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20화 (20/202)

# 20화.

오래지 않아 사부는 연수의 기척을 느꼈는지 눈을 떴다.

“일찍도 일어났구나.”

“원체 팍팍하게 살던 버릇이 들어서요. 그러는 사부님께서는 더 일찍 일어나셨습니다.”

“늙으면 원래 잠이 없어지는 법이다.”

“그 운기라는 걸 하신 겁니까?”

“그래. 앞으로 네 녀석을 가르치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길 테니 부지런히 새벽잠 줄여서라도 축기 해야지.”

연수는 사부의 말에 멋쩍게 웃으며 우물에서 물을 기러 대충 세안을 마쳤다. 우물물이 마치 얼음장같이 차가운 것이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

“대충 씻었으면 이리와 앉아 보아라.”

사부의 말대로 평상에 가부좌를 틀고 사부 흉내를 내며 앉자 사부가 삼재 심법의 구결을 불러주었다.

“다 외울 때까지 불러줄 테니 계속 외거라.”

사부가 다섯 번 구결을 외워주자 연수는 삼재 심법의 모든 구결을 다 외웠다.

그다지 어려운 구결도 아니었고 뜻도 제대로 모르지만, 그저 외우는 것에는 자신 있는 연수였다.

“눈을 감고 외운 구결 중 심결들을 마음속으로 외며 구결이 말하는 대로 호흡하거라. 들숨에는 혀를 천장에 대고 날숨에는 혀를 자연스레 내리며 호흡 사이에 구결을 명심하며 심결은 항상 머릿속에 떠올리며 호흡해야 한다. 앞으로 네 녀석이 자연의 기운을 느끼고 축기를 시작할 때까지는 매일 오전은 밥 먹는 시간 외에는 항상 이것만 하여야 한다.“

“네.”

연수는 대답을 마치고는 사부의 말을 따르며 계속해서 심결과 호흡에 집중하며 자연의 기를 느끼려 애를 썼다.

처음에는 기를 느껴보려 예민하게 감각에 집중하다 보니 호흡과 심결이 흐트러지게 되었고 이를 느낀 연수는 일단은 심결과 호흡만을 생각하며 상태를 유지해 나아갔다.

그렇게 1 사진이 흐르자 연수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2 사진이 흐르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 사부의 목소리가 연수의 정신을 깨웠다.

“그만하거라.”

사부의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뜬 연수의 눈에 밝은 햇빛과 함께 식사준비를 마친 사부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식사를 하고 오후 수련으로 넘어간다.”

“예.”

연수는 힘겹게 가부좌를 풀고는 저리는 다리에 고생하며 식사를 마치고는 스트레칭을 했다. 상을 물린 사부는 널찍한 마당 가운데에 서서 연수를 불렀다.

“우선 장괘구권에 대해 설명을 해주마.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홉 초식의 권초로 이루어져 있는 종남파의 권법이다. 일단은 초식을 보여줄 터이니 모두 외워 보아라.”

사부는 연수의 앞에서 장괘구권의 기수식부터 마지막 초식까지를 전부 펼쳐 보았다.

“얼마나 외웠느냐?”

연수는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어설픈 몸짓으로 흉내를 내보였다.

“여기까지 외웠고 또 마지막 초식이···. 이렇게! 이렇게! 였던 것까지 기억합니다.”

“확실히 영민한 머리다. 반 이상 외웠구나. 다시 보아라.”

사부는 다시 한번 초식을 보여주었고 연수는 두 번 만에 모든 초식의 형을 기억에 담았다.

“그러면 형은 얼추 안 것 같으니 마보를 취해 보아라.”

마보라는 말에 연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영화든 소설이든 입문하는 주인공들은 항상 마보부터다. 연수는 다부진 표정을 지으며 마보를 취해 보았고, 사부는 연수의 어설픈 마보를 바로 잡아주며 말했다.

“이제 그 상태로 장괘구권의 권로만 반복하거라.”

“예.”

연수가 마보를 취한지 일각이나 지났을까 연수의 숨은 벌써 턱까지 차오르고 있었고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연수의 발밑에는 벌써 연수가 흘린 땀에 땅이 젖어가고 있었다.

“저, 사부님 마보는 얼마나 해야 하죠?”

“확실히 말해 주마. 앞으로 당분간은 오후에는 계속해서 마보만을 한다고 생각하거라. 오후의 세시 진은 마보를 하고도 멀쩡히 뛰어다닐 수 있을 때까지는 장괘구권과 구면장을 마보를 한 상태에서 상체의 식만을 익힐 것이다. 얼마나 해야 하반신의 운신 식을 익힐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려 있다.”

사부의 말에 연수는 솔직히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세 시진을 마보만 하고도 뛸 수 있어야 한다니···. 이미 마보를 한지 일각도 안 되어 힘이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오전의 시간은 그저 마보를 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을 하니 앞날이 깜깜해졌다.

‘아니다, 이렇게 무공을 배우기를 얼마나 열망했는데···. 이 정도로 지치지 말자.’

연수는 마보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강하게 먹은 마음과 다르게 반 시진도 되지 않아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그 정도면 처음치고는 오래 버티었다. 기억하거라, 네 의지가 아닌 순간까지는 최대한 버텨야 한다. 네 의지로 주저앉는 것만 아니라면 한번 쓰러질 때마다 일각을 쉬어주고 다시 시작해라. 하지만 너의 의지가 약해 주저앉게 된다면 재빨리 몸을 추슬러 자세를 취하거라. 고수가 되고 싶다는 너의 목표가 겨우 마보에서 꺾인다면 더 볼 것도 없다.”

제법 매서운 말을 하면서도 사부의 손은 연수의 다리를 주무르기 바빴다.

“명심하겠습니다.”

얼추 일각이 지났다고 생각되자 연수는 다시 마보를 취했고,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빨리 주저앉게 되었다 나중에는 주저앉아 쉬는 시간이 마보를 하는 시간보다 많아졌지만, 연수는 계속해서 마보를 취했다.

“권로가 심하게 흐트러졌다. 더 천천히 해도 좋으니 한 동작 한 동작 정확하고 확실하게 해라. 힘들다고 권로가 흐트러져서는 고수가 될 수 없고, 권식을 제대로 익힐 수조차 없다. 아주 천천히 1각에 한 초식을 펼쳐도 좋다. 정확한 권로로 펼쳐 내어라.”

“허억···. 헉···.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연수의 숨소리는 이미 턱까지 차올랐다.

어느새 소박한 사제가 사는 집의 주위에는 어둠이 찾아왔고, 사부는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만 되었다. 씻고 옷을 갈아입거라. 저녁밥을 차려오마.”

연수의 머릿속에서는 본인이 상을 차리겠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차마 팔도 제대로 올라가지 않고 다리도 후들거려 서 있기가 힘든 몸으로 저녁까지 차릴 자신이 없었다. 연수는 터덜터덜 우물가로 걸어가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어놓고는 차가운 우물을 길어 머리부터 끼얹으며 씻기 시작했다.

초여름 날씨에 종일 땀을 흘리며 고된 수련을 한지라 온몸에서 열이 나며 머리끝으로 몰리던 열이 차디찬 우물에 식어내리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몸을 씻고 나니 몇 벌 되지 않는 옷을 빨아 놔야 했다.

늙은 노 사부에게 식사까지 차리는 노고를 끼치는데 차마 자신의 옷가지까지 빨아 달라 할 만큼 낯짝이 두껍지 못한 연수였다. 처음에는 쪼그리고 앉아서 옷에 물을 부어가며 손빨래를 했는데 쪼그리고 앉아 있는 다리가 비명을 지르고 빨래를 비비는 손에는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를 않았다.

연수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발로 빨래를 밟아가며 물을 부었다.

얼추 마무리된 듯하자 힘없는 손으로 대충 빨래를 짜서는 우물 옆에 있는 장대를 눕혀서 기대어 놓고 그 위에 빨래를 널었다.

얼마나 대충 짰는지 젖은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지만, 연수는 별 신경을 쓰질 않았다.

어차피 낮에 내리쬐는 햇볕이면 충분히 마르고도 남을 것이다.

연수가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때맞춰 사부가 상을 들고 마루로 들어왔다.

등 세 개에 불을 밝혀 마루에 걸어 놓고는 상 앞에 앉자 제법 분위기가 살았다.

“입맛이 별로 안 돌 테지만 많이 먹어 두어라. 일단은 잘 먹어 두어야 한다. 잘못해서 원기라도 상하면 수련이고 뭐고 한동안 회복에 힘써야 하니 무조건 먹을 수 있을 때는 양껏 먹어 두어라.”

“예.”

아닌 게 아니라 연수가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입맛이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구걸하여 먹고 살 때는 먹고 싶어도 먹을 게 부족했고, 나름 풍족했던 점소이 시절도 가끔 숙수가 차려주는 점심이라면 환장을 하고 먹었다.

성장기 아이의 몸인데 하루 두 끼만 먹으며 고된 노동을 하는데 오죽했을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전 세상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그렇고 태어나서 이토록 몸을 혹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다못해 저번 생에서 입대한 훈련소 생활이 연수의 인생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시기였는데 훈련소는 오늘 한 수련에 비하면 할 만한, 아니 널널한 생활이었다.

적어도 교육시간과 쉬는 시간이 칼같이 나뉘어있고 힘든 만큼 체력적 분배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두었다. 하지만 오늘의 수련은 말 그대로 지쳐 쓰러질 때까지의 반복이다. 지쳐 쓰러지면 그때야 잠시 쉬고 또 일어나 쓰러질 때까지 반복한다.

특히나 힘든 점은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 의지로 쓰러지면 바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연수의 이성은 계속해서 한계라며 쓰러져 쉬기를 바랐지만, 육체는 솔직하여 힘이 다할 때까지 쓰러질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쓰러지고 싶은 유혹과 싸우며 버티는 마보는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들었다.

자신의 한계를 자꾸만 낮추려는 자신과의 싸움은 어쩌면 육체적 고통만큼이나 큰 고통이었다.

사부의 말에 밥을 크게 한술 떠서 입에 넣었더니 마치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었다. 계속 집어넣으면 체하고 말 것 같은 거북함. 하지만 꾸역꾸역 씹어 넘겼다.

‘적응 해야 한다. 무공을 익혀 고수가 되어야지. 힘내자.’

연수의 머릿속은 오로지 쉽지 않은 수련의 길에 빨리 적응하고 많은 무공을 익혀 고수가 되는 것만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몇 년 전 보았던 무사와 무승들의 싸움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무승이 일장을 내지르자 객잔의 벽이 펑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갈 때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연수를 사로잡고 있었다.

사제의 식사가 끝나자 사부는 연수에게 한 권의 책을 건네줬다.

“오전과 오후의 일과가 끝나면 심법 수련을 하며 공부해라. 무인이라면 꼭 알아야 하는 인체의 혈과 경락에 관한 책이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물어보고 오후 일과가 끝났을 때의 수련은 혼자서 정해서 할만큼만 해라. 무리해서 다음 날 수련에 지장이 있다면 한걸음 전진하고 다섯 걸음 후퇴하는 만큼의 손해다. 알아서 천천히 해라.”

“예, 사부님.”

사부는 잠시 연수를 바라보더니 자신의 방으로 건너갔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오냐.”

연수는 지친 몸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으려다 경련이 오는 장딴지를 황급하게 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당장 심법 수련은 무리네.”

연수는 사부가 방문 옆에 걸어놓은 등을 작은 상위에 걸어 놓고는 사부가 준 책을 펼쳐 보았다.

책에는 인체의 365개의 혈과 혈이 이어지는 경락에 대한 설명이 가득했다.

“이걸 언제 다 외우냐.”

아무리 주입식 교육에 단련된 연수이지만 두꺼운 책에 나온 혈자리들과 경락에 대한 설명은 외우려면 시간이 걸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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