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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33화 (33/202)

# 33화

다음날이 되자 연수는 나무를 깎아 단검 길이의 목도 두 개를 만들고는 손에 쥐어 보았다.

‘나쁘지 않아.’

일어나자마자 짧은 목도부터 만든 연수를 보고 사부는 고개를 흔들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을 차렸고, 연수는 그사이 잠시 운공을 했다.

상이 다 차려지자 무황과 연수는 식사를 끝내고는 널찍한 앞마당에 섰다.

무황의 눈에 연수에 손에 들린 짧은 목도 두 개가 들어왔다.

“이제는 목검을 가지고 장난할 수준은 지나지 않았느냐?”

“예? 그럼···.”

“그래. 진검으로 해야지.”

무황이 마루 밑으로 손을 뻗자 낡은 철검 하나가 무황의 손으로 날아와 잡혔다.

손에 잡힌 철검주위로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이 무척 오래 방치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무황이 낡은 철검을 뽑자 다행히 녹이 나 있지는 않았다.

척 보기에도 싸구려 중의 싸구려 철검임이 틀림없지만, 무황이 철검을 뽑아 드는 순간 연수는 숨이 막혀왔다.

예전 목검을 상대로 맞섰을 때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때보다 훨씬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더 큰 압박감이 느껴지는지 연수의 두 손이 땀으로 가득했다.

“마음껏 덤벼 보아라.”

검갑을 멀찍이 던져놓고 철검을 대충 늘어트린 자세로 여유 있게 서 있는 무황이었다.

연수의 땀만 가득했던 두 빈손에 어느새 단검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연수는 무황에게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어디를 어떻게 공격한다 해도 결국에는 무황의 철검에 반으로 갈라지는 결과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공격하지 않고 땀만 뻘뻘 흘리는 연수를 보며 무황이 싱긋 미소 지었다.

“제법이구나. 그동안 정말 많이 성장했다. 이제 이 정도의 압박은 통하질 않는구나.”

“통하질 않기는요. 뱀 앞에 쥐처럼 꼼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하하 그것도 네놈이 제법 무인다운 경지에 올랐다는 증거이다. 뭣 모르는 하룻강아지만이 호랑이 무서운지 모르고 경거망동하는 법이지. 그럼 한번 어울려 보자꾸나.”

무황은 연수에게 보내던 압박을 풀었다.

연수는 그제야 무황에 달려들며 암수검의 초식들을 풀어냈다.

하지만 기세 좋게 달려들던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수세에 몰렸다.

무황은 삼재검의 몇 초식만으로 연수를 수세에 몰아넣었는데 그 마음속에는 어제 육합권 이야기 때문에 식겁하여 상한 마음이 조금은 섞여 있는지도 몰랐다.

연수는 도무지 무황과의 거리를 좁힐 수가 없어서 점점 급해져 갔다.

단검과 장검의 싸움이라면 단검이 이기려면 결국 단검의 거리에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무황은 도무지 연수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장검의 거리를 유지하며 연수를 상대하니 연수로서는 공격다운 공격은 하지도 못하고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암수검은 암습전용의 단검 법이다. 초식 하나하나가 거의 상대를 죽이기 위한 직접적인 살초로 이루어져 있기에 상대를 오래 상대할 만한 무공은 아니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연수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 내가 아는 삼재검이 분명한데 왜 파고들 수가 없는 것이지?’

가뜩이나 처음으로 진검을 들고 비무를 하는 연수는 잔뜩 긴장되어서 마음이 더욱더 초조해졌다.

‘이러다가는 뭔가 해보지도 못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연수는 단검 하나를 무황에게 투척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무황은 연수의 단검은 막지도 않고 옆으로 돌며 피해버렸고 연수의 목에는 무황의 낡은 철검이 지척에 들어섰다.

“하하하, 조급해진 모양이구나. 그런 하책을 쓰다니.”

“어휴, 다 읽혔군요.”

“이 녀석아 그렇게 잔뜩 힘을 주고 던지는데 지나가던 개도 피하지.”

“그랬나요?”

“그래. 네놈 표정이며 몸짓이며 여유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이 초조한 것이 티가 다 나는구나. 어째 두보의 제자라고 하기에는 심계가 낮아. 무림인의 싸움은 단순한 무공 고하로 결판이 나질 않는 경우가 많다. 네놈처럼 표정에 유불리가 다 드러나면 안 된다. 불리해도 유리한 척 유리해도 불리한 척 상대에게 읽혀서는 안 돼.”

연수는 순간 방금까지의 비무를 복기하며 자신의 실수가 상기되었다.

“처음 해보는 진검 비무에 노야와 도무지 거리를 좁힐 수 없어서 조급해진 것 같습니다.”

“내력도 못 쓰고 삼재검만을 사용하는 비무인데 네놈과 거리가 좁혀지면 아무리 나라도 이길 수가 있겠느냐? 당연히 파고들게 놔두지 않지.”

“하면 어떻게 해야 파고들 수 있죠?”

“그걸 알아내는 게 네가 할 일이다. 겨우 말 몇 마디로 설명이 되겠느냐?”

“아, 그렇죠.”

“좀 쉬었으면 다시 시작해 보자.”

연수와 무황은 그날 해가 다 지도록 비무를 했지만, 연수는 끝내 무황의 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무황의 지도 비무가 열흘을 넘어가자 둘은 내력의 금제를 풀고 비무를 벌이고 있었다.

여전히 연수는 무황의 품을 파고들지 못했고 무황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연수를 상대해주었다.

“이 녀석아 그저 파고들 생각만 하니 움직임이 뻔히 읽히질 않느냐? 무인에게 거리싸움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거리에서 싸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한데 네놈처럼 그저 거리를 줄이려고만 달라붙으면 그저 한발 물러서는 것만으로 쉽게 나의 거리가 확보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답한 녀석. 그걸 깨닫는 게 이 비무의 이유인 걸 또 잊은 거야? 생각하거라.”

연수는 제법 궁리해 보았지만, 도무지 괴물 같은 무황과 거리를 좁히는 길이 보이질 않았다.

어렵게 달라붙을라치면 한걸음 물러서며 검을 질러 오니 따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황의 검을 흘리며 붙을 수 있을 만큼 무황의 검이 우습지도 않았다. 초식은 분명 자신도 잘 아는 삼재검법이 분명한데 도무지 쉽게 넘길 수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노야의 삼재검은 삼재검이 아닌 것 같은 느낌입니다.”

“똑같은 초식에 똑같은 삼재검이 분명 하다. 다만 네놈이 받기 어려운 이유가 있겠지.”

알듯 모를 듯 말해주는 무황의 조언에 연수는 머릿속으로 번쩍하며 빗줄기가 스쳐 갔다.

“아!”

연수가 눈치를 챈 듯하자 무황의 미소가 짙어졌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겁니까?”

“읽히니까 그렇게 할 수가 있지.”

“그러니까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제가 노야 보다 하수라 그런 겁니까?”

“호흡을 읽는건 단순히 고수와 하수사이에 일어나는 흔한 일은 아니다. 다만 말했듯 네놈이 너무나 단순하게 달라붙으려고만 하니 쉽게 읽히는 것이지. 네놈의 호흡의 빈틈을 끊듯이 초식을 찔러 넣으니 당연히 네놈이 받아치기 쉽지 않은게야.”

“저는 노야의 호흡이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이놈아! 초절정 고수의 호흡이 이류고수에게 읽혀서야 초절정 고수라는 경지가 울지 않겠느냐?”

“하면 저는 노야 에게 죽어도 달라붙질 못하는 거 아닌가요?”

“꼭 그렇지도 않다. 내가 네놈 호흡을 읽을수 없게 하면 되질 않느냐?”

“남의 호흡을 읽어 본적이 없어서 도무지 어떻게 하시는 줄 알수가 없으니 숨길수가 없습니다.”

“하하하 틀렸다. 네놈은 남의 호흡을 읽은 적이 있다. 나와 육합권 비무를 할 때는 잘도 내 호흡을 읽고 몰아붙이질 않았더냐?”

“아, 그건 잘 알고 있는 초식이니까···.”

“하면 삼재 검의 초식은 잘 모르고?”

“그건..”

“얼추 감이 오느냐?”

연수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게 반 각이 지나자 연수는 눈을 뜨고는 무황에게 달려들었다.

연수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 것이 무언가 깨우친 모양이었다.

무황 역시 재미있다는 듯 연수의 공격을 받아 들어갔다.

무황과 연수의 비무는 전과는 양상이 달라져 있었다.

전의 비무는 연수가 무황에게 달려들다 화들짝 놀라며 물러서기 일쑤였다면 이번에는 치열하게 무황의 초식을 물고 늘어지며 버티는 양상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당연히 자신의 거리에서 검을 쓰는 무황이 유리했다. 하지만 무황은 그렇게 유리하게만 받아들이질 않았다.

연수는 무황의 검이 찌르기 초식을 펼칠 때마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며 무황이 검을 거두면 같이 무황의 품으로 거리를 좁혀 갔다.

거의 묘기에 가까울 정도로 무황의 검과 달라붙어 치열하게 물고 늘어지는 연수는 드디어 처음으로 무황과 거리를 좁혀 자신의 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무황에게 달라붙는 순간 연수는 회심의 공격을 했다. 암수검 중 첫 초식인 소면살을 빼고 이어지는 회천수 부터 상대의 주요 요혈 다섯 군데를 베어 가는 쾌천수 마지막으로 암수검의 유일한 찌르기 초식인 중천수 까지 모든 초식을 풀어내었다.

하지만 무황은 양손으로 펼치는 연수의 연결을 장검 한 자루로 지척에서 너무나 쉽게 막아내었다.

거리를 좁혀 유리한 고지에 있던 연수건만 모든 공격이 너무나 쉽게 막혀버리자 당황한 것 또한 연수였다.

무황은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슬쩍 찔러 넣었는데 연수는 대경하여 훌쩍 뒤로 물러섰다.

“애써 좁힌 거리가 다시 벌어졌구나.”

“노야, 도무지 노야에게 이길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겨우 삼재검만을 펼치는 데도?”

“노야의 삼재검은 겨우 삼재검이 아니던데요.”

“삼재검이 삼재검이지.”

“넘을 수 없는 산 같은 느낌입니다. 무슨 짓을 해도 제 공격은 다 막힐 것 같은 막막함 어떻게 해도 질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네 마음이 졌기 때문이다. 연수야 무인은 말이다. 실력에서의 패배로부터는 다시 일어서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패배로부터는 다시 일어서기가 너무나 힘든 일이야. 마음의 검이 부러진 무인은 더는 무인이 아니다.”

“제가 노야 에게 마음이 꺾여서 노야를 과대평가한다는 건가요?”

“꼭 그런건 아니지. 내손에 검이 들린 이상 네가 무슨짓을 하건 이길수 없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

“그럼 제 판단이 맞잖아요?”

“허나 그럼에도 무인의 마음은 물러섬이 없어야 하지. 비록 몸은 후퇴할 지언정 마음이 후퇴해서야 무인이 아닌게야.”

“예. 그럼 다시 부탁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

연수는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무황에게 이길 생각은 포기하고 최대한의 시도로 무황을 놀라게 만들기로 한 것이다.

무황의 지루해 보이기까지 한 저 편안한 얼굴을 화들짝 놀라게 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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