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무황은 아쉬운 표정으로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반년이나 머물렀어. 저 아이 재능에 신이나 시간 가는 줄 몰랐네.”
“가르침 좀 더 주지 벌써가나?”
“그러고 싶지만, 언제까지 여기서 뭉기적거릴수야 있겠나. 아이와 자주 찾아오게.”
무황은 짧은 이별을 고하고는 자신의 거처로 떠났고, 한동안 셋이 지내던 작은 초가집에 사람 하나가 비자 두 사제는 무황의 빈자리를 느끼며 다시 둘만의 생활을 계속했다.
그렇게 연수가 구룡산에 입산한 지 4년이 되던 날 사부는 연수를 불렀다.
하루도 빼지 않고 오전에는 심법을 수련하던 연수는 평소와 다르게 사부가 오전부터 불러 앉히자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이곳에 온 지도 꽤 시간이 지났구나.”
“예, 어찌어찌 하다 보니···. 한 4년쯤 돼가네요.”
“얼추 내게서 기초공부는 다 배운 것 같다. 이제 내 나름의 비전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전해 주려 한다. 너도 매일 수련하는 것에서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을 테니.”
사실 연수는 무황에게 배우던 짧은 반년의 시간 외에는 구면장이나 장괘구권이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음에 꽤 답답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천리견보의 경공수련이나 두 발만으로 천리견보를 펼치는 연습만 하고 있었다.
그나마 구면장이야 목공을 늘려가며 수련하는 등 진전을 꾀해봤지만 장괘구권은 아무리 수련해도 무언가 더 나아짐이 느껴지지 않으니 최근에는 자연스레 수련을 멀리하게 되었다.
“아직 가르쳐 주지 않은 무공이 더 있습니까?”
“있지. 듣는 법과 암기술을 그리고 단검법을 아직 전수 하지 않았으니.”
“듣는 법이요?”
“뭐 대단한 건 아니다. 이목공이라고 이건 내 사부가 하오문의 문도로 있을 시절 당시 하오문의 타주에게서 배운 건데 그 이후 사부는 나를 제자로 데려와 이목공을 중심으로 무공을 훔칠 기반을 세웠다.”
“귀로 본다?”
“맞다. 이목공은 귀를 예민하게 단련하는 공부인데 사람이 듣는 소리는 사실 진동에 가깝다는 게 이 이목공의 주장이다. 하여 진동을 예민하게 느낄수록 더 잘 듣게 되는 거지. 이목공은 성취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보지 않고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듯 알 수 있다고도 한다. 원래는 유명한 장님검객의 무공이었는데 어찌어찌 돌다 보니 하오문의 타주에게 전해졌고, 그게 내 사부와 나에게 이어졌지.”
연수는 사부에게 이목공의 구결을 전수 받고는 구결에 따라 운용해보았는데 평소보다 더 정확하고 크게 느껴지는 소리를 느끼며 감탄했다.
새소리와 주변에 부는 바람 소리 풀들이 흔들리는 소리등이 확연히 느낄 수 있게 들려왔다.
“와 대단한데요? 그런데 모든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려서야···.”
“그중 듣고 싶은 소리에 집중하여 가려듣는 수련을 해야 한다. 폭포수에서 폭포의 소리 외의 소리에 집중하고 듣는 수련이라든지 여러 소리 중 네가 듣고 싶은 소리에 집중해서 들을 수 있게 수련하는 것이 이목공의 정수다.”
“그런데 사부, 암기술도 할 줄 아세요?”
“그럼. 우리 같은 사파 인에게 암수는 필수다. 정파 놈들이야 정당하지 않다며 천시 여기지만 암기라는 것은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야. 사천의 패주라 일컬어지는 사천 당가가 독과 암기의 대가인데 그런 주제에 사파인들의 암수를 탓하는 정파 놈들의 뻔뻔한 헛소리에 기죽어선 안 된다.”
“그럼요.”
“내가 가르칠 암기술은 사실 암기술이라기보다는 단검법에서 파생된 초식을 갈고 닦은 것이다. 이 단검법은 하오문의 무공인 사수검을 하오문 살 수 중 한 사람이 변형시켜 암수검이라는 무공으로 만들었는데 이걸 내 사부께서 전수 받으셔서 나에게 이어졌고, 이 암수검 초식중 단검을 던지는 초식을 투척 술로 익히다 보니 나중에는 단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암기를 투척하는 데 도움이 되더구나. 일단은 암수검의 구결과 초식을 잘 외워 보아라.”
연수는 암수검의 구결은 쉽게 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사부의 손에서 펼쳐지는 암수검의 초식은 기괴하기 이루 말할 때가 없어서 보고도 초식을 외울 수가 없었다.
‘이건 순 마술이잖아?’
보통의 무공이란 아무리 하찮다 하여도 기수식이 있고 초식의 움직임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어 보통의 필부가 봐도 평소의 사람 움직임과는 구별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사부가 펼치는 암수검은 기수식은커녕 초식을 시작하는지도 모르게 펼쳐졌다. 그저 가볍게 악수하듯 뻗어내는 빈손에서 어느 순간 단검이 들려있었고 그걸 시작으로 맹렬히 상대를 단검으로 찢는 듯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손을 번갈아 움직이는데 오른손에 들려있던 단검이 순식간에 왼손으로 이동하여 공격을 하는 초식과 다시 오른손으로 이동하는 초식이 번갈아 이어졌다.
도대체 언제 단검이 이동하는 것인지 연수는 눈을 부릅뜨며 지켜봤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는 어느 순간 사부의 양손에 똑같은 단검이 쥐어지며 교차하여 상대를 베는 마지막 초식을 끝으로 암수검의 초식이 끝이 났다.
“와···. 사부 대단해요! 이건 거의 묘기 수준인데요?”
연수가 상기된 얼굴로 흥분하자 사부는 살짝 당황했다.
사실 첫 초식부터 기수식도 없이 암수로 시작하는 암수검의 초식을 정파인이 보았다면 대번에 칼을 뽑아 들고 욕설부터 했을 것이다.
허나 연수는 마치 마술 같은 사부의 움직임에 빠져 암수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역시 훌륭한 사파인의 자세구나.’
사부는 내심 제자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며 암수검의 초식에 관해 설명했다.
“암수검의 첫 초식인 소면살은 언제 어느 때건 손만 있으면 펼칠 수 있는 암수검에서 가장 강력한 초식이다. 상대가 방심하고 경계심이 없을 때 자연스레 상대를 죽이는 초식으로 절대 움직임에 있어 위화감이 없어야 한다. 힘을 주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생각을 하기보다 상대의 사혈을 노려 가볍게 단검으로 찔러 죽이는 게 요체이기에 마치 친구에게 팔을 뻗는 다정하며 여유 있는 움직임이 중요해. 그러면서 운공을 하며 이렇게!”
순간 천천히 뻗어가는 사부의 빈손에서 단검이 나타났다.
“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잘 보아라. 요렇게 손목을 살짝 비틀며 상대의 시야에서 내 손등 쪽 소매 속을 가리고 손을 돌리며 숨겨둔 단검을 꺼내는 거지.”
“아!”
연수는 마치 마술 비밀을 알게 된 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그럼 그 오른손에서 순식간에 왼손으로 단검을 이동시키는 그 초식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마치 순간 이동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던데?”
“하하 마지막 초식을 보고도 그 비밀을 눈치채지 못했느냐?”
“네?”
연수는 어리둥절하여 골머리를 돌려 봤으나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 영민한 연수가 끙끙대며 고민하는 것이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아이 같은 모습이 보여 사부는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이 녀석아 사실 이 초식의 비밀은 양손에 있는 단검을 번갈아 꺼내어 상대를 혼란케 하는 것뿐, 실제로 단검이 이동한 것이 아니야. 다만 상대가 그렇게 여겨 놀라게 하려는 초식인 게지.”
“아! 그렇구나. 저는 마치 순식간에 단검이 이동하기에 눈에 보이지 않게 단검을 던져서 잡는 게 아닌가 했습니다. 대단하네요. 사부”
연수는 살검수라는 하오문의 살수에게서 만들어진 무공에 실로 감탄했다.
실제로 암수검을 만든 살수는 원래 거리에서 공연하던 기예꾼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하오문도에서 살수로 일하게 되면서 자신의 손재주를 살려 만든 게 암수검이었다.
그렇다 보니 마치 마술을 보는 듯한 그 움직임은 필연적인 움직임이었다.
연수는 암수검의 초식을 연습하며 쉽게 되지 않는 초식에 당황했다.
그동안은 초식을 익히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단순한 암수검의 초식이 어찌나 안 되는지 손가락과 손목이 따로 놀며 자신이 봐도 어설프기 짝이 없어 지나가는 아이도 속지 않을 것 같았다.
“자 일단 이렇게 가볍게 단검을 쥐고 손목의 탈력을 이용해 흔들어 보아라. 마치 손이 여러 개인 양 잔상이 생기지?”
“네.”
연수는 사부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느슨하게 잡은 것처럼 보이는 게 일단 함정이다.”
-땅!
사부는 흔들던 단검으로 연수의 단검과 부딪혔다. 연수의 단검은 사부의 단검과 부딪히기 무섭게 연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살살 쥔 그것처럼 보이나 강하게 쥐는 게야.”
연수는 사부의 말에 따라 단검을 힘주어 쥐고 흔들어 보았다.
“사부, 단검을 힘주어 쥐면 아까처럼 부드럽게 손목이 안 흔들리는데요?”
“당연히 처음부터 된다면 수련이 필요하겠느냐? 단검을 꽉 쥐게 되면 손목과 팔의 근육이 긴장되어 손목의 탈력을 이용하기가 힘들어. 중요한 건 손끝에는 힘을 주되 손목에는 힘을 빼는 거다. 연습해 보아라. 그리고 이것도 연습해 두어라.”
사부는 단검을 쥐지 않고 손가락 사이에서 부드럽게 돌리며 엄지와 검지에서 약지와 소지까지 이동시키며 반복해 보였다.
“요체는 결국 반복연습이다.”
“네.”
그날부터 연수는 암수검에 빠져들었다.
익힐수록 재밌고 조금씩 늘어가는 암수검은 성취감이 강해서 암수검 수련에 모든 정신을 빼앗길 정도였다.
마치 마술을 배우는 듯한 그 손의 움직임이란 연수에게 너무나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무공을 익힌다기보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호기심과 흥미가 더해져 연수의 암수검 성취는 빠르게 늘었다.
“이제 제법 기본이 잡혔구나.”
“사부가 보기에도 꽤 괜찮죠?”
“그래. 이제 다음 단계인 암수검을 이용한 암기술을 보여주마.”
사부가 그 자리에 서서 빈손을 허공에 휘두르자 초가집의 기둥에 텅텅하고 소리를 내며 단검이 박혔다.
“이런 응용이 가능하군요.”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대영심공을 이용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사부는 별것 아닌 것처럼 머리를 긁적였는데 또 하나의 단검이 기둥에 처박혔다.
“사부! 단검이 날아가는 소리가 안 들렸어요.”
“그렇지! 사실 첫 번째 것은 이 두 번째 암수를 위한 함정이다. 상대에게 첫 번째 암기를 몇 번 보여준 후 이런 식으로 기척을 죽인 진짜 암기를 보내는 것이지.”
“와···. 엄청난 심리전이군요.”
“그래.”
연수는 대영심공을 이용한 암기술의 응용법에 대한 구결을 듣고는 계속해서 암수검과 단검투척 술을 수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