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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191화 (191/236)

191화 그녀

두 사람은 단목장룡이 묵고 있는 객잔 방으로 향했다. 굳이 일 층에서 식사하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킬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회담 때문에 중원 곳곳에서 파견한 정보원들이 신분을 숨긴 채로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자 갈유화가 야릇한 미소를 지은 채 단목장룡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왠지 평소보다 웃음에 담긴 힘이 미약했다.

“앉지.”

“네, 공자님.”

원형 탁자를 사이에 두고 눈을 마주친 두 사람.

단목장룡이 입을 뗐다.

“괜찮나?”

“…….”

잠시 멍한 얼굴로 단목장룡을 바라보는 그녀.

두 눈을 빠르게 끔뻑이는 것이 평소의 갈유화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의 따스한 말 한 마디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속에 치밀어 오른다.

“썩 괜찮진 않았지만… 이젠 그나마 괜찮답니다.”

“혼자 여기까지 온 건가?”

“네에, 그렇답니다.”

위험할 수도 있었다.

이곳엔 마교의 소교주도 있었으며, 사마련주가 있었다. 물론, 암천회주를 죽이지 않은 시점에서 갈유화를 건드릴 가능성은 없었다. 암천회가 몇십 년에 걸쳐 쌓아 놓은 전력은 사마련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단목장룡의 눈빛에 갈유화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오싹할 만큼 짜릿한 감정. 걱정이 담긴 그의 눈빛에 갈유화는 하늘에 붕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그 ‘몽환’에 취하는 법이 없거늘, 단목장룡의 시선에 미약에 취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너도 그것을 모르진 않았겠지. 그래, 직접 할 말이라는 게 뭐지?”

“잠시만요.”

갈유화가 숨을 고른다.

그녀는 단목장룡의 손길을 기억했다. 당시엔 그 단목장룡조차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다. 천향옥로단의 거대한 기운은 일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들었으니까. 당시엔 그런 그의 손길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단목장룡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고 있자니…….

‘역시 포기할 수 없어.’

갈유화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그녀는 당옥정과 단목장룡의 사이가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를 가지려 했었다. 하지만 온전히 빼앗을 수 없다면… 그것이 더 최악의 상황을 불러온다면…….

‘굳이 최악까지 갈 필요는 없지 않겠어?’

갈유화는 똑똑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원하는 흐름으로 이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순응하여 기회를 노리기도 한다.

굳이 극과 극을 달릴 필요는 없으리라. 당옥정과 그와의 관계가 예사가 아니라는 건, 처음 사천의 객잔에서 만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의 모든 것을 가지려 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가지려 할 필요 또한.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다.

갈유화의 미소가 힘을 되찾았다.

“이걸 읽어 주세요.”

“이건……?”

갈유화가 품속에서 표지가 없는 서책을 꺼낸다. 새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무공을 분석한 것이군.”

단목장룡의 눈빛이 깊어진다.

보통의 무공이 아니다.

응축과 폭발의 흐름을 담은 무공. 수많은 무공을 알고 있는 단목장룡이었지만, 파괴력으로 따지자면 이것은 단연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글로만 표현한 것이기에 실제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또 모르는 일이긴 했지만.

“암천회주께서 적은 건가?”

“예, 그렇답니다.”

“사마련주의 무공을 분석한 것이로군.”

“역시 공자님은 한눈에 알아보시는군요.”

사마련주 사마백혼의 무공.

암천회주는 그와 직접 싸워 보았다. 그 경험은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다. 상세하게 기술된 그와의 전투. 단목장룡의 머릿속에 사마백혼의 무공이 펼쳐진다.

‘화산과 같은 무공.’

화산(華山)이 화산(火山)이다.

갑작스럽게 폭발하여 하늘에 재를 뿌리고, 인간이라면 감당해 낼 수 없는 용암을 분출해 낸다. 평소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불을 뿜는 순간 천재지변을 일으킨다. 그것이 바로 사마련주의 무공.

“여의대천신공.”

서책의 마지막 장에는 그의 무공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제가 아버지께 부탁하여 받은 것이랍니다. 서신으로 전해 드려도 되겠지만, 공자님께선 천응이가 있으니 언제 어디로 이동하실지 예상할 수 없었고… 또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 제가 직접 이곳까지 오게 됐답니다. 다행히 이렇게 만날 수 있었네요.”

“매번 고맙군.”

“그리 말씀하실 필요 없으세요.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갈유화와 암천회에겐 빚이 많았다.

단목장룡은 언젠간 그것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암천회주께서는 상태가 어떻지? 괜찮으신가?”

서신으로 들었지만, 그의 기분까진 알 수 없었다.

“마치 제가 어릴 때의 아버지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다시금 무공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계세요.”

“그래? 과거의 암천회주님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그때처럼 무섭진 않으니까요. 단지 무공의 열정만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랄까요?”

그러고 보면 사마련주는 암천회주를 자극한 꼴이 되었다.

뭐, 사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암천회주를 죽인다면 그로서도 손해가 막심했을 테지만, 어찌 보면 결국 암천회주를 도와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 거지?”

“으음, 이제 곧 돌아가야겠죠? 사실 저야 오래 있고 싶지만… 사마련주나 소교주와 마주하는 것은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니니까요.”

단목장룡이 고개를 끄덕인다.

“해남도까진 내가 데려다주지. 오늘로 공식 회담이 끝났으니까. 비공식 회담이 시작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어머… 정말이세요?”

“네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갈유화는 단목장룡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단물만 쏙 빼먹을 정도로 단목장룡은 냉혈한은 아니다. 그녀에게 사고라도 생긴다면? 단목장룡에게 여의대천신공을 분석한 서책을 가져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말이다.

“정말 감사드려요, 공자님…….”

사실 그녀가 한 일에 비해선 부족한 보답이었지만, 그녀는 감동하고 말았다.

그것을 보는 단목장룡의 심정은 미묘했다.

‘그건 그렇고…….’

그가 한쪽 벽면을 바라본다.

숨긴다고 숨기고 있었지만…….

‘발칙한 놈이로군.’

* * *

끼이익.

타다다닷!

단목장룡이 방을 나섰다는 것을 알아챈 괴인이 창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간다.

단목장룡은 당장 그를 쫓아 달려간다.

경공이 몹시 빠르다. 단목장룡으로서도 금방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것은 상대의 경지가 상당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쫓는 걸 멈추지 않았다. 상대는 장사현의 외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함정은…….’

아니다.

단목장룡의 감각에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단목장룡이 쫓는 상대만이 위협이 될 수 있었다.

‘무영혼.’

그림자마저 숨긴다는 무영신투의 무공.

단순히 은형술(隱形術)이라 통칭할 수 없었다. 무영혼에는 다른 부분의 심득이 많이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당연히 경공술이다.

전궁무영신법(電穹無影身法).

무영신투의 독문신법이다.

오래전, 단목장룡은 양씨세가의 보물 삼현마금을 들고 도망가는 방구를 쫓은 적이 있었다. 분명히 무공의 경지는 단목장룡이 훨씬 앞섰음에도, 방구를 쉬이 쫓지 못했다. 무영신투. 그의 본질은 도둑이었다. 물건을 들고 도망가는 것에는 그 누구도 따라갈 자가 없었던 인물. 그러니까 그의 경공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탓! 탓! 탓!

단목장룡의 발이 바닥을 디딜 때마다, 더욱 가속이 붙는다.

쉬이이이이-!

마치 천응의 등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거센 바람이 단목장룡의 귓가를 때린다. 쉽게 좁혀지지 않았던 단목장룡과 괴인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든다.

그걸 느낀 괴인이 더욱 경공에 박차를 가했지만, 결국 멈춰 서고 말았다.

단목장룡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

“…….”

두 사람이 서로를 말없이 바라본다.

단목장룡의 시선은 상대의 가면 사이를 향했다. 거리가 가까웠음에도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먼저 입을 뗀 것은 단목장룡이었다.

“왜 우리의 대화를 엿들으려 했지?”

“…….”

사마공은 대답하지 않았다.

장사현에서 꽤 거리가 멀어졌기에 사마백혼이 관여할 가능성은 적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기감을 넓게 퍼트려 은신한 적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단목장룡은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뇌왕검. 잿빛의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다. 검에 담긴 힘을 사마공이 몰라볼 리가 없었다.

“먼저 시작한 것은 너다.”

단목장룡이 신형을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 우리.

“……?”

- 꽤 깊은 사이처럼 보이더군요.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 갈유화.

왜 여기서 갈유화 이야기가 나온단 말인가? 그것이 사마공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 여러 의문이 떠오른다.

“뭘 말하고 싶은 거지?”

“딱히… 감상을 말했을 뿐이에요.”

“…….”

무엇이 바뀐 건지 체감하지 못하던 단목장룡이었지만, 금방 변화를 알아차렸다.

“너……!”

사마공의 목소리.

그것은 결코 사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사내뿐 아니라 여인들까지, 성별을 불문하고 가슴을 울리는 그 목소리. 당연히 잊어 본 적은 없었다. 그 목소리는 혼(魂)을 울리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었으니까. 단목장룡이 몰래 그녀를 찾아갔던 것은, 듣기만 해도 정화되는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함이었다.

“영령……?”

“그리 놀랄 필요가 있나요? 제가 옥팔찌를 언급한 순간부터 예상하지 않으셨나요?”

“…….”

그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마공이 영령이라는 걸 증명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었다. 애초에 영령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오늘 보여 줬던 영령의 경공은… 화경의 경지에 오른 단목장룡조차 쉬이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경공만으로 상대의 경지를 모두 판별할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유추가 가능하다.

“정말 영령인가? 너는…….”

사공천.

그 이름으로 살아갔을 당시. 천마신교라는 그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위안을 받았던 것은 그녀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지독한 천마신교에서 버텨 낼 수 없었으리라. 죽음이 일상인 곳. 어딜 가나 피 냄새가 진하게 감도는 장소.

그녀는 사공천에게 구원과도 같았다.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지.”

“그런가요? 전 별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감격의 떨림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단목장룡에게 이별을 고하던 날처럼, 한기가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당시 단목장룡은 어렸으며, 순진했다. 그녀의 이별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또한, 그는 미련했으며 용기가 없었다.

그는 재능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활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천마신교가 싫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낳아 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배반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삶을 바라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평화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는 천마신교에서, 아니 중원을 통틀어서도 이질적인 존재였다.

재능이 있으나 그것을 전혀 활용하지 않으려 했다. 애초에 무공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타고난 천성. 그것을 극복할 만큼의 계기도 존재하지 않았었다. 심지어 사랑했던 여인이 이별을 고했을 때에도.

하지만.

지금 영령의 눈앞에 있는 것은 사공천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을 겪었으며, 새로운 삶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본질적으로 사공천과 같은 존재지만… 사실 이제는 별개의 존재라 할 수 있다.

“거짓이로군.”

“거짓? 제가 거짓을 고한 것을 봤나요?”

“네가 영령이라는 걸 밝히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들킬 것을 알면서 옆방에서 대화를 엿듣는 척을 했겠지.”

“…….”

“정말 영령인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면, 넌 사마련주가 있는 곳으로 도망쳤을 거야. 하지만 오히려 장사현의 중심부에서 먼 곳으로 도망쳤지.”

사마공, 아니 영령은 말이 없었다.

정곡을 찔린 것일까? 아니면 정말 그녀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없는 것일까? 작은 가면의 틈 사이로는 그녀의 눈동자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단목장룡이 검을 집어넣는다.

뚜벅뚜벅.

아주 천천히. 고양이가 놀라지 않게끔, 전혀 급하지 않게 다가가는 단목장룡. 가면 속의 눈동자는 그것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확실히.”

“…….”

영령의 말에 단목장룡이 걸음이 멈춘다.

“다른 사람이 됐군요.”

“난 사공천이 아니니까.”

처음으로 영령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그녀는 사공천에게 이별을 고할 때도, 감정의 동요를 보여 주지 않았다. 하지만 왜인지 사공천이 아니라는 말에는 몸이 반응한다.

다시금 단목장룡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너무도 가까운 거리.

이제 단목장룡은 가면 사이의 눈동자를 명확히 바라볼 수 있었다.

“고맙다.”

그 한 마디에 영령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리는 걸, 단목장룡은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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