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44화 (44/202)

# 44화

장원 내에 경비 무사를 뽑는다는 방이 붙었다.

한 달 월삭으로 은자를 열다섯 냥씩 지급하며 고수에는 추가 지급할 용의가 있다고 쓰여 있었으며 3년 이상 근무한 자는 원하면 군부에 인사 추천까지 해 준다는 내용.

연수는 고민을 했다.

‘본 모습으로 찾아가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변장을 유지해야 할까?’

패주현 내에서는 연수의 본 모습을 본 자가 없다.

하지만 중년의 변장을 유지하고 가기에는 근무하며 장원에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작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단체생활에는 변장을 유지한다는 것이 더욱 힘들 수 있고 변장한 것을 들키게 되면 분명 사달이 날 것이 걱정되었다.

연수는 고민 끝에 변장한 모습을 모두 풀어헤치고 평소 자주 입던 무복만을 입은 채 강진령의 장원으로 향했다.

장원에는 생각보다 많은 무사가 보여 있었다. 얼추 보아도 50명은 되지 않을까 싶은 인파.

방이 붙은 것이 어제인 걸 생각하면 하루 만에 이 정도의 무사들이 모일 만큼 장원의 조건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장원 내에는 기존의 경호와 경비를 맞고 있던 무사들이 새로운 무사들을 분류하고 있었는데 맨 왼쪽으로는 딱 한 명의 무인만 있었고, 가운데에는 9명 정도의 무인이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오른쪽으로 분류되었다.

연수는 가운데로 분류되었는데 무사들의 분류가 끝나자 뒤에서 지켜 보고 있던 무인이 앞으로 나왔다.

“모두 반갑소. 나는 이 장원의 모든 경호와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내오삼이라고 하오. 장주 어르신의 경호를 13년째 맡고 있기도 하여 오늘 직접 무사들을 뽑기 위해 나왔소. 우리가 뽑을 무사는 총 스무 명으로 첫째로 무공 둘째로 근무 기간 셋째로 인성을 보고 개인적인 판단 후 합격 여부와 임금을 결정할 것이오. 이제부터 부르는 순서대로 안쪽 연무장으로 한 분씩 들오셔서 가진바 능력을 증명해 주시오.”

사실 이곳에 몰린 무인들을 나눈 것은 순전히 본인들의 주장에 따라 경지를 나눈 것이라 아직 그들의 실력이 정확히 증명된 것은 아니었다.

연수 또한 어린 나이에 본인이 일류고수라며 자랑하여 장원 내에서 주목을 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경지가 어떻게 되냐 묻는 말에 겨우 이류에 올랐다고 말했더니 이리로 가라 해서 왔을 뿐.

제일 먼저 불려 간 것은 역시나 홀로 당당히 있던 맨 왼쪽에 있던 무인이었다.

그는 호명되자 보무도 당당히 빳빳이 고개를 들고 움직이는 것이 자신의 무위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하나둘 호명된 무사들이 연무장으로 들어섰고 나왔다.

다시 나온 무사들의 표정은 똥 씹은 것처럼 찌그러져 있었는데 불합격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중에는 연수와 같은 무리에 분류된 무사들도 있어 의문이 드는 연수였다.

‘이류고수를 불합격시킨다? 가만 저놈 저거 삼류잖아?! 거짓말을 했구나.’

연수는 고민이 되었다. 어느 정도의 무공을 보여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생각이 깊어진 연수의 귀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29번. 황이석”

연수는 자신의 가명을 호명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생각을 정리하며 경비 무사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섰다.

연무장에는 내오삼이라고 자신을 밝힌 무인이 의자와 책상을 놓고는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었고 그 뒤로 다섯 명의 무인들이 서 있었다. 연수를 안내해 온 무사는 별말 없이 연수를 안내해 주고는 저 뒤로 한참을 물러가 혹여 다른 대기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이류에 막 올라섰다고 했는데, 물론 사실이겠지?”

내오삼의 목소리에는 불신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에 한 번 이렇게 무사들을 모집할 때면 꼭 자신의 경지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높여 보이려 금방 들통난 거짓을 주장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가차 없이 불합격시켜왔는데 이렇게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인성도 머리도 나쁘다는 것이 내오삼의 생각이었다.

“이류가 조금이나마 내기를 다뤄내는 경지가 맞다면 저는 이류가 맞습니다.”

“뭐 일단 보지. 연무, 대련, 시연 무엇이든 상관없네. 어떻게 하겠나?”

거짓말을 하는 무사들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비추어 오면 십중팔구 대련을 요청한다. 2류 무사와의 대련을.

어찌어찌 요행으로 상대를 이겨내면 2류라고 우기기 편하기 때문에.

“대련이 편하겠네요.”

연수의 말에 내오삼의 눈썹이 실룩였다.

“반수야 가서 상대해 줘라.”

내오삼의 말에 뒤에 기립해 있던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무사가 연수의 앞으로 나왔다.

‘이류의 상대로 일류를 내보낸다? 요행 승을 막으려는 건가?’

“패하면 불합격 인 겁니까?”

“꼭 그렇지는 않네. 자네의 실력을 보자는 자리니까 물론 승리하면 금상첨화겠지만. 갖은바 실력만 충분히 보여주게.”

‘금상첨화 같은 소리 하네. 이류가 진검 비무에서 일류를 무슨 수로 이기냐? 보기보단 음흉한 구석이 있는 놈이네?’

연수는 속으로 내오삼을 욕하며 반수라는 무인과 마주 섰다.

연수가 준비가 끝난듯하자 허리춤에 걸려 있는 진검을 뽑아 드는 반수.

이제 삼십 대 중반쯤 된 것 같은 나이에 일류라는 경지. 강호에서는 제법 대접받을 만한 고수인데 뭐가 아쉬워 이런 장원에서 썩고 있을지 궁금하던 연수는 절도있는 그의 발검을 보며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군부 출신이구나. 사부가 그랬지 군부 놈들은 무공에도 군부의 티가 난다고. 특히나 저 기수식이면 십중팔구 군부 출신이네.’

무사의 기수식은 연수의 눈에 확 띌 정도로 정석적이었다. 양손으로 검을 잡고 무릎은 살짝 굽히며 오른발을 앞으로 세운다. 양발의 뒤꿈치 또한 살짝 들어 움직임을 예민하게 대비한다.

연수는 상대를 보며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단검을 뽑아 자세를 낮췄다.

암수검에는 기수식 따위가 없다. 첫 초식부터 웃으며 상대를 죽인다는 소면살이라는 암수로 시작하는 암수검을 이 자리에서 대놓고 펼칠 수는 없기에 연수는 단검을 오른손에 역수로 쥐고는 육합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시작하지.”

반수의 묵직한 저음이 들려오자 연수는 바로 달려들었다.

장검과 단검 유불리는 확실하다.

어느 정도 실력을 비추려면 한 수 정도는 보여줘야 할 터.

연수가 달려들자 반수는 검 끝은 내리고 검 손잡이는 머리로 올리며 팔을 비틀어 방어의 식을 취했다. 연수의 실력을 충분히 보려는 생각 같았다.

‘어느 정도 봐 주겠다?’

연수는 거리를 줄이며 가벼운 공격으로 시작했다.

마치 권각술을 하듯 단검을 쥔 손을 뻗어 상대의 반응을 살펴보았는데, 연수의 예상대로 상대는 공격보다는 수비 위주로 검을 뻗어 연수를 밀어내기만 했다.

연수는 상대의 의도를 읽고 빠르게 단검을 휘둘렀다.

-챙챙챙!

제법 날카로운 공격을 섞었음에도 반수의 방어는 탄탄하고 안정적이었다.

연수는 조금 더 거리를 줄여보려 했지만, 반수는 단검의 공격 거리까지만 허용할 뿐 연수에게 초근접의 거리를 주지는 않았다.

연수는 상대에게 물러서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며 자리에 넙죽 엎드려 다가오려는 상대의 다리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일전에 소개에게 당한 지당권 종류의 초식을 흉내 낸 것이다.

과연 반수는 제법 놀랐는지 황급히 검을 땅에 박고 공중으로 몸을 뒤집으며 피해냈다.

‘이런 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겠구나.’

연수를 훌쩍 넘어 연수의 뒤로 떨어져 내리는 반수.

연수는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반수에게 파고들었다.

-깡! 그그극!

처음으로 연수가 반수의 품으로 파고든 반수의 검과 단검을 교착시켰다.

서로 한 치도 밀리지 않으려는 둘.

반수의 이마로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무슨, 어린놈의 힘이 장사구나.’

반수는 당황했다.

겨우 단검 하나 들고 이류고수라는 소리에 십중팔구 거짓이겠거니 했는데 타고난 신력이 있는지 검을 교착시켜 보니 절대 뒤로 밀리지를 않는다.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밀릴 판이다.

반대로 연수 또한 당황했다.

‘비쩍 말라서 그런가? 영 부실하네. 나름대로 일류고수 같더니 신체단련이 엉망이구만.’

-챙!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연수에게 밀려 허둥지둥 뒤로 물러나는 반수.

아무리 실력을 숨기고 있다지만 이런 허점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연수.

한번 줄인 거리를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

-채챙!

계속해서 가까이서 단검을 휘둘러 상대의 검을 교착시켜 막은 연수가 왼팔을 휘둘렀다.

-퍽!

“읔.”

반수는 짜증이 울컥 났다.

자신보다 십 년도 더 어린 하수에게 이런 치욕이라니.

특히나 자신은 양손으로 검을 잡고 있고 저 애새끼는 한 손으로 단검을 붙들고 있건만 힘 싸움에서 밀리는 것도 모자라 한대 얻어맞기까지 했으니 비무고 나발이고 성질이 뻗쳐 오르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반수가 쉼 없이 몰아치는 연수를 막아내며 내오삼을 힐끗 바라보자 내오삼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반수의 눈매가 사나워지며 그의 자세가 변했다.

지금껏 방어의 식이었다면 검을 자신의 중심에 놓고 검 끝으로 상대를 가리키는 검중단의 자세.

연수는 여전히 거리를 주지 않으려 달려들고 있었지만, 상대의 대응을 보니 더는 힘들 듯했다.

특히나 검에 내력을 주입하며 빠르게 연수의 요혈을 찔러오니 자연히 연수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채채챙!

쾌검이라 부를 만큼 빠르진 않지만 찌르기 초식만큼은 날카롭고 제법 빨라 금세 수세에 몰린 연수.

반수는 연수에게 얻어맞은 욱신거리는 옆구리의 통증에 짜증 가득한 얼굴로 연수를 몰아쳤다.

점점 거세지는 반수의 초식에 연수는 완전히 반수의 공간에서 불리한 싸움을 이어갔다.

한참을 초식을 풀어내며 몰아치던 반수의 검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마찬가지로 연수의 단검에서도 아지랑이가 피워 올라지고.

-깡! 까깡! 팍!

세 번의 강력한 검격이 연수의 머리와 옆구리로 들어왔다.

연수는 몸을 최대한 움츠려 반수의 검격을 막아냈는데 마지막 초식이 문제였다.

한 바퀴 휘 돌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저 검격을 막아냈다가는 영락없이 숨기던 무공을 드러내는 수밖에는 없어 보였다.

연수는 주저 없이 옆으로 바닥을 구르며 반수의 검을 피해버렸고, 반수의 검을 애꿎은 흙바닥을 파헤치며 처박혔다.

땅바닥을 구르는 것은 정파 무인들이라면 치욕이라 생각하며 차라리 일 검을 처맞아 죽거나 중상을 입을지언정 않는 행위였다.

하지만 사파인이나 전쟁을 경험한 군부 출신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기조가 강했다.

“그만. 거기까지.”

그때 내오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수는 일부러 호흡을 위로 올리며 빠르게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헉···.”

반수는 끝내 연수에게 한 방 먹이지 못한 것이 찜찜했는지 아쉬움이 진한 여운을 남기며 흙바닥에 박힌 검을 잠시 보고는 납검했다.

“자네 실력은 충분히 알 수 있었네. 이제 몇 가지 질문을 하겠네.”

연수는 호흡을 고르는 척 연기를 하며 대답했다.

“... 후~ 하문하시죠.”

“사문이 어디인지 물어도 되겠나?”

“딱히 사문이 있지는 않습니다. 사부가 한 분 계시기는 하지만 어려서 몇 년 무공을 가르쳐 주시고 떠나셔서 다른 건 잘 아는 게 없습니다.”

“사부의 성함이나 정파인지 사파인지도 모르는가?”

“사부님 함자는 고 춘자 삼자 되시고 사파인이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오삼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히 모르겠지. 나도 모르는 이름인데.’

“단검을 쓰던데 단검술을 배웠나?”

“예. 단검술과 육합권 그리고 몇 가지 자질구레한 것을 배웠습니다.”

“육합권이라, 그래 그런 느낌이 강했어. 그러면 고향은 어디인가?”

“딱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천애 고아인지라 귀주에서 빌어먹던 저를 어려서 사부가 거둬주어 몇 년간 무공을 배워주시고는 떠나셨습니다. 그 후로는 홀로 무공을 수련하고 산에서 사냥하며 생활하다가 하산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혹여 단검술과 육합권 말고 다른 재주는 있나?”

“단검투척을 조금 할 줄 압니다.”

“볼 수 있겠나?”

연수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멀리 떨어져 있는 목각 인형을 향해 던졌다.

-쐐 액 텅!

10장은 더 떨어져 있는 목각 인형의 머리에 정확히 꽂힌 연수의 단검.

“제법 괜찮군.”

“고맙습니다. 하면 저는 합격입니까?”

“29번 황이석 합격!”

연수는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오른손의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 반수가 앞으로 생활할 곳으로 안내해 줄 테니 따라가 보게.”

연수가 반수를 쫓아 사라지자 뒤에 시립 해있던 무인 하나가 물었다.

“내력이 형편없어 보이는데 괜찮을까요?”

“어차피 삼류경비 무사도 뽑는데 뭐 어떤가? 거기다 천 근검 후식 또한 잘 막아냈고, 검에 기를 두르는 수준은 되니 쓸만하겠지. 나이도 어린 편이고 나쁘진 않아.”

“예.”

반수는 말 없이 연수를 안내했는데 연수는 묘하게 반수가 꽁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한대 처맞았다고 꽁해서 괴롭히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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