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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53화 (53/202)

# 53화

연수는 말에 올라타 이동하며 머릿속 가득 패천후를 떠올리고 있었다.

‘패천후···. 사황성주라 사부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으니까 얼추 80 정도 되었을 텐데 그 모습은···. 후~ 대단하군. 제자로 받아 준달 때 덥석 물 걸 그랬나?’

연수는 고개를 흔들며 마음을 추슬렀다.

‘아니야.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바람구멍이니 뭐니 하다가 진짜 제명에 못 죽는 법이지. 잘했다 고연수. 인생에 사부는 한 분이면 충분하지. 사문의 가르침대로 모자라는 것은 훔치면 그만이다.’

연수는 애써 남는 아쉬움을 털어내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남궁가 고깽이 놈과 원수를 졌으니 빨리 떠나는 게 상책이다.’

연수는 당분간 북경에 몸을 숨길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북경이라면 무인들이 함부로 경거망동할 수 없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또 황궁 무고도 있지.’

연수는 한동안 말을 몰아 달리며 밤이 되면 노숙을 하며 그간 훔쳐 익힌 강가쾌련창법을 수련하기도 했다.

자랑질 좋아하는 강진령의 둘째 아들놈이 묵연대 무사들에게 비무를 통해 강가쾌련창을 써먹는 걸 몇 번 본 덕에 대부분 초식을 훔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연수는 잘 알고 있었다.

함부로 써먹기 힘든 것이 이 훔친 무공이란 것을.

하여 단창법으로 개조하여 익히다가 최근에는 단검술로 초식을 변형하여 익히는 중이었다.

창은 사거리가 길고, 단검은 사거리가 짧다. 정반대의 무기인 셈이다.

그런 창법을 단검술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최근 초식 구결을 응용하며 제법 깨달음을 얻었던 연수는 그럭저럭 실마리를 잡아 수련할 수 있었다.

‘진쾌두단 발걸음은 가볍게 찌르기는 절도있게’

연수는 환한 달빛 아래 더는 암수검이라 부르기 힘든 단검술을 펼쳐내고 있었다.

‘이화양타 탈력을 살려 빠르고 강하게 베어낸다.’

‘진화수연참화격 폭풍처럼 몰아치듯 공격 일변도로 모든 기세를 몰아간다’

“쳇!”

연수는 마지막 초식이 영 마음대로 펼쳐지지 않자 애꿎은 땅을 걷어차며 환한 보름달을 올려다보았다.

밝은 달빛을 보자 답답하던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가자. 노야께서도 천천히 가라 하셨으니···.’

쉬지 않고 이동하며 영청현에 들어선 연수.

말을 끌고 현으로 들어서는 연수의 모습은 허리는 굽고 얼굴에는 코 옆에 큰 점이 붙어 구부정한 모습의 꼽추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작은 마구간이 딸린 객잔에 말을 맡기고 객잔으로 들어선 연수.

등이 굽은 꼽추의 모습으로 객잔에 들어가니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 잠시간 머물렀다 사라졌다.

“저, 점소이.”

음식을 나르다가 연수를 발견하고 달려온 점소이. 역시나 연수의 등에 잠시간 시선이 머문다.

“뭘 갖다 드릴까요?”

“밖에 매 놓은 말을 들여서 먹여 주고, 소면과 요리로 동파육 술로는 소흥주를 갖다 주시오.”

“예. 더 필요하신 것은 없습니까?”

“오늘 묵고 갈 방 하나 준비해 주시오.”

“예.”

점소이는 잠시 연수의 옷차림을 살폈지만 말까지 있는 사람이 돈이 없지는 않겠거니 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객잔의 안으로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무심코 시선을 던진 연수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분명 수염이 나 있건만 체형이 유난히도 작고 선이 얇은 모습.

‘남장? 변장 한 번 형편없네. 수염 달면 다 남자냐?’

연수가 빤히 쳐다보자 들어오던 남장 여인 또한 연수를 바라봤다.

잠시간 시선을 마주친 둘은 서로를 외면하며 시선을 옮겼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연수는 음식에 집중하며 열흘 넘도록 관도를 달리며 제대로 먹지 못한 한을 풀듯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며 즐겼다.

‘역시 몸이 허할 때는 고기를 먹어야지.’

한참을 동파육을 음미하며 즐기는데 새로운 인물들이 객잔으로 들어섰다.

먼 길을 강행했는지 먼지를 덮어쓴 덩치가 산만한 남자들은 허리에 돌을 깎아 만든 큰 추(둥그런 모양의 돌이나 쇠에 손잡이를 단 무기)를 달고 다니는 것이 무인인 것 같았다.

‘세상 무식한 무기를 진짜 달고 다니는 놈들이 다 있구만.’

남자들은 요란하게 객잔의 중앙 탁자를 잡더니 이것저것 큰 목청으로 주문하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 남자들의 시선에 연수와 남장 여인이 들어왔다.

무명의 무인 중 수염이 덥수룩한 무식해 보이는 무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병신에 사낸지 계집인지 모를 놈에 별의별 놈이 다 모여있네.”

“수구, 얌전히 있어라. 맡은 바 임무가 끝날 때까지는 시비에 휘말려선 안 된다.”

“누가 뭐라 했소? 형님 그저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도 안된답니까?”

무사를 나무라던 남자의 거친 눈길이 무사에게 쏟아지자 무사가 능청을 떨었다.

“알았수다, 알았어요. 거 무섭게 노려보고 그러십니까?”

“흥! 네놈들은 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안되었다.”

무사의 소리를 들었는지 남장 여인은 잔뜩 독이 오른 표정으로 일어나 그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무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덩치가 제일 큰 무인이 그런 남장 여인을 잠시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내 아우가 실언을 좀 했소. 이해하시오.”

“이해 못 하겠다, 이 돼지 같은 놈아.”

“뭐! 돼지?”

처음 도발을 시작한 수구라는 무사가 눈을 뒤집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걸 또 말리는 덩치 큰 무인.

“됐다, 닥치고 가만있어.”

“하지만···.”

수구는 또 자신을 향해 부라려지는 눈빛에 뒷말을 삼켰다.

“거 미안하게 되었으니 이만합시다.”

“흥! 누구 마음대로? 네놈들 마음대로 시작하고 끝낼 수 있을 만큼 내가 만만하게 보이더냐?”

남장 여인은 허리춤에 매고 있던 채찍을 꺼내어 들었다.

남장 여인이 무기까지 꺼내어 드니 끝내 참던 무인 또한 인내심이 바닥나 버렸다.

“좋은 말로 할 때 알아들을 것을···. 사내새끼 같지는 않고 계집 같은데 꼭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느냐!”

“흥! 돼지같이 몸만 큰 놈이라 큰 관이 필요하겠구나.”

끝까지 지지 않는 남장 여인.

처음 도발을 시작한 수구는 참지 못하고 추를 들고 달려들었다.

-후웅! 콰장창!

“둔한 돼지 놈”

남장 여인은 가볍게 피하며 채찍을 휘둘렀다.

-훅 키쉬! 쫙!

“큭!”

수구는 남장 여인이 휘두른 채찍을 손을 들어 막았으나 기이하게 휘어져 들어온 채찍은 수구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고, 수구의 가슴은 피가 베어져 나오고 있었다.

연수의 눈 또한 휘둥그레졌다.

‘쌍두사편! 맞나? 사부에게 듣기로는 옥안사목 처유희의 무공이라 했는데...’

수구가 부상을 당하자 잠시 지켜보던 두 무인 또한 추를 꺼내어 들고 달려들었다.

채찍을 휘두르며 세 명의 무인을 접근하지 못하게 견제하며 수비하는 남장 여인.

반대로 빈틈을 노리며 추를 휘두르려는 무인들.

“쳇! 내가 붙들겠소.”

-훅! 쫘쫘쫙!!!

“큭!”

수구는 추를 내던지고 여인에게 덤벼들었고 순식간에 채찍에 여러 번 타격 받았지만 끝내 채찍을 왼손에 움켜지고는 무릎을 꿇었다.

어깨와 목에 채찍에 타격을 입은 수구는 커다란 덩치와는 맞지 않게 겨우 채찍 몇 대에 자리에 주저앉자 연수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덩치는 산만한 놈이 겨우 채찍질 몇 번에···. 쯧쯧 덩치가 아깝다.’

채찍이 묶인 여인은 몇 번 채찍을 당겨보더니 신경질적으로 채찍을 던져 버렸다.

‘쌍두사편이 아닌가? 들은 것과 비슷했는데 생각보다 형편없는 것이 아닌 것도 같고···.’

-훙! 훙! 훙!

“흥! 더 덤벼 봐라!”

여인은 두 명의 덩치 큰 무인들이 휘두르는 추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언제까지 피하나 보자! 한 방만 맞으면 머리통이 산산이 조각날 것이다!”

약이 오른 무인 하나가 추를 휘두르며 나섰다.

-훙! 촥!

무인이 휘두르는 추를 피하며 그의 옆구리를 여인의 손이 스치고 지나가자 무인의 옷이 찢어지며 핏기가 비쳤다.

“흥! 이게 다냐?”

“다겠냐? 이 돼지 놈아”

-훙! 훙! 팍!

제일 덩치가 크던 무인이 여인을 압박하더니 결국 여인의 빈틈에 큰 발을 내질렀다.

팔을 교차하며 막은 여인이지만 힘에 밀려 뒤로 날아갔는데 하필 그 방향이 연수가 식사를 하는 쪽이었다.

‘쳇!’

연수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여인의 등을 손으로 받쳐 받아냈다.

여인은 잠시 연수를 보더니 시선을 자신을 날린 무인에게 옮겼다.

연수는 여인의 손등에 검붉게 선 혈관과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팔뚝을 슬쩍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옥안사목 처유희의 전인이 맞나 보군.’

화가 난 남장 여인이 양 엄지를 입에 물고 우득 소리가 나게 씹자 추를 휘두르려던 무사 둘이 주춤했다.

여인은 순간적으로 주춤한 무인들과 손속을 섞기 시작하더니 덩치 큰 무인의 얼굴에 입에 머금었던 피를 뿜어냈다.

-푸우우!

“큭!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냐!”

“크허허헉!”

그때 여인에게 옆구리를 당했던 무인이 입에 거품을 물며 뒤집혔다.

“추문 무슨 일이냐! 왜 그러는 거야?”

“흥! 돼지같이 미련한 놈들이라 반응도 늦는구나.”

여인의 표독스러운 말에 덩치 큰 무인은 여인을 노려봤다.

‘진사지독이었던가? 더러운 독에 중독됐군.’

“네놈 부하가 중독된 독은 진사지독, 내 사문의 독이지. 그리고 네놈! 덩치가 곰 같은 네놈이 중독된 독은 진사혈독! 이 세상에 나 말고는 해독할 수 없다.”

“혀, 형님! 형님! 정신 차려봐! 형님!”

거품을 물고 몸을 부를 떠는 추문을 수구가 부여잡고는 살펴보았지만, 추문의 발작은 점점 격렬해질 뿐이었다.

그 상황을 보던 덩치 큰 무인이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큭!”

“덩치가 커서 그런지 반응이 참으로 둔하구나.”

수구는 무릎을 꿇은 채로 기어와 여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낭자! 내가 잘못했소. 다 내가 잘못 했으니 형님들을 살려 주시오.”

이마에 피가 나도록 바닥에 찧는 수구.

“흥! 늦었다.”

“제발! 제발 제 형님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오! 낭자!”

-쿵! 쿵! 쿵!

수구의 이마는 살이 다 찢어져 허연 뼈가 보일 정도였다.

여인은 그 꼴을 보며 표독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다. 모든 원흉이 네놈의 혀에서 시작되었으니 그 세 치 혀를 잘라 바치거라. 하면 본녀가 특별히 돼지 같은 네놈 형제 둘을 살려주지.”

수구는 망설임 없이 혀를 내밀고는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어 혀를 베어 갔다.

-탕!

막 혀를 자르려는데 날아온 젓가락이 비수를 쳐내어 떨궜다.

순간 여인의 살벌한 눈길이 연수를 향해 돌아갔다.

“이놈! 무슨 상관 질이냐!”

“낭자, 굳이 비싼 원한을 살 필요가 있습니까?”

“저놈은 너에게도 병신이라 모욕을 하지 않았느냐?”

“저 돼지 놈이 눈이 어두운 거야 사실이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요.”

“흥! 넌 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안 되었다.”

“낭자 같은 사파인끼리 원수져서 좋을 일이 뭐 있겠습니까?”

“저까짓 하류 잡배 놈들이 무슨 사파인이라는 거야?”

“우리 사파는 어차피 하류층민들이 더 많지 않습니까?”

“쳇! 이 돼지 같은 놈들아! 운 좋은지 알아라.”

여인은 품에서 검은 환과 하얀 병을 꺼내어 던졌다.

“발작하는 놈은 병에 든걸 먹이고 덩치, 큰놈은 환을 처먹어라.”

수구가 약을 받아 두 무인에게 먹이자 발작이 멈추고 혈색이 돌아왔다.

“고맙습니다. 낭자. 고맙습니다. 소협”

“흥 병신에 계집인지 사내인지 모를 놈이랄 땐 언제고?”

“제가 죽일 놈입니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조아리는 수구를 보며 연수는 혀를 찼다.

“거 그만하고 가서 치료나 하시오. 그러다 당신 뇌까지 보이겠소.”

수구는 포권을 해 보이고는 두 무인을 부축해서 객잔을 나갔다.

여인은 떠나는 무인들을 잠시 바라보더니 연수의 탁자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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