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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09화 (209/236)

209화 연설

무림맹의 맹주.

단목장룡은 과거 공공 대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단상 위에 올라갔다. 그의 뒤에는 화산과 무당의 장문인이 든든하게 서 있었다. 또한, 단상의 바로 아래쪽에 마련된 의자에는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었던 대허 선사까지 있었다.

단목장룡은 소림사와 합의하여 공공 대사가 대허 선사를 강제로 가두어 면벽 수련을 하게끔 했던 것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 아직 대허 선사는 몸을 회복해야 하지만 단목장룡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 이렇듯 자리에 참석하기로 했다.

단목장룡이 슬쩍 아래를 내려다본다.

대허 선사는 이제 과거의 무위를 되찾지는 못하리라. 다시 한번 환골탈태를 하지 않는 이상에야 말이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환골탈태를 두 번 하는 경우는 무림의 역사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튼.

지금 단목장룡은 무림맹의 맹원들에게 정식으로 무림맹주가 되어 공적인 자리에 섰다.

아무리 그가 엄청난 무위를 선보여서 공공 대사를 이겼다고 하더라도, 무력으로 그를 이긴 것뿐이다.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공공 대사처럼 괴악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명을 받는 입장에선 당연히 꺼림칙하기 마련이다.

단목장룡은 그 분란은 종식시키기 위해 이곳에 섰다.

그는 이것만은 확실히 하기로 했다. 그는 정파의 안전을 위해 싸울 것이며,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그리고 중소 문파에 이르기까지 어떤 인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을 말해 주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공공 대사의 뜻은 이러했습니다. 자신은 전쟁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여러분을 전쟁을 모르는 이들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가 말하는 전쟁이라는 것을 겪어 보진 못했습니다.”

고요함이 흐른다.

“하지만 공공 대사가 말하는 부류의 전쟁을 겪어 보지 못했을지 몰라도… 저는 험난한 강호에서 살아가며 온갖 종류의 전쟁을 겪었습니다. 처음 무림에 나와 만났던 사파의 마두와 싸운 것 또한 전쟁이었으며, 용봉지회에 참가하여 무림의 소영웅들과 겨루게 된 것도 전쟁이었습니다. 최근 나찰마궁주나 공공 대사 님과의 대결도 전쟁이었지요.”

“당시의 상황을 모두 열거할 수 없지만, 사파의 마두에게 제 소중한 사람이 납치됐을 땐… 차라리 제가 당했으면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지요. 공공 대사는 우리에게 그 기분을 느껴 보라 했던 것이지만… 그것은 겪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또 강호에서 살아오셨으니 일부 무인이라면 겪은 분들도 있겠지요.”

맹원 속에서 단목장룡의 연설을 듣던 이새붕이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는 단목장룡의 시종이었던 시절을 잊지 않는다. 지금도 단목장룡의 곁에서 그를 모시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에 반대로, 이새붕의 위기를 자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당옥정이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물론, 단목장룡이 당옥정을 나무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닌 것을 잘 알았지만, 당시의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나찰마궁주와 싸울 때도 그러했습니다. 만약 제가 나찰마궁주와 싸우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단목세가의 본가는 물론이거니와 분가까지 모두 몰살할 위기였습니다. 아주 어릴 적에 보았던 사촌 동생들부터 낳아 주고 길러 주신 부모님들까지 말입니다.”

숙연해진 분위기.

당연히 맹원들은 단목세가의 위기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목세가를 도와주기 위해 나선 이들은 극소수였다. 물론, 무림맹의 특성상 상부의 명령이 떨어져야 움직일 수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들은 그 당시에 위기의식을 느끼진 않았다.

절강성의 패자였던 나찰마궁주의 지척엔 안휘성의 패자 남궁세가가 있었기에 안일했으며, 또 정파에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여 단목세가가 멸문하더라도 자신들의 문파가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까지 했던 이들도 있다. 극소수에 불과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지금 단목장룡의 말에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고 있었다.

공공 대사는 무림맹이 정치에 찌들었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들 또한 무인의 감정이 남아 있었다. 의와 협을 행하려는 본능이 새겨져 있었다. 단목장룡의 말은 그들의 묻어 두었던 감정을 자극했다.

“정파 무림은 전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엔 호북성 의창현에 있던 단목세가만의 위기는 아닙니다. 구파일방, 오대세가. 그리고… 무림맹에 속하지 못한 작은 무관까지도 이 일에 연관이 있습니다.”

단목장룡은 잠시 맹원들과 시선을 마주했다가 이야기를 이어 간다.

“저도 전쟁을 모릅니다. 하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소중한 사람들이 죽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는 동료들이 마교도들에게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일어나게 된다면… 대비하지 않은 이들은 모두 죽을 것입니다. 전방이나 후방이나 마찬가지겠지요.”

“그리하여 새로이 맹주가 된 단목장룡은 선포합니다. 무림맹은 과거 창맹 취지에 맞추어 정파 무림의 힘을 모으기 위한 연합체로의 기능을 다시 되살릴 것이며, 정파의 모든 무림이 힘을 합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맹주라는 직위에 부끄럽지 않게 언제든 최전방에서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전 제가 맹주의 자질을 가졌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단목장룡이 뒤를 돌아본다.

화산과 무당의 장문인이 살짝 당황한다. 이 자리는 어디까지나 단목장룡을 빛내 주기 위한 자리였으니까.

“제가 마교와의 전쟁에서 죽는다면, 적하 진인과 대청 진인께서 맹주직에 올라 또다시 최전방에 나서실 겁니다.”

이것은 단목장룡의 계산된 행동이었다.

이미 화산과 무당이 단목장룡을 지지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표명한 것이다. 이 한마디로 인해 단목장룡에 대한 맹원들의 신뢰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무림맹은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수를 헤아리기도 힘든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사파와 마교와 싸웠던 역사는 반복되고 있었으니까요. 정파가 패배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쿠웅!

단목장룡이 기세를 내뿜는다. 만인을 압도하는 그것에, 무인의 정점에 오른 단목장룡의 압도감에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두려움과 긴장 그리고 환희와 열망이 눈에 떠오른다.

강호의 절대 강자들은 시샘을 받기도 했지만, 압도적인 존경을 받아 왔다.

무려 오백 년 전의 고수였던 공공 대사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은 것은 무(武)를 추구하는 무림이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번만큼은 정파 동지들의 소중한 사람들이 최대한 희생되지 않게 만들겠습니다. 패배가 아닌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 혼자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무림맹원뿐 아니라 정파인 모두의 협력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단목장룡이 모두에게 허리를 숙였다.

“절 도와주십시오.”

나지막한 말이었지만, 내공이 담긴 그의 목소리는 모두의 귓속에 똑똑히 틀어박혔다.

무인의 열망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한다. 이 순간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싸워서 승리한다. 단순히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과 연인 그리고 동료를 지켜 내야 한다.

무려 공공 대사를 이긴 단목장룡이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강제로 따르는 것과 자의적으로 맹주를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돕겠습니다!”

“싸우겠습니다!”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맹원들의 외침. 그것은 전염이라도 된 듯이 모두에게 퍼져 나갔다. 과거에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그리고 중소 문파로 나누어졌던 파벌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마음이 되었다.

전쟁을 꼭 겪어 봐야 아는 것이 아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상상. 그것만으로 모두의 마음속에는 열정이 차올랐다. 자신들이 그것을 막아야 한다. 새로이 맹주가 된 단목장룡을 도와 무림맹의 승리를 도모해야 한다.

“우아아아아아아-!”

모두의 함성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그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단목장룡 또한 자극을 받을 정도로 수많은 무인의 의지는 강렬했다.

이 격양된 감정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모두의 마음속에 확실하게 새겨진 것이 있다.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단목장룡은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정말 그러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말이다.

* * *

당연히 단목장룡의 정식 연설은 천마신교나 사파에게도 알려졌다.

“으음, 단목장룡이라……. 확실히 정파 무림을 장악하기 위해 수를 썼군.”

공공 대사와는 전혀 다른 태도. 그것이 정파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무림맹은 중원 각지에서 모인 실력자들이다. 그들이 느낀 감정은 자신들의 고향에도 금세 퍼져 나갔다. 물론, 현장에 있던 것만큼의 열정과 자극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파인들은 태초부터 그러한 것을 좋아했다. 영웅담을 흠모하고, 영웅이 되기 위해 무공을 갈고닦는다.

물론, 무인들도 인간이니만큼 현실의 벽과 마주하여 무공이 아닌 다른 길로 나아가는 이들도 있긴 했지만, 지금은 그들 모두가 대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개인의 출세가 얼마나 중요할까? 소중한 사람들이 다 죽고 홀로 살아남는다면 그 얼마나 추악하고 괴로울 것인가?

천마신교의 입장에서 정파인들의 저런 인식 변화는 결코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과거 그들이 정파의 세력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방식 중 하나가, 방심하고 있던 정파 고수들의 수를 확 줄여 버리는 데 있었다. 또한, 그것으로 공포심까지 새겨 준다.

지금도 분명히 전쟁이 터지면 도망치려는 자들이 정파인들 중에 다수 포진되어 있을 것이다.

열정이라는 감정도 전염이 되듯 퍼져 나간다면 공포 또한 마찬가지다. 천마신교는 강자존을 추구한다. 압도적인 무력이란 상대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이미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정파가 뭉친다면 천마신교로서도 난감한 것이다.

“귀문주.”

“예, 소교주님.”

호리호리한 뱀눈의 중년 사내. 그의 눈빛을 마주하면 몸이 발가벗겨진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소교주는 그를 하나의 패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네가 휘하로 들인 문파들을 일으켜라.”

“예, 즉시 수행하겠습니다.”

귀문주는 사파에서 천마신교의 간자들을 늘려 나갔다. 애초에 사파에선 정파와 같은 동질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귀문주가 활동하기 최적의 장소였다. 이미 천마신교의 세력은 상당수 무림맹의 후방에 포진되어 있었다. 소교주의 명령은 후방을 교란하라는 것이다.

“약문과 독문은 내부에서 정파 무림을 뒤흔들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소교주의 명령대로 마도육문이 움직인다.

그들은 하나하나 구파일방 중 하나와 버금가는 세력을 가지고 있다. 단일 세력으로 천마신교를 이길 곳은 없었다. 정파의 모든 힘을 합쳐야지만 천마신교를 막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소교주가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 있을 때.

수하 한 명이 다가와 보고한다.

“소교주님, 맹주와 사마련주가 회담 약속을 잡았다고 합니다.”

소교주는 당황하지 않고 묻는다.

“위치가 어디지?”

“섬서성입니다.”

“호오.”

섬서성이라…….

지금 마교의 주력은 감숙성에 포진해 있었다. 여차하면 회담장을 습격하면 된다. 단목장룡이라는 구심점의 죽음은 승리로 나아가는 포석이 될 것이다.

“좋다. 계획을 짜도록 한다. 혈우검마.”

“예.”

혈우검마.

이제는 마교의 부교주가 된 사내. 소교주조차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것이 혈우검마였지만, 교주의 배려로 소교주는 그를 수족처럼 다루고 있었다.

“자네가 필요하군.”

“예, 명을 내려 주십시오.”

혈우검마의 눈에서 붉은 광채가 번뜩였다.

* * *

단목장룡이 연설 후에 바로 시작한 것은…….

천응을 타고 바로 무림맹을 떠난 것이다.

쉬이잇.

하늘에서 단목장룡이 뚝 떨어졌다.

“응? 귀하는……?”

남궁일몽의 얼굴과 똑 닮은 사내.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이제 성장하고 있는 남궁일몽과는 다르게 패왕(覇王)은 압도적인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단목장룡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졌음에도 겉으로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아마 그는 알고 있었으리라.

“새로이 맹주가 되신 분이시군.”

“예, 드릴 말씀이…….”

단목장룡이 남궁세가를 찾아온 것엔 이유가 있었다. 육왕 중 셋이 단목장룡을 따른다. 하지만 가능성 하나를 남겨 두지 않기 위해서 다른 육왕들도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단목장룡 혼자선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없었으니까. 그 한 번의 연설로 모든 것의 통합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스르응.

“하하, 일몽이와의 인연이 있는 분이라곤 들었습니다. 대화하기 전에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게 있군요.”

능글맞던 남궁세가주의 표정이 바뀐다.

패왕의 기세가 단목장룡을 덮쳐 온다.

“화끈하신 분이시군요.”

공공 대사를 이겼다고 하여 모든 화경의 고수를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것은 무당과 화산의 장문인과 싸워 보고 또 느꼈다. 그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었다.

오대세가에서도 가장 강한 남궁세가.

그곳의 가주는 어떠한 것을 보여 줄 것인가?

단목장룡은 또다시 새로운 것을 배우리라는 생각에 흔쾌히 검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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