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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72화 (172/236)

172화 역대급 천재

보통 중원에서 익히는 무공은 호랑이나 곰과 같은 무시무시한 맹수들의 사냥법을 보고 따라 한 것이 많았다. 본능에 새겨진 움직임. 인간은 처음부터 자연의 포식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했으며, 동물의 움직임을 흉내 내서 생존을 모색했다.

지금에 이르러선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어느 정도 무예를 갈고닦았다면, 내공을 활용할 수 있다면… 호랑이는 이제 인간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어느 경지에 오른 자들은 팔 하나만 써서 맹수를 제압할 수준에 이르렀다. 눈부신 인간의 발전 덕에 태생의 한계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인간이 성장하고 무예를 갈고닦는다고 해도.

그들이 자연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호랑이와 곰 따위의 위협에서 벗어난 인간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또 다른 시야를 가지기 마련이다.

노화(老化). 질병(疾病). 자연재해(自然災害).

그리고 인간(人間).

무림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또 다른 것들과 싸워야 했다. 무공이라는 것은 끝이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영원(永遠)을 추구한다. 평생 무공을 갈고닦는다면 현재보다 더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인간의 한계는 뚜렷하다. 아무리 무공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대자연의 순리 앞에서는 작디작은 모래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의 육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쇠락하고, 수만 가지 질병의 위협을 받는다.

또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따금 떨어지는 하늘의 분노.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비가 몰아치고, 벼락을 쏟아 낸다. 땅이 갈라지고 그 아래서 용암이 분출된다. 곰과 호랑이를 극복한 무림인이라도 그러한 대자연의 분노 앞에서는 결국 나약한 인간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화경(化竟)이라는 경지가 왜 대단한지 설명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무공을 익힌 이들이 그토록 그 경지에 목을 매는 이유. 화경에 이르면 인간의 육신은 새롭게 태어난다. 늙고 병들었던 육신은 다시 젊어지고, 오히려 전성기 때보다 훨씬 강해진다.

화경에 이른 고수들은 고작해야 동물의 움직임을 흉내 내지 않는다.

고작해야 자연의 작은 틈바구니에서 아옹다옹 살아가는 생명들. 그들은 그것을 보고 삶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본다. 자연의 흐름을 읽었으며,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의 축을 바라본다.

그들은 고작해야 짐승의 움직임을 흉내 내지 않는다.

“……!”

응축된 거대한 힘이 단목장룡의 뇌왕검에 담긴다. 새롭게 태어난 육신. 어떤 것으로도 변환될 수 있는 해우심법의 내력. 그것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

유성(流星).

호랑이의 앞발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은 그것.

절세 무공을 창안한 대종사들. 그들은 동물 따위의 움직임에 기반한 무공을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단목장룡도 마찬가지다. 그는 화경에 이르기 전에도 높디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무공이라는 건 자연의 흐름을 익히고 몸에 담아 나가는 과정이다. 단목장룡은 그렇게 생각했다.

“천련반야!”

수십의 괴승이 힘을 합쳐 그것에 대항하려 한다.

이미 백광 존자의 잔핏줄이 터져 온몸이 파랗게 물들었다. 평소라면 담아내지 못했을 기운. 천련반야진의 힘으로 상대를 짓누르려 한다.

천련반야진의 최후의 진세.

천련반야가 펼쳐진다.

그 거대한 기운은 인간, 단목장룡을 노리고 공간을 침투한다. 그 과정에서 한계에 도달한 괴승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진을 발동하는 것만으로, 육신의 한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꿀렁거리는 듯한 자줏빛의 기운이 앞으로 쏘아졌다.

그것을 지켜보는 회녕 지부장의 눈이 부릅뜨인다.

“장룡……!”

그가 걱정의 외침을 내뱉으려는 순간이었다.

두 손으로 검을 쥔 단목장룡.

그의 검이 어느샌가 횡으로 그어져 있었다.

조용하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대체 무엇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빈 공간을 베어 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아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라…….

단목장룡은 이미 손을 거두고,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지부장과 단목장룡의 눈이 마주친다. 순간 오싹해진 지부장이 홱 고개를 돌린다. 단목장룡은 무사하다. 그렇다면…….

“……!”

쿠웅-!

거대한 폭음이 들려온다.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속도로 나아간 유성. 그것이 괴승들의 몸을 덮쳤다. 거대한 자연의 분노가 인간을 습격했다. 괴승들의 몸이 찢어지고 으스러지고 구겨진다. 살점은 터져 나갔으며, 뼈는 부서졌다.

“크륵.”

짧은 단말마.

괴승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오직 한 사람만이.

그 죽음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이게…….”

쿵. 무릎을 꿇는다. 이미 괴승들의 과대한 기를 받아 몸 내부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중원에서 추앙받는다는 신의(神醫)가 오더라도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아니, 미룰 수조차 있을까?

백광 존자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미증유의 힘. 그것이 자신들을 덮쳤다. 분명히 죽음을 보았지만, 유일하게 자신만이 살아남은 상태다. 주변을 둘러본다. 수하들이 기괴한 몰골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된… 말이 안 된…….”

쿨럭.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쏟아진다.

소위 자연재해라 불리는 것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다.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분출되면 그 위에 있는 생명은 모두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현재 백광 존자는 그 자연재해 안에서 살아남았다.

“쿨럭……! 괴, 괴물…….”

그 말인즉슨…….

단목장룡은 자연재해를 다룰 수 있다는 말이다.

자연재해가 왜 자연재해인가?

피아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기에 재해라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다면? 특정 누군가에게 재해를 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괴물이 분명하다.

나찰마궁의 삼대 존자로서.

품지 말아야 할 생각.

‘궁주께선 저 괴물을… 막아 내실 수… 없…….’

그런 불경한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이미 한계에 달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백광 존자의 숨이 멈춘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혼을 집어삼킨 것이다. 그는 부릅뜬 눈으로 단목장룡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

모두가 감히 입을 떼지 못했다.

저것이 무공이 맞나? 본디 검(劍)이라 함은 직접 베여야 무서운 것이다. 저 멀리서 휘두른다고 해도 전혀 무섭지 않다. 회녕 지부의 지부장을 비롯하여 그 밑의 식솔들은 살아났다는 안도감보다 단목장룡이 보여 준 저 괴물 같은 신위에 말을 잇지 못했다.

“꿀꺽……. 헙!”

침 넘기는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리는 이 순간.

깜짝 놀란 단목운혜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을 때.

단목장룡은 생각하고 있었다.

‘시도는 좋긴 했는데… 확실히 비효율적이긴 하군. 내력과 정신력의 소모가 상당해. 하지만 비효율을 극복하고 효율을 내야지만 더 높은 경지에 발을 디딜 수 있겠지. 더 연구해 봐야겠군.’

천재는 평범한 사람과 생각의 궤가 달랐다.

누군가가 자신의 경지에 만족하고 이 정도면 됐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그는 끊임없이 더 높은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목장룡.

죽음이라는 시련을 겪고, 단목세가에서 비로소 완성된.

역대급의 천재였다.

* * *

“아버지! 피가……!”

평소답지 않게 몹시 당황한 갈유화. 그녀는 아버지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중원의 누구라도 오만한 눈빛으로 내려다볼 위인이었으며, 수만의 군세 앞에서도 오연할 사내였다.

하지만 현재 암천회주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상체에는 본래 흰 것이 분명한 붕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평소라면 벌써 아물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 하지만 사마백혼의 검에 담긴 사기(邪氣)와 전투로 인한 내상은 육신의 회복력까지 저하시켰다.

“사마련주의 짓인가요?”

표독스러운 갈유화의 말에 암천회주가 피식 웃는다.

“왜, 사마세가에 복수라도 하려고 하느냐?”

“당연히…….”

순간 말을 멈추는 갈유화. 암천회의 지존이 이렇게 당했다. 그런데 과연 그들에게 복수할 수 있을까? 갈유화가 황급히 묻는다.

“사마련주는 어떻게 됐죠?”

무사히 해남도를 빠져나갔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다쳤는지 아는 이들은 없었다. 그것은 암천회주만이 알고 있으리라. 암천회주가 이렇게 당했다면 분명히 그는…….

“난 그에게 패배했다.”

“……!”

이미 그 결과는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그 자존심 강한 암천회주가 직접 말하는 것은 무게가 달랐다. 갈유화가 아랫입술을 깨문다. 사마련주가 그렇게나 강하단 말인가? 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유유히 해남도를 빠져나갈 정도로?

“그럼…….”

갈유화가 더 물으려 했지만, 암천회주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일단 나가 보아라. 때가 되면 널 부를 터이니.”

“…….”

그에게 물을 것이 많았다.

사마백혼이 왜 찾아온 건가? 두 사람은 왜 갑자기 싸우게 된 것인가? 역시 나찰마궁의 일 때문인가?

하지만 아버지의 피로한 표정에 갈유화는 더 묻지 못했다.

그는 이대로 무너질 사내가 아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는 암천회의 회주였으니까.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불러 주세요.”

오랜만에 암천회주에게 예를 갖춰 인사하는 갈유화.

그녀가 돌아서서 회주전을 빠져나가고 있을 때.

“내 몸이 모두 회복될 때까진, 아마 단목장룡 그 아이를 돕지 못할 것이다. 그 아이에게 조심하라 일러 두어라.”

갈유화가 멈춰 선다.

사마련주는 나찰마궁과의 일 때문에 온 것이 확실하다. 솔직히 그녀도 걱정이 된다. 나찰마궁이 사파의 세 기둥 중 하나라 불리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공자님께선 제 도움이 없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실 분이세요.”

갈유화는 다시 아버지에게 인사하고 회주전을 빠져나갔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암천회주가 눈을 감았다.

‘사마백혼…….’

암천회주는 사마련주와의 대결을 회상한다.

그의 얼굴이 점점 흉악하게 일그러진다.

‘네 개의 하늘이라고 했던가? 감히 이 몸을 무시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 주지.’

수십 년 만의 패배.

그것이 갈천능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 * *

“다른 지부들은…….”

단목세가는 오대세가 수준은 아니지만, 명문가로 중원에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호북성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도 지부를 여럿 만들어 놓았다. 그것은 나찰마궁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들의 습격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단목장룡은 그들을 모두 구하고 안휘성에 도착한 것이다.

“모두 무사합니다.”

“저희가 마지막이었군요…….”

회녕 지부의 지부장 단목원은 단목장룡과 당숙과 종질의 관계였다. 가주인 단목무광의 사촌 동생이었기에 단목장룡보다는 배분이 훨씬 높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목장룡에게 말을 높이고 있었다.

어릴 때 보았던 단목장룡.

그리고 지금 눈앞에 선 무인(武人)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나찰마궁의 괴승들에게 보여 줬던 신위를 생각하면 감히 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잠시 합비로 가 계시길 바랍니다.”

“나찰마궁과의 전쟁은 계속되는 겁니까……?”

그 말에 단목운혜를 비롯한 여인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괴승들의 습격은 그들에겐 지옥도가 펼쳐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욕구에 눈이 먼 인간들. 그들의 눈빛을 마주하고 나니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이곳에서 죽은 나찰마궁의 괴승들은 일부일 뿐이다.

나찰마궁이 건재한 이상, 또 이런 습격이 있을 수 있었다.

매번 단목장룡이 구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런 식솔들의 두려움을 지부장은 잘 느끼고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지 식솔들을 이끌 수 있으리라.

단목장룡은 직계였으며, 무림맹의 간부라 할 수 있었다.

그에게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었다.

“나찰마궁과의 전쟁은 곧 끝날 겁니다.”

사실 전쟁이 길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그 희망적인 말을 들은 지부장의 얼굴이 밝아진다. 무림맹이 개입하는 건가? 남궁세가가 나서 주는 걸까? 아니면 무당파? 화산파? 정파의 명문거파가 나서 준다면…….

“역시 무림맹이……!”

그러자 단목장룡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뇨. 이번 전쟁은 단목세가와 나찰마궁만의 싸움입니다.”

“예?”

단목세가와 나찰마궁의 싸움이라고?

무림맹이 나서지 않는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전쟁이 곧 끝난다고 말하는 거지?

혹시……?

“서, 설마 혼자서…….”

단목장룡은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단지…….

“나찰마궁과의 전쟁은 곧 끝날 겁니다.”

덤덤한 단목장룡의 말에.

지부장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의 머릿속엔 단목장룡이 마지막에 보여 준 괴물 같은 신위가 번뜩이고 있었다.

말이 안 되지만.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쩌면 단목장룡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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