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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4화 (14/202)

# 14화

한참을 눈을 감고 잠을 청한 끝에 선잠에 빠져든 연수는 멈추는 마차의 관성에 몸이 쏠림을 느끼며 눈을 떴다.

혹시나 해서 마차의 창을 가리는 천을 걷어 보자 멀리서 주변을 붉게 물들이며 장대하게 떠오르는 해가 보였다.

이 세계에 오고 난 이후로 몇 번이나 보아왔던 해지만 이처럼 연수에게 감격스러운 일출은 처음이었다.

‘역시 사람은 처한 환경에 따라서 같은 경치를 보고도 다른 감상을 느끼는구나.’

거지 생활을 할 때는 뜨는 해를 보면 힘든 하루의 시작을 재촉하는 것 같아 힘이 빠졌었고, 점소이 시절에는 그저 같은 하루가 또 시작이라는 생각에 무덤덤했었다.

하지만 이제 곧 무공을 배워 고수의 길로 나갈 생각을 하자 떠오르는 해가 뭔가 자신의 앞날을 밝게 비춰 주는 것 같은 감동을 주었다.

연수가 감격에 빠져 뜨는 해를 바라보는 동안 중년인 또한 깨서는 밝아지는 밖을 보고는 마차 문을 열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제 본인의 몫을 할 때였다.

중년인과 교대해 들어오는 노인을 보는 연수의 눈은 뭔가 전보다 더욱 존경심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사부님! 사부님의 눈은 밤도 낮처럼 환하게 보이는 겁니까?”

“응? 낮처럼은 아니지만 웬만한 건 다 보인다. 특히 달이 밝은 날은 뭐 불편할 건 없을 정도로 보이지.”

“역시! 사부님은 대단하시군요.”

“벼, 별건 아니다만···.”

노인은 제자가 점점 뭔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바로 잡아 주기도 모호했다. 해서 그냥 놔두기로 했다.

‘제자의 존경심이 깊어지는 건 뭐 좋은 일이지.’

여행길은 순조로웠다.

아무래도 쫓기는 입장인 노인은 낮에는 절대 마차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었고, 식사를할 때도 밖에서 대충 만들어 놓으면 꼭 마차 안에서 먹었다.

심지어 볼일을 볼 때도 밤에만 봤으며 노숙을 할 때도 마차 안에서 했다.

덕분에 준비한 천막은 연수와 마부 중년인만 썼다. 그렇다고 쫓기는 것만큼 발길을 재촉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을이나 도시를 지나치는 길들을 빼고 웬만해서는 마을이나 도시는 지나지 않게 길을 우회해서 여유 있게 천천히 가며 말들의 체력을 안배해 자주 쉬어가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사실 길을 재촉했으면 마차를 타고 열흘이면 충분한 거리를 보름도 넘는 동안 주유한 끝에 도착한 목적지는 절강성과 강서성의 경계에 있는 구룡산이었다.

구룡산은 산맥이 길게 이어지고 인적이 드물어 높은 험산이라기보다는 산세는 완만하고 깊어 인적이 닿지 않아 우거져 있는 산이었다. 명산이라 불리 우는 산들에 비해 경치도 높이도 비교가 되질 않지만, 연수의 스승 두보는 이 산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사부 같은 고수가 은거하기 딱 좋은 산이겠네. 적들에게 쫓기는 처지면 이런 산이 최고지.’

연수는 스승의 뒤를 따르며 산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지 조그맣게 나아 있는 산길을 걷는데 잡초와 잔가지로 길이 굉장히 좁았다. 평소 사람이 많이 다니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었을 텐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 얼마나 인적이 드문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길이 좁아 사부와 일렬로 서서 걸으며 연수는 은근히 숨이 차왔다.

그래도 몇 년 동안 일하며 만들어 놓은 체력도 있고, 젊은 혈기도 있기에 별로 높지도 않은 이 정도 산쯤은 정상까지는 가뿐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길도 거칠고 빠른 사부의 발걸음에 맞추다 보니 금방 숨결이 거칠어졌다.

“힘들지?”

“아, 아니요. 하아···.”

“조금만 힘내라!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러고 보니 산 정상에서 생활하진 않겠구나.’

“네.”

연수는 이제 대놓고 숨을 몰아쉬며 사부의 뒤를 따랐다.

어차피 3층 객 방안에서 1층의 소리를 주워듣는 사부의 청각이다. 바로 뒤에서 조용히 숨을 몰아쉰다고 모를 사부 같지도 않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니, 아예 편하게 숨을 몰아쉬며 따라가기로 했다.

“헉, 헉···. 사부님. 아직 멀었습니까? 헉···.”

“거의 다 왔다.”

연수가 사부를 따라 산을 들어선 지 얼추 두 시진이 넘었다. 사부가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한지 1 사진은 훨씬 더 넘었다. 거의 다 왔다는 말도 두 번째였다.

아마 산 정상을 오르려 했으면 거의 다 왔지 않을까 생각하며 연수는 사부의 뒤를 따랐다.

한참 힘들게 산을 헤매다시피 휘젓고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연수는 힘든 기분이 사라지며 상쾌한 고양감을 맛보고 있었다.

‘러너스 하이다. 산을 오르는데 러너스 하이가 오고 있어.’

21세기에서 마라토너들이 자신의 체력적 한계를 아득히 넘으면 어느 순간 고통에 이기지 못한 뇌가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마구 분포해 쾌락의 착각을 일으킨다는 러너스 하이를 연수는 15세기에 산을 오르며 어린 몸으로 겪고 있었다.

“자, 다왔다. 어떠냐?”

고양감에 빠져 있던 연수는 사부의 등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정면을 빼꼼 고개를 내밀어 바라봤다.

폭포수 밑에 그림 같은 집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20장은 넘어 보이는 절벽 밑에 작은 집은 연수와의 상상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보여 줬다.

“와, 사부님 멋진데요?”

“저 집 또한 주춧돌 하나까지 모두 홀로 나르며 지은 집이다.”

자랑스레 말하는 사부의 이야기를 듣고 연수는 집으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방 두 칸에 작은 부엌이 딸린 목조로 지은 집이지만 창문의 세세한 창살이나 벽에 바른 흙 또한 깔끔했다.

작은 나무들을 베어서 역어 만들어 놓은 작은 담장이 집의 앞마당과 바깥을 경계 지어 주는 듯해 아늑한 느낌도 들었고, 꽤 더운 날씨임에도 앞마당에 있는 돌을 깎아 만든 듯한 큰 평상은 앉으면 시원함을 넘어 차가울 정도였다.

낮은 담장 옆으로는 작은 집에 비해 과하게 넓은 앞마당의 반절을 차지하는 텃밭이 있었는데,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사부님 대단한데요? 특히 이 평상은 어떻게 만들고 옮기신 겁니까?”

“아 그건 내 친우가 선물로 해 준거다. 원래는 평상이 아니라 커다란 바위였는데, 친우가 어느 날 내 집을 보고는 답답하다며 일 검에 베이어버려 평상이 되었지.”

사부의 말에 연수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소림 무승들의 싸움을 보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지금 연수가 앉아 있는 평상의 크기는 퀸사이즈 침대 두 개는 이어 붙인 것만 한 크기이다.

이 정도 넓이의 바위라면 어마어마한 크기였을 텐데 얇은 날붙이로 베다니? 상상도 되지가 않았다.

연수가 놀라서 연신 평상을 둘러보며 말문이 닫히자 사부는 화통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그 친구가 대단 하기는 하지. 일 검에 그 큰 바위를 베어 버린 것도 모자라 치우기 귀찮다며 일장에 큰 바위를 부숴 버렸다. 작은 자갈로 부서져 날아가는 바위의 모습이 과히 대단했지.”

“사부님만 대단한 게 아니고 사부님 친구분도 대단하시네요.”

“자 그럼 거기 앉아서 들어라.”

짐짓 사부가 정색하며 연수의 앞에 서자 연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평상에 앉았다.

보통 이럴 때는 사문의 역사나 아니면 앞으로 배울 무공의 종사에 관한 이야기로 전통 있는 문파에 대한 제자로서 꼭 알아야 할 일들을 이야기해 주고는 한다는 사실을 많은 영화와 소설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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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사 그 구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저 막연히 정은 정의 사는 악으로 치부되었다.

중원에서는 사마외도라 불리는 서장 무림과 마교로 비하되는 일월신교 그 외에도 중원의 밖에서 무를 닦는 많은 무인. 그들의 무는 어디서 왔으며 그 뿌리가 어디인지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 무의 역사를 찾는 이들 또한 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도 않고 인정받을 수도 없는 그들은 무의 역사와 그 뿌리를 찾고 기록하는 것이 평생의 소명인 듯 몰두했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이 정사 간의 오해란 말이지. 정과 사 두 갈래로 나뉘어 피 터지게 싸워 흘린 피가 모였으면 아마 장강을 가득 채우겠지만 그런데도 그들은 계속 싸우지. 지들이 무엇 때문에 싸우는 줄도 몰라. 정은 협의라며 사를 배척하고 사는 그에 대항하며 정의 위선을 비웃지. 그런데 말이야, 정과 사는 사실 무의 종류를 나누는 기준이었을 뿐 정의냐 악이냐 하는 잣대가 아니란 말이야. 도대체가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지만 그런 선입견이 사실인 양 떠들고 다니고 심지어 본인들도 그런 줄 알고 있어. 멍청한 게지. 적어도 지들이 왜 싸우는지 지들이 속한 곳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싸우든가 말든가 해야 할 거 아냐?”

달마가 역근과 세수를 전해 내가공부가 중원에 퍼졌고 그 뿌리 아래 수많은 문파와 무공이 나와 현재에 이르렀다는 정설. 정말 그럴까?

사실 달마가 역근과 세수를 중원으로 들여오기 전부는 중원에는 무가 존재했다.

인간이 존재한 이후 최초의 무는 인간보다 강한 동물들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야수의 몸짓을 따라 하며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문명이 생겨나고 나서부터는 타인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 호신의 이유가 시초가 되어서 대인전의 연구가 심화하였다고 하지.

나보다 강한 타인으로부터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해 어느덧 남보다 강한 나를 위한 무가 되었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구분을 짓기 시작했다.

호신을 위해 태어난 것이 무의 진정한 의미라는 쪽과 결국 무는 대인전, 즉 살법이라 주장하는 쪽. 호신을 위한 쪽은 자신의 단련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반대쪽은 타인을 죽이는 살법을 위해 무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왔다. 이때부터인 게다. 정과 사로 나뉜 것이.

정은 항상 나의 발전과 호신. 활법을 목적으로 무를 생각한다면 사는 상대적이다.

남보다 나은 그를 위한 살법을 목적으로 계승되다 보니 정은 항상 사보다 한발 앞서기는 했지만 사보다 불리했다. 사는 상대의 무를 파훼하거나 정의 무를 상대로 연구하는 것이 일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러다 보니 정에서는 자신들의 무를 감추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함부로 자신들 무를 전하거나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반대로 사는 항상 자신들을 증명하려 안달 나 들어내며 여러 사람끼리 공유하는 문화가 나왔지. 더 나은 살법을 궁리하기 위해.

저러다 보니 자연히 정에서는 사를 멀리하고 천시했으며 사 역시 정을 거부했다.

사람을 상대로 구사하기 위한 무. 결국, 사람을 파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것에는 반론에 여지가 없지.

그 실리를 추구하면 사, 그것보다 무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자신의 단련과 호신을 추구하면 정. 이것이 정과 사의 시초다.

그러다가 중원에 축기를 위한 호흡법이 전해지게 되었다.

물론 이를 먼저 받아들인 것은 정이었다.

자신의 단련.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목적에 호흡법과 명상만큼 잘 맞아떨어지는 것도 없으니, 반면 사는 그 효용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축기는 그저 정의 위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그보다는 외공, 그것도 빨리 큰 효과를 보는 외공에 집중했다.

독특한 무기 술이나 암기와 독 그리고 초식에 의존하다 보니 당연히 정의 위치는 점점 사보다 줄어들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정에게 한 줄기 빛처럼 등장한 것이 내공의 운기와 그 기의 방출이다. 몸 안에 축기해 놓은 기를 움직이려 하고 그 내적 힘을 외적으로 쓰는 데 노력하다 보니 정의 무는 비약적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그동안 줄어들던 정과 늘어나던 사, 그들의 입장은 뒤집혔지.

그럴 수밖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강함이었으니,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의 힘과 육체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를 아주 소수의 고수만이 넘어왔는데 내공이라는 힘은 그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게 하여 주었다.

사는 마음이 급해졌지, 그동안 내가공부따위 멀리해 왔으니 이렇다 할 축기호흡법 하나 없었다.

그렇다고 정에서 시작된 내가공부를 사에 전해 줄 리는 만무했고, 결국 사는 정의 심법 들을 빼앗고 훔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다.

정의 심법 들이 하나같이 어렵게 암구 들로 그들만이 알아듣게 뜬구름 잡는 식으로 변한 것은, 하지만 지금도 사파의 심법은 간결하고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오지. 또한, 여전히 사파의 무공이 패도적인 이유다.

연수는 감기는 눈을 뜨며 크게 하품을 했다.

“아···. 정사의 그 시초와 구분은 아주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지···. 사조님의 개파 당시의 일화라던가 저희 사문의 전통이라던가 이런 걸 말씀해 주실지 알았습니다만.”

연수는 한 시진도 넘어가는 사부의 전혀 상관도 없는 서론에 심히 지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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