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43화 (43/202)

# 43화

연수는 떠오르는 해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 밤새 생각하며 소개를 생각해 보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소개와 자신은 더는 어린애들이 아니었다.

서로 같은 환경에 놓여 의지하던 때와는 이미 너무나 다른 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그게 맞아. 소개는 소개대로 나는 나대로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다르다.’

말에 올라탄 연수는 생각하면 가슴만 아파지는 소개에 대한 생각을 접고 자기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니 어쩌면 반대로 소개의 생각을 그만하기 위해 집중할 일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종일 말을 달려 도착한 곳은 장흥 현 연수는 현에 들어서자 마사에 말을 맡기고는 기루 쪽을 기웃거렸다.

‘이쯤 있어야 할 텐데?’

한참을 호객꾼들을 뿌리치며 기루 주위를 기웃거리던 연수.

‘찾았다.’

연수의 눈에 기루 뒤편에 나 있는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아이들 장난 같은 낙서였는데 연수가 사부에게 듣기로는 하오문의 표식이라 했다.

하오문에 볼일이 있는 자는 표식의 밑에 표시하고 기루에 들어가 술을 주문하면 된다고 했다.

연수는 단검으로 표식 밑에 표시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딱히 시선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말 이거면 되는 거 맞나?’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일단 기루로 들어서자 기루의 점소이가 말끔하게 차려입고는 연수를 접객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혼자 오셨습니까?”

“예.”

점소이의 외관이 하도 멀끔하고 단정하여 밖에서 본다면 점소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주청으로 모실까요? 방으로 모실까요?”

“방이 편하겠소.”

“그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점소이는 연수를 일 층의 뒤편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좁고 어두 컴컴한 것이 기루의 방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십시오.”

꾸벅 인사하고 나가는 점소이.

연수는 일단 어두 컴컴한 좁은 방 한가운데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탁자에는 찻잔과 찻물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왠지 마시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탁자 앞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인기척과 함께 뚱뚱한 남자가 들어왔다.

이제 서른쯤 되어 보이는 남자는 다짜고짜 연수의 앞에 앉아서는 물었다.

“왜 찾았소?”

잠시 당황한 연수.

‘원래 이런 식인가?’

“사고 싶은 정보가 있어서 찾았소.”

“무슨 정보?”

“사람에 대한 정보.”

남자의 말이 짧아지자 연수의 대답도 짧아졌다. 남자는 별 신경 안 쓰는지 계속 물었다.

“인물 정보는 얼마나 상세히 상대가 누군가에 따라 금액이 달리지요.”

“그저 기본적인 정보면 충분하오.”

“상대는 누구요?”

“어림도독 강진령.”

“어림도독? 강진령? 지금 어림도독은 황석두인데?”

“그럼 전 어림 도독인가보군.”

“강진령이라···. 아! 그 양반, 물러난 지 꽤 되었지. 그래 기본적인 정보라면?”

“간단한 가족관계, 사는 곳 어떻게 사는지 정도.”

“그 정도는 그 양반 사는 동네에 가서 물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정도인데.”

‘그 양반이 지금도 북경에 있는지 모르겠으니까 그렇지.’

남자는 잠시 눈을 빛내더니 연수를 바라보고 물었다.

“강진령과 무슨 관계요?”

“별 관계 아니오.”

“그럼 왜 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지?”

“정보를 팔거요? 말거요?”

“큼큼! 팔지요. 금자 2냥만 내고 가시오.”

연수는 품에서 전표를 꺼내 내놓았다.

남자는 연수의 품에서 나온 전표를 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기다려 보시오.”

일각 정도 기다리자 처음 연수를 안내한 점소이가 들어왔다.

“즐겁게 보내셨습니까? 밖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연수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점소이는 안내하며 연수의 손에 봉투를 전해 주었다.

연수는 봉투를 받아 품에 넣고는 기루 밖으로 나와 봉투를 열어보았다.

강진령 나이 :60세

부          : 강 대천

모          : 연 진화

현재 정실      : 장 진희 (48세)

첩          : 경 수연 (38세)

첩          : 고 화연 (27세)

첩          : 진 연화 (20세)

.

.

.

아들        : 강 후현 (38세)

아들        : 강 후명 (서자) (17세)

아들        : 강 후민 (서자)(9세)

거주지 : 하북성 패주현.

특이 사항 : 현재 본처와 별거 중 본처는(지금숙 59세) 북경에서 거주 중. 장남이 군부에 투신한 지 19년째. 본처의 아들과 관계에 불화가 많음.

“휘유~ 첩을 여섯이나? 게다가 갈수록 나이도 어려지네. 첩은 여섯인데 자식은 셋뿐이라···. 어쨌든 일단은 너다.”

연수가 강진령을 목표로 삼은 데에는 소개와의 비무에서 찾아온 변화 탓이 컸다.

갑작스레 떠오른 호검문 암검대 대장의 발재간을 저도 모르게 따라 할 수 있게 되며 종남의 상승무공에 더욱 관심이 깊어졌다.

물론 종남의 입문 심법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장괘구권의 성취가 깊어지며 궤를 같이하는 무공만 봐도 무언가 느끼는 게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연수는 다음 날이 되자 말을 달려 안휘성으로 들어섰다.

안휘와 하남을 거처 하북성으로 이동할 생각인 연수였다.

잠시도 쉬거나 다른 생각은 않겠다는 듯 강행군을 하던 어느 날.

익숙한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남궁가의 아들놈?’

합비의 근처 서비천이 흐르는 한적한 곳에 세워진 높은 상현루 안휘 내에서도 유명한 주루인데 지나가던 연수의 눈에 그 주루로 들어서는 남궁가의 아들놈이 눈에 든 것이다.

‘분명 제왕검형을 쓴다고 했던가? 사부께 듣기로는 제왕검형은 직계 중 가주의 뒤를 이을 놈한테만 전수 한다던데···. 그럼 저놈이 남궁세가의 소가주인가?’

연수는 가던 길을 돌려 주루로 말을 몰았다.

주루 앞에 말이 서자 고급 주루답게 점소이가 뛰어나와 연수의 말을 받았다.

“잠시 쉬다 갈 테니 안장과 복대는 풀지 말고 두어 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말은 걱정하지 마시고 드시지요.”

연수는 주루에 들어 남궁세가의 아들놈 뒤를 쫓아 3층까지 올라갔다.

과연 주루의 삼 층에서는 탁 트인 시야로 인해 근처를 흐르는 서비천부터 멀리 합비까지 눈에 들어와 경치가 대단히 시원했다.

연수는 남궁세가의 아들놈과 그 일행을 살펴보았는데 비슷한 또래의 남자 둘 여자 둘이었다.

그 일행과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연수는 대충 가벼운 식사와 안주 술을 주문하고는 시원한 경치를 바라보며 귀를 열었다.

이목공을 펼치자 그들의 대화 소리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들려왔다.

“이곳 상현루는 언제 와도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요.”

제법 곱상한 여성의 말을 준수한 남자가 받았다.

“이곳에 주루를 세울 생각을 한 게 진수가 열두 살 때 건의하여 남궁세가에서 세웠다는 것은 안휘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이야기죠.”

‘뭐? 열두 살에 여기에 주루를 세우자는 건의를 했다고?’

남자의 말에 같이 있던 여성 둘의 눈이 커지며 호들갑이 나왔다.

“어머머! 그 나이에 그런 선견지명을 대단하세요. 공자님”

“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그 나이 때 그저 집안에 틀어박혀 서책이나 읽었는데···. 뛰어난 무재만 유명한 줄 알았더니 상재도 보통이 아니군요?”

여자들의 호들갑에 남궁진수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겨우 그 정도로 거창하게 상재는 무슨요. 그보다 제갈세가와 황보세가에서 이리 외유를 나오셨는데 제 안내가 마음에 드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들다마다요. 매일 집에서만 있다가 이리 외유를 나오니 살 것 같아요. 아마 황보 언니도 같은 심정일걸요?”

“그럼! 매번 오라비 등쌀에 아버지 등쌀에 검을 손에서 놓는 날이 없어 얼마나 힘들었는데, 남궁 공자와 팽 공자 서 공자 덕분에 이렇게 외유도 나올 수 있게 되어 얼마나 좋다고요. 그런데 세분 공자님들은 어렸을 때부터 친했다면서요?”

자신들 이야기가 나오자 평소 말이 많던 팽가의 차남 팽기현이 말을 받았다.

“여기 일두와 진수는 일 곱살 때부터 친했다고 하고 저와는 열 살 때부터 친하게 지냈으니 벌써 10년도 넘은 우정이죠.”

“정말 보기 좋아요! 게다가 세 분 다 무공도 뛰어난 덕분에 호위 없이 이렇게 자유롭게 외유까지 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네요.”

일행은 한동안 그런 별 쓸데없어 보이는 친분 다지기 용 대화에 몰두했고 연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남궁진수라···. 남궁가의 셋째아들이 소가주라···.”

연수는 잠시 상현루의 삼 층에 시선을 두다가 말에 올라타 발길을 재촉했다.

한 달간에 강행군 끝에 연수는 하북성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하북성은 북경을 둘러싸는 형국으로 생겼는데 북경과 가까워서 그런지 관병도 자주 보였고 치안이 좋아 보였다.

‘이곳이 팽가가 있다는 하북.’

팽가는 지리상의 위치 때문인지 무가임에도 관부와 연줄이 두껍게 닿아 있기로 유명했다.

관부에 이름을 올린 팽가 출신 인물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무당과 더불어 황제의 신임을 받는 무림 방파였기에 이곳 하북에서 팽가의 위상은 대단히 높았다.

관병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떳떳하게 도를 차고 다니는 팽가의 무인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5일을 더 길을 재촉하자 드디어 강진령이 산다는 패주 현에 들어선 연수.

패주 현으로 들어서는 연수의 모습은 수염이 길고 눈썹도 묘하게 긴 중년인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옷 또한 평소 입던 무복이 아니라 조금은 낡아 보이는 푸른색 장포까지 두르고 있었다.

객잔을 잡고는 며칠을 패주 곳곳을 둘러본 연수는 패주의 작은 골목골목까지 모두 머릿속에 외웠고, 몇몇 골목과 숲길에는 석궁을 사다가 장치해 놓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밤마다 어두운 무복과 이마 가운데에 큰 점이 있는 중년 사내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강진령의 장원을 살폈다.

장원의 주위로는 6명씩 조를 이룬 관병들이 이각 마다 순찰을 다녔고, 정문을 기준으로 수십 명의 무사들이 장원 안쪽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장원의 담벼락은 제법 높았지만, 마음 먹는 다면 못 넘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관병과 안에서 장원을 지키는 무사들을 따돌릴 수 있는 능력은 연수에게는 없었다.

‘몰래 잠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수는 다시 패주로 들어올 때의 긴 수염의 중년인으로 변장하여 다음 날 아침부터 주루와 객잔 반점 등을 오가며 귀동냥을 했다.

혹여 가끔 강진령의 장원 이야기가 나오면 술을 한 병씩 사며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강진령의 장원에 출입하는 민간인은 없는지 묻기도 했다.

연수가 주변을 탐문한 결론은 하나였다.

‘장원 내에 백 명은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적게 잡아 백 명이지 많이 잡으면 180명이 넘을지도 몰랐다.

결국, 장원에 위장하고 들어갈 여지가 보인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각종 물자가 필요하기도 하고 자리가 비는 곳도 생길 것이다.

연수는 한동안 장원을 예의주시하며 기회가 오기를 지루하게 기다렸다.

기다린 지 정확히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연수가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 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