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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22화 (22/202)

# 22화

다음날이 되자 연수는 보통보다 이른 새벽에 쿵쾅거리는 소리에 깨어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앞마당에서는 노사부가 큰 망치와 나무 말뚝들을 마당 한편에 처박고 있었다.

길이가 일장은 되어 보이는 두께가 어른 종아리만 한끝이 뾰족한 나무 말뚝을 한 손으로 들어 땅에 내려쳐서 대충 박아두고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 망치질을 몇 번 하자 긴 나무 말뚝의 삼 분의 이가 땅속으로 쑥쑥 들어갔다.

“와, 사부님 기운이 장사십니다?”

“일어났느냐?”

“내공의 힘인 거죠?”

“그럼, 나 같은 노친네가 무슨 힘이 남아돌아 이런 말뚝을 쑥쑥 박겠냐?”

“그런데 그 나무 말뚝은 어디에 쓰시려고 그렇게 땅에 박아두십니까?”

“다 네놈이 쓸 것이다.”

“호오···.”

연수는 직관적으로 오늘부터 새롭게 배우는 천리견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을 마쳤다.

사부를 거들어 말뚝을 박는 일을 끝내고는 평상에 앉아 평소보다는 조금 이른 삼재 심법의 수련에 들어갔다.

대영심법을 배우면서부터 연수는 삼재 심법을 통한 축기는 하지 않고 있었다.

보통 내공 심법을 수련할 때는 축기공과 운기공을 나누어 하게 되는데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니 밖에서 보는 삼자의 경우에는 운기를 하는지 축기를 하는지 도통 알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통칭 운기를 한다고 부르는데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호흡을 통해 자연의 기를 걸러 받아들이며 단전에 쌓는 것을 축기라 하고 단전에 쌓인 내기를 심결과 해당 심법의 경로를 통해 몸 안에서 주천시키는 것을 운기조식이라고 한다.

운기 조식을 하면 사용하여 고갈된 내력을 보충해서 비어있는 단전을 채울 수는 있을지 몰라도 새로운 기를 늘려 단전의 크기를 키울 수는 없다.

무인들은 보통 축기로 시작해 마무리로 운기를 한번 하여 심법의 수련을 마무리하고. 혹여 내상을 입으면 심법 심결 중 요상결의 경로를 따라 내기를 돌리며 운기 요상을 하기도 한다.

한데 연수는 대영 심법을 익히게 되면서 삼재 심법을 통한 내력의 축기양이 보잘것없이 적다는 것을 느끼고는 오전 수련 내내 삼재 심법의 운기 법과 요상 결만을 반복수련했다.

운기를 하면 할수록 혈과 경락을 자극하여 튼튼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대영심법과는 다른 공능의 효과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별 볼 일 없다고 알려진 삼재 심법의 요상결 또한 단순한 구조였지만 수련할수록 피로가 풀리고 몸에 활력이 차오름을 느낄 수 있어 고된 수련에 지친 연수의 몸을 빠르게 회복시켜 주었다.

대영심법의 요상결과 비교하여 보면 육체적 피로를 극복하는 데에는 삼재 심법의 요상결이 훨씬 더 효능이 좋았다.

그렇게 오전의 수련을 마친 연수는 식사 후 오랜만에 사부와 나란히 앞마당에 섰다.

“그럼 이제 완전한 장괘구권을 펼쳐 보아라. 하체의 식을 잊지는 않았겠지?”

“예. 까먹진 않았습니다.”

사실 장괘구권을 배운 후 상체만을 꾸준히 수련해 왔지 완전한 형을 행한 적은 처음 한 번을 빼고는 없었기에 연수는 은근히 긴장되었지만, 천천히 장괘구권의 기수식부터 펼쳐 보았다.

사부는 모자라거나 잘못된 점을 바로바로 고쳐 주며 바로 잡아주었고 10번 정도 장괘구권을 펼치자 형은 그럭저럭 나왔다.

“이번엔 구면장을 펼쳐 보거라.”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10번 정도 펼쳐 보자 어느 정도 형이 잡혔다.

“매번 상체만 익히다 같이 하려니 영 어색하네요.”

“하다 보면 금방 익는다. 앞으로 오후의 두 시진은 쉬지 말고 오로지 장괘구권과 구면장만을 익히거라. 너의 의지가 아니라 몸이 쓰러지게 되면 반 각을 쉬고 일어나 다시 하고, 전과 같이 늦어도 괜찮으니 정확한 투로와 형으로 해야 한다.”

“네.”

연수가 수련을 시작한 지 두 시진이 지나자 연수는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힘드냐?”

“헉헉, 이거···. 헉 생각보다 훨씬 지치는데요.”

“그동안 마보로 하체단련을 한다고 했지만, 체력이 버티기에는 무리가 있겠지. 그만큼 격동적으로 초식을 펼쳐댔으니 정상이다. 그것 또한 하다 보면 익숙해질 게다. 적당히 쉬었으면 그만 일어나 보거라.”

“후우···. 후우···. 예.”

연수는 숨을 고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부터 천리견보의 구결을 먼저 불러줄 테니 확실히 외워 두거라.”

사부는 그대로 다섯 번을 구결을 불러주었는데 연수는 다섯 번 만에 구결을 전부 외울 수 있었다.

“그럼 천리견보의 보법식을 가르쳐 주마.”

연수는 갑자기 바닥에 넙죽 엎드리는 사부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사, 사부!”

사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놀리며 말했다.

“천리견보는 두 발과 두 손을 이용한 경공이다. 경공이란 몸을 가볍게 하여 빠르게 이동하는 무림인의 중요한 공부 중 하나다. 이 천리견보는 가히 속도에서는 천하 일절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신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모습이 해괴하여 보는 이의 비웃음을 살 수 있고 경공을 펼칠 때, 두 손이 자유롭지 못한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강호에서는 무공이 고강해도 죽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강한 무인이라도 자기보다 강한 고수를 적으로 만나면 죽는 수밖엔 없지. 하지만 경공이 뛰어나면 다소 무공이 떨어져도 목숨을 부지하기 훨씬 더 쉽다. 그런 면에서 비추어 보자면 이 천리견보는 네놈의 목숨 줄을 이어 줄 중요한 공부이니 열심히 익혀야 한다.”

연수는 차마 보기 민망하게 두 손이 발이 되어 네발로 마당을 뛰어다니며 말하는 사부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마치 개가 신이나 마당을 뛰어노는 모습과 비슷했다.

“사부···. 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이놈아! 잔소리 말고 어서 외워라. 지금 펼치는 식을 얼른 외워야 다음식을 전해주지! 언제까지 늙은 사부를 네발로 기게 할 거야?”

“하아···.”

연수는 한숨과 함께 사부의 움직임을 외워 갔다. 연수가 세 가지의 식을 모두 외우자 사부는 허리를 펴고 일어서며 허리를 두드렸다.

“이거 참 오랜만에 하려니 힘들구먼.”

“아니 사부, 경공술이라면서 사부도 오랜만에 펼치는 걸 내가 꼭 익혀야 합니까?”

연수는 아직도 네발로 개처럼 뛰는 이 천리견보가 미덥지 않았다. 특히 허리와 엉덩이를 망측하게 흔들며 방향전환을 하는 모습이 마치 개가 꼬리를 흔들며 산만하게 뛰는 모습과 너무 닮아있어서 더욱 거부감이 들었다.

“이 답답한 놈아. 천리견보는 비장의 수다. 목숨이 위험할 때 적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절체절명의 위기에만 쓰는 비장의 한 수. 보통의 경공처럼 이동할 때 막 쓰는 그런 경공이 아니야. 그리고 아무 때나 네발로 뛰어다니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냐?”

“그, 그렇군요.”

“그리고 경공이란 보법과 경신의 공부야. 뛰어난 경공은 뛰어난 경신법이라는 말과도 같아. 경신의 공부는 무인의 운신 폭을 넓혀 주고 모든 무공에 도움을 주는 매우 중요한 수법이다. 천리견보의 경신 구결을 잘만 써먹으면 같은 초식도 더 빠르게 펼치고 적의 공격에 더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굳이 네발로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야.”

“그게 그렇게 연결이 되는군요.”

“그럼 모든 무공은 다 그래. 하체가 튼튼해야 내지르는 일 권이 강맹해 지고 상체가 튼튼해야 어지러운 보법을 밟을 때 균형을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는 것과 같이 무공의 조화란 오묘한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식은 다 외운 것 같으니 말뚝 위에 네발로 서서 첫 식부터 천천히 익혀 보거라.”

“처음부터 말뚝 위에서 해야 하나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천천히 한발 한발 정확하게만 하면 되니 걱정말고 해보아라. 첫 식을 모두 마치면 반대편 말뚝을 짚고 내려서고 다시 반복하면 된다. 자칫 다칠 수도 있으니 절대 서두르지 말고 한식당 10번을 하면 꼭 반각을 쉬고 다음식으로 넘어가거라. 그리고 제삼 식의 경우에는 절대 펼치지 말고 내력의 운용에 맞춰 1식과 2식만을 펼쳐 보거라. 중간에 내력이 달리는 경우가 올 것이다. 그때는 내력의 운용을 멈추고 육체의 힘만 가지고 하면 된다.”

“네.”

연수가 말뚝 위를 네발로 기며 천리견보를 펼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수의 단전은 텅텅 비어 버렸다.

그때부터 연수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기 시작했다. 무거운 납을 차고 엎드려서 두 손과 발만으로 몸을 지탱하여 나무 말뚝을 짚고 이동한다는 것은 연수의 생각보다 몸에 훨씬 더 큰 부하를 줬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지탱하는 다리 또한 나무 말뚝이 보이지 않아 자꾸 헛디뎌 자칫 떨어질 뻔한 적도 여러 번이다. 조심한다고 천천히 하니 체력적으로 훨씬 빨리 지쳐가고 그렇다고 빨리 끝내려 하니 위험한 경우가 속출했다.

“천천히 해. 그것도 다 신체의 훈련이다. 빨리할 생각은 아직 할 필요 없어 힘들수록 더 천천히 해라.”

“끄응···. 예.”

연수는 힘들게 대답하고는 계속해서 수련을 이어갔고, 그날의 수련이 끝나자 오랜만에 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나기 힘든 상태를 겪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씻고 나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지고 첫날과 같이 밥맛이 도통 없었다.

연수가 천리견보에 차차 익숙해지고 천리견보의 삼식 수련을 말뚝 위에서 시작할 무렵이 되자 구룡산은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기 시작했다.

파릇파릇한 새싹과 약동하는 에너지가 구룡산을 채워 갈 때쯤 사부는 연수에게 나무를 깎아 만든 사람 머리만 한 목공을 연수에게 주었다.

“앞으로 구면장을 익힐 때 이용하거라. 손에서 놓치지 않고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

사부는 연수의 눈앞에서 구면장을 시연해 보였는데 목공을 굴리며 손에서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구면장의 초식을 그대로 펼쳐 보았다.

“와! 사부 대단해요!”

“이게 가능해지면 구면장을 삼성을 익혔다고 할 수 있다. 그다음은 두 개의 목공을 가지고 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 5성을 익히게 되는 것이고 말뚝 위나 산을 뛰어다니며 목공 두 개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되면 9성을 익혔다고 하게 된다. 그리고 구면장의 무리를 모두 깨닫게 되면 구면장을 대성했다고들 한다.”

“사부는 몇 성이나 익히셨습니까?”

“나는 구성을 익혔지.”

“와 대단하십니다.”

“대단하지 그럼. 보통 무당의 도사 놈들도 5성 이상 익히지는 않는 편이니.”

“아니 그놈들은 지들 입문공도 다 익히지 않는 겁니까?”

“구면장을 통해 기초 체력과 원심의 묘리를 터득하게 되면 보통 다른 무공으로 넘어가는 편이니 구면장만을 죽어라. 익히는 도사들은 없지.”

“그렇군요.”

“하지만 너는 9성까지 익혀야 한다.”

“예.”

“될 수 있다면 대성하면 좋겠지만.”

“그런데 장괘구권은 그 성취를 어찌 판단합니까?”

“형을 완전하게 익히면 3성 마지막 초식 중 경구탄권을 사용해서 바위를 부수게 되면 5성 바위의 크기가 건장한 남자만 한 크기가 되어도 부수게 되면 구성이다. 그리고 무리를 모두 파악하게 되어 더 익힐 것이 없으면 대성이라고 하더구나.”

“무당의 무공과는 아주 다르네요?”

“무당은 부드러움과 조화를 종남은 강과 쾌를 중히 여기니 그 성향이 이런 입문공에서도 나타나는 것이지.”

연수가 구룡산에 들어온 지 꼬박 일 년이 되자 연수는 구면장의 삼성을 이룰 수 있었다.

장괘구권역시 3성의 경지를 넘어 바위에 실금을 가게 하기 시작했고 천리견보 또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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