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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08화 (208/236)

208화 오르다

정파 무림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무려 오백 년 전 인물의 등장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선 맹에 상주하는 인원이 아닌 가문에서 직접 사람을 보냈다. 공공 대사가 어떤 인물인지 확인하고 그 대책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마교와의 전쟁도 문제지만 새로운 정파 무림의 지존이 된 인물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공공 대사가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소식이 정파 무림을 강타했다.

공공 대사의 패배.

고금제일인이라 일컬어지던 무인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패배했다.

과거 단목장룡은 나찰마궁주에게 승리했던 적이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던 그 사건과 무림맹원 대부분이 싸움을 지켜본 이번 사건은 완전히 다르다. 거기다 나찰마궁주가 분명히 화경에 오른 고수로서 무림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곤 하지만 공공 대사와는 그 무게가 다르다.

공공 대사가 누군가?

무림맹을 만든 장본인이며, 마교에 맞서 싸워 전쟁을 종식시킨 대영웅이다.

단목장룡은 그를 꺾은 것이다.

공공 대사는 싸우기 직전 자신에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면 맹주직을 물려주겠다고 했다. 그의 존재감만큼이나 그의 발언 또한 몹시도 무겁다.

정파 무림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녔던 명숙들도 결코 무시하지 못할 무게였다.

당연히 모두의 시선이 단목장룡에게 향했다.

고작해야 흑룡단의 조장일 뿐이었다.

물론, 정파 무림 전체로 따지면 그 직위는 결코 낮지 않았지만… 정파 무림의 지존이라 일컬어지며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조율하는 무림맹주(武林盟主)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림맹의 앞날이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무인에게 달려 있었다.

“선배님들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목장룡의 말에 적하 진인과 대청 진인이 서로를 바라본다.

이에 대하여 따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사실 무림맹 외부에선 난리가 나고 대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알아내려 야단이었지만, 오히려 사건의 중심은 고요하고 평안했다. 폭풍의 중심이 그러한 것처럼.

“자네의 뜻이 중요하지 않겠나?”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대청 진인이다.

뒤를 이어 화산파의 장문인 적하 진인도 말을 얹는다.

“자네가 쟁취한 것이니 우리가 왈가왈부할 순 없겠지. 적하 진인의 말씀대로 자네의 뜻에 달린 것 같다네.”

“그렇군요.”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그가 무공이 뛰어나더라도 무림맹주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공공 대사의 등장 덕분에 상황이 묘하게 바뀌었다. 본래 흑룡단에 들어온 것도 마교를 견제할 세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무림맹의 가장 높은 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반발이 없진 않을 테지만…….

화산과 무당의 장문인이 찬성한다면 이미 육왕 중 둘이 단목장룡을 밀어준다는 것이다. 혁혁한 공을 세우긴 했지만, 이렇다 할 기반이 없던 단목장룡이다. 구파일방의 핵심인 두 명문 거파의 장문인이 단목장룡을 지지해 준다면 반발은 쏙 들어갈 수 있으리라.

단목장룡의 생각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미 공공 대사와의 대화를 통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확고하게 정했다. 아니, 사공천이 아닌 단목장룡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생각해 왔던 길이었다.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선배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목장룡의 말에 두 장문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말해서 공공 대사보다는 단목장룡이 훨씬 나았다. 적어도 그처럼 전쟁을 모른다며 일단 겪어 보라는 식으로 나오진 않을 것 아닌가? 적어도 대화는 통한다고 봐야 했다. 거기다 무력으로 따지자면 현 정파 무림의 일인자라 단언할 수 있었다.

“빈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시오.”

“화산 또한 단목 맹주님을 지지하오.”

두 사람의 말투가 바뀌었다.

아무리 대화산파와 무당파의 장문인이라 해도 맹주라는 자리는 하대할 수 없는 위치였다.

“감사합니다.”

긍정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화산의 장문인이 우물쭈물 단목장룡을 바라본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단목장룡이 물어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답하는 적하 진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예.”

“혹, 비무를 신청해도 되겠소……?”

공공 대사와의 싸움은 피했었다.

패배가 두려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단지, 나설 상황이 아니라 판단했을 뿐. 돌이켜 보면 분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단목장룡과의 비무를 원했다. 무인으로서 강자와 부딪치고 배우고 싶은 마음. 장문인에 오르기 전의 자세로 말이다.

사실 단목장룡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고수와 하수의 싸움에서 하수만이 배움을 얻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환왕(幻王)의 만화천검은 확실히 절세 무공이었다.

“빈도도 맹주께 비무를 청하고 싶소……!”

이때다 싶어 무당의 대청 진인도 단목장룡에게 비무를 청한다.

‘만화천검과 태극만월검이면 괜찮지.’

단목장룡은 자신의 무공이 완벽하지 않다는 전제로 수련을 한다. 언제든지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방향을 선회한다. 오랜 세월 하나를 익히기에도 벅찬 무인들은 절대 선택할 수 없는 방식. 그것이 단목장룡이 빠르게 성장한 방법이었다.

“좋습니다.”

단목장룡의 긍정에 장문인들의 표정이 더없이 밝아졌다.

* * *

“여, 여기가 맹주님의 집무실이구나! 우아아……!”

당옥정이 집무실을 둘러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녀 또한 사천당문의 공녀로 자라며 많은 것을 보아 왔을 테지만, 무림맹주의 집무실은 그 궤를 달리한다. 단목장룡과 당용아는 그런 당옥정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흠흠!”

멍한 눈으로 집무실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당옥정이 황급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당용아가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가벼운 장난을 건넨다.

“이제 옥정이는 맹주전을 안방처럼 드나들겠구나?”

그 말에 당옥정의 몸이 잘게 떨린다.

무슨 상상을 했는지 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전 장룡을 방해하지 않아요! 얼마나 바쁜지 아는데…….”

“오히려 맹주께서도 네 방문을 반기실걸?”

당옥정이 흠칫하더니 단목장룡을 흘끔 바라본다.

단목장룡이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나야 네가 오면 좋지.”

그 말에 당옥정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간다. 최대한 감정을 숨겨 보려 하고 있었지만, 당옥정은 감정을 숨기는 데에 서툴다. 특히 단목장룡의 앞에서는 말이다.

“…그, 그래?”

“차라리 매일 오지 그래?”

“매, 매, 매일……?”

“어머…….”

당옥정뿐 아니라 당용아도 당황한다. 가볍게 장난을 쳤을 뿐인데 저리 적극적인 반응이라니? 묘한 눈빛으로 단목장룡을 바라보던 당용아. 그녀를 더욱 당황하게 할 말이 단목장룡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고모님께서도 옥정이와 함께 오시지요.”

“으응?”

“음…….”

무언가 작은 오해가 있는 듯하여 단목장룡이 말을 이어 간다.

“사천당문의 내당주로 계셨던 당 고모님과 청룡단에서 많은 것을 배운 옥정이가 있으면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맹주의 권한으로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그제야 두 사람이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부담을 덜어 드릴 수 있다면 노력하겠어요.”

“나도! 정말 열심히 할게!”

당옥정은 청룡단에 애정이 있긴 했지만, 단목장룡에 대한 것만큼은 아니다. 그를 옆에서 직접 도울 수 있다면 그녀는 뭐든 할 생각이 있었다. 너무나 높이 올라가 버린 연인이었기에 그녀는 더욱 노력해야 한다. 그녀의 타고난 천성이었다.

“감사합니다.”

단목장룡의 표정이 진중하게 변한다.

두 사람이 단목장룡을 곁에서 돕기로 했으니 본격적으로 두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 줘야 한다. 최근 여러 가지 일로 바빴기에 공공 대사에게 들었던 것을 자세하게 알려 주지 못했었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감지한 당옥정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단목장룡을 응시한다.

특히 당용아는 무서울 정도로 표정이 사라진다.

“공공 대사는… 뇌왕 대협을 해한 범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체 그게 누구인가요?”

“사마련주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사마련주……. 그런데 나찰마궁의 무공을 익혀야지만 푸른빛이 눈동자에 맺힌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공공 대사를 의심하게 된 것은 대야반야금강공과 자미소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제 예상엔 푸른 눈동자는 상단전과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상단전…….”

당옥정과 당용아 또한 사천자에 대해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상단전이라는 말에 한숨을 내쉰다. 결국, 당용아의 복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마교와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사마련에게까지 싸움을 걸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럼 나찰마궁주도 상단전을 열었던 거야? 그도 푸른 눈동자를 발했다고 했잖아.”

당옥정의 의문은 타당했다.

“아니. 그는 상단전을 열지 못했다. 만약 그랬다면 당시에 내게 패배하지 않았겠지.”

나찰마궁주 또한 천하를 논할 수준의 고수였다.

상단전을 여는 것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을 가지는 것. 나찰마궁주가 만약 상단전을 열었다면, 지금 단목장룡은 이 자리에 없을 가능성이 컸다. 당시에 단목장룡은 화경에 오르긴 했었지만, 지금처럼 다른 화경의 고수들을 압도할 실력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공공 대사가 만든 자미소라는 무공이 상단전과 관계가 있는 건가?”

당옥정은 또 핵심을 찔렀다.

그녀는 과거처럼 드러난 것만 보고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단목장룡이 성장한 것처럼 그녀 또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고 있었다.

“맞아. 공공 대사는 그 무공을 천도신녀의 제약을 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했어. 뭐, 결국엔 실패했다고 하지만.”

나찰마궁은 온갖 잡스러운 시도를 했었다.

타인의 정기와 내공을 흡수하는 방식을 시도하여 결국엔 안정화의 수준에 이르렀지만, 공공 대사의 눈에는 차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는 거야?”

단목장룡에게 묻는 당옥정.

그의 시선이 당용아를 향한다. 그녀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상황에 제 복수를 말할 수는 없겠죠. 일단 당면한 문제는 마교이니… 그이에 대한 복수는 고려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맹주께선 맹주의 판단만 내려 주세요.”

당용아는 분명히 복수를 갈구한다.

하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정파 무림의 존폐. 그리고 그것을 이끄는 이가 단목장룡이다. 사마련주는 공공 대사에 버금가는 강적이다. 단목장룡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끄는 세력까지 생각하면 결코 쉽게 볼 상대가 아니다.

“당장은 어쩔 수 없을지 모르겠으나… 언젠간 뇌왕 대협을 죽인 범인을 제가 꼭 처단하겠습니다.”

“굳이 제 복수를 위해 그러지 않으셔도…….”

“고모님만의 복수가 아니니까요.”

단목장룡의 시선이 당옥정에게로 향한다.

“뇌왕 대협은 제 부인이 될 여인의 사조니까요. 마땅히 제가 나서야겠지요.”

단목장룡은 허무맹랑한 상상 속에서 현실을 외면하던 사공천이 아니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한다. 무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으며, 결국 맹주의 자리를 받아들였다. 마교에 대한 복수도 있었지만, 정파인이라는 소속감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또한, 정파라는 소속감보다 중요한 것이 당옥정을 비롯한 단목장룡이 쌓은 인연이다.

“……!”

당옥정이 단목장룡의 말에 얼굴을 확 붉히고 고개를 숙였고, 당용아의 입이 벌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당용아는 최대한 정신을 다잡았다.

단목장룡이 저러한 각오를 보여 주었으니 자신 또한 본분을 잃으면 안 된다. 그녀는 단목장룡을 맹주로서 보좌해야 한다.

“사마련주가 직접 회담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

당용아가 침묵한다.

사마련주가 정말로 범인이라면? 단목장룡이 그를 처단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혹시 단목장룡이 그에게 패배하면? 자신의 사랑스러운 조카 당옥정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자신처럼 말이다.

“맹주께서 공공 대사에게 승리했다는 것을 듣고도 그러한 제안을 했다는 말이군요.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겠죠.”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용아의 추론이 적절했다.

사마련주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자신보다 실력이 높으며 위험할 수도 있는데 회담을 요청하진 않을 것이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말이다.

“회담 장소는 정해진 건가요?”

“섬서성 서안으로 제안하더군요.”

“섬서성… 감숙성과도 가깝군요.”

감숙성엔 현재 마교가 있었다.

어쩌면 사마련은 이미 마교와 말을 맞추었을 수도 있었다. 당용아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위험하다. 단목장룡의 안전이 최우선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회담의 장소가 너무…….”

“전 사마련주의 회담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담담한 단목장룡의 말.

그의 눈에는 자만이 아닌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별다른 설득도 하지 않았으며, 단순한 눈빛일 뿐이었지만.

당용아와 당옥정은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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