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연수는 소개를 놔두고 잠시 나갔다가 돌아왔다.
돌아온 연수의 손에는 작은 바구니에 하얀 왕만두가 5개나 쌓여 있었고, 반대편 손에는 대접에 냉수가 그득 담겨있었다.
“우리 숙수가 방금 찐 만두다. 고기도 넉넉히 들어가서 맛이 일품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니까 먹어봐.”
소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보자 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만두를 한입 베어 무는데 문뜩 눈시울이 붉어지는 소개.
“응? 왜 그래?”
“아니, 그냥 예전에 너랑 만두 훔쳐 먹다가 두들겨 맞아서 앓아누운 일이 생각나서.”
“그런 일도 있었네.”
소개는 애써 분위기를 환기하려 말했다.
“네가 출세하기는 출세했다.”
“하기는 하루하루 굶어 죽을까 봐 몸부림치던 반년 전에 비하면 이런 출세도 없다.”
“그래도 나는 가끔 너랑 먹고살고자 몸부림치던 그때가 그립기도 해.”
“그때는 둘이 꼭 붙어 다녔으니까 좋은 추억도 많지.”
“어쨌든 너는 그러면 돈 많이 벌어서 이런 객잔을 차리는 게 꿈이겠네?”
“응? 전혀 아닌데?”
“그러면?”
“그냥 한 30년 열심히 돈 모아서 작은 집에 작은 땅 사놓고 소작이나 주면서 먹고살려고.”
“뭔가···. 길지만 장대하지는 않다.”
“어차피 잘 먹고 잘살면 됐지, 뭐 꼭 장대하게 살 필요 있냐?”
“그래도 남자가 꿈은 크게 가져야지. 나는 꼭 분타주가 될 거다. 그것도 이 서호의 분타주가 되어서 이 일대를 호령하며 떵떵거리고 살 거야. 거지라고 멸시받고 천대한 놈들 찾아다니며 반대로 갚아줄 수 있는 거지가 될 거다.”
“네 꿈도 뭔가 그리 커 보이지는 않는다?”
“너에 비하면 큰 거지.”
“그래도 나름대로 개방에 투신했으면 꿈 정도는 개방의 방주가 된다거나 그래야 하는 거 아냐?”
“자식아, 개방 방주는 아무나 하냐? 지금 현 방주의 제자만 넷이다. 넷. 거기다 방주 못지않은 8명의 장로의 제자만 36이고, 아직 후개가 정해지진 않았지만 아마도 방주의 제자 중에 후개가 나올 거고, 큰 이변이 없는 한 그 후개가 다음 대 방주가 될걸?”
“뭔가 불공평한 거 아니냐?”
“불공평하지만 어쩔 수 없지. 기껏 해봐야 개방대회를 열어 장로의 제자 중 후개가 나온다면 그게 가장 큰 이변일 거다. 우리 같은 평개들은 그저 열심히 해서 분타주쯤 되면 그게 가장 출세한 거야. 평생 3결제자로 살다 죽는 방도도 수두룩하다고.”
“하긴 방도 수가 보통 많은 것도 아니고 그 안에서 출세하는 게 쉽진 않겠지.”
소개는 남은 만두 두 개를 작은 천에 감싸 가슴속에 갈무리하고는 일어났다.
“벌써 가게?”
“나 같은 무의개는 봐야 할 눈치가 많다. 이 정도면 오래 있었어.”
“잠깐 있어 봐.”
연수는 침상 밑에 작은 상자에서 주머니를 꺼내서 소개에게 쥐여줬다.
“뭐냐 이게?”
“철전100전에 은자 한냥 들었다.”
“이걸 내가 어떻게 받냐?”
“너 쓰라고 주는 거 아니야. 보아 하니까 윗사람들 때문에 고생하는 거 같은데 술이라도 사다가 비위 좀 맞춰봐. 어차피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백날 구걸하는 것보다 술 한번 대접하는 게 더 잘 먹힐 거다.”
“그 염병할 선배들이 뭐 예쁘다고 술까지 대접하냐?”
“그러니까 네가 고생하는 거야. 사람은 자고로 공짜라면 환장을 한다. 거지라고 뭐 다를까 봐?”
“그래?”
“우리가 자주 다니던 성도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면 진가 양조장이라고 있어. 한서 객 잔에서 왔다고 하면 백화주 한 병당 20문씩 줄 거야. 그리고 오량주는 은자 한 냥에 줄 거다. 오량주는 꼭 분타주라는 양반에게 갖다 줘.”
“무슨 술 한 병이 은자 한 냥이나 하냐?”
“이 세상 물정 모르는 거지 놈아, 오량주가 보통 술인지 알아? 우리 객잔에도 명목상 갖다만 놓았지 실제 사 먹는 사람은 거의 없어. 우리 객잔에서는 한 냥 오십문이나 받고 주루나 기루에 가면 은자 세 냥은 줘야 먹는 고급술이라고.”
“그래? 너 점소이 되더니 별걸 다 안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백화주야 그리 비싼 술은 아니니까 상관없지만 오량주는 꼭 분타주에게 전해. 그리고 돈 아낀다고 죽엽청 같은 거 사 가지 말고.”
“알았다. 어쨌든 염치없지만 잘 받을게.”
“그래, 좀 자주 들르고.”
“알겠어. 또 보자.”
소개는 연수에게 손을 흔들고는 객잔을 나섰다.
연수가 일러준 데로 양조장으로 갔더니 처음에는 술을 내주려 하지 않았지만 한서객잔의 연수에게 소개를 받고 왔다고 하니 술을 내주었다.
10문짜리 죽엽청을 사고 싶었지만, 연수의 말이 떠올라 백화 주 5병과 오량주 1병을 사서 분타로 돌아갔다.
분타에 들어서자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분타의 선배 둘이 자신의 입방 동기들에게 역 취구보를 시키고 있었다.
개방의 입문 무공은 취구보와 취개봉법 두 무공뿐이다.
이중 보법인 취구보를 물구나무서서 하는 것을 역 취구보라 부르는데 팔심과 균형감을 익히는 단련법이지만 사실상 밑에 거지들을 괴롭힐 때 자주 써먹는 편이었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동기들이 모두 역취구보를 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니 소개의 마음인들 편할 리가 없었다.
서둘러 달려가며 선배 거지들에게 인사를 하는 소개.
“선배님들 다녀왔습니다.”
소개를 본 한 거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잘 다녀왔냐?”
“예, 잘 다녀왔습니다.”
소개에게 질문한 거지의 허리에는 세 개의 수결이 매어져 있었다.
3결제자인 7년차 거지로 평소 후덕하고 자상해 따르는 후배가 많은 거지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소개가 조심스럽게 묻자 옆에 있던 2결 제자가 대답했다.
“네놈들이 평소 제대로 수련하지 않아 사달이 났잖아! 이 새끼야!”
대답한 거지는 3년 차 거지인데 평소 아무리 구걸해도 입문공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던 악질로 소문난 거지였다.
삼결제자가 말을 받아서이었다.
“네가 나가고 분타주께서 입문 제자들의 무공성취를 살펴보고는 실망이 크셨다.”
평소 이결 제자들에게 제대로 전수 받지 못해 수련이 미흡하던 동기들에게 분타주가 쓴소리한 모양이다.
‘씨발 그게 우리 잘못이냐? 평소 거들먹거리며 입문공을 안 푸는 저 차개 개새끼 때문이지.’
“야, 이 새끼들아, 입문한 지 육 개월이나 된 놈들이 9개짜리 취구보 하나 제대로 못 밟아? 그래서 언제 수결달래? 이 새끼들 그동안 내가 풀어줬더니 빠져서 안 되겠다. 너희 앞으로 내가 다섯 근은 빠질 때까지 굴린다.”
“됐다. 이만하면. 모두 일어나. 소개도 왔고, 앞으로는 좀 더 정진하도록 해라.”
“예?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됐다고!”
차개는 3결제자 방소의 날카로운 말에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소개는 조용히 이를 갈았다.
‘저 악질 새끼.’
방소가 분타 밖으로 몸을 돌리는데 소개는 아차 싶었다.
“저 선배님 잠깐 이것 좀 드리겠습니다.”
“응?”
“별건 아니지만, 선배님들끼리 드십시오. 백화 주입니다.”
소개가 백화주 세 병을 내밀자 방소의 눈이 커졌다.
“오! 화주. 이 귀한걸 어디서?”
“친구 놈이 선배님들 대접하라며 챙겨 줬습니다.”
“그래? 좋은 친구를 두었구나.”
방소는 누가 뺏어갈까 백화주 세 병을 챙기고는 소개의 손에 남은 세 병을 쳐다보았다.
“아 남은 두 병은 이결 선배님들..”
차개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개의 손에서 두 병의 백화주를 빼앗듯 잡아챘다.
“그래도 네놈이 양심은 있구나. 그래 내일은 내가 남은 취구보 초식을 전수해 준다. 그런데 그 남은 한병은... 모양이 다르네? 네놈들 마시게?”
“아닙니다. 이건 분타주님 드리려고..”
그때 마침 입구에서 분타주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나한테 뭘 주려고?”
분타주가 들어서자 차개와 방소는 분타주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분타밖으
로 나갔다.
“저놈들은? 어딜 저렇게 내빼?”
소개도 눈치는 있었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분타주에게 인사를 했다.
“분타주님 잘 다녀왔습니다.”
“그래, 친구를 만나고 왔다고? 잘 지내더냐?”
“예. 객잔에서 호의호식하며 잘 지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잘 되었구나. 그리고 이놈들아 무공정진에 힘 좀 써 보거라. 입방 6개월이 넘었는데 취구보 하나 못 펼치면 어쩌라는 게냐? 물론 무공구걸이 쉽지 않은 사정은 내 모르지 않는다만, 이결 놈들이 안 되면 삼결 놈들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져서 배워야지.”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제 친구 놈이 분타주님께 대접하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분타주 홍구는 소개가 내미는 병을 받어서 뚜껑을 열어 코를 가져다 대고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고는 눈이 커졌다.
“오! 오량주 아니냐? 이 귀한걸···. 좋은 친구를 두었구나. 점소이 일을 배운다고 했던가?”
“예.”
“아직 어릴텐데 이 귀한걸 대접해 주다니···. 은자 한 냥은 가볍게 넘을 텐데···. 잘 먹겠다고 꼭 전해주거라.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도움을 청하라고도 전해주고. 이거 안주를 뭐로 삼을까? 어디서 닭이라도 한 마리 훔쳐···. 큼큼! 어쨌든 너도 생활하다 힘든 일이 있거든 언제든 상담하러 찾아오고.”
분타주는 그 말만 남기고는 신법을 발휘하여 분타의 숙소 뒤편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그제 서야 눈치를 보느라 한쪽에 찌그러져 있던 동기들이 다가왔다.
“휴, 덕분에 살았다.”
“그러게 말이다, 차개 그 악독한 새끼 때문에 오늘 하루 종일 팔이 부러져라 시달릴 뻔했는데.”
“소개야 근데 우리건 뭐 없냐?”
소개는 침 흘리며 다가오는 동기를 보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주제도 안 되게 술 생각하지 말고 입문공이나 빨리 배울 생각들해라.”
“쩝, 하긴 우리가 술이나 찾을 주제는 아니지.”
“그래도 네가 술을 대접한 덕분에 차개 놈이 내일은 취구보를 다 가르쳐 준다잖아. 그나마 다행이야.”
“취개봉법의 나머지 초식 또한 방소선배에게 구걸하면 아마 어렵지 않게 알려 줄 거야. 아까 백화주를 보고 신이나 보였으니까.”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술이나 대접할걸 그랬네.”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서? 쉰 소리 말고 입문공이나 수련하자.”
소개와 무의개 동기들은 각자 구걸한 초식들을 서로 알려주며 입문공을 닦았다.
여느 날과 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는 연수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내며 만족하고 있었다.
연수는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반복되는 일과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매일 성실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은 큰 재능이며 자신의 장점이라는 것을.
보통의 사람들은 이 반복되는 삶에 지치고 점점 초심을 잃으며 변해 간다.
하지만 연수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재능을 타고났는지 실감했다. 만족할 줄 아는 재능.
어떻게 본다면 그릇이 작고 도전정신이 없는 단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은 언제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고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생각하며 행복을 꿈꾼다.
하지만 연수는 매일 오늘에 감사하고 만족했다.
지금 현재보다 훨씬 나쁜 상황을 상정해 두고 그렇지 않은 오늘에 대해 만족하는 것이다.
만약 객잔 취업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등줄기가 오싹해 지고 앞이 깜깜했다.
매일 구걸하며 평생을 거지로 살아가야 하는 나날들, 매일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위협감에 시달리는 나날. 그것은 연수에게 있어서는 가장 무서운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몸이 좀 고단하지만 매일 두 끼 밥 먹고,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가 보장되는 지금의 현실은 매우 만족할 수 있는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더 열심히 성실히 하루를 보낼 수 있고, 내일을 맞을 수 있었다.
그런 연수에게 충격적인 그의 일상을 뒤흔드는 일이 일어났다.
여느 날과 같이 오전 장사준비를 끝내고 잠시 앉아 쉬는 이른 아침에 웬 무림인이 객잔을 찾았다.
그의 등에는 붉은 검갑의 칼이 메달려 있었는데 왠지 평소 보았던 무림인들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인상을 연수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