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목세가의 역대급 망나니-227화 (227/236)

227화 그가 간다

천마의 생명이 완전히 그 빛을 잃었을 때.

단목장룡이 만들어 낸 뇌왕검은 마치 환상처럼 공간으로 흩어졌다. 반딧불이 어둠을 수놓는 것처럼 환하게 공간을 수놓은 채로 말이다.

“…….”

단목장룡은 죽은 천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마지막에 내뱉은 말. 어찌 보면 저주에 가까웠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별다른 감정을 느끼진 않았다.

강인함을 자랑하는 천마의 신체는 맥없이 땅으로 쓰러졌고, 단목장룡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의 끝에는 독각수라와 암천회주가 있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단목장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들은 극마의 고수다. 아마 저들이 절정이나 초절정에 이른 이들 앞에서 전력으로 힘을 드러낸다면 그 무인들 또한 저런 표정을 지으리라. 천외천.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은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가끔 그 무위에 감동하여 더 노력하는 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독각수라는 암천회주보다 먼저 정신을 차렸다.

교주의 패배. 천마의 패배가 의미하는 것은 명확했다. 독각수라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매번 죽음을 마주하고 사는 것이 천마신교였다. 다만, 죽음보다는 패배가 두려웠을 뿐이다. 천마의 패배는 곧 독각수라의 패배나 마찬가지였다.

쿠웅-!

독각수라가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친다.

그가 믿을 것은 이제 소교주뿐이다. 새로운 천마가 되어 천마신교의 하늘로 거듭나야 했다. 그래야만 저 괴물을…….

‘하지만 가능할까……?’

떠오르는 의문.

천마마저 무릎 꿇린 저 괴물을 소교주가 감당할 수 있을까? 분노 또한 성장의 강력한 동력이라곤 하나… 단목장룡은 분노로 잡아먹을 수 있는 괴물일까? 소교주가 만약 현재의 천마나 단목장룡의 수준에 오른다고 해도…….

그때의 단목장룡은 지금보다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그러한 느낌이 들었다. 단목장룡은 고작해야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였으니까. 그렇게 어린 놈에게 또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시간은 소교주의 편이 아니었다. 독각수라는 참담함을 느끼며 달려 나갔다.

‘일단은 살아야 한다!’

전력으로 경공을 펼친다.

현 상황을 소교주에게 알려야 한다. 이제는 그가 천마신교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천마의 혈통을 타고난 그만이 단목장룡을 감당할 수 있었다.

“거기까지.”

독각수라가 인상을 찌푸린다.

이미 단목장룡은 독각수라를 따라잡은 것도 모자라 앞서 나가 있었다. 천마와의 싸움에서 전혀 지치지 않았다는 걸까? 인간을 초월한 싸움을 보여 줬음에도 단목장룡은 크게 지쳐 보이지 않았다. 물론, 싸움의 여파로 거의 알몸인 상태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미 승부는 결정되었지 않나?”

뒤에선 암천회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로 가든 두 사람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릎을 꿇고 목숨을 빌어먹어야 할까? 독각수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겐 할 수 없었다.

“이 독각수라의 무공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주마. 갈 땐 가더라도 네놈에게 맹독 한 방울 정도는 먹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독각수라의 두 손에서 진득한 녹색빛의 기운이 맺힌다. 독기(毒氣). 한 방울만 체내에 침투해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맹독이었다. 사기적으로 보이지만 다루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단목장룡은 그런 독각수라의 손을 보며 말한다.

“옥정이가 좋아할 것 같군.”

뜬금없는 소리에 독각수라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뭐?”

“아니다. 내가 먼저 가지.”

단목장룡의 신형이 사라졌다.

독각수라는 천마조차 감당하지 못한 무인을 상태로 목숨을 걸었다.

‘한 방울이라도 침투한다면……!’

어쩌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 * *

당연히 그런 가능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만들어 낸 맹독은 분명히 생명을 가진 이에겐 상당히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천마가 발현한 종말의 힘보다 더 무서우냐? 그렇게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단목장룡의 신체는 이미 천마에 도달했다. 애초에 그의 독기는 단목장룡의 신체에 침투하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커억, 신교엔… 원로원이… 소교주께서 남아 계시다……. 네놈은 절대…….”

서걱!

단목장룡이 손을 휘두르자 마치 검에 베인 듯 독각수라의 목이 잘려 나갔다. 피가 하늘로 튀기며 사방으로 분출되었지만, 단목장룡의 몸에는 전혀 닿지 않았다. 그것은 암천회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묘한 시선으로 단목장룡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네는 괴물이로군.”

딱히 비난한다거나 비꼬는 말투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단목장룡은 괴물이다. 사실 사파에서나 정파에서나 암천회주 또한 그러한 말을 들으며 성장해 왔다. 극마에 오른 이후에는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듣진 못했으나 무인들은 암천회주를 괴물로 치부한다.

단목장룡은 그런 암천회주에게도 ‘괴물’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고 해도 두렵거나 하진 않는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기에? 아니, 사람은 알 수 없었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전혀 몰랐던 모습을 내보일 때가 있었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것뿐 아니라 내면에 감춰진 것까지 숨기는 존재다.

단목장룡이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 그것까지 알 수 없다.

단지, 그와 천마의 싸움을 보고 있자니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고 할까? 단목장룡이 마지막에 만들어 낸 뇌왕검처럼, 단목장룡은 암천회주에게 환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완벽한 존재는 아니었다.

“후우…….”

단목장룡의 몸이 순간 흔들렸다.

상단전을 개방한 천마와 싸우는 것은 상당히 부담이 가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독각수라마저 정리했다. 암천회주가 싸웠어도 되었겠지만, 단목장룡은 직접 나섰다.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단목장룡의 그러한 모습에 암천회주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호법이 필요한가?”

“예, 진기를 너무 많이 소모했군요.”

암천회주는 왠지 기뻤다.

그가 약한 모습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그에게 자격지심을 가져서가 아니었다. 암천회주는 단목장룡을 보며 경외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단목장룡의 성격이나 성향 등을 모두 알지 못한다. 아마 암천회주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의 실력은 진짜였다.

단목장룡이 보여 준 약해진 모습. 그것은 그의 성장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암천회주는 단목장룡이 성장하는 모습을 더 지켜보고 싶었다.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천마나 단목장룡에 닿지 못하리라.

단목장룡을 곁에서 지켜보다 보면 진정한 무(武)의 끝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분명히 그러하리라.

“저곳으로 가지. 호법은 내가 서겠네.”

“예.”

두 사람이 폐허가 된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단목장룡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시작한다.

그 순간.

휘이이잉-!

마치 폭우가 쏟아지는 대지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듯, 사방의 기운이 단목장룡에게 흡수되기 시작한다. 그 거대한 기류를 느낄 수 있는 암천회주는 순간 몸을 움찔했다. 그 기류엔 천마가 사방으로 뿌려 놓은 종말의 기운도 스며들어 있었다.

“허허허…….”

그냥 해 보는 생각이지만, 지금 운기조식을 하는 단목장룡.

그에게 자신의 검을 휘두른다고 해도 벨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암천회주의 유흥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는 상상을 집어치우고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단목장룡이 자신을 믿고 호법을 맡긴 만큼, 자신도 의무를 다해야 했다.

* * *

“하늘이 네놈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하늘이다.”

스걱.

흑색의 무복을 갖춰 입은 천마신교의 교도들이 학살을 자행한다. 그는 천마신교 마도육문 중 하나인 귀문의 문주. 그가 맡은 역할은 호남성에서 신교에 충성할 세력을 모으는 것. 그 기나긴 여정은 오늘로써 끝이었다. 천마의 명령이 내려왔다. 천마신교의 진정함 힘을 드러낼 때가 왔다.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 저들이 신교의 갑작스러운 공세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막기 힘들었으리라. 무림맹이나 사마련이나 그들의 시선은 섬서성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천마의 존재는 그들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었다.

“천마께서 좋아하시겠군.”

수없이 많은 생명이 대지에 거름처럼 덧없이 뿌려지고 있다.

피는 인간의 본능을 끓어오르게 만든다. 파괴의 욕구. 귀문의 문주는 근 십 년 동안 멍청한 중원인들을 마주하며 매번 살의를 느꼈다. 이제 그 욕구를 분출할 때이다.

“문주님, 이 근방의 중소 문파는 모두 정리한 것 같습니다.”

“귀주성으로 간다.”

“존명.”

마도육문의 문주들이 중원을 헤집어 놓고 있으리라. 가장 큰 공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지만 지존의 총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살육이 끝이 나고 신교의 교도들이 자리를 뜨려 할 때.

그리 맑았던 하늘에서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소나기가 쏟아져 내린다. 오히려 좋았다. 몸에 덕지덕지 묻은 피를 쉬이 씻겨 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귀문의 문주는 묘한 불쾌감을 느껴야만 했다.

‘금방 그칠 것 같긴 하지만…….’

왠지 비를 맞고 있기가 싫었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것만 예감.

그리고 그런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었다.

“주인을 잃은 마교의 버러지들이 잔뜩 모여 있군.”

“…….”

귀문의 문주가 시선을 돌린다. 붉은색으로 치장한 의복. 중원에서 저렇듯 위에서 아래로 붉은색을 도배한 사내는 흔히 보기 힘들었다. 거기다가 살을 찌르는 듯한 이 살기… 보통내기가 아니다.

“혈세귀막주? 네놈이 어찌 이곳에 있는 거지?”

귀문은 단번에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운남에 있어야 할 이가 왜 호남성에 있단 말인가? 귀문주라도 사마련의 오성 중 하나인 혈세귀막주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귀문주는 죽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은 천마의 분노를 자아내리라. 혈세귀막은 천마의 거룩한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

“후회할 것이다.”

“크하하하하하!”

그러자 혈세귀막주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것을 보고 있는 귀문주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끈적한 불쾌함이 온몸에 엄습한다. 깨끗한 비가 몸을 씻어 주고 있음에도 말이다.

“후회? 설마 네놈, 천마를 믿고 있는 것이냐?”

“…….”

귀문주의 눈빛이 깊어진다.

그가 충성하는 것은 신교의 원로원도 소교주도 아닌 천마였다. 아니, 모든 교도는 천마를 숭배한다. 그는 무의 극에 오른 만마의 지배자였다. 자신을 모욕하는 것은 참아도, 교주를 욕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간이 부었군. 혈교의 패배자 주제에.”

그 말에 혈세귀막주의 표정이 씰룩인다.

그에겐 최악의 모욕이었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것이 귀문주의 불쾌감을 더 증폭시켰다.

“하하하하, 정말 모르고 있나 보군.”

“뭘 모른다는 것이지?”

혈세귀막주의 웃음이 뚝 그쳤다.

“천마는 죽었다.”

“…….”

귀문주는 딱히 큰 반응이 없었다.

천마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신교에서 보았던 신위를 기억한다면 천마의 죽음은 떠올릴 수 없다. 섬서성에 무림맹주나 사마련주가 있다고 할지라도, 천마는 두 사람을 상대로도 패배하지 않을 만마의 지배자였다.

“전혀 믿지 않는구나?”

“네놈의 술수에 놀아날 정도로 어리석진 않아서 말이지. 진을 펼쳐라.”

귀문주의 명에 귀문의 문도들이 혈세귀막주를 둘러싼다. 극마의 고수를 이곳에서 잡을 수만 있다면, 중소 문파 따위를 멸문한 것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공이었다.

“네놈은 살려 둬야겠군.”

무슨 의미일까?

귀문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쳐라.”

혈세귀막주가 잔인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저놈이 천마가 진짜 죽었다는 것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혈교의 후예로서 마교에게 복수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혈세귀막주. 이제 그들에게 복수의 칼을 뽑아 들 시간이었다.

그의 두 손에서 붉은 기운이 솟아올랐다.

* * *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암천회주가 묻는다.

단목장룡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제 끝을 내야지요.”

단목장룡이 끝이라고 하면 정말 끝이었다. 그 대척점에 선 이들이 불쌍하기만 했다. 천마와 단목장룡의 싸움을 지켜보기 전 암천회주였다면, 위험한 짓이라며 말렸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꺼내는 것조차 실례였다.

“마교 놈들이 불쌍하긴 처음이군.”

“그래도 방심할 순 없지요.”

“그런가……. 내가 자네 실력이었다면 꽤 방심했을 걸세.”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암천회주가 즐겁다는 듯이 웃는다.

처음엔 암천회의 후계자인 딸아이가 정파의 나부랭이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백분 이해한다. 자신이 여인이었다고 해도 저 영웅에게 마음을 빼앗겼으리라.

“그래, 조심하게. 자네가 다치기라도 하면 유화가 상심이 클 걸세.”

단목장룡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나 암천회주에겐 항상 감사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많은 도움을 받아 왔다. 언젠간 그들에게도 확실히 빚을 갚아야 한다.

“예, 모든 일이 끝나고 해남도로 찾아뵙겠습니다. 가자, 천응.”

이제는 천응의 존재를 숨길 필요도 없었다.

단목장룡은 새하얀 깃털을 자랑하듯 뽐내는 영물의 등에 올라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암천회주가 발걸음을 옮긴다.

“나도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