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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53화 (153/236)

153화 혼자의 시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은영전주는 점창파에 협조 서신을 보내 놓은 상태다. 단목장룡이 점창파의 장로와 충돌이 있었지만, 무림맹주의 직인이 찍혀 있었기에 사적인 감정으로 행동하진 않을 터였다.

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다른 흑룡단의 조장들과 동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단목장룡이 그것을 거부했다.

단목장룡의 특사행을 아는 소수의 무인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아무리 그의 실력이 초절정에서도 상위급이라 할지라도 홀로 혈세귀막에 찾아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황룡단주는 당연히 단목장룡이 실패하리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벌써 단목장룡이 무림맹의 행사를 망치는 것이 아니냐며 수뇌 회의에서 불만을 표출했다.

단목장룡이 자만심에 찬 것은 아니다. 그 또한 혈세귀막에 홀로 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

그가 왜 특사행을 홀로 가기로 했는가?

그 이유는…….

‘천응이 있으니까.’

하남성에서 운남성까지의 거리는 상당하다.

말을 바꿔 가며 달려간다고 할지라도 석 달은 걸리는 거리다. 하지만 천응을 타고 하늘을 난다면? 천응도 체력적 한계가 있었기에 넉넉하게 잡아도 칠 주야 안에는 도착할 수 있었다.

단목장룡은 그 시간을 활용하고 싶었다.

이제까지 무공 수련을 게을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해남도에 가면서도, 제갈교아를 찾는 임무를 맡은 와중에도 초식을 머릿속에서 분해하고 합치며 무공을 연구했다. 무림맹에 도착해서는 남궁일몽이나 설비연 같은 이들과 실전처럼 비무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단목장룡은 누구나 깜짝 놀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단목장룡이 생각하기로는 그 속도가 영 마뜩잖았다. 천향옥로단과 옥팔찌에 깃든 기운. 이미 무림인이 평생 한 번도 겪기 힘든 기연을 두 번이나 마주했음에도 아직 화경에 이르지 못했다.

사실 이미 환골탈태가 이루어졌어야만 한다.

천마(天魔)의 신체.

도검불침, 내공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검과 도가 쉽사리 피부를 침범할 수 없는 육신.

한서불침, 더위와 추위가 침범하지 못하는 육신.

만독불침, 어떠한 맹독도 육신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육신.

천마신공은 환골탈태 전부터 마기로 육신을 강화한다. 지금 단목장룡의 육신은 평범한 무인과는 차원이 달랐다. 거기다 만독대법을 통해 대다수 독에 면역을 가지고 있었다. 환골탈태를 위한 내공도 충분했다.

그런데 왜?

화경의 벽을 깰 수 없었을까?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武)에 전념해 보기로 했다.

이미 그는 중원 이곳저곳에 씨앗을 뿌려 놓았다. 그들은 단목장룡이 없더라도 꽃을 피우리라.

‘어디가 좋을까?’

산(山)은 땅의 정기와 하늘의 정기가 맞닿은 곳.

상고의 신선들은 산의 봉우리에 올라 수련하여, 도를 갈고닦았다고 한다. 높은 산일수록 좋았다.

‘그래, 거기가 좋겠군.’

불현듯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산의 이름.

형산(衡山).

중원 오악 중 남악이라 불리는 명산이다.

“가자, 천응. 우리가 갈 곳은 호남성에 있는 형산이다.”

“끼이이이익-!”

천응에겐 어디를 들를 때마다 지역의 이름을 말해 준다.

세세한 지명까지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특별한 장소는 기억할 수 있었다. 천응을 전령으로 활용할 때를 대비한 것. 이렇듯 단목장룡은 차근차근 홀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대한 영물이 하늘로 비상했다.

* * *

해남도.

갈유화는 광적으로 단목장룡에 대한 정보를 끌어모았다. 그에게 서신을 보내 근황을 물어도 되겠지만,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단목장룡이 싫어할 것이 분명하다. 집착하는 여인은 매력이 없으니까.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갈유화는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어머, 이년 봐라……?’

그리고 들려온 소식.

그녀가 가장 경계하는 여인이 무림맹에 입맹했단다. 갈유화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서신을 쫙쫙 찢어 버렸다. 과거 사천의 어느 객잔에서 당옥정을 만난 적이 있었다. 어려 보이긴 했지만, 당시에 보았던 이목구비를 떠올려 볼 때 아마도 지금쯤 미모가 극에 달했으리라.

고 계집이 낭군님이게 꼬리를 살랑살랑 쳤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민다.

객잔에서 아닌 척했지만, 당옥정이 단목장룡에게 보여 줬던 눈빛은 분명히 연모의 감정이었다.

‘후우우, 아니야. 미워하면 안 돼.’

갈유화는 분을 삭였다.

그녀는 사내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에게 능욕당한 사내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 만큼 그녀는 보편적인 사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 계집이 나보다 먼저였지. 그걸 부정하면 안 돼. 오히려 반감만 살 뿐이야.’

단목장룡에게 미움을 받는다?

절대 사절이다.

‘어차피 결국 날 더 사랑하시게 될 거니까.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갈유화는 그렇게 단목장룡에 대한 정보를 계속 수집했다. 또한, 그에게 예쁨을 받기 위해 열심히 사마세가와 사마공 그리고 마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낭군님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단목장룡이 무림맹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운남성!’

갈유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 *

형산엔 여러 높은 봉우리가 있다.

그중에서 나는 연화봉에 자리를 잡았다.

‘적당하군.’

무인이 가장 취약할 때는 운기조식의 순간이었기에 연화봉의 꼭대기가 아닌 사람이 잘 다닐 수 없는 곳에 터를 잡았다. 또, 영물 천응이 있었기에 인간뿐 아니라 산짐승들도 감히 내게 접근하지 못하리라.

적당한 바위 위에 올라가 눈을 감는다.

주위의 자연을 느껴 본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맞닿아 기류가 형성되어 피부를 간질인다. 도교의 도사들이 왜 깊은 산중에 터를 잡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가만히 앉아 이제까지 익혀 왔던 무공을 돌이켜 본다.

‘혹자는 번뜩이는 깨달음으로 벽을 허물 수 있다고 했었다.’

그게 나에게 통용되는 말일까?

난 대부분의 무공 구결을 보는 순간 ‘이해’한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으며, 어떤 무공과 상성이 맞을지 자연스레 떠오른다. 또한, 그에 대한 파훼법도 떠올랐다. 무공에 대한 이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만큼 위대하고 위대한 재능이다.

천마신교의 교주가 집착할 만큼.

하지만 왜일까?

그런 무공의 이해력으로는 화경의 경지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일까?

소위 말하는 깨달음이 부족한 것일까?

수행의 시간이 문제일까?

하나씩 되짚어 본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절대적인 힘.

천마신교의 교주를 이길 정도의 힘이다. 여기서 화경의 경지에 오른다고 할지라도, 바로 교주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보통 무인들이 어떻게 발전할까?

내가 가르쳤던 이들의 성장을 떠올려 본다.

이새붕.

무공의 재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반복적인 수련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무공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미 무공은 완성된 것. 그 단계를 밟아 더 복잡한 구결로 내력을 제어하며, 초식을 펼친다.

당옥정.

그녀 또한 이새붕과 마찬가지였다.

강렬한 의지로 인한 노력. 거기다 재능까지 있었다.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힘에 굶주려 있다. 그 열정의 원천이 나라는 것을 상기하면 괜히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만약 그녀에게 나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까?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분명히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

마지막으로 남궁일몽.

그는 내가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직접 그의 발전을 지켜보았다. 그는 엄밀히 따지면 나와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 펼친 초식만 보고도 무공의 원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따라 할 수 있다. 또 최근에는 가면 사내에게 패배하여 각성의 계기를 얻었다. 그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으리라.

단목위, 조연연, 단목산산, 제갈교아, 양주아.

다른 무인들 또한 떠오른다. 그들은 내 상상 속에서 열심히 자신의 무공을 펼쳐 나갔다.

‘아름답군.’

그들의 무공은 아름다웠다.

모두 다른 이유를 가졌지만, 그들은 저마다 노력하며 성장을 추구했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지.’

사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때와는 다르게.

무공은 재밌었다.

수련이라는 것이 지겹지 않았다.

더 강해지고 싶었다.

천마신교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난 그들처럼 충분히 노력했는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본다.

파문이 일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난 스스로 노력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대부분 무공에 대해 고찰했으니까. 설비연, 남궁일몽 등과 실전을 방불케 하는 비무를 해 왔으니까. 나찰마궁의 천련반야진을 깨부쉈던 경험이 있으니까…….

결론.

분명 노력했다. 결코, 자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하는 경지엔 도달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화경의 경지에 올랐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찼다. 유성일락과 영무환신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화경이라는 경지에 집착하여 본질을 보지 못한 건가?’

또 다른 파문이 인다.

깊어지는 생각. 이미 외부의 감각은 단절되어 느껴지지 않는다.

‘본질…….’

이 부분에 대한 결론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분명히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상태였다.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 화경의 고수와 싸워도, 이기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싸워 볼 순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뭐가 문제일까?

어쩌면 나는 이미 화경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아니다. 그것은 절대…….

불안.

초조.

넉 달이라는 시간은 길었지만, 어떻게 보면 짧기도 하다.

혈세귀막에 들러 특사의 임무를 수행하려면…….

‘그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오롯이 무공에만 집중한 적이 있었나? 매번 다수의 상황을 상정했다. 분명한 생의 목표가 존재했기에 하나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인간의 삶이 본래 그러하다고 할지라도 잊어야 할 때는 잊어야 한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

그래, 거기서부터 시작해 보자.

남들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비단 무공의 재능이 아니더라도, 애초에 인간은 모두가 다르다.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었으며, 애초에 태어나기를 그럴 수도 있었다. 모든 사람은 제각기 다르다.

‘남들처럼 불현듯 깨달음을 얻는… 그런 방식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방구.

그는 내 조언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한순간에 확 성장했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하지만 내가 그랬던 적이 있던가?

깨달았다기보단…….

‘시도했었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내 육신에 시도했다.

대부분 내 의도대로 ‘적용’이 되었다.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자.’

화경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환골탈태.

그것은 대체 뭘까?

더 강한 육체로 거듭나는 것?

맞다.

그렇다면 왜 육체가 강해져야 하는가?

더욱 고차원적이고 높은 경지의 무공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

잠시 생각을 멈춘다.

‘그러고 보니…….’

나는 환골탈태와 비슷한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처음은 사천당문에서 만독대법을 받을 때였다. 육신의 변화로 독에 대한 내성을 얻게 되었다. 그다음은 천향옥로단을 취했을 때. 향이 몸에 깃들어 지독한 성욕과 욕망이 분출되었고, 신체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둘 다 내가 의도한 발전과는 조금 달랐다.

내 육신은 자연스럽게 그 힘을 담을 수 있게 바뀌었다. 다만, 아직 천향옥로단의 기운은 모두 단전 속에 녹아들지 못한 상태.

천향옥로단은 화경에 진입하면, 육신이 그 힘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면…….

단전과 세맥에 흡수하려 했다.

‘설마.’

상황을 가정해 본다.

만약, 아주 만약에.

초절정의 고수가 나처럼 빙의하여 새로운 몸을 얻었다. 그는 어떻게 강해지려 하겠는가? 이미 초절정에 도달할 깨달음은 모두 담고 있었다. 내공심법을 익히고, 단전에 내공을 쌓을 것이다. 그리고 육체 단련으로 유연성과 근력 그리고 감각을 키우리라.

‘그렇다면…….’

인간의 육신은 자극으로 변화한다.

더 큰 고통을 견디기 위해 고통의 내성이 생기며.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피부가 두꺼워진다.

무거운 것을 매번 들어야 한다면, 근육이 생기리라.

‘그랬던 건가.’

천향옥로단의 힘.

그 거대한 힘을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된다면, 환골탈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환골탈태가 되면, 그 힘을 다룰 수 있게 된다. 말장난 따위가 아니었다. 이치가 그런 것이다. 인간의 육체가 그러하다.

무거운 물건을 매일 노려보고 어떻게 들지 생각만 한다고 근육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두꺼운 이불을 꽁꽁 싸맨 채로, 창밖의 눈보라를 지켜보고 있는다고 추위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부딪쳐야 한다.

고통스럽더라도. 위험하더라도.

일단은 겪어 봐야 한다.

난 천향옥로단의 기운이 내 본능을 자극하는 것을 경계하여, 한 곳으로 몰아넣었다. 지금은 무영혼이라는 무공으로 그것을 숨기고 필요할 때만 꺼내고 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한 일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근육을 키웠으며.

근육을 키우기 위해 눈보라에 피부를 노출했다.

이제까지의 무공 수련이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른 이들과의 비무는 분명히 내게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도전’해야 했다.

‘하나,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으로 옳은 방법일까……? 내가 천향옥로단의 욕망에 집어삼켜 진다면……?’

그런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상상했다고 하여 그것이 현실에서 벌어지진 않는다.

‘받아들이자.’

추위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추위와 마주해야 한다.

고오오오-.

거대한 어둠이 공간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 * *

“천혜성(天慧星).”

한 여인이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갑자기 비무를 하다가 멈추면…….

“뭐라고? 소영아, 무슨 소리냐? 천혜… 뭐?”

잠시 침묵하던 소영.

그녀가 평소의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방구에게 소리친다.

“아니야! 다시 비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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