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화.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사서 한참을 그 담배를 바라보며 서 있는 청년.
누군가 그를 보고 있었다면 이상한 청년이라 생각하기 십상이었다.
29살 고연수.
지난 6년간 끊었던 담배를 손에 쥔 연수의 기분은 매우 상기되어 있었다.
군대를 갔다 와서 지방대를 다니며 생긴 학자금 대출로 인해, 돈 때문에 끊었던 담배.
빚을 지며 대학생활을 하는 그에게는 담배란 사치 중의 사치였다. 그렇다고 군 생활 당시 보았던 몇몇 얌체 같은 선임들처럼 주위에 담배를 한 개비씩 빌려 가며 생활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동안 열심히 살며, 드디어 대출금을 다 완납하고 6년만에 사본 담배였다. 연수에게는 삶에있어 여유의 증거랄까?
졸업과 동시에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2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일이 끝나면 주유소에 가서 6시간 동안 투 잡을 뛰며 독하게 살았다.
먹을 거 입을 거 하다못해 전기세까지 아낀다며 냉장고 문 여는 것까지 조심했고, 남들 다 쓴다는 스마트폰도 통신비가 아까워 최저요금제의 2g폰을 유지했다.
옷을 산 기억은 취업 당시 샀던 2벌에 30만 원짜리 정장을 빼면 군대 전역할 때 샀던 몇 벌의 옷이 다였지만 그것으로 버티면서 빡세게 돈을 갚아 2년 5개월여만에 3,400만 원의 대출금을 갚은 그는 가슴 가득 차오르는 흐뭇한 충실감에 벅찼다.
지난 6년간 가장 힘들었던 것이 다름이 아닌 담배였다.
담배를 끊는 6년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생각이 나고 흡연 욕구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돈 때문에 담배를 못 피우는 자신이 처량해져 기분이 우울해지고 힘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들은 건강 때문에 담배를 끊지만, 자신은 돈을 한 푼이라도 아껴보고자 담배를 끊고 있었다. 그는 항상 빚만 다 갚으면 담배부터 사서 피는 상상을 해왔고, 드디어 오늘 마지막 남은 금액을 갚아내고 산 담배 한 갑에 감동 중이었다.
“고연수 지난 6년 진짜 고생 많았다.”
담배 한 갑에 이런 감동이라니.
그는 스스로 민망해져 담배껍질을 벗기며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데, 갑자기 땅이 물렁물렁해지며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응?’
순간 훅 꺼지는 땅. 연수는 그대로 꺼지는 땅속으로 처박혔다.
“안녕하십니까? 9시 뉴스 김고은 앵커입니다. 오늘 오전 수원 번화가에서 깊이 6m가 넘는 싱크홀이 생겨나 29살 청년이 빠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목격자에 의하면 피해자는 담배를 피우는 도중 갑작스럽게 생긴 싱크홀에 대응할 시간도 없이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싱크홀로 인해 많은 사고가 생기고 있는데, 이에 대한 원인 규명과 대책이 변변치 않아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습니다. 당국은 현재 원인을 조사 중이며 피해자의 유가족에게 보상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연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밖에 없었다.
‘뭐였지? 분명 담배 한 대 피우려다 어딘가로 떨어진 것 같은데···. 나, 죽은 건가? 그럼 여긴 어디지? 천국? 지옥?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 이제 빚도 다 갚고 사람같이 살 수 있는데···. 우리 어머니 아부지는 어쩌지? 아···. 아직 못한 게 많은데···. 허무하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의 감각마저 느낄 수 없는 공간에서 슬슬 지쳐 갈 때쯤 시커먼 어둠을 뚫고 저 멀리 한 줄기 빛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빛을 따라가야 하고 그대로 삶이 완전히 끝나 마무리된 다는걸.
어쩔 수 없이 빛을 향해 다가가 보려고 애를 쓰는 그때 빛과 반대쪽에서 초록색 빛이 한줄기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갑작스러운 그 빛을 보고는 왠지 다가가고 싶어졌다.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 하얀빛이 강렬해지며 그를 끌어당기기 시작했고, 연수는 그 힘에 반항하며 초록빛으로 도망쳐 보려 안간힘을 써 봤다.
육체도 느껴지지 않는 그 공간에서 의지만으로 겨우 하얀빛의 힘을 뿌리치고 초록빛에 도착한 그는 망설임 없이 초록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먹은 솜 같은 무겁고 나른한 육체가 느껴졌다.
힘겹게 눈을 뜨니 밝은 빛 때문에 눈이 시렸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피니 대로변 위에 누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가 어디지?’
목이 타들어 가는듯한 갈증과 무거운 몸.
힘들게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펴보니 머릿속이 더욱 정리되지 않는다. 사방에 널린 목조건물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의 옷차림.
‘영화 촬영장?’
하지만 아무리 걸어 다녀보아도 카메라나 영화제작의 스텝처럼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 어떤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과장된 걸음걸이와 행동으로 마치 연극배우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또 어떤 이는 고단한 삶에 지친 얼굴을 하고 지나간다.
이 모든 사람에게서 그 어떤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결국, 연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니야.’
그는 결국 대로변을 빠져나와 물이 흐르는 계천을 보고는 허겁지겁 달려가 목을 축였다.
한참을 목을 축이다 보니 흐르는 물에 흐릿하게 보이는 자신의 몰골에 기겁했다.
‘내 얼굴이 아니잖아!’
산발한 머리에 어려 보이는 얼굴에는 때 구정물이 가득 끼어 있었고, 그제 서야 손을 들어 보니 오밀조밀한 작은 손이 보였다.
‘소설에서나 보던 전생?’
입고 있는 옷도 넝마를 방불케 하고 자신의 몰골 또한 이런 거지꼴이 없었다.
이상한 세상에 홀로 던져진 막막함에 연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돌아갈 수···. 없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원래 자신이 있던 세계로는 갈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는···.
‘하얀빛을 거부하고 도망친 대가인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자신의 죽음을 느꼈을 당시 자신을 끌어당기던 하얀빛, 그 빛을 거부하고 도망치듯 따라간 초록빛.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딱 봐도 이 몸의 주인인 아이는 아사했으리라. 얼굴에 하얗게 핀 버짐과 비쩍 마른 몸뚱이 꺼진 눈 밑과 볼. 심한 영양실조의 증후가 보였다.
연수가 살던 세상에서는 아프리카의 기아사진에서나 볼 수 있던 모습이다.
그의 인생에서 가진 것 없이 수천만 원의 빚을 떠안으며 학교에 다닐 때도 이런 막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열심히 갚아나갈 자신 또한 있었다. 아무리 지옥 같은 한국, 헬 조선 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주제를 알고 눈높이를 낮추면 먹고 살아갈 희망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위협이 당장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작고 어린 몸.
당장에 어떡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살아야 해.’
연수는 다급히 몸을 일으켜 자신이 깨어난 대로변으로 돌아갔다.
일단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붙들고 말을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를 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경멸과 멸시 역겨움이 느껴졌다.
누구 하나 그의 말을 제대로 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연수는 필사적이었다.
조만간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감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저기요, 말씀 좀 묻겠습니다. 잠시만 도와주세요.”
“응? 뭐냐? 적선할 돈이라면 없다.”
풍채가 가히 대단한 씨름선수를 연상케 하는 중년인이 연수의 말에 대답을 해주며 섰다.
“구걸하려는 게 아니고요. 지금 이곳의 위치와 날짜가 어떻게 되나요? 제가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중년인은 머리를 다쳤다는 말에 연수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절강성의 항주이고 올해가 영락 13년이지.”
“항주···. 항주?! 중국!”
“응? 중국? 중국은 어디냐?”
“아, 아닙니다. 영락이라면, 홍무제 건문제 다음의 그 영락 말씀이시죠?”
중년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연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영락이지 그럼 다른 영락제도 계시냐?”
“고, 고맙습니다.”
연수는 중년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힘없이 뒤로 돌아 터덜터덜 걸었다.
‘과거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중국이라니···. 게다가 영락제면 명나라···. 아···. 잠깐! 근데 중국인데 어떻게 언어가 통하지? 내 몸이 아닌 이 아이의 몸이라 그런가? 하아···. 무슨 상관이냐. 영락제면 아마도 1400년도 초, 중기인데···. 얼추 조선 시초쯤인가? 하긴 조선이나 명나라나 차라리 여기가 낫지. 어차피 인권에 대한 개념도 없는 신분 사회인데.’
연수는 착잡했다. 과거의 신분 사회로 전생했다. 즉 굶어 죽는 고아는 세상천지에 널렸고, 인권에 대한 개념은 저 바닥에 깔린.
21세기를 살아온 사람에게는 지옥과 같은 곳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어린 홀몸의 아이로 전생했다는 것은 충격과 공포였다.
‘정말 먹고 살길 막막하게 됐다. 자칫 잘못하면 굶어 죽겠네.’
한참을 정처 없이 걷던 연수는 벽을 등지고 주저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먹고 살길이 보이지가 않았다. 한참을 힘없이 앉아 바닥만 내려다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그의 눈앞으로 웬 하얀 덩어리가 툭 떨어졌다.
연수가 힘없이 고개를 올려보자, 웬 거지꼴을 한 어린 소년이 서 있었다.
“딱 보니까 며칠은 넘게 굶어서 죽기 직전이네. 그거라도 먹어라.”
연수는 자신의 앞에 떨어진 하얀 덩어리를 한참을 보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부드러운 식감과 속에 쥐꼬리만큼 들어있는 고기가 느껴지자 그 맛과 식감이 연수의 모든 정신을 지배했다.
‘맛있다!’
한입을 베어 물자 그 맛에 지배된 연수는 게눈 감추듯 왕만두 하나를 먹어버렸다.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 사실 하얗다기보다는 회색에 가깝고 흙먼지도 잔뜩 묻어있었지만 그런 사소한 것은 보이지도 않는 연수였다.
연수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제법 컸던 왕만두 하나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정신이 든 연수는 앞에 소년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소년은 연수의 말에 씩 미소 짓더니 연수의 옆으로 앉았다.
“너 얼마나 굶었냐?”
“몰라.”
“몰라?”
“응. 머리를 다쳐서 아무 기억도 안 나.”
“머리를 다쳐?”
“응”
“큰일 날 뻔했네. 그럼 기억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이름도?”
“이름···. 내 이름은 기억이 나. 고연수.”
“고연수라···. 이름 좋아 보이네. 나는 소산이라고 하는데 장차 개방에 입방해 고수가 될 큰 꿈을 품고 있지. 그래서 이름을 소개라 바꾸기로 했어.”
‘작은 거지라, 제 이름을 거지라고 부르다니 특이한 놈일세.’
“조, 좋은 이름이네.”
“그렇지?”
“그러면 너는 거지야?”
“그럼 당연하지. 이 세상 고아는 거지가 안 되면 다 굶어 죽어야 돼. 그런 너도 고아지?”
“아마도 그렇지.”
“너도 굶어 죽기 싫으면 빌어먹고 살아야 돼.”
“구걸해야 한다는 거지?”
“그래. 어떡해서든 먹고 살려면 그 수밖에는 없어.”
“그러면 나도 너 따라 다녀도 돼?”
“그래. 어차피 나도 혼자 다니는데 뭐 같이 다니면 덜 외롭고 좋지.”
'묘한 놈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로 특이한 녀석이었다.
세상에 고아로 나서 막막하기 이를 데 없을 텐데도 밝고 활력이 넘쳤다.
이 막막한 상황에서도 여유까지 보이니 같은 처지에 어떻게 이렇게 밝을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