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85화 (185/236)

185화 엇갈리다

드높은 무림맹의 외벽.

한 여인이 무신경한 눈빛으로 무림맹의 성을 바라본다. 무림맹에 처음 들른 자들은, 그 압도적인 위용에 위압감을 느끼곤 한다. 외벽 위에서 경계하는 흑색 무복을 입은 무림맹 무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백성들은 그런 무림맹의 모습에 경외감을 품는다. 하지만 여인은 달랐다.

본래 무림맹의 소속이었던 걸까?

아니면 이 정도 규모의 성채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배포를 가졌기 때문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여인은 외벽을 따라 정문으로 거침없이 걸어갔다. 급하게 가는 것 같지 않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몹시 빨랐다.

“검문이 있겠습니다.”

뒤숭숭한 무림의 분위기에 무림맹의 정문 경계 인력은 부쩍 늘어나 있었다. 본래 외성은 외성의 수비대가 관리하지만, 지금은 내성 경비대의 무인들도 나와 있는 상태였다. 엄격해진 출입 통제. 간자가 들어올 수 없게끔 철저하게 신분을 확인한다.

“출신과 이름, 나이를 말씀해 주십시오. 신분…….”

내성 경비대의 사 조장 서문륭. 그는 평소 해 왔던 대로 무뚝뚝한 말투로 여인을 검문하려 했다. 하지만 순간 그녀의 눈빛과 마주하고 만다. 마치 죽은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으며, 표정은 음침하여 소름이 돋는다.

무림맹은 정파 무림의 중심.

개성이 넘치는 무림인이 몰려온다. 웬만한 사람을 보곤 당황하지 않는 그였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보니 당황의 감정이 밀려온다. 음침한 것도 음침한 것이지만 그녀의 외모는 객관적으로 상당히 아름답다.

“크음……! 신분 패가 있다면 같이 제출… 해 주십시오.”

겨우 말을 끝낸 서문륭.

여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주변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몇몇 무리의 대화 속에서 어떤 소식을 듣게 됐다.

“소저?”

“…유성검룡께서 탈맹하셨나요?”

출신과 이름은 말하지 않고, 뚱딴지같은 것을 묻는 여인.

하지만 서문륭은 그녀에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예, 그렇다고 하더군요. 저도 점심이 되어서 겨우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무림맹에 계신 가요?”

“어제 떠난 것으로…….”

“소속이 어딘가요?”

“전 내성 경비대 사 조 조장인 서문…….”

그녀의 말에 홀린 듯, 답을 하던 그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검문을 해야 하는 것은 서문륭이다. 그런데 처음 보는 여인에게 소속을 술술 불어 버리면 어쩌잔 것인가? 다행히도 현재 정문의 검문을 맡은 이들 중에선 서문륭보다 상관은 없었다.

“크음……! 그건 왜 묻는 겁니까!”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 서문륭.

여인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간다. 서문륭은 작은 변화였지만 또다시 오싹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정보의 신뢰성을 확인하기 위함이죠.”

“그게 무슨… 출신과 이름을 대십시오!”

이 오묘한 감정을 털어 내고자 사내가 소리친다.

“소영. 출신은 안휘성 정도로 해 두죠.”

“안휘성 정도로 해 둔다? 그걸 말이라고…….”

의심이 생겨난다.

아무리 봐도 이 여인은 무언가 있다.

“그래도 맹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 봐야겠군요.”

음침한 느낌에 경계심이 생긴다고 할지라도 그는 무림맹 정문을 책임진 무인이었다. 출입 허가도 내리지 않았는데 들어가서 확인하겠다는 그녀에게 화가 치솟는다. 무림맹이 아무나 들어오는 곳인 줄 아나? 거기다 그녀는…….

“들어가도 될까요?”

“아… 예. 소저셨군요……. 들어가시면 됩니다.”

갑자기 몽롱한 눈빛으로 대답하는 서문륭.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대답한다. 검문은 일정 거리를 두고 행해지기에 그의 반응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은 없었다. 거기다 외성 경비대도 아니고 내성 경비대의 조장이 아닌가?

그가 출입을 허가했다면, 그녀의 신분이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

시간이 지난 뒤.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던 서문륭이 정신을 차린다.

“조장님! 조장님!”

“으응? 뭐야? 왜 네가 내 멱살을 잡고 있냐?”

“그, 그게… 조장님께서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셔서……! 죄, 죄송합니다!”

“뭐야? 더위라도 먹은 건가?”

햇볕이 강렬하다.

쉬지 않고 너무 오래 서 있었던 탓인가?

하지만 무림맹의 출입을 위해 기다리는 수많은 인파가 보인다. 조장이 되어서 모범을 보이지 못할망정…….

“얼른 네 자리로 돌아가라. 다시 검문하겠다.”

“…예.”

수하가 떠나가고, 서문륭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검문을 시작했다.

* * *

단목장룡은 흑룡단에서 연을 맺은 이들에게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조를 남기고 떠나갔다. 조원들을 제외하고 가장 아쉬워한 것은 설비연과 남궁일몽이었다. 두 사람은 분명히 현재로써도 대단한 전력이었지만, 단목장룡이 지금 하려는 일에 그들이 끼게 되면 탈맹의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처음 단목장룡이 흑룡단에 들어온 것은, 마교를 상대하기 위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였다.

정파 무림의 심장인 무림맹. 그곳에 있으면 마교의 동태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흑룡단의 조장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는 목표를 위해 조장직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무림맹에서 탈맹한 단목장룡이 향한 곳은 소림사가 있는 등봉현이다.

천응을 타고 당옥정과 함께 그곳으로 되돌아갔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두 여인과 함께 지낼 예정이다. 어차피 삼자 회담은 석 달 후에나 열린다. 중원에서 단목장룡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화경에 이른 고수가 최대한의 속도로 경공을 펼친다면 제아무리 넓은 중원이라도 빠르게 가로지를 순 있겠지만… 보통 그러한 고수가 경공을 펼치며 중원을 가로지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은영전주의 말처럼 그들의 엉덩이는 무거웠으니까.

단목장룡은 두 여인과 함께 등봉현에 있으면서, 대허 선사가 말한 인물이 누군지 알아보면서도 다른 성에도 다녀왔다.

“어, 장룡! 벌써 만나고 왔어?”

단목장룡을 본 당옥정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묻는다.

“아니.”

“으응? 왜?”

아니라는 말에 당옥정이 고개를 갸웃한다.

“어느 날 사라졌다고 하더라고.”

“기억을 잃었다고 하지 않았어? 갑자기 왜… 설마 제갈 소저를 납치한 범인이 찾아온 건가?”

“그랬다면 방구나 아이들도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

인간을 납치하여 강시로 만드는 세력.

그들은 드러난 정보로는 알아낼 수 없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가 배후에 있을 수도 있었으며, 어쩌면 사파나 마교일 수도 있었다. 그 세력에 소림사 출신의 무인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기억을 되찾았을 가능성이 크지.”

“본가로 돌아간 게 아닐까?”

“모르겠네, 그것까지는.”

제갈교아를 보러 간 것은 일종의 확인이었다. 그녀의 기억이 돌아왔는지 아니면 그대로인지. 뭐,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녀는 잿빛 기운에 먹혀든 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육신을 얻었다. 그녀에게 금강신공(金剛神功)을 가르쳤던 것은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무공을 알려 준 이들 중, 시간이 흐른다면 가장 강해질 사람이 바로 제갈교아다.

기억을 잃기 전에도 자신에게 호감을 드러냈던 그녀였기에 믿고 무공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라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적어도 떠날 것이라면 방구에게 말을 해 주고 갔어야 하지 않은가?

‘…적이 될 가능성도 있나.’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아예 배제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물론, 그 가능성에 집착하는 것 또한 멍청한 짓이라는 건 마찬가지.

“참, 양씨세가는?”

“다시 수상한 이들이 찾아온 적은 없다고 했어. 그래도 마교의 소교주가 나타났으니 겁을 집어먹은 것 같긴 하지만…….”

그들은 마교의 계책에 빠져 가문 전체를 홀라당 뺏길 뻔했었다.

그리고 마교에게 겁을 집어먹은 것은 맞지만, 그만큼 증오심을 키워 왔다. 만약 소림사가 마교와의 평화를 말한다면 양씨세가에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양씨세가를 찾아간 것은 마교가 해코지를 하지 않았나 확인하기 위함도 있었으며, 무림맹에서 목소리를 내 달라고 ‘명령’하러 간 것이기도 하다.

양씨세가는 단목장룡에게 충성을 맹세했었으니까.

“겁을 먹은 만큼 목소리를 내 주겠지.”

“당문에도 고모님께서 서신을 보내 주셨어. 아미파나 청성파도 설득하면… 양씨세가의 목소리에 더 힘이 들어갈 수 있을 거야!”

“고마워.”

“고맙긴… 마교가 중원을 침공하게 되면 사천성이나 감숙성이 가장 위험하잖아?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한 건데, 뭘!”

그래도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짓는 당옥정.

그녀는 확실히 청룡단에서 강호의 생리를 배우게 됐다. 더 넓은 시각으로 무림을 보게 되었다고 할까? 과거엔 어디에 내놓으면 불안한 느낌이 강했는데, 이젠 믿음이 간다.

“고모님은 어디 계셔?”

“방에서 정보를 분석하고 계셔.”

소림사에서 이름 높았던 고승들.

그들의 정보를 분석하여 대허 선사가 말한 그 조심해야 한다는 이가 누군지 찾아내고 있다. 사실 소림사의 내부 정보는 구하기 힘든 축에 속했기에 단기간에 찾아낼 수 있는 부류의 것은 아니다.

“알겠어. 그럼 뭔가 나오는 게 있으면 말해 줘.”

“응, 알겠어!”

단목장룡이 당옥정의 방을 나선다.

아직 세 세력의 대표들이 만나는 회담까지는 석 달이나 남아 있었다. 사실 당장 해야 할 것들은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단연코 본신의 무력이었다.

‘이제 곧 만나게 되겠지.’

마교의 소교주.

그리고 암천회주를 꺾었다는 사마백혼.

그 회담에서 무언가 사고가 일어날 것 같았다. 그것을 대비해야 한다. 나찰마궁주와의 싸움이 끝난 후, 제대로 수련을 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연옥에 들어간다.’

암천회주는 극마의 경지에 오른 후, 무공에 대한 열망이 줄어들었다고 했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현재에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 * *

호남성 성도 장사.

이곳에 거대 세력의 수장들이 모인다는 소문은 파다하게 퍼졌다.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애초에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던 이들도 있다. 마교의 입장에선 처음으로 공적인 자리에 등장하게 된 것이기에 그들의 등장은 화려해야 한다.

장사의 중심에 대놓고 장원을 매입하여, 간판에 ‘천마신교’를 새겨 넣었다.

호남성이 사파의 권역이라고 해도 감히 그 근처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무시무시한 마교의 소문을 무시할 수 있는 이들은 없으리라. 무인의 배포도 마교라는 이름 앞에선 작아진다. 그들은 전 무림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왔던 세력이다.

거기다 그 마교의 소교주라니?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하지만 그러한 공포는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마교의 소교주는 종종 장원에서 나와 장사의 중심부를 돌아다니곤 했다. 물론 중원인들과 친숙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거나 하진 않았지만… 느긋하면서도 여유로운 시선으로 중원인들을 바라보는 귀공자의 모습은 뭇 여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사실 마교와 중원의 전쟁은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들의 인식 변화에 소교주의 외모가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소교주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았다면 그리 좋은 감정을 품진 못했으리라.

‘언젠간 내 백성들이 될 이들이다. 또한, 내 땅이 될 곳이니.’

비옥한 토지. 이런 땅을 가진다면 그야말로 옥황상제와 같은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마교는 가진 힘에 비해 너무도 척박한 땅에서 살아왔다. 이제는 그곳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소교주님.”

가슴팍에 황금색 용이 새겨진 옷을 입은 무인. 소교주에게 다가와서 자세를 낮추었다. 소교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입을 뻐끔거린다. 말이 아닌 전음으로 보고하는 것이다.

- 무림맹주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교주는 전음이 아닌 말로 대답한다.

자신감의 표출이라 볼 수도 있으리라.

“무인은 얼마나 끌고 왔던가?”

- 소수의 수행원만을 이끌고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사마련주 또한 이틀 내로 장사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사마련주… 무림맹주…….”

피식.

웃음이 나온다.

과거라면 얼굴을 보자마자 칼을 들이밀었어야 할 존재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장사로 모였다. 무림맹주나 사마련주가 이 무림의 주인인가? 그 질문에 소교주 사도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은 지배자가 아니지.’

무릇 주인이란, 지배자이며 절대자여야 한다.

그것이 마교에서 숭배하는 강자존의 첫 번째 원칙이다.

“맹주의 자질을 확인하고 싶구나.”

- 모시겠습니다.

이제껏 방향을 정하지 않고 장사의 중심부를 거닐었던 소교주.

그의 목적지가 정해졌다.

뚜벅뚜벅.

“흐음?”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던 소교주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선다.

‘시선이…….’

수많은 군중이 흘끔흘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은 당연히 느껴졌다. 하지만 방금 느껴진 감각은 묘했다.

마치…….

‘살수?’

경지에 이른 살수는 살기 또한 숨길 수 있다.

하나, 살기를 숨긴다고 찾아낼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올 테면 와 보아라.’

아마 멀리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중원엔 마교의 소교주를 두려워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증오하는 이들도 많다. 살수가 소교주를 노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천마(天魔)의 육신으로 찢어 줄 터이니.’

사도명이 여유롭게 미소를 짓는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에서 귀기가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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