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신입 교육을 맡은 교관 둘은 다섯 명의 신입 무사들을 연무장 구석으로 데려가 의자를 놓고 앉혔다.
“앞으로 이곳에서의 기본 생활 양식을 알려주겠다. 질문은 내 말이 모두 끝나면 하도록 알겠나?”
-옛!
“좋아. 이곳 장원 내에서 청연대의 임무는 간단하다. 내원과 외원의 경계를 지키고 승인되지 않은 모든 외원의 인물 밑 외인이 내원으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것이 우리 청연대의 임무다. 여기까지 질문 있나?”
그때 신입 무사 중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무사가 손을 들었다.
“질문해라.”
“근무의 시간은 어떻게 됩니까?”
“좋은 질문이다. 우리 청연대의 수는 너희 포함 총 삼십 오명. 경계가 필요한 근무지는 네 곳이다. 한번 근무를 서면 두 시진씩 두 명이 한조로 근무를 서고 교대한다.”
중년인은 눈을 굴리며 계산을 하는 듯 보였다.
“그럼 두 시진 근무 여섯 시진 휴식입니까?”
“그렇다.”
“그럼 남은 세 명은···.”
“한 자리는 청연대의 대주님으로 대주님은 경계근무에 나서지 않으신다. 남은 두 명은 휴일 교대자로 돌아가면서 근무가 없는 휴무자의 자리를 대체 한다.”
질문했던 무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교관 무사는 말을 이어갔다.
“그럼 다음으로 장원 내에 몇 가지 규율을 말해 주겠다. 첫째 장원 내에 생활하는 무사들은 잠자리에 들 때는 빼고는 항상 지급해준 무복만을 입어야 한다. 둘째 적연대와 청연대는 비상상황을 제외하고는 절대 내원으로의 출입을 금한다. 셋째 장원 내의 무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관병과의 충돌을 금한다. 넷째 장원 내의 무사는 맡은 바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질문 있나?”
이번에도 질문했었던 무사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그게 끝인가요?”
“끝이다.”
“...”
‘생각보다 규율이 빡빡하진 않네.’
연수 또한 질문 했던 무사와 비슷한 의문이 들었었다.
초반 군기를 잡으며 다그치길래 군대생활만큼 빡빡하겠거니 으레 짐작하고 있었는데 뭐 대단한 건 없었다.
“그럼 다음은 장원 내에 비상신호에 관해 설명하겠다. 기본적으로 침입 또는 강제 돌입을 시도하는 자를 발견할 경우에는 지금 지급해주는 호각으로 신호한다.”
무사가 이야기하자 옆에 있던 무사가 줄이 달려 목에 걸 수 있는 호각을 하나씩 신입 무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호각 신호를 들었을 때는 경계근무를 서는 무사와 다음 경계근무를 서는 조원 외에는 모든 청연대의 무사들이 소리가 난 곳으로 집결하고 다음 조는 한데 모여 대주의 명을 따른다. 질문 있나?”
교관 무사는 잠시 신입 무사들을 둘러 본 후에 말을 이었다.
“다음으로는 폭죽 신호에 관해 설명하겠다. 폭죽 신호는 두 가지로 묵연대에서 사용하는 것인데 청색 신호와 적색 신호가 있다. 청색 신호는 어르신의 가족 신변에 위험이 닥쳐온 것으로 이 신호를 본 장원 내 무사는 각 대의 대주실 앞에 집합하여 대주의 명에 따른다. 두 번째 적색 신호는 장주 어르신의 신변에 위험이 닥쳐온 것으로 경계 근무자를 포함한 모든 장원 내의 무사들이 신호가 발생한 곳으로 신속히 이동하여 위험에 반응한다. 질문 있나?”
신입 무사들 중 누구도 손을 들지 않자 무사는 말을 이었다.
“다음은 청연대의 보급품과 월삭에 관해 설명하겠다. 우리 청연대의 보급품은 무복과 장검 개인 병기로 세 가지가 있다. 무복 보급은 지금 받은 한 벌 외에 삼일간의 교육이 끝나면 두 벌을 더 지급하고 여섯 달에 한 벌씩 따로 지급한다. 기본으로 받은 장검은 더는 지급하지 않는다. 개인 병기는 독문의 사용하는 병기가 있다면 교육이 끝난 후 말하여 백련강으로 만들어 지급한다. 이 또한 한 번뿐이다. 청연대의 무사 월삭은 은자 스물 다섯 냥으로 30일에 한 번 지급한다. 질문 있나?”
이번에는 연수의 손이 올라갔다.
“조장, 질문하도록.”
“묵연대의 월삭은 얼마인가요?”
다른 신입 무사들 또한 궁금했는지 눈이 반짝였다.
“그건 너희들이 묵연대로 승급하면 알 수 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신입 무사의 손이 올라갔다. 교관이 그 무사를 바라보았다.
“묵연대로 승급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장원 내의 무사들은 모두 두 달에 한번 삼일 동안 합동 훈련을 하는데 승급을 원하는 자는 마지막 훈련일에 대장님에게 요청하여 승급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승급 심사는 개인의 무공실력과 대주들의 인사 평을 듣고 대장님이 결정하게 된다.”
“묵연대의 무사들은 인사 경호라 하였는데 오히려 저희보다 근무시간도 길고 개인 시간이 적지 않습니까?”
연수의 질문에 교관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묵연대의 무사들의 경계 근무지는 오직 한곳 뿐이다. 어르신 또는 가족들의 외출 시 경호 외에는 어르신의 식솔들이 머무르는 전각 근처에서 개인의 시간을 보낸다.”
‘그래? 이러면 좀 튀더라도 일단 묵연대로 승급해야겠는데?’
“더 질문이 없다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중략)···.”
그 외에도 무사는 기본적인 경계근무의 요령과 위험 발생 시 대처에 관해 설명하고 장원 내에 연무장 사용 시간이나 적연대와의 연대 방법 등 많은 설명을 해 주었다.
그렇게 삼일의 교육시간이 끝나고 연수는 남은 보급품과 초승달 모양의 단검 두 자루를 독문 병기로 신청하고는 강진령의 장원 무사로써 인정을 받았다.
연수는 장원에서의 첫 근무를 마치고는 교관을 맡았던 무사를 찾았다.
“이석, 무슨 일이야?”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같은 청연대 무사야. 그냥 형처럼 편히 대하라니까.”
“아, 이게 익숙해지다 보니 바꾸기가 쉽진 않네요.”
선임무사는 피식 웃었다.
“그래 무슨 일인데?”
“제가 장원 무사로 합격한 날 묵연대 무사님께서 장원에서 창술을 배울 수 있다고 하였는데,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 합연십이창. 유용한 창술이지. 대주님께 가봐. 친히 알려 주실 거다.”
“대주님이 직접이요?”
“그래. 적연대주님과 청연대주님은 도독군으로 계실 때 대장님의 부관들이었어. 대장님은 강 어르신의 부장출신이시고. 강어르신께 직접 사사한 합연십이창을 군부에 무장들에게 가르친 분들이 적연대주님과 우리 대주님 두 분이시지. 아마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가보겠습니다.”
“거참 그놈 딱딱하기는.”
연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대주의 업무실을 찾았다.
-대주님 청연대 무사 황이석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안에서 대주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관들을 통해 연수의 이야기를 들은 대주는 신입 중 어리고 적응이 빠른 연수를 가장 좋아했다.
“들어오게.”
연수가 들어서자 서책을 보고 있던 대주는 책을 덮고 찻잔에 차를 한잔 따라 연수에게 내밀었다.
“앉아서 천천히 마시며 이야기하지.”
연수는 대주가 직접 따라준 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대주 실을 한 바퀴 둘러 보았다. 대주가 보던 책부터 대주실 내에 있는 서책은 거의 모두 병법서가 대부분이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저 다름이 아니라 합연십이창을 배우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오! 그래? 훌륭한 생각이네. 자네의 주 병기가 단검이라 했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더욱 훌륭한 판단이야. 창은 단검에 비하자면 훨씬 긴 사거리와 살상력을 갖고 있지. 좋아, 밖으로 나서게.”
“당장 배울수 있습니까?”
“그럼 시간 끌 필요가 있나? 자네 근무가···. 이제 끝났군? 좋아 연무장으로 가세.”
대주는 신이 난 얼굴로 연수를 데리고 연무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무장으로 온 대주는 붉은 수실이 달린 창 두 자루를 들고 와 연수에게 한 자루를 던져 주었다.
“일단 오늘은 첫날이니 기본 초식을 배워 보게나. 내 시연을 해 볼 테니 잘 보게.”
대주의 합연십이창 시연은 절도 있었다.
합연십이창의 기수식은 창끝을 상대에게 겨누고 양다리를 넓게 벌리며 무릎을 굽히는 낮은 자세의 하단세 였다.
첫 초신은 창끝을 돌리며 상대의 하단을 쓸어내고 중단을 찌르는 공격 초식이었고 마지막 열 두 번째 초식을 빼고는 쉼 없이 상대를 몰아치는 직선적인 공격이 주를 이루는 초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역시 저 직선적인 공격과 움직임. 종남의 특성이다.’
연수는 단번에 합연십이창이 종남과 연이 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창술을 펼치며 밟는 보법은 다리 사이의 간격만 조금 더 넓을 뿐 호검문의 암검대대장이 밟았던 보법과 유사점이 많아 보였다.
시연을 끝낸 대주가 연수를 바라보았다.
“그래 어떤가?”
“상대를 몰아치는 합연십이창의 높은 기상이 느껴졌습니다.”
“제대로 봤군. 그럼 초식은 좀 외웠나?”
연수는 첫 초식과 세 번째 초식, 그리고 마지막 초식을 외웠지만,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생각은 없었다.
“첫 초식은 얼추 생각이 나는데 나머지는···.”
“오! 그래? 그럼 첫 초식을 한번 펼쳐 보게.”
연수는 기억나는 대로 기수식을 따라하며 합연십이창의 첫 초식을 펼쳐 보았다.
“훌륭해! 자네 하체가 제법 튼튼하군. 하체의 힘을 그대로 창에 실어내다니···. 혹시 전에 다른 창법을 배운 적이 있던가?”
“처음입니다.”
“그래? 무재가 제법 대단하군. 좋아 그럼 두 번째 초식부터 천천히 보여 줄 테니 잘 보게나.”
연수는 그날 하루 만에 합연십이창은 전반부 여섯 초식을 배울 수 있었다.
연수의 빠른 습득력에 대주는 아주 만족하며 조언을 해주었다.
“젊어서 그런지 습득력이 대단히 빠르군. 내 많은 무장에게 합연십이창을 가르쳐 보았으나 그중 자네만큼 습득력이 빠른 사람은 없었다네. 한데 아직은 초식의 연결과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해. 흉내 내는 수준일세.”
대주는 품속에서 한 권의 서책을 꺼내어 연수에게 내밀었다.
“합연십이창 전반부의 구결과 내가 직접 달아놓은 초식의 해석과 요령이네. 열심히 익혀보게나.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으면 찾아오게. 후반부를 가르쳐 주겠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익히겠습니다.”
“그래, 그래.”
대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는 몸을 돌렸다.
그 날부터 연수는 근무시간 외에는 내가 수련과 합연십이창 수련만을 반복했다.
마치 입산하였을 때처럼 무공 외에는 다른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청연대의 신입 무사들은 삼삼오오 친분을 다지며 근무시간 외에는 저자에 나가 술도 마시고 외식도 하며 여가시간을 보냈는데 연수는 오로지 창법에 매달렸다.
그런 연수를 보며 연수와 함께 장원에 들어온 신입 무사가 구시렁거렸다.
“별 대단한 무공도 아닌데 겨우 저런 창법 하나를 무슨 신공이나 되는 것처럼 익히는군.”
“그러게 말이야, 얼추 이류는 되어 보이는데 저 나이에 저 정도 경지에 오른 놈이 저런 별 볼 일 없는 창법에 목숨을 거네 아주.”
“보나 마나 대주에게 잘 보여서 묵연대에 승급하려고 보여주기식 수련을 하는 거지. 놔두게 저런다고 묵연대에 갈 수 있으면 내가 사 년째 청연대에 있겠나? 가지, 내가 술 한잔 살 테니.”
“오 역시 진 형님! 오늘도 잘 얻어먹겠습니다.”
“하하하, 연 아우 갈수록 얼굴이 두꺼워 지는 것 같아?”
무사들은 잠시 연수의 수련을 보며 쑥덕이더니 돌아섰다.
연수는 무사들이 뭐라 하건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한때 교관이었던 수광이라는 무사가 너무 무리하지 말라며 만류를 했지만, 그 또한 신경 쓰지 않았다.
하루 겨우 세 시진 초식을 갈고 닦는 것은 연수에게는 일상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한동안 이런 수련의 시간을 빼먹었더니 온몸이 근질거리며 좀이 쑤시던 연수였다.
그런데 새로운 무공, 수련할 연무장, 그리고 시간이 주어졌는데 천천히 할 필요 따위 없었다.
처음 한 달을 수련하자 전 반부 여섯 초식을 제법 익혀 대주에게 후반부 여섯 초식을 마저 배운 연수는 완전한 합연십이창의 수련을 이어갔다.
'합연십이창은 분명 강진령의 가전창법과 한맥락의 창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