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청색 무복을 입은 일곱 명의 검수가 특정한 방위를 지키며 사파인을 둘러싸고 맹공을 하고 있었는데 그 움직임이 절묘하여 사파인이 수세로 몰리는 양상이었다.
‘검진이군. 게다가 저 검수 하나하나가 일류의 경지로 보이는데···.’
겨우 일류고수 일곱으로 저 사파인을 막아내는 것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연수의 감이 맞다면 저 사파인은 십 중 십 절정고수가 분명했다.
특히나 보통 절정고수도 아닌 흡성신공을 익힌 절정고수.
일반적인 무림의 상식으로 일류고수 일곱 정도로 절정 고수에게 맞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소? 그 잘난 흡성신공이라도 펼쳐 보지 그러시오? 아니면 펼칠 수 없는 건가?”
청년의 도발에 사파인의 표정이 더 일그러 졌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왔구나.”
“절강과 안휘는 엎어지면 코 닿을 곳 아니오? 강호의 소문은 빠릅니다.”
시종일관 비틀린 입매를 유지하며 미소를 띤 청년을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이 드는 사파 인.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검수들의 검진이 상대하기 만만치가 않았다.
보아하니 하나같이 제대로 수련된 일류고수였고, 무슨 검진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마음을 옥죄는 공능으로 보아 뛰어난 검진이 분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검수 놈들의 생기를 빨아들여 죽여버리고 싶었으나 저 젊은 청년 놈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음에도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 자신을 도발하는 것으로 보아 무공이 그리 뛰어나진 않은 것도 같지만 남궁세가다.
남궁세가의 귀한 자제 놈 같은데 그런 무가의 자제놈이 이 정도의 검수들과 나섰다면 분명 비장의 한 수는 있을 것이 분명했다.
생각을 정리하던 사파인은 순간적으로 자신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멀어지는 검수들을 보고는 긴장했다.
청색 무복의 검수들은 마치 인형과 같이 일제히 같은 움직임으로 사파인을 둘러싼 채 거리를 벌리더니 같은 자세를 취하며 사파인을 향해 검기를 쏟아냈다.
사파인은 자신을 향해 사방에서 날아오는 검기를 보며 눈을 빛냈다.
‘와 저런 검기 다발 속에서는 살아남기 쉽지 않겠는데?’
연수의 눈에는 사파인을 향해 쏟아지는 검기가 마치 죽음의 비처럼 보였다.
하지만 잠시 후 연수의 눈은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사파인의 손이 푸르게 빛나는 듯싶더니 그의 손에서 풀려나오는 기사가 사방에서 날아오는 검기를 모조리 막아냈다.
아주 자세히 보아야 볼 수 있었지만 사파인의 손에서 풀려나와 검기를 찢어내고 튕겨내는 것은 분명 기사였다.
“호오 제법 한 수는 있는 모양입니다.”
“언제까지 그리 오만할지 두고 보겠다.”
손에 기사를 두른 사파인은 전과 같이 방어적으로 나가지 않고 검수들을 몰아쳤다.
한번 그의 손이 새의 발마냥 구부러질 때마다 질풍 같은 기사가 뻗쳐나갔고, 그때마다 검수들의 검에서 불꽃이 튀며 휘청거렸다.
사파인의 공격을 연거푸 받은 한 검수는 다른 검수에 비해 움직임이 살짝 둔해졌는데 그로 인해 검진에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사파인은 그 작은 균열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하수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검수에게 파고드는 사파인.
-카카캉!
“쳇!”
둔해진 검수의 앞으로 날아든 청년의 검에서 나온 기사에 사파인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저 검수만 확실히 끝장냈다면 이 빌어먹을 검진을 완전히 무너트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 사파인이었다.
“절대 거리를 주지 말아야 한다. 흡성공은 결국 몸에 닿지 않으면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는 삼류 무공에 불과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신의 방위를 지켜라.”
청년의 말에 사파인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졌다.
“정말로 끝장을 보자는 말이지? 좋다 이놈···!”
순간 사파인을 중심으로 거대한 기운이 몰아쳐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파인의 손이 완전하게 푸른빛으로 물드는 순간 사파인의 장심을 위주로 고수들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고수들은 땅에 검을 박아놓고 버티고 있었지만 조금씩 사파인의 흡인력에 질질 끌려가는 것이 오래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그때 청년은 아예 사파인에게 달려들었다.
청년의 검에서 예리한 검기가 줄줄이 뻗어 나와 사파인을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사파인은 한 손만으로 검기를 쳐내며 청년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가뜩이나 사파인을 향해 달려들던 청년은 더 빠르게 사파인과 가까워졌다.
사파인의 손이 막 청년의 단전에 닿으려는 찰나 청년의 검이 사파인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사파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사파인은 자신의 목을 베러 날아 들어오는 검을 향해 반대 손을 뻗으며 검을 움켜쥐었다.
청망사를 익힌 이후로 맨손으로 도검을 상대하면서 단 한 번도 망설인 적이 없는 사파 인이었다.
자신의 검을 맨손으로 움켜잡는 사파인을 보며 청년의 입꼬리 또한 올라갔다.
-캉!
연수는 분명 사파 인의 손이 청년의 단전에 닿는 순간 청년의 죽음으로 싸움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파인의 손은 아슬아슬하게 청년의 단전에 닿지 못했다.
사파 인이 검을 움켜잡는 순간 그의 손에서 피가 터져 나왔기에 물러서지 않았다면 사파인의 좌수가 날아갔을 것이다.
사파인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제왕검···.”
“하하하 남궁가에서 제왕검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소? 흡성신공이니 일대 무적의 신공이니 금칠을 하더니 별것 아니군요.”
사파인은 대답 대신 옷자락을 찢어 베인 손을 휘감았다.
저 재수 없는 젊은 놈은 남궁세가에서 제왕검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고 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제왕검을 쓴다는 것의 의미는 단 하나, 남궁세가의 주인이거나 주인이 될 놈이라는 뜻이었다.
사파인은 마음이 급해졌다.
제법 깊은 검상을 입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왕검과 부딪히는 순간 청망사가 깨어지며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저 젊은 놈과 일대일로 붙는다면 이 상태로도 능히 찢어발길 수 있을 자신이 있었지만, 문제는 검수들과 그들이 펼치는 검진이었다.
부상까지 입어 승산이 보이지 않자 사파인은 있는 내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기사를 흩뿌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쫓아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청년은 검수들을 독려하며 앞서 나가지 않고 검수들의 뒤로 따라붙었다.
‘이러니저러니 도발을 해대더니 결국 흡성신공이 두렵긴 한 모양이네.’
연수는 멀어지는 검수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노숙을 위해 모닥불을 피워놓은 곳으로 돌아왔다.
“흡성신공은 아무래도 상대와 신체 접촉이 되어야만 내기를 빨아 들이는 것 같은데···.”
흡성신공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던 연수는 사파인의 독특한 손과 그 무공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슨 무공이기에 검기를 잡아 찢고 기사를 줄줄 뽑아내는 거지?’
푸른빛이 도는 사파인의 손짓에 검진을 이루며 강공을 펼치던 고수가 휘청거리는 장면은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남궁세가의 검수들 또한 대단한 실력의 고수들이었지만 사파인과 남궁가의 지체 높아 보이는 청년의 무위가 너무도 인상적인 연수였다.
특히나 마지막 사파인과 청년의 한 수는 그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설마하니 검기를 맨손으로 처리하는 고수의 손을 기사로 베어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만약 사파인이 청년의 기사마저 막아냈다면 청년은 분명 호검문 암검대의 대장 꼴이 났을 것이 분명했다.
‘기사라···. 검기와는 무엇이 다르기에 그런 효용을 보인 거지? 사파인은 마치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던데···.’
일찍 자고 일어나 부지런히 길을 재촉하려던 계획은 이미 머릿속 저편으로 떠나 보낸 연수는 늦은 새벽이 대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아우 추워.”
늦가을의 노숙이다.
해가 뜨기 전 이슬과 찬바람을 맞으니 아무리 젊고 건강한 무인이라 할지라도 불편할 수밖에.
“요즘 온실 속 화초처럼 편히 살다 보니 노숙도 못 하겠네. 겨우 나흘 길바닥에서 잤다고 몸이 말이 아니네.”
혼잣말하는 연수의 목소리는 마르고 갈라져 그의 몸 상태를 대변하는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푼 연수는 빈 수통을 흔들어 몇 방울 되지 않는 물을 입속에 털어 넣고 해뜨기 전 어두운 관도를 터덜터덜 걸었다.
“오늘은 다음 마을에 당도 해야 할 텐데.”
추위가 다 가시지 않았는지 양팔을 감싸 안고 걸음을 옮기는 연수의 뒷모습이 꽤 처량해 보였다.
건덕현은 정사가 평화협의를 맺은 절강성 내에서도 사파의 세가 흥하는 곳이다. 굵직한 여러 사파들이 들어서 있기도 하고 사황성의 열두 가문 중 홍련세가의 본가라 할 수 있는 홍무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흘을 걸으며 온갖 먼지와 땀으로 때 구정이 줄줄 흐르는 거지 일보 직전의 꼴을 한 연수는 건덕현에 들어서며 사파인들이 유난히 많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빨리 개운하게 씻고 배부르게 먹고 싶은 마음에 객잔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온 객잔에 손님이 바글바글했고, 그 인파 중 무인들이건 일반인들이건 모두 흡성신공의 이야기로 떠들썩했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분위기도 밝은 것이 사파인들이 분명 했다.
저녁 시간이기에 그런지 한산한 객잔을 찾기가 쉽지 않아 연수는 객잔에 직접 들러 방을 구해보았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그러던 중 제법 오래되 보이는 낡은 객잔에서 겨우 방을 구한 연수는 목욕물을 부탁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제일 먼저 운기부터 했다.
구룡산을 떠나와 지금껏 한 번도 운기를 못한 것이 제일 찝찝한 연수였다. 피곤한 육체 때문에 일단은 삼재심공의 요상결을 운기 하는 연수의 마음에 찝찝함이 씻겨 나가는 것 같이 개운해졌다.
-저 손님, 목욕물이 준비되었습니다.-
미리 연수가 점소이에게 절대 방에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알려달라 부탁한 덕에 점소이가 운기 중에 연수의 방에 벌컥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며칠에 걸쳐 쌓인 피로가 제법 풀리는 감각에 요상결에 빠져 있던 연수는 천천히 눈을 뜨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고마워요. 이건 넣어 둬요.”
은자 하나를 또래의 점소이에게 쥐여 주자 점소이의 입이 귀에 걸렸다.
“고맙습니다. 무사님.”
호칭이 손님에서 무사님으로 격상되었다. 점소이는 무인들을 많이 접객해본 것인지 눈치가 제법 빨랐다. 함부로 방에 드나들지 말라는 말만 듣고, 무기도 없는 연수가 무림인인 것을 눈치챈 것이다.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뜨거운 목욕물이 준비된 곳으로 들어선 연수는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지고는 물에 몸을 푹 담갔다.
“아!”
절로 탄성이 나오는 연수.
그러고 보면 이 세계에 와서 남이 쓸 목욕물을 받아만 봤지, 직접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몸에 긴장이 풀리며 개운해지는 이 감각.
실로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