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연수가 서점에서 글공부를 끝내고 나오는데 마침 소개가 연수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연수야!”
“응? 너 무슨 일 있어? 어째서 돌아온 거야?”
“객잔에 갔더니 네가 서점에 공부하러 갔다 해서···. 헉헉···.”
“그러니까 왜? 정말 무슨 일이 있어?”
“헉, 헉···. 그게 아니고, 너 몇 달 전에 무승들을 봤다고 했잖아. 그들이 누굴 잡아갔다고.”
“그랬지.”
“그거 자세히 좀 말해봐.”
“그거? 아까 말한 게 거의 다인데···.”
“뭔가 더 아는 건 없는 거야? 잡아간 무사가 누군지 라던가···. 이거 잘하면 출셋길 열리는 정보야. 잘 좀 생각해봐.”
“출셋길? 그게?”
“그래. 그러니까 잘 좀 떠올려봐.”
“음···. 그러니까 아! 그 무사 별호가 만사천우라고 했다.”
“만사천우?”
“응 분명 그 스님이 만사천우라고 했어. 그리고 그 스님 중의 한 명은 얼굴에 이렇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사선으로 상처가 있었고···. 또···. 그 무사가 들고 다니는 검갑이 붉은색이었어.”
“그래? 얼굴에 상처가 있는 무승에 검갑은 붉은색이었다···.”
“응 생김새는 눈은 부리부리한데 좀 찢어진 편이었고, 키는 이 정도? 즘 됐어. 그리고 그 무승들 가사가 독특해서 한쪽 팔은 이렇게 밖으로 내놓듯이 다녔고, 아! 그 무승들 나무로 보이는 노란색 봉을 썼는데 그 봉이 검이랑 부딪혀도 잘리지 않아서 신기했다.”
“아 그래. 고맙다. 나는 이만 가볼게.”
“그래, 바빠 보이는데 어여 가봐, 근데 이게 진짜 너 출세하는 정보가 맞아?”
“응. 우리 개방이야 정보에 민감하다 보니 좋은 정보를 물어오면 승결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했어. 잘하면 나 3결은 건너뛰고 4결까지 갈지도 모르는데.”
“그래? 그럼 빨리 가봐.”
“그래, 또 보자 먼저 갈게.”
말을 마친 소개는 숨을 헐떡이며 다시 달려갔다.
분타에 도착한 소개는 분타주에게 연수에게 들은 정보를 뱉어 놨다.
“만사천우! 그렇다면 말이 된다. 그렇지! 그래야 말이 되지.”
“그 무사의 검갑은 붉었고 키는 이쯤 되었으며 부리부리한 눈이 조금 찢어지듯 생겼다고 했습니다.”
“맞아! 그놈이야.”
“그런데 그 만사천우가 누구기에 소림사에서 잡아가나요?”
“소림사 속가 문파 하나를 망하게 한 놈이지.”
“혼자서요?”
“그래 뿐만 아니라 그 속가 문하 무공의 비급을 훔쳐 달아났다고 했다. 연화문이라는 곳이었는데 문주의 무공이 대단하기로 소문이 자자했지. 그 문주가 전대 소림의 방장과 연이 닿아 방장의 독문 무공을 배운 모양이야. 소림 입장에서는 본산 절기의 정수인 전대 방장의 무공이 사파 나부랭이 놈한테 넘어가는 꼴을 볼 수가 없었을 테고.”
“그런데 그런 유명한 고수가 사파무사 한 명에게 당했다니···. 이상하네요.”
“이상하지! 만사천우 그놈이 고수이기는 해도 그다지 대단할 건 없거든. 그런 놈이 절정의 끝자락에 있다는 연화문의 문주와 그 많은 문도 들을 혼자 해치웠다는 것이 이상했어.”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데요.”
“그건 이제 소림만 알게 되었지.”
“이제 타주님과 저는 승결 할 수 있는 건가요?”
“아마 확실할 게다. 네놈은 이제 구연공이나 빨리 쌓아 올리거라. 5성까지만 쌓으면 4결 제자는 따놓은 당상이다.”
“예! 그런데 구연공을 5성까지 연공 하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보통 빠르면 6년 늦으면 10년도 넘게 걸린다.”
“예? 아하···.”
“실망할 것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개방의 생활에 치여서 그런 것이지. 하루 3 사진 이상 꾸준히 쌓으면 3년 안에도 가능하니 될 수 있는 한 모든 시간을 구연공에 쏟아라. 내가 다른 것들은 하지 않아도 되도록 신경 써 줄 테니.”
“감사합니다. 타주님!”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네놈 덕분에 나도 출셋길이 열렸는데, 흥! 장타주놈 올해의 승결은 네놈 것이 되진 않을 거다.”
개방의 승결은 4결까지는 매번 공로를 인정해 그때그때 해 주지만 5결부터는 다르다.
1년에 한 번 공로를 모아 그중 소수만을 승결 시킨다.
다른 이에 비해 공로가 부족해 승결 하지 못하면 더 공을 쌓아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6결 같은 경우도 한해에 10명까지만 승결을 시킨다.
보통 젊은 나이의 개방 고수들은 6결을 달게 되는 경우는 무공의 재능이 특출 나거나 장로들의 제자들인 경우로 승결 식을 열지 않고 승결을 시키지만 대부분 개방의 각 조직의 조직원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외에 평개에서 시작하여 5결을 단 거지들은 대부분 나이가 중년을 넘어가는데 이런 거지 중 소수 6결을 달게 되면 계속해서 업무를 이어가다 7결까지 승결 할 경우 개방 대회 때 추천을 받아 장로로 추대되기도 한다.
보통 개방에서는 분타를 통해 입방한 제자들을 평개. 분타주 이상의 지위에 있는 자의 제자로 발탁되는 경우를 승개라고 부르는데 평개에 비해 승개가 무공도 빠르게 증진하고 더 빨리 승결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평개의 수가 구 할 구 푼 이상인 개방의 현실로 봤을 때 승개가 상위의 요직에 앉는 것은 많은 수의 평개들에게는 불만으로 작용하게 된다.
하여 개방장로의 6할 이상은 평개에서 올라온 거지를 뽑게 되는 것이 철칙인데, 이는 물이 고여 썩지 않게 하기 위한 개방의 방식이었다.
장로들의 제자 출신들이 그 장로직을 이어받고 그것이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장치였다.
권력의 되 물림을 경계하는 것만으로도 개방이 정파의 명문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이런 개방의 철칙은 승개 출신들에게는 그들의 기득권에 방해가 되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승개들은 평개에 비해 많은 이점을 갖고 있기에 큰 불만의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그 외에 4할 정도가 장로의 제자 중 출중한 자들을 방주가 직접 장로로 임명하는데 이것은 방주의 권력을 인사권으로 강화해 놓으려는 하나의 장치이다.
해서 4년에 한 번 있는 개방대회는 후개를 정하거나 다음 대 방주를 정하고 장로의 은퇴나 새로운 장로를 뽑는 둥 개방에는 매우 큰 행사이다.
이런 개방이라는 조직 안에서 6결제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이다.
평개 출신의 6결제자는 특히나 더 그렇다. 또한, 6결이 되면 개방의 상승 무공들을 더욱 배울 수 있으니, 개방 제자라면 바라지 않을 수 없는 직급이다.
연수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새로운 꿈을 가슴에 품었다.
평소 목적은 있더라도 꿈을 갖은 적은 없었다.
그저 목표를 정하고 그 길의 끝에 도착하기 위해 매일 한 걸음 한 걸음 걷던 연수에게 꿈이라는 길이 보이지 않는 목적지는 그저 바라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공을 배우고 싶다.’
지극히 상식적이던 그의 세상이 그날 이후 와르르 무너졌고, 그의 가슴에는 불이 붙었다.
‘장풍을 쏘고 하늘을 날고···. 아 무공을 꼭 배우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봐도 도무지 길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가슴속에 꿈을 품고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어느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선임 점소이 황석은 월삭을 훨씬 많이 주는 주루로 이직했고, 20세 초반의 새로운 점소이가 후임으로 들어왔다.
연수는 이제 하는 일이 더 늘어나 계산을 받고 장부를 쓰는 일은 거의 연수의 일이었다.
물론 영업이 끝나거나 다음 날 이 되면 홍구가 확인해 보기는 하지만 크게 바로잡을 일은 없었다.
덕분에 아침에 물을 길어오고 영업 준비를 하는 일이나 영업종료 후에 뒷정리하는 일은 새로운 점소이의 몫이었지만 까막눈인 새로운 점소이는 크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몇 개월 전부터는 글공부하는 서점에도 발길을 끊었는데, 소학을 떼고 그 후로 새로운 글들을 배우다가 서점주인이 이 정도면 생활하는 데 충분하다며 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얼추 6천 자가 넘게 읽고 쓸 줄 알다 보니 연수 자신도 위정자를 목표로 하지 않는 한 더 이상의 공부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 꽉 찬 충실한 하루.
하지만 연수는 만족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소림 고수들과 사파 무사의 싸움을 본 그 날 후부터는 이곳에 와서 그토록 원하던 따뜻한 하루를 보내도 가슴 어딘가가 휑하니 채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마음은 더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객잔을 닫고 전통에서 돈과 장부확인을 마치며 일찍 퇴근한 홍구에게 내일 보고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객잔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쿵쿵쿵!
연수는 마치 문이 부서지라 두드리는 소리에 일단 걸어 잠근 문을 열어주었다.
앞에는 머리는 산발이 되고 옷은 여기저기 찢긴 중년을 넘어 이제는 노인이라 불리 울 사내가 있었는데, 여기저기 찢긴 옷 사이로 가끔 핏기가 보이는 것이 누군가에게 쫓기는 꼴이 분명했다.
인상 또한 찢어지는 듯한 눈매에 매부리코가 합쳐져 영락없는 악당의 모습이었는데 연수는 괜한 일에 휘말릴까 싶어 눈앞에 노인을 돌려보내고 싶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객잔은 이미 닫았습니다. 다치신 것 같은데 의원을 찾아가 보시오.”
“내 정말 다급해서 그러는데 몸 좀 숨길 수 있게 좀 도와주시게나, 쿨럭!”
노인은 말을 하면서 기침을 하는데 기침 사이로 피가 튀어나오는 걸 보니 겉으로 보기보다 상처가 심한 것 같았다.
연수는 잠시 고민을 해 봤지만 괜한 동정심에 잘못 하면 험한 일을 볼 것 같았다. 연수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노인이 입을 열었다.
“내 거짓말은 하지 않음세. 나는 지금 무림인들에게 쫓기고 있네, 그것도 정파의 무림인들이니 함부로 도왔다가는 괜히 불똥이 튈 수도 있네. 하지만 자네가 지금 날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게 분명하네. 염치 불고하고 부탁함세. 도와주게.”
연수는 무림인이라는 말에 머릿속이 번뜩했다. 무림인에게 쫓기는 거로 보아선 이 노인도 무림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혹여 이 노인을 도와주면 무공 한 자락 얻어 배울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일단 들어오시오.”
연수의 허락이 떨어지자 노인의 굳은 얼굴에 안심하는 기색이 서렸다.
“고맙네.”
연수는 노인을 어디다 숨길까 고민하다가 주방에 있는 식자재 창고로 데려갔다.
창고 안에는 각종 식자재가 들어있었는데 그 중 숙수가 직접 담근 장을 보관하는 큰 항아리 중 빈 항아리를 열고 안으로 노인을 들어가게 했다.
항아리 안은 비었지만, 그 냄새는 어딜 가지 않는지 짭짜름하면서 역한 냄새가 올라왔는데 노인을 냄새를 맡더니 인상을 구겼다.
“굳이 이 안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어 보이네.”
“유비무환이라 했습니다. 들어가세요.”
노인은 잠시 연수의 안색을 살피더니 단호한 연수의 얼굴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항아리로 들어가 앉았다.
노인이 들어가자 연수는 그 위로 항아리 뚜껑을 닫고는 말했다.
“제가 부르기 전에는 절대 나오지 마세요.”
연수는 주방을 나서고는 혹시 노인이 흘린 핏자국이라도 있나 살펴보았다.
다행히 객잔 내부에는 노인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연수가 객잔 문을 열어 객잔 밖을 살펴보니 객잔 밖에 노인의 피로 보이는 흔적이 몇 방울 떨어져 있었다.
연수는 서둘러 나가 발로 흙을 덮어 그 흔적을 지우고는 객잔 안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갔다.
‘부디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과연 저 노인이 무림인이 맞을는지 생각하며 장부와 돈을 맞춰 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객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 쿵쿵!
연수는 조마조마하며 객잔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