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사마공
“조장님, 그림자에서 서신을 받아 왔습니다.”
그림자.
우리끼리는 하오문을 그림자라 칭하기로 했다.
과거였다면 내가 직접 움직여서 서신을 받아 봐야 하겠지만, 오 조원들이나 설비연이 있었기에 사소한 일을 맡길 수 있었다.
“고생했다.”
“하하, 고생은요. 아닙니다. 그럼 전 다시 수련하러 가겠습니다!”
“그래.”
설비연의 보고로는 사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가 등장했다고 했다. 어쩌면 신교의 교도가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었다. 사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암천회라면 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으리라.
두툼한 종이 뭉치.
갈유화가 꽤 많은 내용을 적어 놓은 모양이었다.
‘어디 보자…….’
글을 읽어 나간다.
서신의 첫 시작은 인사였다. 서신이 와서 놀랐다, 이렇게 글로나마 근황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이야기. 또, 얼른 다시 보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갈유화… 암천회에겐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언젠가 보답을 해야 하리라.
첫 번째 서신은 갈유화의 인사가 전부였다.
다음 서신부터는 내가 물어본 내용이 적혀 있었다.
‘흐음…….’
- 사실 저희도 그 부분에 대해선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명을 내려 확실한 내용을 파악하려 했어요. 아, 공자님 때문에 본회에서 움직인 것은 아니니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답니다.
- 알아보니 사마련에서 주최한 비무 대회에 참가했던 사람은 이제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사마련주님의 아들이었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 정말 실존하는지조차 의심이 되었지만, 비무 대회에서 모습을 보여 존재감을 드러낼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 그의 이름은 사마공. 사마세가의 소가주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의 무공 실력은 놀랍게도 극마에 올라 있다고 해요. 이제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가 폐관 수련 때문이었다나요? 아직도 사마공이라는 인물에겐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많은 듯해요.
잠시 읽는 것을 멈춘다.
사마공.
사마세가 가주의 아들. 보통 명문가의 자제들은 일찍부터 강호에 이름과 얼굴을 알리곤 한다. 그것이 무림의 생리였으니까. 하지만 대체 왜 모습을 감춰 왔던 것일까? 정말 사마련주의 아들이 맞기는 할까?
가면을 썼다는 것 자체가 의심된다.
사마련주의 아들이라면 가면을 쓸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 가면을 쓴 이유가 궁금해서 조사해 봤는데, 대부분 뜬소문일 뿐이에요. 외모가 너무도 빼어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여인의 방심을 흔든다는 소리도 있었고… 반대로 외모가 너무 추악하여 가면을 쓴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억지로 이해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암천회의 정보가 잘못됐을 가능성도 있지.’
내 생각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다음 장에서부턴 그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 어쩌면 마교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본회에도 접근을 해 왔으니까요. 사마세가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사실 사공천이라는 인물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며, 천마신교의 인물 중 하나라는 것. 그렇다면 왜 가면을 썼을까라는 의문에 대해서 답이 될 순 없었지만 말이다.
- 더 알아내는 것이 있다면, 운봉루를 통해 또 서신을 보내도록 할게요. 언제든 제 작은 도움이라도 필요하시면 서신을 보내 주세요.
갈유화의 서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 참, 하후세가의 일은 들었답니다. 다시는 그놈들이 주제넘게 까불지 못하도록 조치했어요. 나찰마궁이 꽤 분노하긴 했지만, 그들은 ‘장천’이 누군지 모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나찰마궁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서신으로 알려 드릴게요.
종이 뭉치를 탁상에 올려놓는다.
갈유화에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후세가는 천응을 타고 조만간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갈유화가 처리했다면 믿을 수 있었다.
“흐으음.”
아직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평화로웠던 무림에서 잔잔하지만 무서운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어디로 향하는지, 얼마나 파급력이 클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단지 바람에 쓸려 가지 않기 위해 몸집을 키워 나갈 뿐.
‘내 복수를 위해서라면 그들이 직접 움직여 주는 것이 좋다.’
아무리 내가 정파 무림에서 명성을 쌓아 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무림맹에 속한 문파나 가문들을 설득하여 신교에 쳐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들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정파 무림 또한 몸을 움직이리라.
난 정파 무림에 몸을 숨긴 채.
그들의 심장에 검을 쑤셔 넣으면 된다.
‘사마공이라…….’
만약 그가 사마련주의 아들이 아니라면.
신교에서 온 교도라면.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극마에 오른 고수.’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종이 뭉치를 정리하고, 가부좌를 틀어 상상의 세계로 다시금 빠져들었다.
* * *
“제기랄…….”
패배의 무력감.
남궁일몽은 오늘 단목장룡에게 패배하고서 또 패배를 맛보았다.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나이를 추정할 순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나이 차이가 그리 심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또래가 아닐까?
그의 무공은 기괴했다.
정파의 무공과는 궤를 달리했다. 이해할 수 없게도 그의 무공은 누군가를 연상시킨다.
‘단목 조장님과 비슷한 것 같기도…….’
다행인 점은 가면을 쓴 흑의인이 남궁일몽을 해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살심을 품었다면, 남궁일몽은 목이 베였을 것이다.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어떤 표정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
- …괜찮은 실력이군.
칭찬을 들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남궁일몽 또한 하수를 상대하고 예상보다 강하면 저런 말을 내뱉곤 했었다. 상대보다 강한 것은 당연하게 깔고 가는 것이다. 반대의 입장이 되자 속이 쓰리다.
‘정말 강호는 넓구나.’
남궁일몽이 그를 노려보며 말한다.
“대체 네놈은 누구지? 목적이 뭐냐? 왜 나를 죽이지 않은 거지?”
- 지금은 죽일 필요가 없으니까.
“…지금은?”
- 패배한 건 너다.
남궁일몽이 인상을 찌푸린다.
“내게 질문할 권리 따위는 없다는 건가?”
- 머리가 장식으로 달린 것은 아니군.
“그래서 나한테 뭘 묻고 싶은 거지? 참고로 말해 두자면 단목 조장님에 대한 정보는 내 입에서 들을 수 없을 거다. 설령 나를 죽이더라도 말이다.”
- 과연 그럴까?
죽음?
당연히 두렵다. 하지만 누군가를 팔아 가며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단목장룡은 그의 호적수다. 그는 자신이 인정한 사내. 그였더라도 똑같이 행동했으리라. 그렇기에 후회는 없다.
“죽일 수 있다면, 죽여 보아라.”
죽음을 각오한 싸움은 다르다.
무림인은 본실력의 삼 할을 숨겨 놓는다고 한다. 남궁일몽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다. 그것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가면을 쓴 괴물에게 이길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친다.
가면을 썼기에 전혀 표정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흑의인은 가만히 남궁일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휙 몸을 돌렸다.
- 흥이 깨졌다.
“뭐? 흥이 깨져?”
남궁일몽이 울컥한다.
감히 그딴 이유로 등을 돌려?
무림인은 자존심 하나로 목숨을 건다고 한다. 방탕했던 천재 남궁일몽 또한 무림인이었다. 그의 가슴이 부글부글 끓는다.
- 날 즐겁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라. 그땐 네 소원대로 죽여 주지.
아드득.
남궁일몽이 이를 간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검을 내질러야 할까? 아니면 단목장룡을 팔지 않고서 목숨을 구한 것이기에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참을까? 찰나의 고민이었지만, 가면 흑의인에겐 긴 시간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신형을 옮겨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멈……!”
손을 뻗어 멈추라고 소리치던 남궁일몽.
몸이 굳었다.
그 또한 알고 있었다. 상대가 창밖으로 떠나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는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패배를 직감했기에? 싸우면 목숨을 잃으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제기랄…….”
남궁일몽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호적수 단목장룡에게 패배했던 것은, 그래, 인정할 수 있다. 그는 평생에 걸쳐 넘어야 할 산이었으니까.
하지만 들어 보지도 못한 놈이 중간에 낀다?
그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인생의 호적수는 하나로 족하다.
“즐겁게 해 줄 정도로 강해지라고? 그래, 네 말대로 해 주마.”
방탕한 천재.
역대급의 재능을 가졌지만 노력하지 않았던 무인의 가슴속에 거대한 화마가 일었다.
* * *
“그러니까, 가면을 쓴 의문의 고수가 저에 대해서 물었다는 말입니까?”
“예.”
평소의 남궁일몽과는 기세가 전혀 다르다. 잘 벼려진 명검처럼 손을 대면 베일 듯한 느낌이다. 과거엔 열정으로 타오르기만 했다면, 이젠 그 감정을 한데 모은 것이다. 기세만으로 사람의 느낌이 달라진다. 비무 후에 보여 주었던 무기력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남궁일몽은 패배로 성장하고 있다.
그것은 긍정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남궁일몽의 성장이 아니다.
‘왜 나를 찾아왔을까?’
가면을 썼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당연히 사마공이 떠올랐다. 사마련주의 숨겨진 아들. 오랜 세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최근 사마련이 개최한 비무 대회에서 실력을 뽐냈다고 했었다.
어쩌면 신교의 교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 의심이 되는 건 당연하게도.
‘소교주 사도명.’
어머니는 달랐지만,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
그는 어릴 적부터 제왕학을 교육받으며, 강자존인 마교에서 정점에 오르려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당연히 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매번 나의 재능을 확인하려 했고, 나와의 비무에서 승리하면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갔다. 그는 절대자가 되려 했었다.
그의 성격이라면, 강자를 찾아 나서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의 나는 정파의 후기지수 중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
“그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단목 조장님에 대해 물었습니다. 당연히 전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고요. 그는 제게 자신을 즐겁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라고 하더군요. 그땐 죽여 주겠다고요.”
아드득.
남궁일몽이 이를 갈았다. 내게 패배했을 땐 좌절하는 표정을 지었었다면, 지금의 남궁일몽은 분노하고 있었다.
난 그에게 사마공에 대한 정보를 들려주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가 사마세가주가 숨겨 왔던 아들이라고. 오랜 폐관 수련으로 실력을 쌓고, 강호에 나섰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사마세가… 그렇다면 저와 비슷한 나이겠군요.”
“아마 그렇겠지요.”
“다음엔 꼭 이기겠습니다.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겁니다.”
분노로 타오르는 남궁일몽의 눈빛.
그는 다짐하듯 내게 말한다. 그것이 마음에 든다. 그의 분노는 나의 마음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무인의 자존심. 그것은 강호 무림을 지탱하는 의지나 다름없었다. 나 또한 중원의 무인 중 하나일 뿐이다.
“남궁 조장님.”
“예.”
“저와 비무하지 않겠습니까?”
“비무요……?”
남궁일몽은 내게 자주 비무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정도 성장을 이뤘을 때만 내게 비무를 신청했다. 솔직히 그때마다 그의 성장에 놀라곤 했다. 내가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취하지 않았다면, 무영혼을 익히지 않았다면… 꽤 고전했으리라.
그의 재능은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내게 도움이 된다.
예전엔 홀로 수련하는 것이 최고라 여겼지만, 이제는 다르다.
활용할 수 있는 건 모두 활용한다.
“예, 설 조장님과 합을 이루어 저와 비무해 주십시오. 하루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합을 이루라는 말에 남궁일몽이 조금 당황한다. 다행히 화가 난 기색은 아니다.
“제 실력이 부족하다는 건 알지만, 설 조장님과 합을 이뤄 단목 조장님과 싸우라는 것은…….”
“두 분이서 제게 이긴다면, 다음부터는 일대일로 비무하는 겁니다.”
난 그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남궁일몽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제가 자존심을 내세울 때는 아니지요.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설비연과 남궁일몽.
내가 믿을 수 있으며, 현재 화경의 경지에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이었다.
* * *
“끼이이익!”
제운산의 주인.
하늘의 지배자.
여러 칭호를 가진 영물 천응이 천공을 누비고 있다. 조용히 있으라는 주인님의 명이 있었지만, 높은 하늘에 올라 바람을 쐬는 것 정도는 괜찮으리라.
높은 하늘에서도 빠르게 달리는 토끼마저 잡아챌 수 있는 시력이 있었기에, 주인이 돌아오는 것이 보이면 바로 되돌아가면 된다. 그리 먼 곳까지 날아가진 않았다.
“끼이익!”
“삐릭삐릭!”
감히 주제도 모르고 자신의 권역에서 날아다니는 자그마한 새들에게 몸소 위엄을 보여 주며, 천응을 하늘을 누비고 있었다.
“끼익?”
그렇게 날아다니던 천응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온다.
가만히 서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무언가. 아주 먼 거리라서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얼굴이 인간 같지 않고 뭔가 특이했지만, 천응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끼이익?!”
왠지 모르게 주인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천응은 주인이 자신을 감시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주인에게 밉보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는 그 ‘향’을 맡지 못하리라!
“끼엑!”
천응은 허겁지겁 자신의 보금자리로 되돌아갔다.
다행스럽게도 천응을 바라보던 그 강렬한 시선은 금방 희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