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진가장의 괴물
당연히 진가장을 매입한 것은 단목장룡이었다.
돈도 많으면서 흥정까지 해 가며 장원을 매입했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많으니까 아껴야 한다. 언젠가 평화롭게 살아갈 때는 꼭 필요한 것이 돈이었다. 단목장룡은 굳이 이번 일에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거기다가…….
‘딱 좋은 장원이긴 하군.’
장원 내부에는 연못이나 정자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넓이도 이만하면 넓었고, 활용할 빈 토지도 꽤 있었다. 언젠가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이곳에서 자신의 사람들과 살아가도 충분하다고 여길 만큼 말이다.
이제 복수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지만, 이토록 감상적인 생각에 빠지는 이유는 하늘의 달이 밝게 자신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넓은 장원에서 작은 탁상 위에 안주도 없이 술병을 올려다 놓았다.
당연히 술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썩 그럴싸했다.
‘옥정이가 오면 좋아하겠군. 그리고…….’
쪼르륵, 술을 따르고 그것을 마시려 할 때.
단목장룡의 예민한 감각에 작은 움직임이 포착된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느끼지도 못했을 가벼운 움직임이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표정조차 바꾸지 않고, 술을 넘길 뿐이다.
‘역시 마교에선 진가장을… 지부로 이용하려 하는군.’
난주로 와서 단목장룡이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당연히 마교의 흔적이다. 삼자 회담에서 그들이 난주를 언급했으니 이미 지부를 만드는 것을 진행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수색을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진가장이다.
난주 중심부. 관도로 이어진 넓은 대로에 있는 이 장원은 난주에서 최적의 입지를 가진 장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근 일 년 동안 주인이 없는 상태로 방치됐다고 한다. 아니, 때때로 진가장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최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갔다고 한다.
단목장룡은 어두운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먼저 그들을 공격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정당방위만 있을 뿐.
단목장룡은 취하지도 않는 술을 연거푸 마실 뿐이었다.
* * *
“이제 죽을상이 되어서 진가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겠군.”
진가장엔 어두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난주 제일의 상인 왕립은 그 비밀을 캐내기보단, 그것을 돈벌이의 도구로 활용했다. 처음엔 진가장을 이용하여 장사를 한다는 게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진가장의 어둠은 왕립에겐 어떠한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 애매한 줄타기를 왕립은 최대한 이용했다.
진가장으로 벌어들인 돈만 해도 금자 수백 냥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진가장을 매입한 젊은 사내는 금방 공포에 떨며 난주를 떠나리라고 예상했다.
“가자.”
“예, 상단주님.”
왕립의 뒤로 수많은 상단원들이 따른다. 만약 상을 치렀다면 시체를 치우고, 장원을 다시 깨끗하게 해야 했다. 보름이 지났으니 분명히 결과가 나왔을 터. 이른 아침부터 왕립은 바삐 진가장으로 향했다.
끼이이익.
주인의 허락도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문을 여는 왕립.
“……?”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이제까지 진가장에선 살인 사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 피해자가 많진 않았다. 끽해야 한두 명? 그 정도는 왕립의 능력으로도 묻어 둘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왕립의 눈에 보이는 시체만 해도 족히…….
스물이 넘었다.
‘피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그런 생각으로 장원을 둘러보는 왕립이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다. 온통 피가 흩뿌려진 장원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산보를 거닐고 있는 사내.
진가장을 매입한 장천이라는 사내였다.
“무슨 일입니까?”
덤덤한 눈빛이었지만, 왕립은 그 시선에 담긴 기묘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상인은 자고로 눈치가 빨라야 한다. 그가 오래도록 난주 중심부에서 제일의 거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심지어 거대한 어둠이 도사리는 진가장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
선을 지켰기 때문이다.
상대를 잘 파악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천이라는 사내는 처음 진가장을 매입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사람의 영혼이라도 바뀐 것처럼. 저 서늘한 눈빛에 선뜻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우리 장원에서 무슨 짓을 벌인 것이더냐!”
왕립의 심복 중 하나 낙석도.
그는 건장한 체격으로 평범한 백성들은 감히 눈도 못 마주칠 인상의 사내였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왕립이 나설 만한 일이 아니라 판단하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난주의 돈줄을 꽉 잡고 있는 왕립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 하리라. 왕 대인은 그 유명한 공동파의 장로들과도 연을 맺고 있었으니까.
“어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짜아악!
“어, 어이쿠. 왜… 왜 그러십니까?”
낙석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통수를 감싼다. 왕립이 그의 머리통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이 미친놈!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이 시체 산을 보고서도 소리를 질러?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단번에 시체 산을 만든 범인이 장천이라는 걸 알아챘다.
아무리 돈의 힘이 막강하다고 하더라도, 칼질 한 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왕립과 연관된 수많은 인사가 복수를 말하겠지만, 그가 죽은 마당에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왕립은 당연히 무공을 익힌 호위들을 데리고 다녔지만, 저 사내에겐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놈! 이분이 진가장의 주인이신데 어디다 대고 망발을 지껄이는 것이냐! 얼른 장 공자께 사과드려라! 얼른!”
갑자기 미친놈처럼 낙석도에게 화를 내는 왕립이다.
“예? 사과요? 그게…….”
왕립의 서늘한 눈빛에 흠칫한 낙석도. 왕립은 여차하면 자신의 혈육도 내칠 수 있는 냉혈한이다. 이럴 때 쭈뼛대면 국물도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장 공자님!”
“하하, 괜찮습니다.”
장 공자라 불린 인물.
당연히 그는 단목장룡이었다. 보름 동안 이곳에 머물며 침입해 오는 괴한들을 상대했다. 당연히 예상대로 모두 마교도였다. 최하급의 교도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뭐, 최하급이라 하더라도 그 무력의 수준은 평범 그 이상이었지만 말이다.
“왕 상단주께선 시체를 치워 주시려고 온 모양이로군요.”
단목장룡의 말에 왕립이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호구 중 호구라 생각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시체를 치워 주려고 왔냐고? 단목장룡의 시선이 뒤를 향한다. 단정한 작업복을 챙겨 입은 상단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거기다 대고 다시 장원을 팔아야 해서 데려온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 하하하……. 제가 또 신뢰 하나로 먹고살아 온 상인 아니겠습니까? 식솔들을 거느리시지 않아서 이 넓은 장원을 관리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 이리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체는…….”
당연히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는 단목장룡이었지만,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말한다. 저들이 시체를 치워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체를 치우도록 해라.”
왕립의 명령에 상단원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단목장룡은 그것을 보며 조용히 말한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시체들이 어디 소속인지 알아내려 하진 마십시오. 뭐, 지금까지처럼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말입니다.”
“…혹시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단목장룡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미소 지었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위험한 이들이라는 것을.”
“……!”
왕립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투자 비용 없이 최대한의 수익을 올리던 진가장이다. 그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개입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과 최대한 마주치지 않게 조심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저들의 시체를 치우는 순간부터 말이다.
‘제기랄! 똥 밟았다!’
상인의 생존 본능이 격한 경보를 울리기 시작했다.
* * *
과거엔 마도팔문(魔道八門)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마교의 여덟 개의 명가. 단목장룡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들은 마도육문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태어났다. 가장 세력이 약한 두 세력은 천마신교 내에서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다른 세력과 합치는 것을 선택했다. 당연히 귀문, 독문, 백문 같은 초거대 가문들과 합치진 않았다.
그들에게 흡수되어 봤자 이용만 당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흑문(黑門)과 철문(鐵門)은 비슷한 성격을 가진 가문과 힘을 합치기로 했다.
그들은 각각 살문(殺門)과 약문(藥門)과 함께 힘을 합치기로 했다. 흑문은 살문과 비슷하게 ‘살수’를 길러 내는 가문이었으며, 철문은 정파 무림의 소림사와 같이 외공을 위주로 육신을 단련하는 무공을 연구하는 가문이었다. 약문과 잘 맞는 가문이라 할 수 있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두 가문이 힘을 합친 효과는 상당했다. 만년 하위권이던 네 가문이 상위권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이 커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진 바 세력은 커지긴 했지만, 아직은 완전히 융화되지 못했다. 누가 가문을 이어받는가? 어떤 가문의 출신이 실세를 잡는가? 그런 경쟁은 가문 내부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말이다.
“병신 흑문 새끼들. 그런 간단한 일 하나 처리하지 못해서…….”
깡마른 중년인이 잔혹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비아냥댔다. 그는 살문의 출신으로 이제는 흑문 소속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대놓고 흑문을 욕했다. 외적으로 합쳐진 가문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완전히 결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우리 대공자께서 차기 문주가 될 수 있겠군.’
마교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중원을 침공한다. 마교의 명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중원에 세력을 뿌리내리고 있었다. 어떤 미친놈에게 당해 십 년의 노력을 홀라당 날려 버린 가문도 존재했지만, 다행히 살문은 그럭저럭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었다.
“그래, 그 검은 놈들은 뭐라고 하던가?”
“지(地)급의 교도들을 투입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답니다.”
지급.
마교에서 실력을 나타내는 가장 범용적인 기준은 인(人), 지(地), 천(天)이었다.
간단하게 하중상으로 생각하면 됐는데, 세부적으로 나눈다면 지급은 중상급으로 상당한 입지가 있었다. 무력이 곧 발언권인 마교였으니까.
“역시 흑문 놈들은 말이 많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자신이 일을 처리했다면, 저렇게 간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최하급의 교도들을 투입했는데 실패했다? 그렇다면 그 이상의 교도를 투입하며 간을 볼 것이 아니라 수장이 직접 나서 빠르게 일을 해결한다. 그것이 전력의 손실 없이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직접 나선다. 오랜만에 정파 놈들의 피를 볼 수 있겠구나.”
그의 이름은 천불범.
칠살대(七煞隊)의 대주였다. 칠살대는 지급의 대대였지만, 그것을 이끄는 대주는 천급에 이른다. 그가 나선다면 난주 진가장의 일은 쉽게 해결될 것이다.
“대원들을 소집하면 되겠습니까?”
수하의 물음에 칠살대주 천불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
“존명!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마교의 칠살대.
그들은 위풍당당하게 진가장으로 향했다. 흑문에게 보여 주기 위해, 신교의 어르신들에게 보여 드릴 업적을 쌓기 위해서.
‘칠살대는 난주를 넘어 중원을 공포로 몰아넣을 것이다.’
* * *
“…또 시체가 생겼군요.”
또 생겨난 스물의 시체.
하지만 이제까지 상처가 거의 없었던 것에 비해서 유독 깡마른 중년 사내의 피부엔 멍과 상처가 가득했다. 고문이라도 한 것일까? 이 사내에게서 무엇을 알아내려 한 것인가?
왕립의 시선이 깊어진다.
장천이라는 사내는 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시체의 근육을 만져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이런 전력을 계속 투입할 수 있는 세력이라면…….
‘적어도 구파일방 이상. 어쩌면…….’
왕립은 눈치가 빨랐다.
돈 냄새라면 기가 막히게 잘 맡았다.
문득 어떤 세력의 이름이 떠올랐지만, 황급히 왕립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는 태연하게 앉아 차를 마시는 사내를 바라본다. 저런 사내의 이름이 중원에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었다. 가명이 분명하리라.
‘저 사내에게선 돈 냄새가 나.’
이미 장천과의 거래에서 손해를 잔뜩 보았지만, 그 이상으로 돈 냄새가 났다.
‘줄을 잘 서야 상인이지.’
왕립이 두 손을 비비며 장천, 아니 단목장룡에게로 다가갔다.
당연히 단목장룡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슬슬 때가 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