.

정주에서 퍽 유명한 객잔으로, 커다란 창을 통해 보이는 무림맹 성의 경관이 상당하다. 그만큼 가격이 상당했지만, 남궁세가의 공자가 부담을 느낄 수준은 아니다.

백화로 한 병과 숙수가 추천한 요리를 마구 시켜 놓고 무림맹을 바라본다. 안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바깥에서 거대한 무림맹의 성을 바라보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래, 난 수많은 무림맹의 무인 중 한 명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늘의 패배가 가벼워진다.

고작 한 번의 패배로 포기한다? 그러려고 무림맹에 왔나? 아니다. 그는 천룡각에서 수많은 후기지수를 보았다. 그들 중 몇몇은 노력으로 재능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과거의 남궁일몽은 그들을 가엾게 여겼지만, 그들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한 무인이었다.

‘과거의 나는 정말 답이 없었군.’

이제라도 깨달은 것이 다행일까.

단목장룡에게 패배하지 않았다면, 그는 언제까지고 철부지로 남았으리라.

취기가 오른 남궁일몽.

그는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목장룡이 강해지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차이가 나면 어떤가? 오히려 그에게 배울 기회이지 않은가? 내일은 그에게 작은 가르침이라도 청해 볼 생각이다.

‘그래, 내가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남궁일몽이 객잔을 떠나려고 할 때였다.

“…….”

남궁일몽의 발걸음이 멈춘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 층엔 자신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반대편 끄트머리에 누군가 앉아 무림맹의 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언제? 남궁일몽은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오늘 단목장룡과 싸웠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고수.’

술기운에 취했기에 감각이 둔해졌다고 해도, 이것은 무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남궁일몽이 술기운을 몰아낸다. 그러자 창밖을 바라보던 사람의 시선이 남궁일몽에게로 향한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남궁일몽은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면……?’

객잔에 들어와서 가면을 쓰고 있다고?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절 찾아온 겁니까?”

- 글쎄.

전음이 들려온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었기에 체격도 미묘하다. 키는 좀 커 보였지만…….

“왜 가면을 쓰고 계시는 것이지요?”

남궁일몽은 함부로 말을 놓지 않는다.

그는 강호가 넓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정파 무림의 심장이 있는 무림맹이다. 전대의 고수가 신분을 숨긴 채로 이곳에 왔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었다.

- 뻔한 것을 묻는군.

가면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정체를 드러내기 싫었기에.

굳이 그러는 이유가 무엇일까?

- 너한테 물어볼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

- 단목장룡이라는 놈에 대해서.

“…….”

남궁일몽의 얼굴이 굳는다.

그는 단목장룡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은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오만방자한 자신에게 겸손을 알려 준 무인.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허송세월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리라. 단목장룡을 ‘놈’이라고 칭하는데, 당연히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지금 이 순간 남궁일몽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사마련에서 주최한 비무 대회. 그곳에 출전하여 대단한 실력을 뽐냈다는 가면을 쓴 무인. 그의 실력은 오성과 비견될 만하다고 한다.

즉, 극마(極魔).

정파의 경지로 따지면 화경의 경지였다. 그 정도 실력에 오른 이라면, 홀로 무림맹의 앞마당에 찾아온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예측이 사실이라면.

‘마교인가.’

남궁일몽의 주변으로 잔잔한 기세가 흐른다.

폭풍전야. 언제든 폭풍을 일으킬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 폭풍 사이로 뇌전이 흘러나오리라. 화경의 고수에게 얼마나 그것이 통할지 모르겠으나…….

‘단목 조장님 덕에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군.’

남궁일몽이 묻는다.

“마교에서 온 것인가?”

- 그건 네가 알 필요가 없을 듯하군.

“왜 단목 조장님에 대해서 묻는 거지?”

- 궁금하니까.

남궁일몽이 검을 뽑는다.

만약 저놈이 마교도가 확실하다면…….

“네게 해 줄 말은 없다.”

남궁일몽의 말에 가면을 쓴 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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