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소기의 목적
“무림맹주……?”
하청은 서안에서 무림맹과 사마련의 동태를 살펴보는 정보 조직 흑응대의 대주였다. 당연히 단목장룡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교주님께서 계신 장소에 왔을까?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인가?
무림맹주가 현 중원 무림에서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천마신교의 교주 앞에서는 호랑이 앞의 고양이일 뿐이었다.
하청은 여러 생각을 했지만, 그걸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의 곁에는 교주님이 계셨다. 하늘보다 높으신 분이 보고 듣고 계신다. 그렇기에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나서진 않았다. 어찌 보면 교육이 잘됐다고 봐야 하리라.
“대주, 저 사내가 요즘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는 단목장룡인가?”
“예, 그렇습니다, 교주님.”
교주의 말에는 착실히 대답한다.
그러자 마교주는 흥미롭다는 듯한 시선으로 단목장룡을 위아래로 훑는다. 그의 무공은 하늘에 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무공이 탄생한 이유는 나약한 인간이 강인한 짐승들로부터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인간들의 생존이 문제가 없어졌을 때, 무인들은 새로운 이상을 품었다. ‘내공’을 활용하면 신선(神仙)이나 선인(仙人)의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화경의 경지에 오르면 환골탈태라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으로 인간의 육신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게 된다. 웬만한 충격에는 상처도 나지 않으며, 상처가 생기더라도 금방 낫는다. 평범한 인간이 보통 오십 세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그보다 몇 배는 길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무인들, 특히 최상승에 오른 무인들은 더 높은 곳을 꿈꾸었다.
문파마다 가문마다 저마다 다르게 칭하긴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해지길 원했다. 인간을 초월하길 바랐다.
현 무림에서 하늘과 맞닿았다고 할 수 있는 존재.
모든 마(魔)를 복속시키는 군마영세(群魔永世)의 사내가 바로 천마신교의 교주 천마(天魔)였다.
그런 그가 단목장룡을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껏 느껴 보지 못한 기분. 천마의 육신은 특별하여 다른 인간들은 느낄 수 없는 것을 보고 듣고 감지한다. 단목장룡이라는 존재는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묘한 느낌을 선사했다.
단목장룡은 무표정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화가 난 듯한 눈빛으로 천마의 시선을 담담히 받아 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싸움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처음 뵙습니다. 무림맹주 단목장룡이라 합니다.”
그의 말에 천마가 고개를 갸웃한다.
“우리가 처음 보는 게 맞나?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군.”
“그렇습니까? 전 처음 뵙습니다만.”
그가 단목장룡이 되어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래? 하긴 본 좌가 널 본 적이 있을 리가 없겠지.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와서 앉도록.”
단목장룡은 분명히 무림맹주였지만, 천마에겐 아랫사람에 불과했다.
마치 수하에게 말하는 듯한 어투로 명령한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딱히 기분이 상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스스럼없이 다가와 천마와 마주 앉는다.
오히려 흑응대주 하청이 더욱 긴장한 모습이었다. 언제든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 하청은 상황이 변화하면 바로 병기를 꺼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그래, 무슨 일로 본 좌를 찾아왔지?”
“그냥.”
천마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냥?”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는 무인이 어떤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여러 말들이 많았지만, 천마가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는 의견이 주류였다. 역사적으로 마교의 교주들은 압도적인 위용을 보이며 중원 무림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정파는 몰락 직전까지 갔으며, 사파 또한 별다를 바가 없었다. 항상 중원의 균형을 깨 왔던 것이 마교였다.
현재 무인들은 마교의 위세를 직접 겪어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도가에서 무당파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곤륜파가 맥없이 무너졌다는 사실과 사파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혈교의 몰락을 알고 있었다. 마교가 등장할 때마다 중원의 판이 뒤집혔다.
정파에서 연합체인 무림맹을 만들게 된 이유도 다 마교 때문이지 않은가?
‘훗, 맹주라는 놈이 그래도 정신은 박혀 있군.’
솔직히 사마련주와의 회담에서 천무광인의 팔을 잘라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하청은 단목장룡이 분수에 맞지 않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주제는 잘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 본 좌를 직접 마주하니 어떠한가?”
“으음…….”
단목장룡은 천마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의 눈에는 자연스레 귀기가 깃들어 있었다. 인간에게 새겨진 본능적인 공포. 천마신공을 익히면 자연스레 눈빛으로 공포를 선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마를 복속한다는 천마신공의 힘 중 하나였다. 그것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상대에게 전해지게 된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그러한 천마의 눈동자를 마주하면서도 아무런 반응도 내보이지 않았다.
“크게 다를 건 없군요.”
‘이 미친놈……!’
하청이 단목장룡의 말에 경악한다.
감히 대천마신교의 교주께 저런 말을 내뱉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가? 하청은 황급히 교주의 눈치를 살핀다. 인간이란 하늘의 기분에 따라 생사가 결정된다. 갑자기 불을 내뿜는 화산과 땅이 갈라지는 지진 그리고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폭풍에 의해 말이다.
긴장한 표정으로 교주를 살폈지만 의외로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공공 대사에게 이겼다고 했던가?”
“예.”
“그렇다면 자신을 가질 만하지. 그놈은 확실히 강했으니까.”
하청은 영문 모를 얼굴로 단목장룡에게 시선을 돌렸다.
교주께서는 왜 저놈을 인정하시는 거지? 하청의 생각이 어떻든 교주가 말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끼이이익-!
그가 말을 내뱉으니 공간이 비명을 질러 댄다. 하지만 하청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오로지 단목장룡에게만 그 기운이 쏟아지고 있었다. 화경의 고수는 내부에 갈무리한 내공을 유형화하여 공간에 흩뿌려진 기(氣)에 접목할 수 있게 된다.
보통 사람들끼리는 기 싸움을 하며 서로의 눈을 노려보긴 하는데, 그것은 마주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곤 한다. 하지만 고수의 기 싸움은 다르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뼈와 살이 찢어질 것만 같은 느낌. 질척한 천마신공의 기운이 단목장룡의 몸을 뒤덮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청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라 눈을 끔뻑끔뻑 뜨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때, 단목장룡이 입을 열었다.
“굳이 배려해 주실 필요는 없었는데 말입니다.”
“하하하, 대단하군. 이젠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뭐지? 대체 뭐야?
하청은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절정의 상급에 오른 그조차도 감지할 수 없는 은밀한 일이 말이다.
“천마현신(天魔現身)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내다니. 공공 대사에게 승리했다는 게 거짓은 아닌 듯하군.”
일종의 시험이었다.
천마는 하찮은 말 따위에 자존심이 상하는 존재는 아니다. 자신이 누구보다 높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그는 단목장룡이 자신과 겸상할 수 있는 존재인지 확인해 본 것에 불과했다.
당연히 시험은 합격이다.
천마현신은 천마의 육신을 가지게 된 후에 펼칠 수 있는 기공술 중 하나였다. 그것을 펼치면 실제로 손을 쓰지 않더라도 적들을 와해시킬 수 있다. 천마신공을 익히면 자연스레 발현되는 귀기와는 또 다른 무공이라고 할까?
당연히 단목장룡은 천마현신을 알고 있었다.
내공의 양보다는 작은 내공이라도 확실하게 다룰 수 있는 의지가 더 중요한 무공이다. 그가 천마현신의 일 장을 사용하여 자신을 시험한 것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단목장룡이 천마를 시험해 본 것이기도 했다.
현재의 천마는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와 있는지를 말이다.
아쉽게도 그는 더 나아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압박을 멈추었다.
‘천마현신의 일 장이 이 정도 수준이라…….’
은은한 욕구가 생겨난다.
당장이라도 천마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고 싸우고 싶다는 욕구. 이곳에 온 목적은 탐색이었다. 여차하면 싸울 각오도 다졌건만 아직 확신이 서진 않았다. 더군다나…….
‘왔군.’
타다닷!
객잔으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만마앙복(萬魔仰伏)! 군마영세(群魔永世)!”
두 사내가 절도 있는 목소리로 외치고는 교주의 앞에 선다.
단목장룡은 당연히 두 사내를 알고 있었다.
‘독각수라… 그리고 혈우검마.’
저도 모르게 혈우검마의 오른쪽 허리에 매인 검을 바라본다.
그곳엔 자신의 목을 베었던 검이 지금도 변함없이 걸려 있었다.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목을 내주었던 경험. 천마의 천마현신보다도 오히려 그것이 더 영향력이 컸다. 이제는 흐려진 기억이지만, 그의 머릿속에 자신의 목이 잘려 나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씁쓸한 기억이로군.’
당시에 단목장룡은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것을 난생처음으로 후회했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다면 이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자신이 몹시 한심했다. 잘 생각해 보면 그럴 수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사공천이 아니라 단목장룡이다.
잠시 과거를 회상했지만, 그것에 매몰될 필요는 없었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그래도 예상보단 빨리 왔군.”
“죄송합니다!”
쿵!
부교주.
마교의 부교주는 소교주나 원로원을 제외하곤 그 누구에게나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였다. 마교를 떠받드는 마도육문의 문주들 또한 부교주의 앞에선 순한 양이 된다. 애초에 그들 또한 마도육문의 출신이었으니 그들에게 허튼 명령은 내리진 못했지만, 그들의 권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러한 부교주의 권력은 천마의 앞에서 무용지물이 될 뿐이다.
두 사람은 교주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혈우검마와 독각수라는 교주와 함께 난주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경공을 답답하게 느낀 교주가 먼저 간다며 앞서 나갔고, 교주는 반나절 먼저 이곳에 도착했다. 그들의 육신에는 이곳에서 가장 실력이 낮은 흑응대주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열기가 차오른 상태였다.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증거였다.
‘역시 교주의 옆엔 부교주가 함께하는군.’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교주와의 싸움은 장담할 수 없었다. 또한, 사마련주는 단목장룡에게 확답을 주지 못했다. 단목장룡이 사마련주를 경계하는 것처럼, 사마련주 또한 단목장룡을 경계했다. 만약 두 사람이 확실히 의견이 일치했다면 굳이 이렇게 탐색을 펼치진 않아도 됐으리라.
“일어서라.”
“존명!”
두 사람이 군기가 바짝 든 신입 병사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평소 부교주들을 아는 마교도들이라면 그들의 이런 모습이 참으로 신기할 것이다. 교주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교주 또한 자신에게 한없이 높은 존재였던 흑응대주 하청은 멍한 눈으로 현 상황을 지켜본다.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을 줄이야…….’
그의 마음속에선 교주님에 대한 충성심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기립한 상태로 교주의 앞에 선 부교주들.
그들의 눈동자가 잠깐 단목장룡에게 향한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교주님과 동석을 하고 있으니 의아하게 여길 만했다.
“누군지 궁금한가?”
“아닙니다!”
혈우검마와 독각수라가 외친다.
그러자 마교주는 피식 웃으며 정체를 말해 주었다.
“무림맹의 맹주다. 여긴 본교의 부교주들이다.”
무림맹주?
이놈이 새로이 맹주가 된 단목장룡이라는 놈인가? 이놈 때문에 소교주께서 고생을 하고 계셨다. 이제까지 세운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있었다. 무림 전반에 걸쳐 무림맹의 신뢰를 잃도록 하려 했었지만, 왜인지 신임 맹주에 대한 정파인들의 신뢰가 상당했다. 오히려 그 공공 대사보다 더욱 말이다.
“혈우검마.”
“독각수라다.”
교주의 소개도 있었으니, 부교주들이 자신을 소개한다.
거만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교주에게 충성하는 존재들이다. 다른 이들에겐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단목장룡은 그것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마교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교도들이 어떠한 신앙을 품고 있는지 알았으니까.
“이렇게 부교주님들까지 뵙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만… 이젠 가 봐야 할 것 같군요.”
단목장룡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음에 뵙도록 하죠.”
“그땐 사마련주도 함께 보도록 하지.”
“예.”
단목장룡은 적당히 목표를 달성했다. 천마의 반응이 더 적극적이었다면 자연스럽게 그의 실력을 알아보았을 텐데,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큰 도움이 되었다. 단목장룡의 머릿속은 천마신공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단목장룡이 떠나간다.
그가 객잔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 단목장룡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던 교주에게 맺힌 은은한 미소가 사라진다.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평소 교주를 지척에서 모셔 왔던 부교주들은 느낄 수 있었다.
교주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고 말이다.
긴장하며 교주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
“혈우검마, 저 사내를 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혈우검마가 바로 대답한다.
그러자 교주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그러할 것이다. 단목세가도 최근에 겨우 알게 된 문파였다. 정파에선 명가의 축에 속한다고 하지만… 천마신교의 입장에선 하찮은 가문일 뿐이었다.
“그래? 이상하군…….”
뭐가 이상하다는 말일까?
“왠지 모르게 그 아이가 생각이 나.”
그놈.
혈우검마는 교주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