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90화 (190/236)

190화 눈동자가 향하는 곳

옥팔찌는 단목장룡이 사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때 착용했던 물건이다. 물론, 십만대산에선 이걸 착용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마교에서 떠나는 날에 그녀가 이별 선물로 준 것이니까. 서녕 지부에서 그것을 착용하고 있었으니, 이것을 보았던 사람은 꽤 있었다.

하지만 외관이 그리 특이한 것은 아니었기에 과거에 보았다고 할지라도, 십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이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마백혼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사마공이 이것을 알아본다?

그가 마교의 출신이라 생각하는 단목장룡의 의심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사마공이 영령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런 의문이 단목장룡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것을 직접 선물해 준 그녀. 제갈교아의 말을 듣고 이 팔찌에 영혼이 담긴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완벽하지 않은 이혼대법이 성공했던 이유. 천마신교의 신녀가 이혼대법에 관여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만약 그녀를 만나게 되면 그 부분에 대해 묻고 싶었었다.

‘하지만 신녀는 무공을 익힐 수 없었다.’

그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신녀는 무인이 아니었다. 별을 바라보고, 미래에 대해 예언하는 존재. 신녀의 예언이 확실한지 아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천마신교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단목장룡이 당시 그녀에게 끌렸을 수도 있었다.

자신의 성품도 신교와는 맞지 않았으며, 그녀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잡초와 같은 작은 생명도 아끼는 성품이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십 년 만에 극마에 도달했다?

그게 가능한가?

그 가정이 맞다면, 영령은 교주조차 경악했던 재능을 가졌다는 말이다. 거기다 사공천이 죽고 난 다음에 무공을 익혔다는 말인데… 단목장룡이 아는 마교라면 신녀가 무공을 익혔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 제가 무공을요? 후후,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을뿐더러… 신녀는 무공을 익히면 안 된답니다. 왜냐고요? 죽을 테니까요.

영령이 자신에게 해 줬던 말이 떠오른다.

물론, 그녀의 말에 거짓이 없다고 가정할 수는 없었다.

그가 모르게 무공을 익혔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그녀가 굳이 거짓을 고할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이혼대법으로 단목장룡에게 도움을 줬던 것이 영령이 맞다면… 굳이 왜?

온갖 의문들이 떠올라 단목장룡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사마공의 가면의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가면의 작은 틈 사이로 눈동자가 얼핏 보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을 알아볼 순 없었다.

- 소중한 물건인가 봅니다?

떠보려는 듯한 사마공의 전음이다.

단목장룡은 겨우 정신을 다잡았다. 언젠간 자신의 본질이 ‘사마공’이라는 것을 밝힐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교주를 만나는 순간으로 정해 두었다. 지금은 아니다. 마교의 시선을 홀로 감당해 낼 생각은 없었다.

‘설령 사마공이 그녀라 하더라도.’

단목장룡은 태연하게 답한다.

-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소중한 물건이죠.

- …….

잠시 전음이 들려오지 않는다.

당장 청룡루에 올라 가면을 벗겨 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아 냈다.

- 그런데 이러한 팔찌는 흔한 외형인데, 어디서 보았다는 겁니까?

- 글쎄요.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두루뭉술하게 넘기려는 사마공.

이젠 단목장룡이 그를 떠볼 차례였다.

- 사마 소협께선 이제까지 중원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사연으로 이제껏 숨어 있던 겁니까?

하지만 단목장룡이 전음을 보낸 순간, 그가 몸을 홱 돌렸다.

- 대화는 다음에 더 나누도록 합시다.

“…….”

단목장룡은 창에서 멀어져 가는 사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등을 보더라도 나오는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제멋대로인 성격이로군.’

단목장룡의 눈이 가늘어졌다.

* * *

“사마련에서는 단목세가에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답했다네.”

하지만 그것이 끝일 리가 없었다.

“어떤 조건이 붙었습니까?”

“마교의 지부를 난주에 세우겠다더군.”

“난주…….”

감숙성은 공동파가 있는 성이다. 거기다 난주는 그곳의 성도였다. 당연히 공동파와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공동파는 무림맹주의 사문이었다. 그곳에 마교의 지부가 생겨나게 되면 무림맹주가 마교의 무림 진출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그들은 나찰마궁주의 죽음으로 마교의 진출을 확정하려 하고 있었다.

“결론은 나지 않았네. 아니, 이번 회담에선 결론을 내지 않으려 하네.”

“그렇군요.”

이번 회담에서 모든 것을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명확하게 딱딱 끊어 내는 것만이 정치가 아니다.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만드는 것 또한 목적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림맹주는 실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결정을 미룬다면 사마련에서도 당장 단목세가에 책임을 묻진 못할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자네가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다네. 자네는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니까. 이 부분은 최대한 단목세가가 피해를 보지 않는 쪽으로 이끌어 보겠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림맹의 맹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네.”

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대화의 주제는 어느덧 사마공으로 넘어간다.

“맹주님, 혹시 회담에서 사마공과 관련한 정보는 없었습니까?”

“사마공이라… 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네. 궁금한 것이 있는가?”

“그의 무공 수위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이제까지 숨어 있다가 갑자기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자네는 그의 출신을 의심하는 것이로군.”

“예.”

“다음 회담에서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 보겠네. 소교주나 사마련주나 보통내기가 아니라 잘 걸려들진 않지만… 그래도 작은 정보라도 얻을 순 있겠지.”

“감사합니다.”

다음이 마지막 공식 회담이었다.

뭐, 각 수장의 요청으로 비공식 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었지만 말이다.

* * *

마지막 공식 회담.

소교주와 맹주 그리고 사마련주가 원형 탁상을 중심으로 앉아 있었다. 각자가 원하는 것은 명료했다. 무림맹은 마교가 이대로 십만대산에 박혀 있기를 원했으며, 마교는 중원에 진출하고자 했다. 그리고 사마련은 마교 쪽에 손을 들어 주고 있는 입장이다.

다행인 점은 사마련이 무조건 마교의 편을 들진 않는다는 것이다.

마교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축소하기도 하며 서로 견제하려는 모습도 보여 줬다. 물론, 드러난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맹주는 아니었다.

‘두 사람이 이미 말을 맞춰 놓았을 가능성이 크지.’

맹주는 무림맹에서 갈고닦은 정치력으로, 그들의 요구를 미루고 또 무림맹의 의지를 관철하려 노력했다. 당연히 깔끔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다음에 회담을 또 열어야 할 것 같군요.”

사마련주가 입을 뗐다.

그의 말에 소교주가 맹주를 바라본다.

“맹주님, 마교의 요구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닙니다만…….”

“허허허, 소교주의 말뜻을 모르는 것이 아니오. 하나, 그것을 이번 회담으로 단기간에 정하기엔 너무 큰 사안인 것 같소이다. 본 맹주는 정파 무림의 조율자일 뿐, 최종 결정권자는 아니니 말이오. 각 문파의 장문인들이나 가주들과도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할 것이오. 급히 결정해 잡음이 나오는 것보단 깔끔하고 확실하게 일을 정리하는 것이 낫지 않겠소이까?”

맹주는 매번 이렇게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갔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회담에서 맹주가 원하는 대로 흘러간 것만은 아니다.

“정파 무림의 태산북두라는 소림사의 방장께서 마교와의 평화를 약조하셨지요.”

맹주가 있는데도 소림사의 방장을 언급한다.

맹주 스스로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라 말했으니 그를 언급하는 것은 효과적인 공격이라 할 수 있었다.

“허허허… 대허 선사와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아야 할 것 같소이다. 참, 그리고 사마련주께 궁금한 것이 있소만…….”

당연히 맹주로서 기분이 나빴지만, 어찌어찌 넘긴다.

그리고 화제를 전환했다.

“예, 말씀하시죠.”

“사마공 공자에 대해서 말인데…….”

순간 사마백혼의 표정이 바뀐다. 미묘한 차이였으며 금방 평소처럼 돌아갔지만, 그 이름이 사마백혼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 아이에 대해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사실 사마련의 련주는 몇 번 바뀌긴 했지만, 대부분 사마세가의 출신들이 역임해 오지 않았소이까? 그렇다면 차기 련주는 정해진 것이오?”

맹주의 질문에 소교주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사마련주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연기일 수도 있었다. 맹주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사마련주와 소교주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사마련주는 그리 길게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 아이가 원한다면 뭐든 될 수 있을 것이오.”

“그렇소?”

그의 대답을 들은 소교주의 입꼬리가 미약하게 올라갔다.

복마의 기운을 일깨우며 정신을 집중하던 맹주. 그는 그 찰나의 변화를 감지했다.

‘사마공… 단목 조장의 말대로 뭔가 있긴 하구나.’

* * *

단목장룡은 기다리고 있었다.

사마공이 다시 창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낼 때를 말이다. 하지만 그는 회담이 시작되고 한 시진이 흘렀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그는 얻을 걸 얻었다는 걸까?

‘차라리 무영혼을 이용해서…….’

밤중에 그의 침소에 숨어드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아무리 극마의 경지에 올랐더라도 무영혼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면 일정 거리까지는 그 또한 감지해 내지 못할 것이다. 잠을 자는 중에도 가면을 쓰진 않을 테니, 창문을 통해 얼굴을 확인하면 그만이다.

뭐, 사마백혼이라는 존재가 걸리긴 하지만…….

‘두 사람의 침소는 거리가 있다.’

사실 처음 사마공에 대해 생각할 때만 하더라도 이런 과격한 방안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잘못된다면 회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만약 영령이라면… 처음 내게 전음을 보내 왔을 때, 정체를 말했겠지.’

객관적인 정보로는 사마공이 영령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팔목에 찬 옥팔찌를 볼 때마다 왜인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대체 왜? 만약 그녀가 이혼대법을 성공시키는 것에 도움을 줬다면 왜 이제까지 찾아오지 않은 건가? 그녀는 사마공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녀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마공은 영령이 아니다로 귀결된다.

하지만 사마공이 그녀였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참으로 많았으니까.

‘언젠간 물어볼 수 있겠지. 집착하지 말자.’

이미 지나간 인연이다. 그것에 매몰된다면 그의 목표를 이룰 순 없을 것이다. 만약 영령이 마교의 편에 선다면? 그녀는 신녀이니 당연히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복수를 포기해야 할까? 아니었다.

‘이리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낫군. 어차피 맹주께서 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 오실 터이니…….’

그때였다.

뚜벅뚜벅.

누군가 단목장룡이 선 나무를 향해 걸어온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육신의 윤곽이 훤히 드러나는 갈색의 가죽 의복. 어떤 약재를 바른 것인지 반들반들 윤기가 가득했다. 단목장룡은 예상치 못한 여인의 등장에 놀라고 말았다.

“너…….”

“오랜만에 뵈어요, 공자님.”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여인.

그녀는 암천회의 소회주인 갈유화였다. 예전보다 기도가 훨씬 안정된 것이 못 보던 새에 무공의 경지가 더 상승한 듯했다.

“갈유화, 네가 왜 여기에? 설마 암천회주님과 같이 온 건가?”

“아니랍니다. 아버지께선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셨어요. 제가 떠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말이죠. 지금쯤이라면 모두 회복했을 수도 있겠네요.”

시간은 꽤 지났다.

사마백혼과의 싸움에서 내상이 컸다고 하더라도, 지금쯤이면 회복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섭섭하네요.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반갑다고 한 마디는 해 주실 줄 알았는데…….”

삐친 표정을 한 갈유화.

그런 그녀에게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녀에겐 고마운 점이 분명히 많았지만, 이제 단목장룡은…….

순간의 분위기 변화를 갈유화는 모두 감지했다.

여자의 감각이란 고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삐친 척했던 표정을 모두 지우고, 평소의 자신감 넘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머, 농이랍니다. 사실 이번 일로 공자님께 직접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곳으로 찾아왔답니다.”

“내가 이곳에 올 줄 어떻게 알았지?”

“제가 공자님 생각을 얼마나 하는데요? 사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게 되었네요.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회담이 끝나면 가도록 하자.”

“네에, 알겠어요. 그럼 전 먼저 객잔에 가서 방을 잡아 놓도록 하겠어요.”

운이 좋게도 그와 동시에 청룡루의 끝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울린다.

회담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 주는 소리였다.

사 층의 문틈 사이로 맹주의 얼굴이 보인다.

- 단목 조장, 저녁에 보도록 하지.

- 예, 맹주님.

맹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미 조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아직 그는 조장이라는 호칭을 버리지 않았다. 언제든 무림맹에 돌아올 여지를 남겨 두기 위함이었다.

“지금 가자. 회담이 끝난 모양이로군.”

그렇게 단목장룡과 갈유화가 나무 아래에서 떠나가고…….

“…….”

단목장룡이 기다리고 있던 가면을 쓴 사마공이 이 층 창문의 틈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가면의 작은 틈으로 보이는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단목장룡과 갈유화가 떠나는 곳이었다.

‘이제 모습을 드러내는군.’

당연하게도.

단목장룡은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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