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59화 (159/236)

159화 감미로운 비밀

강서성 남창.

하후세가가 있는 곳이다.

하후세가는 정파와 사파의 경계라 할 수 있는 강서성에 우직하게 자리를 잡고 협의를 펼치며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았던 가문이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다는 말이 있듯 아직 하후세가의 평판은 그럭저럭 유지가 되고 있긴 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실정이다.

벌여 놓은 사업이 많으며, 그 적자를 메꾸기 위해서 무영신투의 보물을 이용했지만 그 순간에 불과했다. 무영신투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각 사업의 적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사업을 정리한다.’

주제를 알라.

하후세가의 가주 하후광은 그 사건 이후, 포기하는 것을 배웠다. 분수에 맞지 않은 것을 가지려 발버둥 칠수록 그 끝이 비참해진다. 또, 괜한 짓을 했다가는 그 무서운 ‘장천’이 하후세가에 방문할 수도 있었다.

‘이게 옳은 길이겠지…….’

가장 먼저 표국을 정리한다. 요즘 비화 표국의 성장세를 보면 강서성에서는 경쟁성을 확보할 수 없다. 표국에 물건을 맡길 땐, 신뢰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후세가가 운영하는 표국은 점차 신뢰를 잃고 있었다.

표국의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정리하는 것이 나으리라.

그렇게 하후광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너라.”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딸.

하후예민, 당시의 사건으로 앓아누웠던 딸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회복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래, 무슨 일이더냐?”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하후예민의 얼굴엔 각오가 어려 있었다. 딸이 무슨 결심을 했기에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하후광은 긴장했다.

설마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겠다거나 하진 않겠지? 구파일방 중 아미파가 있다. 속세에 학을 뗀 여인들이 머리를 깎고 불가에 입문하기도 한다. 최근 아미파에 들어가는 여인이 많다고 들은 하후광이었기에 그런 걱정마저 들었다.

“복수하고 싶어요.”

하지만 하후예민의 입에서는 생뚱맞은 단어가 튀어나왔다.

복수?

“지금 뭐라고 했느냐?”

“원한을 갚고 싶어요.”

원한이라 했는가.

하후광의 얼굴이 착잡하게 변했다. 그녀는 아직 잘 모른다. 장천이… 아니, 단목장룡이 얼마나 지독한 놈인지. 그는 자고 있을 때, 협박 서신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경거망동한다면 가문 전체를 몰살한다는 서신.

사실 그것은 단목장룡이 보낸 것이 아니라, 암천회의 갈유화가 보낸 것이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는 건들면 안 된다. 어떤 방식으로 하후세가를 괴롭힐지 모른다. 단지 하후광은 가문의 존속을 위해 엎드리고 또 엎드릴 뿐.

“단목장룡에게 원한을 가졌더냐.”

단목장룡이라는 말에 하후예민의 눈빛이 싸늘해진다.

폭발적으로 타오르는 사랑. 그녀는 한눈에 그 사내에게 반했다. 사랑이라는 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혼인하기 전엔 그토록 사랑하던 연인이었다고 해도 부부의 연을 맺고 나서는 원수보다 더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충격을 받아 앓아누웠던 하후예민.

그녀가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 단목장룡을 떠올리며 느낀 감정은…….

지독한 원한이었다.

하후예민이 그에게 원한을 가질 이유가 있는가?

잘못한 것은 하후세가가 아닌가?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은 이성적으로만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감정이 앞선 동물. 오히려 짐승이라 불리는 것보다 더한 짓을 벌이기도 한다.

“네.”

하후광이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쉰다. 폐부 그 깊숙한 곳에서 짜내듯이 올라오는 그런 숨이었다. 이 아이는 단목장룡을 모른다. 그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를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예민아, 그자에 대한 원한을 접도록 해라. 넌 그런 원한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어.”

“아뇨. 그럴 필요가 있어요. 그는 우리 가문을 망쳐 버렸어요.”

“예민아…….”

“그가 두려우신가요?”

하후예민의 직설적인 물음에 하후광이 멈칫한다.

매번 선량한 말투로 상대에게 호감을 줬던 하후예민이다. 그녀의 변화가 확실히 드러난다.

“그는 무서운 사람이다. 만약 복수를 꿈꾼다면, 정말 하후가는 멸문할 수도 있단다. 이젠 욕심을 버리고…….”

하후예민이 그의 말을 끊는다.

“소개해 드릴 사람이 있어요.”

“그게 무슨? 누굴 소개해 준다는 말이더냐?”

“들어와 주세요.”

하후예민의 말에 문이 드르륵 열린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사내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광오한 표정. 하후세가의 가주를 발아래로 보는 듯한 눈빛.

“당신은……?”

“우리한테 도움을 청했으면, 끝까지 가야지. 안 그래?”

하후예민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는다.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손. 하후예민은 그 사내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몸을 기울인다.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지만, 하후광은 대번에 그 사내가 어디 출신인지 알 수 있었다.

빡빡 민 머리. 승려가 입을 법한 복장이지만, 금빛이 조화되어 화려해 보이는 의복.

“장천… 그 새끼의 진짜 이름이 단목장룡이라지?”

나찰마궁이었다.

* * *

단목장룡이 갈유화를 해남도까지 데려다 주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로 도움에 대한 보답이었고.

둘째로는 천응에게 해남도를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마지막 이유는, 암천회주와 만나기 위함이다.

꽈아악.

본래 천응에는 두 명 이상이 타기 힘들었지만, 두 사람이 몸을 밀착하면 타고 갈 수 있었다. 갈유화는 그의 널찍한 등에 코를 박은 상태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낭군님이 지금 날 안아 주지 않으셔도 괜찮아. 이거면 돼.’

그녀는 급해지지 않기로 다짐했다.

오히려 서로의 몸을 탐하는 것보다 이런 작은 배려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특히 장포를 벗어 덮어 줄 때는 온몸이 찌릿찌릿하여 쾌감이 일었다.

물론 해남도에 도착하고 나서는 또 갈대 같은 갈유화의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릴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무림맹에 있는 당옥정이 부럽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부러워해야 했다.

‘아… 도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갈유화였지만.

천응의 속도는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단목장룡이 앞에서 거센 바람을 다 막아 주고 있었기에 체감이 잘 되지 않았던 것도 있다.

과장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은 해남도에 도착했다.

“내려와라.”

“네, 공자님.”

갈유화가 천천히 천응의 등에서 내려간다. 그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속살을 노출했지만, 당연히 단목장룡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널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천응에 대한 건은 비밀로 했으면 한다.”

“비밀! 네,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거랍니다. 믿어 주세요.”

“믿지.”

믿는다는 말이 이렇게 감미로웠던가?

갈유화는 해롱해롱한 표정으로 단목장룡과 눈을 마주할 뿐이었다.

“회주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나?”

“네, 아버지께서도 공자님을 보고 싶어 하세요.”

천향옥로단은 암천회가 만들긴 했지만 완벽히 제어할 수 없는 신물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모조리 흡수한 단목장룡이 어찌 됐는지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여모봉을 올랐다.

암천회주는 그들이 환락궁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단목장룡이 온 것을 알고 있었다. 환락궁의 입구에서 암천회의 무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주님께서 바로 회주전에 들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어.”

이미 한 번 방문했던 장소였지만, 단목장룡은 감회가 새로웠다.

벽을 허물었기 때문일까? 과거엔 암천회주라는 존재에 거북함이 있었다. 호의가 보였다고 해도 언제든 태도가 돌변할 수 있는 게 사람이었다. 그가 작정하고 단목장룡을 죽이려 했다면, 그 또한 위험했으리라.

이젠 그런 걱정은 많이 덜었다.

회주전에선 암천회주 갈천능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대한 기의 격류가 방 곳곳에 퍼져 있었다. 단목장룡은 그가 마고파심탁을 펼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상대의 감각을 흔드는 그 무공은 단목장룡을 집어삼키려 했다.

과거엔 그 마고파심탁에 말려들었다.

대응하긴 했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해우심법.

천향옥로단마저 집어삼켜 버린 그 거대한 심연에서 칠흑의 기운이 뻗어 나온다. 인간의 청각을 희롱하고 조롱하는 마고파심탁의 기운은 단목장룡의 몸에 닿지 못하고, 소멸한다. 점점 단목장룡의 기운이 외부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우우웅-!

본격적인 기의 충돌. 혈세귀막주와 했던 것보다 훨씬 본격적이다. 당연히 곁에 있던 갈유화도 느낄 수준이었다.

“흡!”

갈유화가 걸음을 멈추고, 숨을 참는다.

극마에 오른 고수끼리의 충돌은, 한계를 넘지 못한 이들에겐 천재지변일 뿐이었다.

쿠릉!

암천회주의 마고파심탁이 천둥소리를 내며, 공간을 짓누르려 한다. 당장이라도 단목장룡을 찢어 놓을 기세였지만, 그는 폭풍의 가운데 있는 것처럼 평온한 얼굴로 갈천능을 마주할 뿐이었다.

“아버지!”

겨우 소리를 낸 갈유화.

회주전을 감싸고 있던 마고파심탁의 기운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허물어지고 사라진다. 이렇게 거대한 기운을 다루는 것도 대단하지만, 한순간에 저리 회수할 수 있는 능력은 더욱 대단하다.

갈천능은 단목장룡이 어찌 반응하는지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검게 타오르던 그의 기운 또한 마고파심탁처럼 사라졌다.

‘이게 말이 되는가?’

갈천능은 단목장룡의 실력을 파악하고 있었다.

지난 암천제에 참가했던 단목장룡은 초절정에서도 상급이었다. 그 수준이 높았기에 언젠가 자신의 위치에 닿으리라곤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적어도 십 년. 그 정도 시간을 예상했다. 이건 타당한 예상이었다. 초절정과 화경의 벽은 그만큼 큰 것이다.

‘천향옥로단의 향이 전혀 나지 않는다. 완벽히 그 거대한 기운을 집어삼킨 것이다.’

놀랍다.

너무도 놀랍다.

“그 짧은 기간에 벽을 넘었군.”

“모두 회주님의 배려 덕분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정중하게 허리를 숙인다.

만약 암천회에서 천향옥로단을 취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빨리 성장하지 못했으리라. 그것이 없었다고 해도 언젠간 벽을 넘을 수 있는 재능이긴 했으나, 일단 큰 도움이 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에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지에 오르기 전의 나였다면, 이 자리에서 널 죽이려 했을 수도 있지.”

사실이다.

암천회주는 온화한 성품이 아니다. 지금도 깊숙한 곳에 감춰 두고 있을 뿐. 그는 포악하고, 질투심 많은 학살자였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언젠간 그가 자신을 추월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극마의 경지에 오르고 삶의 관점을 재정립한 탓도 있었지만, 그의 딸인 갈유화 때문인 것도 있다.

“네가 생각하는 무공이 뭔지 그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구나.”

현재 갈천능은 무(武)의 발전에 과거처럼 몰두하고 있지 않았다.

극마의 경지가 무림에서 마지막 경지라 평가되는 이유는, 그다음 벽이 도대체 어딘지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무림 역사에서 고금제일인으로 평가받는 초대 무림맹주 공공 대사라면 알고 있을까? 아니면 그런 경지에 접어든 이들은 인간이라는 틀을 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갈천능이 포악한 성정을 버린 것도 극마에 도달하여 어느 정도 해탈했기 때문이다.

‘단목장룡을 보고 있으니 모두가 내 경쟁 상대라고 생각했던 과거가 떠오르는군.’

두근거린다.

중원인들이 정해 놓은 한계 따위는 가볍게 부숴 버리는 단목장룡. 그를 보고 있자니 극마의 벽까지도 금세 허물 것 같았다. 그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듣고 싶었다. 무슨 마음을 품고 있을까? 그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대신, 회주님께서도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좋겠군요.”

“좋지.”

존경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사내.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멀찍이 서서 지켜보는 갈유화. 사실 화경에 오른 고수들의 대담은, 억만금을 주고도 듣지 못한다. 갈유화는 그런 기회를 얻은 셈이지만… 단지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진 것이 흐뭇할 뿐이다.

물론, 선을 넘어서 가까워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낭군님께서 해남도의 주인이 되면 어떤 모습을 보여 주실까……?’

홀로 상상을 이어 가며 몸을 비비 꼬는 갈유화였다.

* * *

요즘 단목세가의 첫째 부인 백예령의 어깨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첫째 아들인 단목청야는 무림맹의 호법당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고, 소가주로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그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단목세가의 안주인이 되었다.

거기다가 비화 표국의 발전이 눈부시다.

심지어 단목세가의 장로들까지 그녀의 비위를 맞춰 주려 한다.

온 세상을 가진 기분.

그녀는 이 기회를 발판 삼아 단목세가를 더 큰 가문으로 키울 생각이다. 단목세가의 발전이 곧 그녀의 발전이니까.

“어머니! 장룡 오라버니의 희생을 잊으면 안 돼요!”

잊을 만하면, 단목산산이 과거의 일을 들추어 댔다.

뭐, 그녀 또한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단목장룡을 만나면 진심으로 사과할 생각이었다. 이제 단목세가의 반절은 그녀의 것이라 해도 무방하니, 사과가 대수랴? 장룡에겐 친어머니처럼 대해 줄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이어 가고 있을 때.

“가모님, 큰일 났습니다!”

“경박하게 뛰지 말래도.”

그녀의 명을 수행하는 호위 무사, 황진. 비화 표국의 지원을 받고 단목세가의 방계 무공을 익혀 성장한 여인이다. 그녀는 가끔 쓸데없는 일로 흥분하곤 한다. 누누이 가르쳤지만, 저 성정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더냐?”

별것 아닌 일이기만 해 보아라.

그러한 표정에 황진이 침을 꿀꺽 삼킨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로 큰일이었다.

“강소성 남창에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남창? 강소성?”

“예!”

백예령이 눈을 가늘게 뜬다.

“본론을 말하거라, 빙빙 돌리지 말고.”

“그게…….”

황진의 말에 단목세가의 안주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감히, 겁도 없이 비화 표국을 건드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