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41화 (41/202)

# 41화(수정)

말을 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연수는 서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더 빨리 올 수도 있었지만, 기마에 익숙해 지려 천천히 이동한 탓에 늦어졌다.

반면 그래도 처음보다는 기마술이 많이 늘어 있는 연수였다.

서호를 떠난 지 6년 하고 반년이 조금 더 넘어 다시 돌아온 연수는 감회가 새로웠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서호를 중심으로 유명 주루와 기루 객잔이 호화로운 자태를 뽐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뒤편으로는 민가와 어두운 빈민촌이 존재하는 이곳.

연수는 마사가 딸린 작은 객잔을 찾아 말을 맡기고는 짐을 풀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마치 고향 같은 곳이기에 연수는 익숙한 곳을 정처 없이 걸었다.

‘여기도 그대로구나.’

한때 연수와 소개가 지친 몸을 쉬던 둘이 고생을 해가며 지어놓은 집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판잣집 또한 그대로였고, 여기저기 열심히 구걸하며 다니는 아이들 또한 여전했다.

조금 더 나가면 자리를 잡고 구걸하여 연명하는 거지들 또한 사람만 변했지 그대로였고, 서호의 중심으로 들어가면 그와는 전혀 다른 세상인 듯 호화로운 거리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 또한 너무나도 변치 않아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는 연수였다.

몇몇 어린 거지들에게 은자를 적선한 연수는 한참을 걷다가 진가 양조장에서 오량주를 몇 병 사서 서호의 개방 분타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분타의 앞에는 여전히 십 칠, 팔 세 되어 보이는 이결 제자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연수가 그들의 앞으로 다가서자 제법 경계의 태세를 보이는 이결 제자들.

‘아직 삼류의 수준이구나.’

“무슨 일입니까?”

“아 저는 이곳에 있는 소개라는 놈을 찾아 왔습니다.”

연수의 입에서 ‘소개라는 놈’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이결 제자 둘의 표정이 왈칵 일그러지며 개구봉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연수는 얼른 말을 덧붙였다.

“어릴 적 둘도 없는 불알친구입니다.”

“소, 소 선배와 친구라고요?”

“예. 떠났던 친구가 찾아 왔다고 좀 전해 주시오.”

문지기 중 한 명이 서둘러 분타로 들어갔다.

‘다행히 분타에 있는 모양이네?’

“분타주님도 안에 계십니까?”

“분타주님도 잘 아시오?”

“잘 안다기보다는 가끔 뵙고 인사는 드렸죠.”

“분타주님은 출타 중이오.”

막 연수가 뭐라 대답을 하려는데 벌컥 문이 열리며 소개가 뛰쳐나왔다.

“연수야! 너구나. 정말 너구나!”

뛰쳐나온 소개의 모습은 6년 전과는 많이 변해있었다. 연수보다도 조금 더 큰 키와 더 벌어진 어깨 잘 발달한 근육과 볼록하니 솟아오른 태양혈.

무엇보다 어릴 때는 분명 추남은 아니어도 미남이라 절대 부를 수 없을 얼굴이었는데, 거지나 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울 만큼 미남이 되어있었다.

분명 어릴 적 모습은 남아있는데 소개가 이렇게나 멋져 질 줄 꿈에도 모른 연수.

둘은 와락 부둥켜안고는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이놈아! 돌아왔어. 드디어 돌아왔어!”

“그래. 돌아왔다. 약속대로 돌아왔다!”

둘은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서로를 바라보고는 웃었다.

연수는 어깨에 걸어 놨던 오량주를 이결 제자들에게 맡기고는 소개와 자리를 옮겼다.

소개는 이결 제자들에게 충고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 술 잘못 손대면 생활하기 괴로울걸? 자신 있으면 다 마셔도 된다.”

연수가 묶고 있는 객잔으로 자리를 옮긴 둘은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이렇게 훤칠해진 거냐? 어려서는 도무지 이런 미남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나도 빠지는 외모는 아닌 것 같은데 네 옆에 있으니까 옥 옆의 차돌이다.”

소개는 의외로 쑥스러운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그 민망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 안 그래도 무화개라는 별호까지 붙어서 힘들다.”

“무화개? 쓸모없는 꽃 거지? 하하하”

“웃지 마라, 실제 당하는 나는 얼마나 민망한데.”

“근데 거지가 중이나 도사도 아니고 왜 쓸모가 없다는 거야?”

“거지가 잘 생겨서 어디다 쓰냐? 개방 거지 중에 장가 간 거지는 오푼도 안된다는거 알고 있냐?”

“그래? 생각보다 더 하네. 그래도 제법 갔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거지에게 시집오는 여자가 얼마나 되겠어.”

“나름 무림 고수인데?”

“무림 고수고 나발이고 거지는 거지인 거지.”

“그렇긴 하지. 크큭, 무화개라... 별호도 생기고 잘 나가는데?”

“놀리지 마라 이놈아. 실제 당하는 처지에서는 민망해서 고개도 못 들겠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뭘 주워 먹고 이리 큰 거야? 나도 작은 키가 아닌데.”

“글쎄, 네가 떠날 때 준 돈으로 이것저것 자주 사 먹다 보니까 금방 크던데?”

“그래? 어쨌든 보기 좋다. 매일 무공배운다고 피죽도 못 얻어 먹은 몰골만 보다가 이리 장성하니 내가 다 뿌듯하다. 거기다 볼록 솟은 태양혈부터 우람한 근육까지 제법 고수티가 난다?”

“그, 그러냐?”

소개는 연수의 눈치를 살피며 시선을 피했다.

“왜? 너는 고수가 되었는데 돌아온 친구는 영 하수에서 못 벗어난 것 같아서 미안하냐?”

정곡을 노골적으로 꼬집는 연수의 말에 소개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그게···.”

“걱정하지 마라. 나도 배울 만큼 배우고 하산한 거니까.”

“그, 그래?”

“정 못 미더우면 어떻게 비무 한판 해 볼까?”

두 주먹을 세우며 장난스럽게 행동하는 연수.

“짜식···.”

“농담 아니다. 이 형님이 나름 무재가 출중하여 청출어람까진 아니어도 비슷하게 하산한 거라니까?”

“그래. 네가 만족하면 되었다. 이제 앞으로는 뭐 하고 살거냐?”

“나야 내 사문의 업도 있고, 내 스스로의 목표도 있고 해서 사파행을 해야겠지.”

사파행이라는 말에 소개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연수야. 네가 산에 들어가 있는 동안 내가 강호를 좀 배웠는데 웬만하면 그냥 평범하게 사는 건 어떠냐?”

“평범? 무림인으로 살기에는 내가 약해 보여서?.”

소개는 무거운 표정을 풀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연수야, 이 강호가 그리 녹록한 곳이 아니야. 거기다 사파행이라니···. 도대체 사파행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감이 와. 앞으로 정파 무인들과 부딪힐 거라는 거.”

“소개야, 우리 같은 천애 고아는 사람처럼 살려면 힘이 필요하다고,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그것이 무공이라고, 무인의 길이라고 한 게 누구였지?”

“그건! 내가 어리고 세상을 몰랐었던거야. 무림인의 삶은 잔인하고 잔혹해. 힘이 없으면 그저 빌어먹던 시절과 다를거 없는 삶이야. 그렇게 굴욕적이고 위험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소개야. 이 이야기 그만 하자. 기분 상하려고 한다.”

“연수야···.”

“알아, 너는 명문이라 불리는 정파에서 사사하여 고수가 되었으니 아무래도 무명의 사파 사문인 내가 영 못 미더워 보이는 거. 그래도 나 또한 지켜야 할 사부의 명예가 있다. 네가 한 말은 그냥 못 들은 거로 할게. 이러다 진짜 의 상하겠다.”

“연수야 그래도...”

“소개야. 네가 더 말하면 나 정말 기분 상할것 같은데.”

“연수 너는 무림을 강호를 몰라. 정파인들을 적대 하다 보면 결국 넌...”

“그만! 하라고! 무화개 소개. 아무래도 우리 진짜 비무 한판 해야겠다.”

“뭐?”

“네가 이기면... 그래. 이 칼날위에서 살아가는 무림인의 삶. 포기할게. 사문의 업이고 내 목표고 간에 다 포기하고 전 처럼 어디 객잔에 취직해서 점소이라도 하면서 먹고 살지 뭐.”

“저, 정말이냐?”

“남아일언 중천금! 대신 내가 이기면 다신 이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 의 상하겠다.”

소개는 연민의 눈으로 연수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이미 개방에서도 강호에서도 인정받을 만한 경지의 고수이다.

명문 정파는 괜히 명문 정파가 아니다.

그런 명문에서도 밖에 내놓을 수 있는 당당한 후지기수. 그게 자신이었다. 어디 이름도 없는 사파의 무인 제자가 고작 6년을 수련해 와서 이길 수 있을 만큼 만만할 정도로 명문의 문턱이 낮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연수의 오기에 가까운 저 행동이 더 안쓰러웠다.

자신보다 3년이나 늦게 그것도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곳에서 사사한 친구가 저리 행동하는 것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그런 눈으로 그만 쳐다보지. 진짜 화나려고 하니까. 우리가 언제부터 서로의 처지를 동정하는 사이가 됐냐? 너 정파 물 먹더니 많이 변했다.”

“연수야···.”

“됐고, 밖으로 나와.”

연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소개는 나가는 연수의 뒷모습을 한참을 보고는 무거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서호의 화려한 이면과는 대비되는 어두운 빈민촌의 공터에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소개는 무거운 얼굴로 연수를 바라보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굳이 나름 힘들게 수련하고 꿈을 품고 돌아온 친구에게 잔인한 현실을 제손으로 알려줘야 하는 것이 슬픈 소개였다.

“왜? 도대체 왜···. 그렇게 변한 거냐? 우리가 언제 서로의 처지를 동정하고 살았냐? 그저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살던 우리 아니었나?”

“연수야... 현실이...”

“현실이 뭐? 언제부터 네가 고수고 내가 하수면 동정하고 간섭하는 사이가 되었냐고!”

연수의 말에 소개는 후회가 되었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조심히 말을 꺼냈어야 했다. 적어도 6년 만에 돌아온 친구 앞에 대고 너무 앞서 나갔다.

하지만 자신이 그간 겪어 본 강호는 절대 약자에게 호의가 득한 곳이 아니었다.

약자에게는 갖은 멸시가 보내지고 강자에게는 언제나 환호가 따르는 곳이지. 절대 협과 의가 가득한 곳이 아니었다.

특히나 사파인이라면 더 볼 것도 없었다.

자신의 친구가 그런 꼴을 본다는 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정파인이다.

연수가 같은 정파인에게 어떤 꼴을 당하던 참고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의 처지였다.

그런 상황이 올까 봐 두려웠다. 행여나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자신이 연수를 외면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렵고 두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연수가 무림인의 삶이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했다.

“죽봉은 필요 없냐?”

소개가 더 슬픈 눈으로 연수를 바라봤다.

“맨손이면 된다.”

“그럼 나도 적수공권으로 상대해 주지.”

“쓸수 있는 무기가 있다면 모두 써라.”

처음으로 연수의 입매가 뒤틀렸다.

“진짜로 업신여기고 있구나, 너. 소개야 우리 의 많이 상하겠다.”

“약속만···. 지켜.”

연수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자그마치 6년이다.

형제같이 여긴 녀석을 6년 만에 만났는데···. 그 녀석은 외형만큼이나 많이 변해있었다.

자신을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동정하고 판단하고 서로 놓인 상황이 다르다고 해서 상처를 준다.

연수의 기억 속에 있던 소개는 이런 녀석이 아니었다.

“그래, 이게 너와 나의 거리감 인가보다. 정과 사이 거리가 멀구나.”

말을 한 연수의 왼손에는 어느덧 단검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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